일러두기

1. 이 책은 2013년 7월부터 9월까지 방송된 팟캐스트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사사톡)’의 ‘꼬투리 경제학’ 코너를 수정, 보완해 책으로 묶은 것이다. 방송 파일은 반비 블로그(banbi.tistory.com)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2. 이 책은 강연과 대담, 그리고 방송 후에 집필한 후기와 참고문헌(더 읽을 거리)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담 부분에서 김종배의 말은 ‘김’으로 줄여 푸른 색으로 표시했고, 조형근의 말은 ‘조’로 줄여 검은 색으로 표시했다.


책을 펴내며 1나는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주제넘게 경제학을 말하게 되었나

이 책은 경제라면 고등학교에서 얻은 약간의 기초 지식이 있고 잘 해야 『맨큐의 경제학』 정도를 공부했을 사람들을 위해 썼다. 경제가 내 삶에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지만 바로 그 경제를 도통 모르겠고 경제학은 더 어려워 절망하곤 하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 말이다. 수식과 그래프 들의 어지러운 향연보다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우리들의 살림살이 문제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 경제가 어렵다는데 임금인상 투쟁을 해도 괜찮을지 걱정스러운 사람들, 복지를 확대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나라 재정이 어려워지면 어떡하나 근심스러운 사람들, 쓸데없는 규제는 좀 풀어야 경제가 좋아질 듯한데 탐욕스러운 기업가들이 못 미더워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사람들…….

나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밥이 하늘이라고 늘 밥벌이에 전전긍긍 자신만 챙기며 살았는데, 세상은 내 좁은 생활 세계를 뒤흔들면서 IMF 사태를, 부동산 폭등을, 금융위기를, 청년 실업 문제를 안겼다. 모르고 당하느니 알고 당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경제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스승 없는 독학이 시작되었고, 결국 경제사회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명한 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Berger)의 책 제목을 빌리자면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었는데, 어쩌다 주제넘게 경제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경제는 참으로 중요해서 경제학자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해야겠다. 지난 수년간 대학에서 경제사회학과 정의론을 강의했다. 사회학자들은 정말 별 걸 다하는데, 나 역시 그렇다. 사회학보다는 경제학과 정치철학, 그리고 역사학이 나의 주요 밥벌이 수단이다. 이 책은 분과학문의 울타리를 벗어난 외도가 준 선물 혹은 업보다.

혼자서 하는 고민이 주 업무인 학자에게 젊은이들을 앞에 두고 하는 강의는 축복이자 특권이다. 믿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나는 수업하러 갈 때가, 그러니까 일하러 갈 때가 늘 즐겁다. ‘젊은 타인들에게 말 걸기’가 마음껏 허락되는 시간이 아닌가. 하지만 경제사회학과 정의론 강의 때면 문득 문득 교단 위에서 외로워진다. 젊고 아름다운 청년들이 경제나 분배라는 주제 앞에만 서면 한없이 처연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냉정하거나 무기력하거나. 학생들이 젊은이답지 않게 보수적이라는 말이 전혀 아니다. 토론을 할 때면 많은 학생들이 최저임금제를 지지하고, 더 많은 복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는 경제적 판단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 당위 때문이다. 즉 냉철하게 경제학적으로 보면 규제나 복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진리와 도덕적 당위가 충돌하는 혼돈의 와중에 학생들이 가장 잘 쓰는 표현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규제 완화도 어쩔 수 없고, 최저임금제 같은 규제도 필요하다는 식이다.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어쩌다 경제와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선생 앞에서 학생들은 어쩔 줄 몰라 한다. 세상이 어쩌다가 이렇게 어쩔 수 없게 되어버린 걸까? 갈수록 목이 탔다.

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다. 세상에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들이 배운 경제학이 그것뿐이니……. 수많은 인문사회계 대학생들이 부시 전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출신인 그레고리 맨큐(Gregory Mankiw)가 쓴 경제학 교과서와 그 유사판 서적들로 경제를 배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는 어느 정도는 세계적인 추세다. 하지만 한국은 정말 지나치다. 한국의 제도 경제학계에서 다른 경제학들은 비주류가 아니라 무 존재에 가깝다. 비주류란 웬만큼 어깃장 정도는 놓아볼 만한 지분이 있을 때나 쓰는 말이다. 정당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한국 대학의 비주류 경제학 대접은 비주류라는 말조차 사치스럽게 만든다. 본시 앎의 욕망과 창조적 성과는 새롭고 다른 무언가를 만날 때 솟아나는 지적 자극에서 나온다. 학문적 종다양성이 거세된 처지에서 어떻게 다른 생각을, 새로운 상상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 아니, 사실은 비판이 있는지도 모르는 — 교과서는 교과서가 아니라 종교 경전이 된다. 학생들은 맨큐가 말하는 대로 믿는다. 최저임금제는 노동자들의 상태를 개선하기는커녕 청년층 미숙련 노동자의 실업을 증가시킬 뿐이고, 튼튼한 사회복지 제도를 자랑하던 독일은 바로 그 복지 때문에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프랑스처럼 세율을 높이다가는 사람들의 근로 의욕이 떨어지니 미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은 이런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 등등. 이것이 바로 한 해에도 수십 만 명이 대학에서, 공무원 입시 학원에서 배우고 시험 치는 경제학 입문의 ‘과학적 진리’들이다. 바로 이런 것이 지배 이데올로기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자조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무기력은 경제학이라면 그것밖에 없는 줄로 알게 한 기성세대들의 책임이다. 그 말석에 나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이 당혹스러운 갈증을 느끼던 와중에 2013년 여름, 예상치 못한 제안이 들어왔다.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가 새롭게 시작하는 팟캐스트 <사사로운 토크>의 한 코너에서 매주 경제문제를 주제로 대담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분과학문의 경계 넘기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학계의 울타리를 넘어서보라는 대담한 유혹이었던 셈인데, 나는 기어코 이 떡밥을 덥석 물고야 말았다. 좁은 강단의 보호막을 넘어서 일반 대중들과 만나고 싶었다. 출결 관리와 학점 평가라는 무기 없이 날것 그대로 말하고 듣고 비판받고 싶어졌다. 이 답답한 현실을 넘어서려면 정말로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등을 떠밀었으리라.

의논 끝에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발자취를 좇아가 보기로 했다. 경제학이 곡선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라면, 우리의 관심은 좀 더 일찍 사람 자체로 향해야 했다.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같은 초대형 경제사상가들을 우선 초대했다. 조지프 슘페터처럼 보수 우파들이 극진히 찬미하는 주류 학자도 외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중의 경제 교양서들에서는 찾기 어려운 학자들을 초대했다. 막스 베버, 칼 폴라니, 소스타인 베블런, 마르셀 모스 등 현대 주류 경제학의 계보에서는 추방된 채 사회학이나 인류학 언저리를 떠돌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이 응당 받아야 할 대접을 돌려주고자 했다.

