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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작품

아티프 미안

Atif Mian


프린스턴 대학 경제학과와 우드로 윌슨 공공국제정책 대학원 석좌교수. 율리스-라비노비츠 금융 및 공공 정책 센터 책임자를 맡고 있다. 수학과 전산학 전공으로 MIT 학부를 최우등으로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프린스턴 대학으로 부임하기 전에 시카고 대학 부스 경영대학원, UC 버클리에 재직하였다. 거시 경제와 금융 부분의 상호 작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아미르 수피

Amir Sufi


시카고 대학 부스 경영대학원 시카고 상품거래소 석좌교수. 조지타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거시 경제와 금융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경제학자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는 과다 부채가 거시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것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 교수,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2014년 최고의 경제학 책, 아마도 2008년 금융 위기와 뒤이은 대침체에 관한 가장 중요한 책일 것이다.

―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 대학 총장, 전 미국 재무장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책으로, 가계 부채를 보다 적극적으로 탕감해 주었어야 한다는 저자들의 조용하면서도 일관된 주장은 매우 논리 정연하며 설득력 있다.

―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 대학 교수


위기를 극복할 방안에 대한 저자들의 분석은 미국뿐만 아니라 여전히 심각한 경제적 곤경을 겪고 있는 많은 나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카르멘 라인하트, 하버드 대학 교수


대침체가 왜 일어났으며,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간결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 「월스트리트 저널」



w100

빚으로 지은 집

House of Debt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타고 있다!


가계 부채의 급증은 소비 지출의 감소를 가져오고 불황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가진 것이 가장 적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힌다.

더욱이 가계 부채는 빚을 진 가계들의 자산에 타격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 시스템을 돌고 돌아 결국 모두에게 손실을 입힌다.

가계 부채가 경기 침체의 근본 원인임을 이론적으로 규명한 역작.


두 저자는 이 책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에서 가계 부채가 어떻게 세계 경제를 지속적으로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지를 분석하며, 금융 시스템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먼저 두 저자는 모든 심각한 경제 불황에는 가계 부채의 급증이라는 현상이 선행해서 일어났음을 데이터를 통해 증명한다. 나아가 레버드 로스 이론을 통해 가계 부채의 증가가 어떤 과정을 통해 경기 위축을 가져오고 부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지를 설명한다. 가계 부채가 급증하면 소비 지출의 감소로 인해 장기 불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커지며, 거품 붕괴로 인한 집값 폭락은 레버리지 승수 효과를 통해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저소득층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힌다. 더욱이 가계 부채는 빚을 진 가계들의 자산에 큰 손실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 시스템을 돌고 돌아 결국 모두에게 손실을 입힌다. 두 저자는 가계 부채가 빚을 진 가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이론적으로 증명한다.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타고 있는 것이다. 

로런스 서머스로부터 〈2014년 최고의 경제학 책, 아마도 2008년 금융 위기와 뒤이은 대침체에 관한 가장 중요한 책〉이라는 격찬을 받은 이 책은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현재 한국 경제는 이 책의 권고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금융 위기 이후에도 가계 부채가 줄기는커녕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필연적으로 가계 부채가 늘 수밖에 없는 정책 수단을 이용해 경기 부양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는 국민 경제를 장기 침체의 늪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은 매우 위험한 정책이다.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 두 저자는 최근 토마 피케티와 더불어 IMF가 선정한 〈다음 세대를 이끌어 나갈 45세 이하 차세대 경제학자 25인〉에 선정되었고, 『빚으로 지은 집』은 「파이낸셜타임스」 〈올해의책〉 최종후보작에 올랐다. 




빚으로 지은 집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한국어판 서문






우리는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의 한국어판 출간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책에서 했던 분석들 대부분은 미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빚이 거시 경제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최상의 미시 데이터를 구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결론과 시사점들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 지역의 최근 불황은 미국의 경우와 매우 비슷한 경로를 따르고 있습니다. 유럽의 경기 후퇴도 채권국과 채무국이 하방 위험을 적절하게 분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또한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경우처럼 악성 부채를 신속하게, 그리고 충분히 경감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에 경기 불황은 더욱 심각해지며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와 같이, 유럽이 겪고 있는 대다수 문제들의 근원에는 채무자의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는 경직적인 채무 계약이 놓여 있습니다.

빚의 무서운 파괴력을 겪은 지역으로 아시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책의 4장에서 빚이 경제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레버드 로스levered losses 이론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1997년의 동아시아 금융 위기도 이에 해당됩니다. 당시 한국의 민간 부문을 포함해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해외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빌려 와 부채가 크게 누적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금융 위기 당시 한국과 같은 나라들을 우리가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채무자 섬debtor island〉과 같은 상황으로 몰아갔습니다.

동아시아 경제에서 자금이 빠져나가자, 채권자들은 채무자의 상황에 관계없이 대출액 전액을 모두 상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책에서 <채무 계약의 가혹함>이라 표현한 상황입니다. 동아시아 경제가 고통에 시름할 때, 해외 채권자들은 그 고통을 분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채무자 섬>처럼 동아시아 경제는 모든 충격을 감내해야 했고, 이는 총수요를 크게 감소시켜서 우리가 책에서 설명한 것과 유사한 이유로 불황을 야기합니다.

동아시아 위기는 한국이나 중국의 중앙은행들이 정책을 집행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앙은행들은 빚의 잠재적 위험성을 깨달았으며, 빚이 외환 표시 대외 채무일 경우 특히 더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외 채권자가 되는 정책을 신중하게 집행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중앙은행들은 미국 채권을 수십억 달러 규모로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미국 정부나 가계에 돈을 빌려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1장에서 논의하듯이 아시아 지역의 이런 변화는 10년 뒤 미국 경제에 큰 충격을 가하는 금융 위기의 전조가 됩니다.