하나같이 거대한 사상가들이라 그들의 사상 전모를 풀어낼 능력도 지면도 허락될 리가 없었다. 대신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 경제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거기에 이 사상가들이 밥 먹고 숨 쉬고 사랑하고 싸우던 삶과 시대의 이야기를 버무렸다. 무릇 모든 사상은 시대의 자식인 법인지라 그 공리와 증명의 이면에는 개인과 시대의 영광과 상처, 흔적들이 아로새겨져 있는 법이다. 동시에 위대한 사상들은 자신을 낳은 어머니의 품을 떠나서 시대의 벽을 뛰어넘는다. 사상들의 시대적 한계와 현재적 의의를 동시에 찾아보려 애썼다. 주류 경제학의 좁고 음울한 세계 바깥에 이토록 광대한 인류의 지혜와 통찰들이 빛나고 있음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덜컥 문 떡밥이었지만 방송이 다가오면서 점점 두려워졌다. 첫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마음가짐과 준비 정도가 제일 큰 문제였지만, 눈높이 맞추기도 숙제였다. 청취자들은 얼마나 호응해줄까? 자극적이어야 잘 팔린다는 팟캐스트 시장에서 진지하고 따분한 경제사상 강의를 들어줄 ‘귀인’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는데 몇 명이나 댓글을 달아줄까?

다행히도 반응이 괜찮았다. 범속한 인간인지라 격려와 칭찬의 댓글들이 기뻤지만, 간혹 나오는 쓴소리도 진심으로 반가웠다. 쓴소리들은 대개 정중했고, 한결 진지했다. 경제학 전공자들의 고언도 소중했다. 책으로 옮겨 쓰는데 예의 쓴소리들이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칭찬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면, 비판은 이 책을 더 두껍게 만들었다. 그만큼 더 생각하게 해준 청취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김종배 씨와 함께 팟캐스트를 하게 된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그가 던진 눈높이에 맞춘 질문들, 생활인의 목소리로 육박해오는 딴죽 걸기에 나는 당황했고, 새로운 생각의 길을 떠날 수 있었다. 녹취된 원고를 보는데 여기저기서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해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자못 새삼스러웠다. 이 멋지게 짓궂은 공저자 덕에 책이 조금 더 두꺼워졌다. 방송을 들었던 분은 아시겠지만, 나는 이렇게 거침없고 매끄럽게 대답하지 못했다. 증명사진에도 포토샵이 기본인 시절이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반비의 편집부와 김희진 편집장께는 고맙고 또 미안하다. 김희진 편집장은 처음부터 방송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주었고, 수시로 의견을 제시해주었다. 고된 녹취 작업도 해주었다.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주제들을 장마다 따로 부록으로 덧붙이게 한 이도, 흥미가 생기는 사상가는 더 깊이 알아보시라고 더 읽을거리들을 덧붙이게 한 이도 모두 김희진 편집장이다. 그 덕에 책이 또 두꺼워졌다. 또한 이 게으른 필자의 무책임한 마감 약속을 하염없이 믿어주고 기다려주기까지 했다. 가끔 책 만드는 직업을 꿈꾸다가도 나 같은 필자를 만날까 단념한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대세인 세상이 되었다. 비극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과 좋다는 말은 결코 동의어가 아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이의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 어쩔 수 없으니 좋다는 긍정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안타깝다는 짙은 탄식이 들려올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때로 외로울지언정 좌절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는 미약한 존재들이지만, 이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을 공유함으로써 서로 연결되고 이윽고 무언가 어쩔 수 있게 되는 거대한 존재들이다. 이 안타까움, 목마름에서부터 출발하자. 그 여정에 이 책이 자그마한 디딤돌 하나가 되길 바란다.

 

2014년 7월

조형근


책을 펴내며 2우리가 오해한 경제학의 고전들

어느 독재자가 있었다. 유혈 쿠데타로 집권해 운 좋게도 압축 성장이 마지막 결실을 맺을 즈음 권력을 잡았고, 세계경제 환경이 호조건을 보일 때 권좌에 앉아 있었다. 덕분에 그의 치하에서 산출된 경제지표는 대부분 플러스 행렬을 이루었다.

용비어천가가 쏟아졌다. ‘그분’이 다른 건 몰라도 경제 하나만은 확실히 챙겼는데, 비결은 경제 사령탑에 모든 권한을 넘겨주고 정치 논리를 들이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상찬이 이어졌다.

신화는 그렇게 재확인됐고 재생산됐다. 경제의 최대 적은 정치라는, 경제는 정치 바깥에서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굴러가야 하는 영역이라는 신화가 재생산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신화는 대중에게 내면화됐다.

경제에서 정치가 거세돼버린 후 삶의 문제는 죄다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됐다. 시장은 순수 자연 상태로 존재해야 하는 영역이 됐고, 순수 자연 상태는 곧 적자생존의 법칙이 관철되는 정글에 비유됐으며, 시장 경쟁에서의 탈락은 적자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개인적 무능의 소산으로 치부됐다. 시장 논리는 이렇게 삶의 교리가 됐다.

신화와 교리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경제학 대가들이 호출됐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유력한 근거로 제시됐고, 조지프 슘페터의 ‘혁신적인 기업가’는 자본주의 견인차로서 자본가의 위상을 입증하는 근거로 제시됐다. 경제학의 ‘권위’는 이렇게 자본의 교리로 활용됐고 대중의 지침으로 강제됐다.

하지만 이는 왜곡된 사실의 전파였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국부론》의 요지가 아니라 그저 일부에 지나지 않는 개념인데도 핵심 뼈대로 왜곡됐고, 조지프 슘페터의 ‘혁신 기업가’는 아버지 잘 만나 대기업 지분을 물려받은 자본가를 뜻하는 이가 아니었는데도 자본가 찬양가로 왜곡됐다. 애덤 스미스가 누구보다도 노동자의 권리를 앞장서서 옹호한 사실은 감춰졌으며, 조지프 슘페터가 돈 벌겠다는 욕심으로 가득한 자본가들을 경멸했다는 사실 또한 봉인됐다.

편향된 인용이 왜곡된 인식을 유도하는 작금의 현상을 바로잡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본래 의미로 돌아가기, 한국의 시장주의자들이 교조로 앞세우는 경제학 대가들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를 맥락 속에서 되살피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인식을 교정하려는 작은 시도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왜곡된 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경제학 이론을 당시의 맥락 속에서 되살핌으로써 경제학에 대한 이해를 바로잡을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삶의 태도를 재정립하기 위한 소박한 시도다.

이런 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형근 교수의 주도로 이뤄졌다. 내가 한 일이라곤 조형근 교수의 맥락 복원 작업에 장단을 맞추는 것뿐이었다. 오로지 대중의 시각에서 질문을 던짐으로써 대중적 통념과 경제학 진의의 간극을 확인하는 계기를 부여했을 뿐이었다.

물론 이 책에도 한계가 있다. 시장주의자들의 편향된 인용에 맞서 재해석을 하려 했기에 역편향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문제의식을 그저 주류 해석에 대한 반론 정도로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원전의 드넓고 심오한 세계에 몸을 담가보라고 권유하는 조언 정도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

경제학의 토대이자 지향점은 결국 인간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준 조형근 교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4년 7월

김종배


1723

스코틀랜드에서 세무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애덤 스미스가 세례받기 약 6개월 전에 사망했다.