이후 한국은 대외 채무의 위험성을 잘 관리했지만, 국내의 높은 민간 채무로부터 비롯된 문제에는 여전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책에서 설명한 레버드 로스 이론은 대내 채무와 대외 채무를 굳이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채무 계약에 대한 정의(定義)에, 즉 채무 계약이 위험을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공평하게 나누지 않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외 채무이든 대내 채무이든 모두 똑같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1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조르다, 슐라릭, 테일러의 연구도 높은 민간 부채 수준이 불황의 심화 및 장기화와 관련이 높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위기 이후 한국의 가계 부채는 급속하게 증가해 왔습니다. 가계 부채의 증가세는 가처분 소득의 증가세를 크게 앞질렀습니다.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동아시아 위기 이후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OECD 국가 평균은 133퍼센트이나 한국은 164퍼센트에 이릅니다. 국내 수요를 증가시키기 위해 가계 부채의 증가에 너무 크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200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우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가계 부채에 의존한 성장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위험은 우리가 해외의 여러 역사적 사례들에서 살펴본 경우와 유사합니다. 주택 시장이 침체하기 시작하거나, 가계가 추가로 대출을 받을 여력이 감소하면 한국 경제의 총수요는 부정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는 그런 만일의 사태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책의 3부에서는 빚으로 인해 경기 침체가 발생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정책적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과다한 가계 부채로 인해 경제가 충격을 받았을 때 전통적인 정책 수단인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의 효과에 대해 논의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들 정책은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빚으로 인해 불황이 발생할 때는 대규모의 신속한 채무 계약 재조정이 필수적인데, 현재의 금융 시스템으로는 효과적인 재조정이 일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책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단기적, 장기적 해결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제안이 한국 경제가 맞이한 잠재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책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해 준 열린책들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번역하느라 수고해 준 연세대학교 박기영 교수에게도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House of Debt 1

보헤미아의 스캔들






         〈우리는 섹스, 술, 주말 없이 살 수 없다.〉 레저용 자동차를 만드는 위니바고Winnebago의 밥 올슨 회장이 가슴에 늘 달고 다녔던 배지의 문구다. 이 문구가 의미하듯이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주말과 휴가 기간에 레저용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기 때문에 미국에서 레저용 자동차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어 왔다. 하지만 2008년 들어 경기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레저용 자동차 주요 제조 회사 중 하나인 모나코 코치 코퍼레이션Monaco Coach Corporation의 매출은 30퍼센트나 감소했다. 예전과 달리 차가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모나코 사는 어떻게 손 써볼 틈도 없이 파산 신청을 하게 되었으며 이 회사의 대변인 크레이그 와니체크는 〈우리 회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경제 전체의 상황 악화로 인해 힘든 결정을 하게 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모나코 사는 디젤 엔진 이동 주택 차량 분야에서 선두 업체였다. 오랫동안 인디애나 주 북쪽에 생산 기지를 두고 미국 전역에 판매를 하고 있었으며, 2005년 당시 1만 5,000대 이상의 이동 주택 차량을 판매하고 인디애나 주 와카루사, 내파니, 엘크하트 카운티 사람들 3천 명 정도를 고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8년 7월 모나코 사는 인디애나 주에 있는 두 개의 공장에서 1,430명을 정리해고했다. 직원들은 충격에 빠졌다. 와카루사 지역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던 제니퍼 에일리어는 한 식당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정말 충격적입니다. 직원들은 정리해고가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규모일 줄은 몰랐습니다.」 와카루사 지역 한 호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캐런 헌트는 정리해고된 직원들을 걱정했다. 「이 사람들은 몇십 년 동안 이 일만 해온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일하다 50대에 접어든 사람들을 누가 새로 채용하겠어요? 이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사실 앞으로가 더 걱정일 겁니다.」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는 2008년 인디애나 주 북부 지역에서 흔한 일이었다. 연말이 되자 엘크하트 카운티 실업률은 4.9퍼센트에서 16.2퍼센트로 껑충 뛰었으며 2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실업의 여파는 지역 내 학교와 자선 기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엘크하트의 무료급식소를 찾는 사람들의 수가 두 배 이상 늘었고 구세군이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공급한 음식과 장난감도 대폭 증가했다. 또한 이 지역 공립 학교 학생 중 약 60퍼센트가 저소득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무료 점심 프로그램을 신청할 정도였다.[1]

인디애나 주 북부 지역은 충격이 빨리 온 편이었지만, 다른 지역도 힘든 상황을 겪긴 마찬가지였다. 대침체Great Recession는 2007년부터 2009년 사이 약 800만 개의 일자리를 앗아 갔다. 그리고 400만 채 이상의 집들이 압류를 당했다. 만약에 대침체가 없었다면 2012년 미국의 국민 소득은 약 2조 달러 높았을 것이다. 가계당 약 1만 7,000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2] 무형의 손실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연구들이 우울증, 자살 등 실업이 심리에 끼치는 부정적 효과를 지적하고 있다. 또한 불황 중 정리해고된 사람들은 평생 벌어들일 소득의 3년치에 해당하는 소득을 잃어버린다는 연구도 있다.[3]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찍이 실업은 〈사회 질서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실업이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매우 크다.[4]