1727

네 살경 집시들에게 납치당했다 구출되었다.

1737

열네 살에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친구였던 프랜시스 허치슨으로부터 윤리철학을 공부하였다.

1740

옥스퍼드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다.

1746

옥스퍼드 대학을 자퇴하였다.

1748

에든버러에서 공개 강의를 했고, 강의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1750

데이비드 흄을 만났으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1751

글래스고 대학 논리학 강좌의 교수가 되었다.

1759

『도덕감정론』을 발표하였다.

1764

귀족 타운젠트의 아들을 데리고 가정교사를 하며 유럽 여행을 시작한다. 2년에 걸쳐 프랑스 등지를 여행하며 여러 나라의 행정 조직을 시찰하고 중농주의 사상가들과 만나 이들의 사상과 이론을 흡수하였다.

1776

『국부론』을 발표하였다. 이 책은 경제학 사상 최초의 체계적 저서로 그후의 여러 학설의 바탕이 된 고전 중의 고전이다.

1778

에든버러의 관세 위원이 되었다.

1787

글래스고 대학 학장을 지냈다.

1790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경제학의 패륜아들

강의

2013년 2월 20일이었죠.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경총 회장단과 만나셨다고 합니다. 최대 주제가 노사관계였다고 하는데요. 경총 회장단은, 첫째로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은 정규직 과보호 때문이다.”, 둘째 “고임금과 강성 노조가 큰 문제다.”, 셋째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대신에 경제민주화 하겠다고 정부 개입이 느는 것은 참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당시 박 당선인은, 첫째 “노사 자율을 원칙으로 하겠다”, 둘째 “그렇지만 극단적인 불법 투쟁은 바로잡겠다.”, 셋째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노사관계를 형성하겠다.” 이렇게 약속했다고 합니다.

자본가 대표들이 감히 대통령 앞에서 알은체하면서 인용해도 되는 외국 학자가 애덤 스미스입니다. 예를 들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나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같은 사람들을 인용했다가는 자칫 분위기 썰렁해질 수도 있겠죠? 자본가 대표들도 ‘애덤 스미스라면 우리 대통령 각하께서도 틀림없이 아실 것이다.’, 이렇게 확신하는 학자라는 얘기죠. 그만큼 유명한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겠죠. 시장에 맡겨라, 규제하지 마라, 인간의 이기심대로만 하면 결국 다 잘되게 마련이다…… 애덤 스미스는 이른바 자유방임주의 사상의 원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업가들, 경제 관료들, 보수 언론 논설위원 같은 이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며, “아버지, 아버지” 합니다. 저는 오늘 아버지에 대한 이 사람들의 효심을 좀 따져볼까 합니다. 효자, 효녀들인지, 아니면 막돼먹은 불효자식들인지, 애덤 스미스의 글을 직접 읽어보면서 제대로 따져보자는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중에서 한국의 자본가 대표들이 강조한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보죠.

먼저 고임금 문제부터 살펴볼까요? 스미스는 한마디로 “임금을 많이 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고임금 지급으로 국부가 증대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성과급을 주면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게 된다.”라고도 이야기하는데요. 그런데 성과급 줘서 일 많이 시키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성과급 중심으로 가면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일을 열심히 하다가 직업병이 생겨 몸이 망가지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너무 일 열심히 하지 못하게 말려야 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게다가 이 양반은 “일주일에 나흘 일하면 사흘은 쉬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4일제, 21세기에 봐도 너무 앞서나간 주장이네요. 한국의 어떤 사람들은 극렬 종북 좌빨이라고 욕을 할 법도 합니다.

노사 갈등 문제를 두고도 자본가 대표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애덤 스미스의 생각은 명쾌합니다. “노사 갈등은 일방적으로 자본가들이 유리한 게임이다.”, “노동자들은 항상 당한다.”, “노동자들이 극렬 투쟁(그때도 많이 했습니다)을 왜 하느냐, 빨리 결말을 못 내면 노동자들은 굶어 죽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본가들은 극렬 투쟁 안 하죠. 당시에도 “자본가들은 신사적이고 노동자들만 과격한 것 아니냐.”라면서 노동자들만 탓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데, 애덤 스미스가 그런 사람들한테 이랬답니다. “진상도 모르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인간들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야, 이 진상아!”라고 한 거죠. 어감만 보면 그렇습니다. 이렇게 노사 갈등이 이어지다가 파업도 하게 되는데, 애덤 스미스는 “언제나 파업은 주모자들에 대한 처벌 등 파국으로, 비극으로 끝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치안판사부터 시작해 모든 정부기구가 자본가들을 도와주기 때문이라는 거죠. 즉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한마디로 이렇습니다. “노동자만 처벌하지 말고 자본가도 처벌하라.” 250년 전, 거의 18세기 중반의 영국 이야기인데, 꼭 지금 한국 이야기 같습니다.

애덤 스미스가 규제를 반대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자연적 자유’를 주장하면서 규제를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규제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은행업의 사례를 들면서 “이렇게 파괴적인 것은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라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무조건 ‘이기심 만세! 시장 만세! 규제 반대!’를 외친 천박한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애덤 스미스는 원래 글래스고 대학의 도덕철학 교수였죠. 그의 정치경제학은 도덕철학의 일부였기에 도덕과 무관하게 “이기심 만세!”를 외치는 학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욱 철저히 도덕 원칙을 적용하려는 학문이 애덤 스미스의 정치경제학이었습니다. 이기심이라는 현실은 긍정하되 이를 올바르게 인도하는 도덕 원칙과 제도의 확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애덤 스미스라는 양반,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참 통찰력 있고 균형 잡힌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자칭 ‘자식’들이 이분의 말씀 중에 마음에 드는 절반만 칭송하고 자기들을 야단치는 나머지 절반은 모르는 체하는데 이런 걸 패륜이라고 합니다. 유산을 물려받으려면 원래 부채도 같이 상속받아야죠. 자기한테 유리한 것만 받고 불리한 것은 안 받을 수는 없습니다. 유리할 땐 내 아버지이고 불리할 땐 내 아버지 아니다, 나 저런 사람 모른다면서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이런 사람들이 바로 패륜아들이죠. 자칭 애덤 스미스의 자식 여러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시려면 아버지 말씀 잘 듣고 부디 효자 효녀 되시기 바랍니다.


대담

애덤 스미스의 상생하는 삶

아, 내용이 상당히 좋습니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라고 하면 보통 신자유주의 이야기를 하죠. 쉽게 이야기하면 신자유주의의 시조, 단군 할아버지쯤 되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들어보니까 아니네요? 아무튼 애덤 스미스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 자본의 논리를 언급하셨는데,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조금 있다가 집중적으로 여쭤보기로 하고요. 그럼 과연 애덤 스미스가 어떤 사람인지 일단 인물 탐구부터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애덤 스미스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조금 전 소개해주신 이야기는 요약하자면 자본가하고 노동자하고 공생하자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본인도 정말 상생의 삶을 살았나요? 왜냐하면, 이론 따로 실천 따로인 학자들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제가 볼 때는 상생 수준도 아니고 헌신하면서 산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오, 진짜로요?