인디애나 주 모나코 사 직원들처럼 불황 중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혼란에 빠지곤 한다. 이들이 충격과 혼란에 빠지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심각한 경제 불황은 많은 측면에서 미스터리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불황은 경제의 생산 능력 변화와 무관하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대침체의 경우도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인해 건물이나 생산 설비가 크게 파괴되거나 갑자기 첨단 기술이 퇴보되어 발생한 것이 아니다. 모나코 사의 근로자들 역시 오랜 기간 쌓아 온 숙련 기술을 하루아침에 까먹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는 갑자기 삐걱거리고, 사람들의 소비는 급감했으며,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불황으로 인한 무형의 손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왜 불황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찾아가게 된다. 왜 아픈지, 어떻게 하면 통증이 나아질지 묻게 된다.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약을 먹거나 생활 습관을 고칠 의향도 있다.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경제적 고통인 경우에는 누구에게 찾아가야 할까?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의사들에게 드러내는 존경심을 경제학자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동료 경제학자들에게 일갈했듯이 경제학자들은 〈관찰된 사실과 이론이 일치하지 않는 데 개의치 않는다〉. 그 결과 보통 사람들은 〈이론적 예측이 사실과 부합하는지 검증하는 다른 과학자들 집단에 대해 가지는 존경심을 경제학자들에게도 똑같이 가지기를 갈수록 꺼리고 있다〉.[5]

케인스가 살았던 시기에 비해 경제 활동에 대한 통계는 크게 늘어났으며 이들 통계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들도 크게 향상되었다. 이에 힘입어 우리는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우리의 목표는 야심 차다. 우리는 통계와 과학적 기법을 이용해서 오늘날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왜 심각한 불황들이 발생하는가? 우리는 대침체와 그로 인한 결과를 막을 수 있었는가? 우리는 이런 위기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실증적인 증거에 기반을 두고 이러한 질문들에 답할 것이다. 모나코 사의 정리해고된 직원들을 포함해서 일자리를 잃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대침체가 왜 일어났는지, 이런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증거에 기반을 둔 설득력 있는 설명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누가 범인인가? ―


명탐정 셜록 홈즈는 추리 소설 『보헤미아의 스캔들A Scandal in Bohemia』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자료를 보기 전에 이론부터 세우는 것은 중대한 실수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사실에 부합하는 이론을 만드는 대신 부지불식간에 이론에 부합하도록 사실을 비틀기 때문이다.〉[6] 심각한 경제 불황의 미스터리는 셜록 홈즈가 풀어야 했던 난제들에 견줄 수 있다. 경제학자들도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기도 전에 이론부터 서둘러 세우는 우를 범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자료를 먼저 살펴보는 셜록 홈즈의 문제 해결 방식을 따라야만 한다. 최대한 많은 자료들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하자.



대침체와 관련해서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미국의 가계 부채는 2000년부터 2007년 사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불과 7년 사이에 가계 부채 총액은 두 배로 늘어 14조 달러에 이르렀으며 가계 소득 대비 부채 비율도 1.4에서 2.1로 껑충 뛰었다. 그림 1.1은 1950년부터 2010년 사이 가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보여 주고 있는데 2000년대 이후 증가세가 얼마나 빠른지 볼 수 있다. 2000년까지 이 비율은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다가 그 이후부터 2008년까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 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의 장기적 패턴에 대해 연구한 경제학자 데이비드 베임David Beim에 따르면, 대침체 직전의 증가세와 견줄 만한 사례는 미국 역사를 통틀어 딱 한 번 있었다. 바로 대공황 초기다.[7] 1920년부터 1929년 사이 주택 할부금과 자동차, 가구 등 내구재 소비에 대한 할부금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비록 현재와 비교해서 통계 자료가 조금 덜 정확하겠지만 경제학자 찰스 퍼슨스Charles Persons가 1930년대에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도시 지역 주택 담보 대출액은 1920년부터 1929년 사이 세 배가 증가하였다.[8] 이런 증가세는 2000년부터 2007년 사이 주택 시장 활황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1920년대의 할부 금융 증가는 소비자들이 세탁기, 자동차, 가구 등 내구재를 사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소비자 금융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인 마사 올니Martha Olney는 〈1920년대는 소비자 금융 역사에서 전환점을 이룬 시기였다〉고 설명한다.[9] 미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내구재를 사려는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현금이 아니라 빚을 이용해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빚을 내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해서 이전보다 거부감 없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런 소비 행태의 변화로 1920년대 가계 지출은 소득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다.[10] 가계 소득 대비 소비자 부채는 대공황 전 10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많은 학자들이 〈1929년에 가계 부채가 유례없이 증가했다〉고 지적한다.[11] 1930년 찰스 퍼슨스는 이미 1920년대의 부채 증가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지난 10년은 엄청난 신용 팽창이 있었던 시기였다. 지난 시기 경제가 호황을 누린 가장 큰 이유는 엄청난 빚을 끌어당겨 썼기 때문이다.〉[12] 그리고 가계가 빚에 의존해 소비를 하면서 저축은 감소하였다. 마사 올니는 1898년부터 1916년 사이 7.1퍼센트였던 미국의 개인 저축률이 1922년부터 1929년 사이 4.4퍼센트로 감소했다고 추정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공황과 대침체 직전 모두 가계 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놀라운 공통점은 또 있다. 바로 두 사건 모두 가계 지출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급감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모나코 사의 종업원들은 이 점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리해고가 있었던 이유는 2007년과 2008년 사이 이동 주택 차량에 대한 소비가 급감했고 그 결과로 일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패턴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자동차, 가구, 가전제품 등 내구재 소비도 2008년 최악의 금융 위기 직전에 급감했다. 예를 들어 2008년 1월부터 8월 사이 자동차 판매는 2007년 대비 10퍼센트 가까이 감소했다.

대공황도 마찬가지로 가계 지출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시작되었다. 경제사학자인 피터 테민Peter Temin은 대공황이 심각했던 이유는 독립 지출[•]이 매우 크게 감소하고 그 감소세가 지속적이었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덧붙여 그는 1930년대 소비 감소는 〈진정으로 독립적〉이라고 설명한다. 소득의 감소나 가격 변화만으로 소비 감소를 설명하기에는 독립 지출의 감소 폭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대공황 때와 마찬가지로 대침체를 촉발시킨 소비 지출의 감소도 불가사의할 정도로 컸다.[13]


국제적 증거 ―


미국처럼 경제적 재앙 이전에 가계 부채가 급증하고 소비 지출이 급감하는 패턴은 다른 나라에서도 널리 찾아볼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가계 부채가 더욱 크게 증가할수록, 소비 지출 또한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16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대침체를 연구한 루벤 글릭Reuven Glick과 케빈 랜싱Kevin Lansing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7년 사이 가계 부채가 크게 증가했던 나라일수록 2008년부터 2009년 사이 가계 지출은 더욱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14] 즉 불황 전 가계 부채 증가와 대침체 시기 소비 감소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대상 국가 중 소비 감소가 가장 컸던 두 나라인 아일랜드와 덴마크는 2000년대 초 가계 부채가 엄청나게 증가했던 나라다. 2000년부터 2007년 사이 미국의 가계 부채도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같은 시기 아일랜드, 덴마크, 노르웨이,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가계 부채 증가 폭은 이보다 더 컸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소비 지출이 급격하게 감소했던 것보다 (포르투갈을 제외한) 6개 나라의 소비 감소 폭은 더 컸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한 연구는 글릭과 랜싱의 연구를 동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을 포함시켜 36개국으로 확장했고 2010년까지로 표본 기간을 늘렸다.[15] 연구 결과 불황 시 소비 감소를 가장 잘 예측하는 변수가 가계 부채 증가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달리 얘기하면, 대침체 이전 어떤 나라에서 얼마만큼 가계 부채가 증가했는지 알 수 있다면, 대침체기 동안 어떤 나라에서 소비 지출이 가장 크게 감소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가계 부채 증가와 불황의 정도 사이의 관계는 대침체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최근까지 영란은행 총재를 맡았던 머빈 킹Mervyn King은 대침체가 있기 오래전인 1994년에 〈부채 디플레이션: 이론과 증거Debt Deflation: Theory and Evidence〉라는 제목으로 유럽경제학회 회장 취임 연설을 했다. 연설 요약문의 첫 줄부터 머빈 킹은 〈1990년대 초 가장 심각한 불황이 일어났던 나라들은 모두 민간 부채가 가장 크게 증가했던 나라들이었다〉라고 주장했다.[16] 연설문에서 머빈 킹은 1984년에서 1988년 사이 국가별 가계 부채의 증가와 1989년에서 1992년 사이 해당 국가의 경제 성장률 간의 관계를 자료를 통해 보여 주었다. 머빈 킹의 연구는 20년 뒤 글릭과 랜싱, 국제통화기금이 수행한 연구와 매우 유사하다. 완전히 다른 시기의 경제 위기를 대상으로 연구했지만, 머빈 킹도 똑같은 관계를 발견했다. 스웨덴, 영국처럼 가계 부채가 가장 급격하게 증가한 나라들이 불황 시 경제 성장이 가장 크게 둔화되었다.

또 다른 예로 경제학자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와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가 연구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선진국에서 발생한 〈5대〉 은행 위기를 들 수 있다. 5대 은행 위기란 1977년 스페인, 1987년 노르웨이, 1991년 핀란드와 스웨덴, 1992년 일본에서 발생한 은행 위기를 말한다.[17] 이들 위기는 모두 자산 가격이 급락하고 은행들이 큰 손실을 입으면서 발생했는데, 또한 모두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린 심각한 경제 불황이었다. 라인하트와 로고프는 이들 나라 모두 위기 직전 부동산 가격이 크게 상승했으며 (나라 전체가 생산한 것보다 더 많이 소비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경상 수지 적자가 커졌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라인하트와 로고프는 은행 위기에 선행하는 가계 부채의 패턴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았다. 은행 위기를 가계 부채와 연결 지어 살펴본 연구로는 모리츠 슐라릭Moritz Schularick과 앨런 테일러Alan Taylor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핀란드를 제외한 4개 나라에 대해 관련 통계를 추가로 모으고 분석한 결과 4개 나라 모두에서 은행 위기 발생 전 민간 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했음을 보였다(여기서 민간 부채는 정부와 은행의 부채를 제외한 가계와 비금융 회사의 부채를 뜻한다). 모두 위기 전 민간 부채가 증가했다는 점에서 이들 은행 위기는 어떤 의미에서 민간 부채 위기라 불러도 무방하다. 또한 이런 맥락에서 대공황, 대침체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은행 위기와 가계 부채의 누적은 서로 깊이 관련되어 있다. 또한 이 둘의 결합은 금융 위기를 낳으며,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획기적인 연구가 보였듯이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와 관련되어 있다.[18] 은행 위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큰 사건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위기에 앞서 가계 부채가 누적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불황의 심각성을 결정하는 데 금융 위기의 어떤 측면들이 중요할까? 가계 부채의 증가일까, 아니면 은행 위기일까? 오스카 조르다Oscar Jorda, 모리츠 슐라릭, 앨런 테일러의 연구가 이에 대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19] 이들은 1870년부터 2008년 사이 14개 선진국에서 일어났던 200회가 넘는 불황 사례들을 분석했다. 이들의 연구는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연구 결과, 즉 은행 위기로 인해 촉발된 불황이 다른 일반적인 불황의 경우보다 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출발한다. 그러나 조르다, 슐라릭, 테일러는 또 다른 사실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은행 위기로 인해 촉발된 불황에 앞선 민간 부채의 증가량이 다른 일반적인 불황의 경우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이다. 은행 위기로 인해 촉발된 불황 이전의 부채 증가량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무려 다섯 배에 이른다. 그리고 은행 위기로 촉발된 불황이더라도 민간 부채가 낮았을 경우에는 경제적 여파가 일반적인 불황의 충격과 비슷함을 알 수 있었다. 즉 부채가 증가하지 않는 이상 은행 위기로 인한 불황은 다른 불황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은행 위기가 수반되지 않은 일반적인 불황이라도 민간 부채가 많았던 상황에서는 경제적 여파가 더 크다는 것도 발견했다. 결론적으로 최악의 불황은 민간 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은행 위기와 연관될 때 나타난다.[20] 수많은 사례를 분석한 이들 연구의 결론은 명확하다.