왜냐하면 이분이 ‘모솔’이었습니다. 모태 솔로. 평생을 솔로로 살았기 때문에, 돌볼 가족이 없었죠, 어머니하고 살기는 했지만요. 돈은 꽤 벌었습니다만 번 돈을 평생 자선단체에 기부하면서 살았고, 남은 돈도 죽을 때 전부 기부했습니다. 책이나 원고는 모두 동료들과 친척들한테 나눠줬습니다. 그러나 재산은 전부 다 기부했어요.

 

근데 과연 친척들이 좋아했을까요? 돈 안 주고 책을 주는데 말이죠.

원래 위대한 분들의 자식들이나 친척들은 이걸 감수해야 됩니다.

 

만약에 집필 원고를 계속 갖고 있었다면 나중에 경매에 붙여서 떼돈을 벌 수 있지만, 죽은 뒤에 노트 한 권 주고 “야, 이거 잘 보관해라.”라고 했다는 얘긴데, 친척들이 “아니, 뭐야?” 이러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노트는 전부 다 불태우라고 유언을 했어요.

 

그럼, 자기가 갖고 있던 책만 준 거네요? 밑줄 쫙쫙 그은? 한 권에 100원이나 받을 수 있을까요?

당시엔 책값이 굉장히 비쌌습니다.

 

상당히 양심적인 사람인 듯한데, 저도 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이 양반이 글래스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학기 중이었단 말이에요, 방학이 아니라. 그래서 강의를 듣던 학생들에게 강의료를 돌려줬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아마 1764년경의 일일 텐데요. 당시 찰스 타운젠드라는 영국의 유명한 귀족이 젊은 양아들인 헨리 스콧을 유럽 대륙으로 데려가서 이것저것 가르쳐주면서 견문을 좀 넓혀달라고 애덤 스미스에게 청합니다.

오, 가정교사?

그렇죠, 요즘 말로 하면 가정교사죠. 자기도 좋잖아요, 경비를 받고 여행을 하니까. 그래서 결심을 하고 대학을 그만둡니다. 그런데 학기 중이었죠. 그래서 이 양반이 어떻게 하느냐,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수업료 전부 다 돌려주마”라면서 실제로 돈을 다 돌려줍니다. 이러기 쉽지 않죠. 여기까지만 해도 상당한 미담인데, 학생들이 참 고맙다면서 돈을 또 돌려줬어요.

 

그런데, 아무리 대학교수가 끗발이 안 좋았다고는 하지만 가정교사보다는 대학교수가 더 낫지 않았나요?

물론 그럴 수도 있는데, 진상을 알려면 항상 이면을 볼 필요가 있죠. 애덤 스미스가 가정교사를 맡으면서, 보수로 교수 연봉의 두 배를 받기로 했거든요. 나중에 연금도 받기로 하고요.

 

연금? 아니, 무슨 가정교사한테 연금까지 주는 경우가 있습니까?

왜냐하면, 이 당시에 애덤 스미스가 이미 유명해져 있었거든요. 1759년에 『도덕감정론』을 썼어요. 『국부론』과 함께 양대 저작인데, 이 책으로 이미 유럽 대륙까지 알려진 스타가 되었죠.

 

그럼 더욱 이해가 안 가죠. 왜냐하면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으로 유럽에서 이미 학문적 명성을 쌓았다면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면서 연구에 매진하면 되지 상대가 아무리 잘 나가는 귀족이라고 해도 아들의 가정교사를 한다? 좀 납득이 안 가거든요. 혹시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겁니까?

아, 사실 애덤 스미스도 큰 세상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죠. 여행이 어렵던 시절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출생지가 원래 잉글랜드도 아니고 스코틀랜드였지 않습니까? 영국에서도 변방이었죠.

 

기성용이 뛰었던 셀틱 팀이 아마 글래스고에 연고를 두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퍼거슨 전 맨유 감독도 스코틀랜드 출신이에요. 그리고 예전에 멜 깁슨이 주연한 영화.

아, 「브레이브 하트」요?

 

네, 소피 마르소도 나왔는데.

소피 마르소가 참 예뻤죠.(웃음) 아무튼 애덤 스미스도 대륙에 가서 견문을 넓혀보고 싶어 했죠. 당시 유럽 대륙, 특히 프랑스는 계몽사상의 중심지 아닙니까?

 

그때가 1700년대 중반이면 프랑스대혁명이 터지기 조금 전이니까, 계몽사상이 막 성가를 드높이던 때로군요. 선진 조류를 접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을 법하네요.

그렇죠. 다행스럽게도 대륙에 가서 유명한 사람들은 다 만납니다. 볼테르,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엘베시우스(Claude Adrien Helvétius) 등을 만나고, 당시 파리에 와 있던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도 만나고, 경제학과 관련해서는 매우 중요한 사상가인 프랑수아 케네(François Quesnay)라는 중농학파 학자도 만납니다.

노동가치설의 원조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기로 하죠. 경제사상 이야기를 했습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애덤 스미스가 글래스고 대학에서 교수를 하다가 견문을 넓히기 위해 귀족의 아들을 따라 유럽 여행을 하면서 견문을 넓혔고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집필한 저작이 『국부론』 아닙니까? 요즘 애덤 스미스라고 하면 나오는 이야기는 『국부론』에 집중돼 있는데, 애덤 스미스가 노동자에게 임금을 많이 주라고 했다고요? 이유가 뭐죠?

경제학적으로는 인구 증가가 경제성장의 기초라는 사실부터 짚어야겠네요. 우리나라도 지금 저출산 고령화 문제로 고심 중이죠. 미국에도 문제가 굉장히 많지만 어쨌든 서구 선진국 중에서는 그래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이민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인종의 용광로죠. 계속 들어오니까.

그렇죠. 사실 인구는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동력입니다. 저희 세대는 자랄 때 그저 인구 줄이기가 최대 목표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낯선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요.

 

저 초등학교 다닐 때가 박정희 시대였는데, 인구 줄이기 관련해서 표어 짓기, 포스터 그리기, 정말로 매일 했어요. 그런데 처음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했다가, 몇 년 뒤엔 ‘둘’에서 ‘하나’로 바뀌었어요.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표어 아세요?

 

뭔데요?

‘무턱대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맞아요, 기억납니다! 당시에 먹고살기 힘들어서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잖아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멀리 내다보지 못한 참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렇죠. 과잉은 언제나 문제가 되긴 하는데, 정말로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인구 확보라는 생각을 당시로서는 하지 못했죠. 노동자들이 입에 풀칠도 못할 정도로 가난한 상황이라면 인구가 늘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장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이 잘살아야 인구가 늘고 경제가 발전한다는 생각을 애덤 스미스는 했던 거죠. 두 번째는 좀 더 깊은 내용인데요, ‘노동가치설’이라고 들어보셨죠? 노동가치설의 원조가 바로 애덤 스미스입니다.

 

아, 카를 마르크스가 원조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자본론』에 보면 ‘사냥꾼이 사슴을 교환’ 하는 이야기(사냥꾼이 물개 한 마리를 잡는 데 드는 노동이 사슴 한 마리를 잡는 데 드는 노동의 두 배라면, 한 마리의 물개는 당연히 두 마리의 사슴과 교환되고 또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가 나오는데 이 사례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자본론』 쓰면서 애덤 스미스 같은 사람들을 비판하지 않았나요?

물론 기본적으로는 비판합니다만, 노동가치설이라는 발상 자체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까 노동가치설이란, 상품이 교환된다는 것은 교환가치가 있다는 뜻이고 교환하려면 동일한 가치의 척도가 있어야 하는데 그 원천이 바로 인간의 노동력이다, 이거잖아요.

맞습니다. 바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이죠. 그런데 이 얘기를 먼저 한 사람이 애덤 스미스입니다.

 

아, 그래요?

사실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모두 노동가치론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생각할 때, 상품 가치의 실체는 기본적으로 노동인 거예요. 물론 깊이 들어가서 학문의 영역에서는 해석 방식을 두고 서로 갈라서지만 기본적으로는 발상이 같습니다.

 

그러니까 교환가치를 이해하자면, 예를 들어서, 똑같은 장롱인데 공장에서 합판 갖고 찍어낸 장롱과 장인이 6개월에 걸쳐 손수 만든 장롱의 가격은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물론 좀 거친 사례이긴 하지만, 장롱의 쓰임새, 즉 사용가치는 같다는 거죠. 쓰임새는 같지만 교환가치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거기에 투입된 인간 노동력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얘기죠. 보통 장인의 제품이 비싼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다면 노동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겠네요.

네, 바로 그런 가치의 실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노동자니까 당연히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가치의 실체를 창조하는 노동자들이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사는 공평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공평한 세상이라는 말까지 합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현대 주류 경제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용어 중의 하나가 바로 ‘공평함’ 같은 말입니다. 가치 지향적이고 과학적이지 못한 말이라고요. 그런데 애덤 스미스는 노동자들이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사는 세상이 공평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국부론』에서 분명히 이야기하죠.

 

그런데 애덤 스미스가 의무교육 제도, 누진세 등도 주장했다는데 사실입니까?

네, 맞습니다. 많이 연구하셨네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펴낸 시점이 1770년대 중후반쯤 아닙니까? 1776년으로 기억하는데, 이때 의무교육 제도를 주장했다고요?

네, 분명히 ‘의무교육’이라고 말합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산업혁명이 막 시작되던 시절이었는데요, 지금 우리나라로 보자면 ‘종북 좌빨’ 수준을 뛰어넘어도 엄청 뛰어넘은 수준이네요? 정확히 어떤 내용입니까?

출처를 분명히 하자면, 『국부론』 제5편 1장 ‘국왕(또는 국가)의 지출’ 부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물론 초등교육 수준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엔 초등교육도 못 받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죠. 대학 입학은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이었고요. 그래서 초등교육에 대해 의무교육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신분 높고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알아서 교육을 잘 시킬 수 있었지만 서민들은 그럴 수가 없다고 보았거든요, 그래서 여기 작은 절 제목이 ‘신분이 높고 재산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보다 서민들에 대한 교육에 국가가 더 주의해야 한다.’였어요. 내용을 보면, 각 교구나 지역에 국가가 직접 작은 학교들을 세워서 의무적으로 교육을 실시하게 하자고 말합니다. 시대 차이를 고려한다면, 요즘 무상교육 도입하자는 주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혁신적인 내용입니다. 급진 좌파적 주장이죠.

 

누진세는요?

누진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국부론』 2편, 조세에 관한 부분에 나오는데요. 여기서 유명한 조세의 4원칙을 언급하기도 해요. 누진세와 관련해서는 가옥 임대료에 관해 논하면서 임대료 받아서 챙기는 사람들한테는 세금을 많이 매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세금은 일반적으로 부자들이 많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가 말한 과세의 일반원칙 중 제1원칙은 ‘과세의 평등’이거든요. 사람 따라 세율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누진세는 불평등한 과세니까 잘못 아니냐, 이렇게 반론을 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스미스는 “이런 것은 불합리하지 않은 불평등이며, 합리적인 불평등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세금은 공공지출에 필요한 돈을 조세 형태로 거둬들이는 거죠. 이런 공공 목적을 위해서는 수입에 비례해서가 아니라 이를 초과해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두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말입니다.

 

무상급식은 종북 좌파 논리라며 시장 자리까지 걸고 반대했던 사람도 있고, 많이 내린 법인세율을 국가 재정을 생각해서 조금만 올리자고 하니까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애덤 스미스가 지금 한국에 살면서 이걸 봤다면 좋은 소리 안 나왔겠네요?

점잖은 사람이라 욕설은 안 했겠습니다만, 아마 ‘합리적인 누진세를 거부하는 비합리적인 사람들’이라고 좋지 않게 봤을지도 모르죠. 속으로는 “야, 이 진상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생산은 쌓아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것

너무 점잖게 얘기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자, 그런데 우리가 『국부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국부가 ‘국가의 부’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알기로 애덤 스미스가 규정한 국부는 생필품과 편의품이거든요. 이것을 국부로 봤는데. 그러니까 임금을 많이 주어야 노동자들이 더 많은 생필품과 편의품을 소비해서 생산이 유발되고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는다는 주장 아닙니까?

물론 그런 점도 있지만, 애덤 스미스는 좀 더 근본적인 지점을 겨냥했다고 봅니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생산의 유일한 목적은 소비다.”라고 분명히 언급합니다. 생산하는 이유는 바로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관점인데, 생산하는 이유가 축적이 아니고 소비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소비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이죠. 재벌이라고 해서 노동자들보다 세 배, 네 배씩 먹진 않거든요. 결국 소비의 주체는 노동자들이고 노동자들은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과 편의품을 소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스미스는 고임금을 통해 생산을 유발해서 경제를 성장시키려 했다기보다는, 노동자를 포함한 대중들이 잘 소비하고 잘사는 사회를 지향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결과적으로 생산이 활발해지고 경제가 더욱더 성장할 수 있겠지만, 주객이 바뀌어서는 곤란할 듯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너무 소박하지 않습니까? 무슨 얘기냐면, 오늘날 자본이 일국의 경계를 넘어 세계화되어 있고 모든 상품과 자본이 국가 단위에서 유통되지 않고 세계화되어 있는데,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는(물론 당대의 특징이 반영되었겠지만) 결국 일국 단위의 내수 차원에서만 통용되는 논리 아니냐는 뜻입니다.