선진국들의 현대 경제사에 대한 한 세기 또는 그 이상에 걸친 연구를 통해 우리는 호황 시 부채의 누적과 뒤이은 불황의 심각성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최초로 보였다. 또한 우리는 금융 위기의 경제적 비용이 위기 직전 시기 부채 비율에 따라 매우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21]


미국의 사례와 국제적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아주 분명한 패턴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경제적 재앙에는 거의 언제나 가계 부채의 급격한 증가라는 현상이 선행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 상관관계는 매우 강해서 거시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일종의 경험적 법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가계 부채의 급격한 증가와 경제 위기는 소비 지출의 급격한 감소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다시 한 번 얘기하면, 가계 부채, 소비 지출, 불황의 심각성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뜻 보면 이 세 가지 요소 사이의 정확한 관계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여러 유능한 경제학자들이 다른 가설들을 살펴보았는데, 그중 일부는 가계 부채는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즉 불황의 심각성을 설명할 때 가계 부채는 주요 변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가설들 ―


가계 부채의 중요성를 회의적으로 보는 경제학자들은 다른 대체 가설을 제시한다. 아마도 가장 일반적인 의견은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s을 강조하는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심각한 불황은 자연재해, 쿠데타, 미래에 대한 전망 변화 등 경제의 펀더멘털에 가해지는 충격에 의해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본 심각한 불황들은 자연재해나 커다란 정치적 사건들에 이어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펀더멘털을 강조하는 시각은 경제 주체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가 바뀔 때 불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도 한다. 예를 들면 불황 직전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단순히 소득이나 생산성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 주체들이 어떤 기술의 발전 때문에 생활 환경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하자. 심각한 불황은 이런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거나 소득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가 어긋날 때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다. 펀더멘털을 강조하는 시각에 따르면 심각한 불황 전까지 부채는 계속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상관관계는 바로 인과관계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 설명은 야수적 충animalspirits에 따른 시각이다. 경기 변동은 비합리적이고 자주 변하는 기대 때문에 일어난다는 이 시각은 어떤 합리적 사고를 따르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만 빼고는 앞서 설명한 펀더멘털에 기초한 시각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대침체 전 주택 시장이 호황일 때 사람들은 주택 가격이 영원히 오를 것이라는 비합리적 기대를 가지고 빚을 내서 집을 사고 소비를 늘린다. 그러다가 변덕이 심한 인간의 심리로 인해 어느 한 순간 집값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기대를 하게 되면 급격하게 소비를 줄인다. 그 결과 주택 가격은 하락하고 자기실현적 예언에 따라 경제 전체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즉 미래에 대한 비관적 기대로 경기 불황을 걱정한 나머지 소비를 줄인 것이 실제로 불황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시각도 첫 번째 시각과 마찬가지로 가계 부채는 불황과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본다. 두 시각 모두에는 일종의 운명론에 기반을 둔 체념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둘 다 경제 활동이 급격하게 축소되는 것은 예측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 시각에 따르면 불황은 경제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면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일 뿐이다.

세 번째 가설은 banking 중심적 시각이다. 문제의 핵심은 금융 부문이 약화되면서 자금의 흐름이 멈추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 시각에 따르면 부채의 누적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부채의 흐름이 멈추는 것이다. 이 시각에는 은행이 가계와 기업들에 계속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면 경제는 멀쩡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즉 은행을 구제하면 경제를 구할 수 있고 우리는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각은 대침체기 동안 정책 입안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당시 부시 행정부의 정책 대안은 2008년 9월 24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시각에 크게 의존했다.[22] 그때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모기지 대출과 관련된 금융 자산의 가격이 크게 떨어졌으며 이들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은행들은 자금의 공급을 줄였습니다. 그 결과 경제 전체가 위험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오늘 제안하고자 하는 바는 연방 정부가 이들 부실 자산과 관련된 위험을 줄이고 자금을 긴급하게 공급함으로써 은행 및 다른 금융 기관들의 파산을 막고 이들 기관들이 자금을 다시 공급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은 미국 경제 전체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가 은행을 구한다면 〈일자리도 만들 수 있고〉, 〈경제도 회복하고 성장할〉 거라고 주장했다. 과도한 부채 따위는 없다. 그러니 은행이 더 많은 대출을 해줄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는 것이다.