물론 이 부분은 애덤 스미스가 살던 시대의 상황을 고려해야죠. 당시에도 상품은 수출되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자본이 이동해 해외에 공장을 짓고 금융이 전 세계를 오가는 시절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의 논의를 지금 상황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곤란합니다. 다만 기본 취지는 참조할 수 있죠. 예를 들자면,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2008년 10월의 월스트리트 발 국제 금융위기를 야기했던 금융자본가들이 바라보는 부의 본질은 무엇이었습니까? 만질 수 있는 화폐도 금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컴퓨터 모니터에 뜨는 엄청난 화폐와 채무 액수들이 부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는데 펑 터지고 나니까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죠.

 

그렇죠. 금융파생상품 열심히 만들어서 가공자본을 생성하다가 쫄딱 망했죠. 이건 애덤 스미스와는 멀어도 너무 먼 현상이었죠.

그렇죠. 애덤 스미스가 다시 깨어나 이 꼴을 봤다면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시장경제가 아니야.”라고 말할 겁니다.

 

애덤 스미스가 성과급과 직업병의 상관관계도 말했다고 하셨죠. 그에 대한 부연설명은 따로 부탁드리지 않겠는데, 이 부분은 여쭤보고 싶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OECD 회원국들 가운데 노동시간이 가장 긴 편에 속합니다. 그런데 성과급을 많이 받으려다가 노동시간이 길어진 것은 절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현상을 애덤 스미스가 봤다면 뭐라고 이야기했을까요?

글쎄요, 뭐라고 얘기했을까요.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가 “야근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가 구설에 올랐었죠. 일단 한국에서는 자본이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문제가 심각한데, 사실 노동자들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당연한 말이지만, 어느 누가 더 오래 일을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러나 너무나 오랫동안 노동중독 사회가 유지되다 보니까 노동자들조차도 어느 순간부터는 일을 오래하는 것, 다시 말해 퇴근 안 하고 밤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을 은연중에 당연시하는 경향이 생긴 듯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길이 들었겠죠.

길이 들었죠. 그런데 우리 스스로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언제 이런 생각을 했냐 하면요, 근년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의 몇몇 국가들(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등)이 재정 위기를 겪고 있죠. 이 나라들에 대한 보도 내용과 인터넷 댓글, 일반인들의 술자리 대화 등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나라 국민들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입니다. 일도 열심히 안 하면서 복지 요구하고 놀고먹다가 망했다는 식이죠. 그런데 직접 가서 봤나요? 사실 그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말하는데 바로 여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노동중독 윤리가 숨어 있는 거죠.

 

장시간 노동을 노동자들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는 저도 인정합니다. 제시간에 칼퇴근하는 신입사원이나 젊은 직장인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꼭 경영진뿐만은 아니죠.

아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할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렇죠. 그런데 만약에 자본가들이 칼퇴근을 보장해왔다면 그렇게까지 길들여지진 않았겠죠. 또 하나 재미있는 얘기가 있는데요,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해서 극렬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라고 애덤 스미스가 말했다고요? 정확히 무슨 이야기입니까?

노동과 자본의 역관계에서 참으로 당연하다고 애덤 스미스는 생각합니다. 파업이 시작됐다고 해보죠. 자본가는 노동자가 없어도 1~2년은 버틸 수 있습니다. 축적해놓은 재산이 있는 사람을 우리는 자본가라고 하니까요. 반면 “직장이 없는 노동자는 1주일을 버티기 쉽지 않고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1년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애덤 스미스는 진단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경우도 든든한 파업기금 같은 것이 전혀 없다면 실직한 노동자들이 버틸 수가 없잖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노사 갈등에서 파업 투쟁으로 나아가는 상황은 애초에 노동자가 불리한 싸움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노사 갈등이 빚어질 때 정부의 상담역이 되는 쪽은 언제나 고용주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스미스는 상당히 균형 잡힌 사람이고 냉철한 사람이거든요. 즉 자본과 노동은 태생적으로 힘의 관계가 불평등한데다 국가가 소위 법과 질서라는 이름 아래 언제나 자본가의 편을 들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결국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노동자들은 더욱 극렬한 방식으로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정부는 강력한 처벌로 대응하면서 파국으로 치닫고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사실 자본가들은 어떤 측면에서 항상 단결하고 있거든요. 이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그런 (자본가들의) 단결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꿰뚫어 봅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자본가들은 언제나 단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항상 단결할 수가 없잖아요. 애덤 스미스는 어느 한쪽 편을 든 것이 아니라 이런 현실을 가감 없이 고발한 거죠.

불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처벌하라

그렇다면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경총 회장단에게 말했다는 “법과 원칙에 따른 노사관계”란 애덤 스미스 식으로 이해한다면 일방적으로 자본가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겠네요?

법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애덤 스미스가 법치를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가 강조한 법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강조한 ‘법질서’와 박근혜 현 대통령이 강조한 ‘법과 원칙’과는 개념이 다르다고 봐야 합니까?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말하는 법치는 ‘정의라는 원칙을 거스르는 행동에 대한 일종의 응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계약 질서 속에서 소유권을 보장’한다는 등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정의 개념의 핵심은 “이를 어겼을 경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칙”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수많은 사람’이 갈릴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판별을 하나요?

솔직히 정리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이죠. 애덤 스미스의 경우엔 자신의 도덕 원칙(상호 공감, 자기애, 공공심 등)에 따라서 판별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행위가 불의이고, 이때 법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에 빗대어 볼 때,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원천기술을 탈취해 간다거나 납품 단가를 후려치는 행위는 다수의 분노를 유발하지 않겠습니까? 애덤 스미스의 정의 개념에 따르면 이런 행위는 불의가 되고 마땅히 법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말이네요?

그렇습니다. 애덤 스미스에게 정의란 사법 차원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런 불의를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얘기죠. 정의에 대해서 두 가지 차원에서 보는데, 하나는 스스로 정의를 실천하는 미덕의 차원입니다. 하지만 이것만 강조해서는 소용이 없죠. 다른 한편으로 공감이나 자혜심도 언급하지만 결국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법에 따른 처벌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오해를 바로잡아야겠는데, 애덤 스미스라고 하면 야경국가론과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가는 치안 유지와 국방에만 신경 쓰고 시장에는 일체 개입하지 말라는 요구인데, 이것과 일부 상충하지 않나요? 결국 법에 따른 처벌을 행사하는 주체는 국가기구이니까요.

애덤 스미스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주장이 있습니다. 정말로 이기적인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규제 없이 거래하면 저절로 시장이 잘 돌아갈까요? 아니죠, 애덤 스미스는 그런 사회는 그냥 망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말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은 타인의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겠지요? 이렇게 되면 적자생존의 정글이 되는데, 이건 애덤 스미스가 생각하는 시장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타인이야 손해를 보건말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하면 앞서 말한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이 애덤 스미스의 입장입니다. 『도덕감정론』의 한 구절인데 “분노와 증오가 나타나는 순간 사회의 모든 유대관계는 산산조각이 난다.”고 애덤 스미스는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덤 스미스는 순수한 개인주의자가 아닙니다. 유대관계야말로 사회의 기본이기 때문에 애덤 스미스가 보기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 자혜심 등이 중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이기적인 사람들이 출현해서 맘대로 행동해 불의가 만연하면 자혜심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회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법을 앞세워 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불의를 응징하고 경우에 따라선 사전에 규제를 해야 한다는 뜻이잖아요? 이건 지금까지 알려진 애덤 스미스의 주장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 아닌가요?

여기서 제가 한 발 빼자면, 이렇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기본적으로 자유를 강조하고 시장을 규제하지 말라고 했지만, 언제나 그러진 않았다는 겁니다. ‘치명적인 인간의 이기심에 의한 파멸적 행위’에 대해선 달리 이야기했다는 것이죠.

 

사실 애덤 스미스가 “시장을 규제하지 마라”고 했죠.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당시 절대왕정이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시장을 쥐락펴락하면서 독점을 용인해주었고, 스미스는 이런 행위를 비판한 게 아닙니까?

네, 정확히 그렇습니다. 특권과 반칙을 비판한 거죠. 거꾸로 말하자면, 좀 건너뛰는 감은 있습니다만, 애덤 스미스는 오늘날 복지국가들의 경제 개입 방식을 비판한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했던 루이 14세가 현존한다고 가정하고 “내가 국가로서 하는 말인데, 지금부터 대외무역은 삼성 너희만 해.”라면서 “삼성만 무역을 해야 하니까 나머지 업체들은 지금부터 무역 중단하고 국내 원료 생산과 공급만 해.”라고 명령하는 식이죠. 이것이 바로 중상주의의 독점 정책 아니었습니까? 참고로 여기서 얘기하는 삼성은 물론 가상의 기업이고요.

그렇죠. 수입 금지, 수출 금지, 또 수출입 관세까지 매겨가면서 국가가 개입했죠.

 

그러니까 시장에 개입하지 마라는 애덤 스미스의 말은 결국 반독점을 주장한 것이잖아요.

그렇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어쩌다 신자유주의의 아버지가 되었나?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공식은 도대체 왜 이토록 유명해진 겁니까? 제가 알기론 『국부론』이라는 책이 한국어판으로 1000쪽이 넘는 어마어마한 저서인데, 여기에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이 딱 한 번 나온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딱 한 번. 제4편 2장에서 딱 한 번 나옵니다.

 

그럼 이른바 인구에 회자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구절이 유명해진 이유는, 역시 자본에 의한 의도적인 부풀리기 때문입니까?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물론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단 한 번 사용했지만, 이런 취지가 『국부론』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파와 좌파 양쪽에 다 책임이 있어요. 소위 우파, 즉 자유주의 시장경제만 강조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손’의 취지만 강조해왔고, 반대로 좌파들 역시 이 부분만을 부각시키면서 애덤 스미스를 비판하고 나섰거든요. 어찌 보면 양쪽이 합작해서 ‘애덤 스미스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가상의 표적’을 하나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럼 간단히 정리해보죠. 애덤 스미스가 꿈꿨던 시장은 어떤 모습입니까?

애덤 스미스가 상상한 시장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 거대 독점기업들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시장이 아닙니다. 무수히 많은 소상품 생산자들이 독점도 특권도 반칙도 없고 불평등도 없는 상황에서 국가의 규제나 간섭도 없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경쟁하면서 시장경제의 이점을 누리는 시장이었죠. 문제는 당시에도 시장이 절대 이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덤 스미스는 당시 특권과 독점이 판치는 시장을 비판하면서 이에 대한 개입 필요성도 강조했던 거죠.

 

그러니까 자유로운 상품 생산과 유통을 허용하되, 이 과정에서 불의가 나타나면 반드시 법으로 응징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얘기로군요. 그러면서 못사는 사람들에게는 의무교육을 시키고 잘사는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더 많이 걷고 노동자에게는 임금을 많이 주고 직업병에 걸리지 않도록 해주고 일주일에 4일만 일을 시키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군요. 여담이지만 애덤 스미스가 말년에 관세청장을 지냈는데, 그때 실제로 주4일 근무를 했다고 합니다. 무려 250년 전의 이야기이니, 지금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네덜란드가 주4일 근무를 실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전 세계에서 연간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가 네덜란드인데요. 연간 약 1300시간 정도 됩니다. 우리나라가 2100시간 정도 되니까 거의 800시간 정도를 더 일하는 것입니다. 네덜란드가 몇 년 전부터 도입한 주4일 근무는, 기본적으로 토요일과 일요일을 쉬고 주중 하루를 노동자 개인이 지정해서 쉴 수 있도록 하는 형식입니다.

 

우리나라는 언제나 그런 날이 올까요? 주5일 근무가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되었죠. 그때도 전경련이니 경총 같은 단체에서 ‘우리나라 거덜 난다.’ 어쩌고 하면서 입에 거품 물고 반대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말이죠.

당시 9시 뉴스에 자본가 단체의 연구위원이 나왔는데, 거기서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휴일이 가장 많다.”고 말하면서 한탄을 하는 겁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저 정도 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진 않을 테고, 무슨 말인가 싶었죠.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말한 휴일이라는 게 ‘법정공휴일’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법정공휴일이 한글날을 휴일로 정하네 마네 하면서 연간 16~17일 정도가 됐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편이더군요. 하지만 법정공휴일이 적다는 나라들이 보통 10일 정도니까 많아봐야 1년에 6~7일 차이밖에 안 나거든요. 이걸 들이밀면서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휴일이 가장 많다고 한 거예요. 당시 비교 대상 국가들은 모두 토요일도 쉬고 있었는데요. 휴가일수, 근로시간 등은 논외로 치더라도 그렇죠. 그런 상황에서 텔레비전에 나와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세계에서 제일 많이 논다고 말하다니, 한마디로 악선동이죠.

 

유럽 국가들 보면 연차, 월차 죄다 모아서 1년에 한두 달씩 해외여행 다니고 그러잖아요.

제가 작년 초에 중국 윈난성을 혼자서 여행했는데, 연세가 좀 지긋해 보이는 벨기에인 부부를 만났습니다. 남편은 정원사이고 아내는 까르푸 직원이었는데, 당시 6주 동안 윈난성만 여행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휴가가 참 길다.’고 말했더니 ‘이 여행이 자신들의 19번째 긴 여행이다.’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무슨 얘기냐고 다시 물었더니, 두 사람이 결혼할 때 1년에 한 번씩은 꼭 장기 여행을 가자고 약속했고, 그래서 해마다 한 번씩 긴 여행을 떠나는데 보통 5주나 6주 정도를 간다는 얘기였어요. 결혼 19년차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거죠.

 

하, 참 위화감이 느껴지네요. 아무튼 애덤 스미스는 자유주의를 넘어서 신자유주의의 시조처럼 여겨지잖습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논의한 바에 따르자면, ‘애덤 스미스는 신자유주의의 시조’란 소리를 들으면 이 양반이 그야말로 지하에서 통곡할 일 아닙니까?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까?