* * *


경제적 재앙에 대처하고 나아가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다. 대침체 당시 원인에 대한 갑론을박 때문에 정책 입안자들이 적절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지연되었다. 우리가 주장한 가계 부채와 심각한 불황 사이의 관계에 대해 추가로 설명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위의 세 가지 다른 시각들이 맞는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과학적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통계와 자료들을 자세하게 살펴보고 어떤 이론이 옳은 것인지 알아보자. 이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다.

가계 부채가 어떻게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 우리는 미국의 대침체 시기를 중점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오래전 불황을 경험한 경제학자들에 비해 우리는 훨씬 많은 통계와 이를 수월하게 분석할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 대출, 지출, 주택 가격, 파산 등을 포함해서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미시적 통계가 있다. 이들 통계는 모두 미국 전역의 우편번호zip-code 단위 지역별로 구분되어 있으며 일부 통계는 심지어 개인별, 계약별로도 존재한다. 많은 통계와 발전된 컴퓨터 성능 덕분에 우리는 누가 더 많은 부채를 졌는지, 누가 지출을 줄였는지, 누가 일자리를 잃었는지 검증할 수 있다.


큰 그림 ―


독자들의 짐작대로 우리는 빚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생각이 옳다면, 그리고 가계 부채의 빠른 증가가 실제로 심각한 불황을 야기한다면, 우리는 금융 시스템 전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금융 시장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을 분산시키고 나누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 시장은 위험을 감소시키는 많은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생명 보험, 주식 포트폴리오, 주요 지표에 기초한 풋옵션[•] 등이 그것이다. 이들 상품을 이용해서 가계는 예측하지 못한 사건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다.

가계로 하여금 과도하게 빚을 지게 함으로써 돌아가는 금융 시스템은 우리가 원하는 바와 정반대의 시스템이다. 왜냐하면 빚은 오직 채무자에게만 위험을 지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값 하락 같은 충격에 대비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원하지만 우리가 이 책에서 보이듯이 현재의 금융 시스템 아래에서는 집값 하락의 충격은 고스란히 해당 주택의 소유자만 받게 된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은 우리 같은 대중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지 않고 불리하게 작동한다. 우리는 아래에서 대출을 끼고 집을 산 사람의 예를 통해 모기지가 자금을 빌려 준 은행보다 주택 소유자에게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주택 소유자들은 오직 집값이 폭락했을 때에만 본인들이 얼마나 위험한 투자를 했던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비관적이지는 않다. 만약에 과도한 부채가 문제의 원인이라면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는 더 이상 심각한 불황과 대규모 실업 사태를 경기 변동 과정의 필수 불가결한 현상이라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운명이라고 체념할 필요 없이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독자들이 책을 덮고 나서 향후 불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나아가 불황 자체를 방지할 수 있는 어떤 이론적 체계, 그것도 경험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 체계를 알기 바란다. 우리는 이 목표가 매우 야심 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믿는다. 우리는 불황이 불가피하다고 믿지 않으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 때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황은 너무 많은 가계 부채를 양산하는 금융 시스템 때문에 발생한다. 경제적 불황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문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관점은 어떻게 불황을 예방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1부

거품이 터졌을 때



House of Debt 2

빚과 파멸






         우리 모두는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병, 태풍, 화재와 같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이런 위험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보험을 사서 예기치 못한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금융 시스템을 이용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다. 또한 한 개인이 온전히 위험을 감당하는 것보다 금융 시스템을 이용해서 위험을 고루 나누는 것이 더 나은 방식이기도 하다.

저자 중 한 명(아미르 수피)은 캔자스 주의 토피카 지역에서 자랐는데 이곳은 무서운 회오리바람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아주 예전부터 학교에서 회오리바람에 대비하는 훈련을 해왔다. 경보가 나면 학생들은 교실을 빠져나와 복도 벽에 기대 머리와 목을 손으로 감싸고 공처럼 동그랗게 몸을 유지하는 훈련을 하는데 이런 훈련을 1년에 최소 두 번 이상 실시한다. 이런 대피 훈련과 마찬가지로 캔자스 주의 주택 소유자들은 회오리바람 때문에 집이 부서질 것에 대비해 적절한 보상을 주는 보험에 가입해서 위험에 대비한다. 행여나 집이 파손될 경우 보험 보상금으로 종전과 똑같은 집을 가질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새 출발을 할 수는 있다. 보험이 이런 방식으로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은 금융 시스템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언뜻 보기에 상해나 사망처럼 위험해 보이지 않는 주택 가격의 급락은 주택 소유자에게는 회오리바람처럼 예상치 못한 심각한 위험이 된다. 미국인들에게 홈 에쿼티[•]는 유일한 재산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그 돈으로 은퇴 후를 대비하거나 자녀들의 대학 학비를 대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집값의 폭락은 캔자스 주의 작은 마을에 들이닥치는 회오리바람처럼 예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주택 가격 하락으로 인한 피해를 누가 입느냐의 관점에서 보면 모기지 대출에 의존한 금융 시스템은 보험과 정반대의 역할을 한다. 보험이 주택 소유자를 회오리바람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반면, 부채는 집값이 하락할 때 모든 위험을 주택 소유자에게 전가한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가혹한 부채의 이면 ―