요즘 일컬어지는 신자유주의는 사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사조입니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가 자유주의 경제사상의 원조라고는 볼 수 있겠지만, 신자유주의 사조의 아버지처럼 여겨지게 된 과정에는 곡절이 있습니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대처 영국 수상이 이런 사조의 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는데, 레이건이 1979년에 대통령 후보 시절 카터 대통령과 붙었을 때 넥타이에 애덤 스미스 초상화를 집어넣었습니다. 선거운동본부 사람들이 모두 그랬죠. 규제 반대와 감세라는 선거 공약의 상징 인물로 애덤 스미스를 내세운 겁니다.

 

애덤 스미스 사상의 왜곡이 한국에서만 일어나진 않았군요.

그렇죠. 한데 그럴 만도 한 것이, 경제학자 가운데 애덤 스미스가 가장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유명한 분을 넥타이에 새겨 넣고 계속 보여주면서 규제 반대를 외치면 다들 정말 저 사람이 그랬나 보다 하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이보다 조금 진중했던 경우를 보면, 영국 보수당의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애덤스미스연구소’입니다. 미국보다는 나름대로 품위 있게 애덤 스미스라는 이름을 가져다 썼지요. 어쨌든 이런 방식으로 애덤 스미스가 신자유주의 이론의 화신이 된 것입니다.

 

아무튼 지하에 있는 애덤 스미스가,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을 시조 내지는 아버지로 모시는 현상을 본다면 기분이 썩 좋을 것 같지는 않군요.

그렇겠죠. 자신이 한 이야기의 절반은 묻어버린 셈이니까요.

 

사실 본격적인 경제학 연구로 들어가서 애덤 스미스의 경제 이론이 현재의 경제에 들어맞느냐를 따져본다면, 안 맞는 부분이 너무 많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경제 공동체, 혹은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를 두고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되짚어볼 때는 이 사람의 사상이 너무나 왜곡되어 있다고 봐야겠군요.

너무나 왜곡되어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 사상의 다른 절반은 어떻게 타인들과 어울려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또 다른 중요 저작은 『도덕감정론』인데, 이 책은 Sympathy, 즉 연민 혹은 공감이 인간의 첫 번째 본성이라는 주장으로 시작합니다. 타인의 기쁨에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고, 타인의 슬픔에 순수하게 슬퍼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인간 본성이라고 보았거든요.

 

그렇다면 ‘자본에겐 눈물이 없다.’라는 통설을 애덤 스미스는 받아들이지 않았나요?

네, 애덤 스미스는 자본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본가도 연민을 느끼는 인간이고 노동자의 슬픔에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본 겁니다. 그래서 성과급과 노동자의 과로, 직업병과 관련해 애덤 스미스가 자본가들에게 “이성과 인도주의의 정신으로 노동자들의 과로를 말려라.”라고까지 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250년이 지난 오늘날 자본은 눈물이 없는 것 같아요.

애덤 스미스 선생이 안타까워할 일이죠.

 

하긴, 애덤 스미스가 살던 시대는 공장제수공업 단계, 그러니까 자본가가 노동자이기도 했던 시대니까 ‘공감’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지금은 ‘나는 누구 아들이다.’라고 이마에 찍고 나오는데다 상당수는 금융소득으로 먹고사는 시절이니 공감 능력이 생길 리가 없죠.

자,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는데요. 빠뜨린 게 하나 있는데, 짧게 대답해주시죠. 애덤 스미스는 도덕철학을 연구했는데 『국부론』이라는 경제학의 시초가 되는 책을 썼어요. 도덕철학과 경제학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아까 정치경제학이 도덕철학의 하위 분과 학문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도덕철학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과는 달랐겠군요?

철학을 포함해서 어찌보면 종합학문이라고 볼 수 있죠. 애덤 스미스의 도덕철학은 네 개의 하위 분과로 구성되었는데요. 자연신학, 윤리학, 법학, 그리고 정치경제학입니다. 이 가운데 법학은 오늘날의 좁은 의미의 법학이 아니라 넓은 의미로 국가통치학입니다. 정치경제학은 자연신학과 윤리학의 토대 위에서, 국가의 통치라는 맥락에서 고려해야 하는 학문인 것입니다.

 

그렇군요. 애덤 스미스의 균형 잡힌 통찰을 재발견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방송 후기

정치경제학은 어쩌다 경제학이 되었나?

애덤 스미스의 경우에서 보듯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원래 명칭은 정치경제학이었다. 경제 현상이 본래부터 정치와 맞물려 있다는 인식이 바탕이 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정치경제학에서 정치가 추방되고 순수한 경제 현상만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느낌을 주는 경제학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을까?

원래 서구에서 경제학(economics)이란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코스(oikonomikos)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가정(oikos)의 법, 관리(nomos 혹은 nem)를 의미하는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파생되었다. 즉 경제학이란 가정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방법에 관한 학문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정이란 가장의 지배 아래 부모와 자녀, 노예들로 이루어진 대가족이었고, 이에 대한 통치술은 가장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이 오이코노미코스(oikonomikos)의 주요 내용은 이윤 추구 방법이 아니라, 가정의 구성원들 사이의 도덕적 관계를 규율하는 가장의 통치술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경제학은 정치학의 일부였으며 윤리학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경제학이 부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화폐를 벌어들이려는 생활은 충동심에 따르는 생활이며, 부는 분명 우리가 추구하는 선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학을 폴리스의 통치를 다루는 정치학의 하위 분과로 설정했다.

기원전 4세기 중엽의 역사가 크세노폰의 저서 『오이코노미코스』는 농업 경영 방법뿐만 아니라, 재산을 ‘올바르게’ 쓰는 방도, 훌륭한 생활방식, 가장의 덕목 등을 다루는 윤리학적 저술이기도 했다. 기원전 2세기경에는 가정이 아니라 폴리스의 관리라는 의미에서 오이코노미아 폴리티카(oikonomia politika: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의 어원)라는 용어도 출현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개인 혹은 기업의 이익, 효용을 극대화한다는 의미에서의 경제 혹은 경제학은 건전한 시민이 함께 토론할 만한 공적 주제로는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졌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서 경제는 가정의 문제였으며, 자연의 필연성에 얽매인 사적 영역으로서 시민들의 공적 토론 대상으로는 자격 미달이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정치가 이미 재산을 지닌 자유시민들 사이의 공적 업무였기 때문일 것이다. 폴리스에서 논의되는 주제들은 참으로 ‘정치적인 것’들, 즉 시민들의 덕성과 정치적 탁월함, 외교와 같은 사안들이었다.

한편 순수하게 공학적인 의미에서 부와 물질적 번영을 탐구하려는 시도 또한 비슷한 시기에 출현하였다. 기원전 4세기경 인도 찬드라굽타 황제의 대신이자 고문이었던 카우틸리아(Kauṭilya)는 『실리론』이라는 저서에서 부에 대한 학문을 실용적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도시 건설, 토지 분류, 세금 징수, 재정 관리, 세금 조정 등은 물론, 외교 수완, 약소국 책략, 식민 조약, 첩자 사용 등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윤리적 고려를 배제한 실용성이 두드러진다.

물론 서구의 역사에서 경제에 대한 순수 공학적·실용적 접근은 오랫동안 배제되었다. 신학이 모든 학문을 지배하던 중세를 지나 근세에 들어와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