오늘날 남의 돈을 빌려 와서 소비를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 우리는 정작 빚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잊을 때가 있다. 부채의 가장 큰 특징은 자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채무자가 가장 먼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저축해서 모은 돈 2만 달러와 8만 달러의 모기지 대출을 이용해서 10만 달러짜리 집 한 채를 샀다고 하자. 이 경우 주택 소유자의 자산 순가치는 2만 달러이다. 만약에 집값이 20퍼센트 하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 주택 소유자는 2만 달러의 손실을 입는다. 이 상황에서 8만 달러에 집을 팔게 되면 주택 소유자는 그 돈을 모두 채권자에게 지불해야 한다. 즉 채권자는 원금 8만 달러를 온전히 회수함으로써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는 반면 주택 소유자는 전 재산을 날리는 셈이다. 금융 용어를 써서 표현하자면 모기지 대출 기관 또는 채권자는 집에 대한 우선 청구seniorclaim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손실이 안 날 수 있다. 반면 주택 소유자는 후순위 청구juniorclaim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집값이 떨어질 때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례에 등장하는 모기지 대출 기관을 경제의 다른 부분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별개의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 모기지 대출 기관은 경제 내 저축자savers의 돈을 이용해서 대출을 해준다. 저축자들은 예금, 채권, 주식 등의 형태로 은행에 자금을 공급한다. 따라서 이들은 모기지 대출을 해준 은행의 궁극적인 소유자나 마찬가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모기지 대출 기관이 대출을 해준 집에 대해 우선 청구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사실상 경제 내의 저축자들이 집에 대해 우선 청구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나 진배없다. 순자산이 많은 이들 저축자들은 우선 청구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집값이 하락해도 차입자들에 비해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훨씬 적다.

경제 전체의 저축자들과 차입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만약에 경제 전체의 집값이 20퍼센트 떨어지게 되면 그로 인한 손실은 경제 내 차입자들에게 집중된다. 안 그래도 순자산이 적은 상황에서 (그래서 대출을 받아야 했지만) 이러한 손실의 전가는 차입자들의 재무 상황을 크게 악화시킨다. 안 그래도 미미하기 짝이 없던 순자산이 훨씬 더 적어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금융 자산을 가지고 있고, 모기지 대출로 인한 빚도 적은 저축자들은 집값이 하락해도 순자산에 거의 타격을 받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예금, 채권, 주식 등을 통해 경제 내 집들에 대해 우선 청구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값이 우선 청구권으로도 원금을 건질 수 없을 정도로 폭락하면 이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지만 차입자들의 손실에 비하면 이들이 입게 되는 손실의 크기는 매우 작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손실이 채무자에게 집중되는 현상은 부의 불평등과 따로 떼어서 볼 수 없다. 대출이 많은 경제에서 집값이 폭락하면 순자산이 적은 채무자들이 손실의 가장 큰 부분을 감당하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도는 더욱 악화된다. 저축자가 손실을 입는 상황이 오더라도 상대적인 측면에서 이들의 상황은 오히려 개선된다. 위의 예에서, 집값 하락 이전 주택 소유자는 집값의 20퍼센트를, 저축자는 8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값이 떨어지면 주택 소유자는 전 재산을 잃게 되고, 저축자는 집값의 100퍼센트를 보유하게 된다.


대침체기의 부채와 부의 불평등 ―


대침체기 동안 집의 가치는 5.5조 달러나 떨어졌다. 미국 경제의 국민 소득이 한 해 약 14조 달러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수치는 엄청나게 큰 것이다. 이렇게 집값이 크게 떨어졌으니 주택 소유자들의 순자산은 크게 감소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손실의 distribution는 어떨까?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의 손실은 실제로 얼마나 컸을까?

먼저 2007년 미국의 순자산 분포부터 살펴보자.[1] 한 가계의 순자산은 크게 주식, 채권, 각종 예금 등을 포함한 금융 자산과 주택 관련 자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금융 자산과 주택 자산을 합한 뒤 부채를 뺀 것을 순자산으로 정의한다. 모기지 대출과 홈 에쿼티 대출은 가계 부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2006년 기준 전체 가계 부채의 80퍼센트에 달했다.

2007년 미국 전체 가구의 순자산과 레버리지(대출액)의 구성을 조사한 결과 가계들 사이에 극명한 차이가 드러났다. 순자산 분포에서 하위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주택 소유자들, 즉 가장 가난한 주택 소유자들은 빚을 심각하게 많이 지고 있었다. 이 그룹의 레버리지 비율, 즉 대출 총액을 자산으로 나눈 비율은 거의 80퍼센트에 달했다(앞서 살펴본 10만 달러짜리 집을 8만 달러 대출을 받아 산 경우와 같다). 게다가 순자산의 대부분이 홈 에쿼티로 이루어져 있었다. 순자산이 5달러라면 4달러가 홈 에쿼티인 상황이었으니 다가오는 불황에 대비할 수 있는 다른 금융 자산이 거의 없는 셈이었다. 이들 그룹은 홈 에쿼티만 가지고 있는데다 상당한 액수의 빚까지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고소득층의 상황은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달랐다. 첫째, 이들 그룹은 불황이 시작될 무렵 부채 비율이 훨씬 낮았다. 순자산 분포 상위 20퍼센트에 드는 주택 소유자들의 레버리지 비율은 7퍼센트에 불과했다. 하위 20퍼센트 그룹의 레버리지 비율이 80퍼센트라는 점을 고려하면 두 그룹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둘째, 이 그룹의 순자산은 비주택 자산에 크게 집중되어 있었다. 하위 20퍼센트 그룹이 뮤추얼 펀드, 주식, 채권 등을 포함한 다른 자산 1달러당 홈 에쿼티가 4달러였던 반면, 상위 20퍼센트는 정반대로 홈 에쿼티 1달러당 다른 자산이 4달러였다. 그림 2.1은 이런 사실들을 그래프로 보여 주고 있다. 이 그림은 2007년 주택 소유자들을 순자산을 기준으로 20퍼센트씩 다섯 집단, 즉 5분위로 나누고 각 분위마다 총자산에서 부채, 홈 에쿼티, 금융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 준다. 우리는 여기서 그래프가 오른쪽으로 이동할수록, 즉 하위 20퍼센트 그룹에서부터 순자산이 높은 그룹으로 옮겨 갈수록 부채는 줄어들고 금융 자산은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결과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저소득층의 부채는 고소득층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금융 시스템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사람은 결국 고소득층이기 때문에 위의 그래프처럼 저소득층 주택 소유자로부터 고소득층 주택 소유자로 옮겨 감에 따라 부채는 줄고 금융 자산은 늘어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빚을 지는 것과 부의 불평등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것 자체는 전혀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런 자금의 공급이 빚을 이용한 자금 조달 방debtfinancing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부자들이 은행의 주식과 채권을 소유한다는 것은 은행이 발행한 모기지 대출을 소유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주택 소유자들이 지불하는 대출 이자도 금융 시스템을 돌고 돌아 부자들에게로 흘러들어 간다.

대침체에 대한 논의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림 2.1에 나타난 내용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가난한 주택 소유 계층이 가장 빚을 많이 져서 집값 하락에 대한 위험에 제일 크게 노출되어 있었으며, 그들은 집 말고는 별다른 금융 자산이 없는 상태였다. 높은 레버리지, 주택 자산에 대한 과도한 투자,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금융 자산의 결합은 이들 가계에 재앙을 예고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더 가난해졌는가? ―


2006년부터 2009년 사이 미국 전역의 집값은 평균 30퍼센트 정도 떨어졌다. 집값은 오를 기미가 없다가 2012년 말이 되서야 겨우 반등의 기미가 보였다. 주가 지수인 S&P500 지수는 2008년과 2009년 초에 급락했다가 이후 다시 빠르게 올랐다. 뱅가드 채권 시장 지수Vanguard Total Bond Market Index에 따르면 저금리 덕분에 대침체 중에도 채권 가격이 강하게 반등했으며 2007년부터 2012년 사이 채권 가격은 30퍼센트 이상 올랐다. 만약에 대침체가 오기 전에 채권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그 가계는 금융 위기의 여파를 손쉽게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직 최상위 부자들만이 채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집값 하락은 순자산이 적은 가계에 가장 큰 충격을 주었는데 그 이유는 이들 가계의 부가 거의 모두 홈 에쿼티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격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순자산이 적은 가계가 빚도 많이 지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가계의 순자산에 대한 피해는 더 커졌다. 이는 레버리지 승leveragemultiplier 효과 때문이다. 레버지지 승수는 집값이 하락할 때 레버리지에 비례해서 순자산의 손실이 커지는 것을 설명한다.

처음의 예로 돌아가서 레버리지 승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10만 달러짜리 집을 8만 달러의 모기지 대출과 2만 달러의 순자산으로 산 이 주택 소유자의 주택 담보 대출 비LTV: Loan-To-ValueRatio은 80퍼센트이다. 집값이 20퍼센트 떨어진다면 이 주택 소유자의 순자산은 몇 퍼센트 떨어지게 될까? 힌트를 주자면 20퍼센트보다는 훨씬 더 크게 떨어진다. 계산을 해보자. 집값 하락 전에 2만 달러의 순자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집값이 20퍼센트 떨어짐에 따라 집값은 8만 달러가 되었다. 갚아야 할 대출은 여전히 8만 달러이므로 주택 소유자의 순자산은 0이 되었다. 변화율로 따지면 순자산은 100퍼센트 감소한 것이다. 이 예에서 20퍼센트의 집값 하락이 100퍼센트의 순자산 변화를 가져왔으므로 레버리지 승수는 5가 된다. 즉 집값 하락폭의 5배로 순자산이 크게 변하는 것이다.[2]

2006년부터 2009년 사이 집값은 전국적으로 30퍼센트 떨어졌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가난한 주택 소유자들은 빚을 더 많이 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순자산은 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들 계층의 레버리지 비율이 80퍼센트인 상황에서 집값이 30퍼센트 떨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이들의 순자산은 허공에 사라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이 점이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다. 집값은 30퍼센트 떨어졌지만 레버리지 승수 효과로 인해 모기지 대출을 지닌 주택 소유자들의 순자산은 훨씬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대침체기에 어떤 주택 소유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는지 알 수 있다. 가난한 주택 소유자들은 별다른 금융 자산이 없었고, 이들의 부는 거의 전적으로 홈 에쿼티로 이루어져 있었다. 더욱이 홈 에쿼티는 후순위 청구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이 하락하자 그 충격은 레버리지 승수만큼 커져 버렸다. 주식, 채권 등의 금융 자산 가격은 이후 회복되었으나 이들에게는 어차피 금융 자산이 거의 없었으므로 이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얘기였다.

그림 2.2는 이런 사실들을 요약하면서 대침체기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패턴 중 하나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림은 주택 소유자의 부를 기준으로 최하위 5분위, 중간 5분위, 최상위 5분위 계층의 순자산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 준다. 최하위 5분위, 즉 가장 가난한 주택 소유자 계층은 대침체기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2007년부터 2010년 사이 이들 계층의 순자산은 3만 달러에서 사실상 0이 되었다. 레버리지 승수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1992년부터 2007년까지 순자산을 꾸준히 늘려 왔지만 대침체가 이들의 순자산을 모두 허공에 날려 버렸다. 지나치게 높은 홈 에쿼티 비중과 과도한 부채가 결합된 이들 계층의 자산 구성 상태를 고려하면 이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과다. 가장 부유한 20퍼센트 계층의 평균 순자산은 320만 달러에서 290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액수 자체로는 크게 감소했다고 할 수 있으나 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