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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경

신화학 박사이자 꿈 분석가. 미국 퍼시피카대학원에서 신화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오클랜드 창조영성대학원에서 제레미 테일러 박사에게 그룹투사 꿈 작업을 배웠다. 꿈 그룹투사작업과 워크숍 팀을 이끌면서 이 땅에 꿈 친구를 늘리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저서로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가 있고, 번역서로『신화로 읽는 남성성, He』『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꿈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나라』등이 있다.


머리말

 

 

 

꿈은 마음을 보는 창이자 변화무쌍하고 복잡다단한 마음을 읽는 도구입니다. 물론 꿈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이 여전히 태몽이나 예지몽, 혹은 길흉을 점치는 수단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긴 하지요. 우리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레 꿈 이야기를 나누는 데 익숙하지 않으며 누구도 꿈을 소중하게 다루도록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밤마다 펼쳐지는 이상하고 야릇한 꿈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왜 이런 꿈을 꾸었지? 좋은 꿈일까? 나쁜 꿈일까? 궁금증을 풀고 싶어도 막막하기만 합니다. 인터넷을 뒤적이거나 ‘꿈이 잘 맞다’는 용한 해몽가에게 물어보기도 하지만 이런 시도는 대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뿐 아니라 꿈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마저 좌절하게 만들곤 합니다. 막상 이 분야를 공부하려 해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렵기만하고요.

제가 꿈 공부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95년 미국 유학을 가서야 비로소 진지하게 꿈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꿈 수업시간에 ‘학교에서 이런 것도 배우는구나. 참 희한한 나라다’라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흥미진진한 수업을 들으며 어느새‘이렇게 중요한 걸 왜 지금까지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까지 속고 산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일었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이 늘 가까이 있었는데, 황금을 발에 차이는 돌부리인 줄 알고 살아온 격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꿈은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텍스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깊고 오롯한, 본질적인 자신을 알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내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은 어떤 인과관계를 지니는 것일까?’ ‘내 삶에 궁극적 방향성은 있을까?’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만나는 질문들입니다. 꿈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데 매우 유용하고 안전한 도구랍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밤마다 꾸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합니다. ‘꿈같은’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꿈 세계는 때로 낯설고 엉뚱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 꿈들이 품은 놀라운 의미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의식 한켠에 방치되고 잊힌 꿈의 중요성을 새삼 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꿈이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이제는 우리가 이미지의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어봅시다.

 

함께 꿈 이야기를 하고 이 세계를 탐험했던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지혜와 통찰, 열린 마음이 이책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이 세상은 이렇게 함께 나누는 이들이 있어 더욱 풍요로운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누구보다 최초의 꿈 친구이자 스승인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1 무의식 들여다보기


 

 

무의식,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세계

 

예기치 않은 실수를 두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저질렀다고 말한다. 습관처럼 사용하는 ‘무의식’의 의미는 무엇일까? 쉽게 말해 의식이 아닌 모든 것이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알 수 없고 있는 줄도 모르는, 거대한 세계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눈앞에 수평선과 지평선을 떠올려보라. 수평선과 지평선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하고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의식이라 한다면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 인간의 가시성을 벗어난 세계, 그 ‘너머의 세계’를 통칭해서 무의식이라 한다. 

우리 선조들은 이를 ‘이승’에 반하는 ‘저승’이라 불렀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지하 세계the underworld’ 혹은 정령이나 요정 같은 비가시적인 존재들이 사는 세계라 말한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너머 다른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고 각 문화권마다 고유한 이름을 붙였다는 점에서 무의식은 인류의 보편적 현상이다. 

그런데 무의식이 보이지도 않고 인식하지도 못하는 세계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 존재를 알 수 있을까? 이 세계는 볼 수는 없지만 경험으로 알 수 있다. 특별히 노력할 필요도 없다. 무의식은 각자의 삶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단지 당사자가 ‘모르다’는 이유로 무의식이다. 

사실 무의식과 의식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나란히 있다. 의식이 흐트러지고 주의가 산만해질 때 무의식이 틈새를 뚫고 올라온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중에도, 교실에서 수업 중에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이런 공상, 혹은 백일몽이 무의식의 일부다. 다음 일화로 각자 무의식이 작동하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미국에서 유학 생할을 할 때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목격한 일이다. 70대 초반 할머니 룸메이트가 플라스틱 모종삽을 들고 2층 베란다에서 아래층 화단으로 고양이 배설물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를 보더니 “세상에, 자기 반려동물이 싼 똥도 안 치우고 화단에 버리는 몰상식한 사람들이 있어”라고 말했다. 

이분은 손이 하는 일을 머리가 미처 쫓아가지 못했다. 고양이 배설물을 쓰레기 봉지에 담아 버리는 수고를 덜기 위해 아래층으로 그냥 던지면서,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다고 되레 화를 내는 것이다. 할머니는 화단에 배설물을 던지는 자신의 행동과 배설물을 아파트 화단에 방치하는 사람들의 그것이 같은 행위라는 사실을 연결시키지 못했다. 의식과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우리는 매일 연출하며 살고 있다. 

밤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에 취한 사람들의 행동 또한 무의식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들의 행동에는 무의식의 내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혀가 꼬이기 시작할 즈음, 마음속에 억눌린 것들이 슬슬 나온다. 수직적 서열이 공고한 우리 사회이다 보니 술자리에서 직장, 학교, 가족, 선후배, 나이라는 위계가 주는 압박감을 잠시나마 벗어던지고 해방감을 맛본다. 

한국의 술 문화는 위계와 권위주의를 보상하는 순기능이 있다. 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이완 상태와 자기 표현이 불가능하기에 무의식적으로 술을 소비한다. 이럴 때 술은 이완과 소통을 위한 해독제이지만 중독이라는 부작용의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생각이나 감정을 인지하고 이를 표현할 힘이 생기면 술에 대한 의존도는 크게 줄어든다. 술의 힘으로 배설하듯 뱉어내는 대신 맨 정신으로도 속내를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꿈 세계를 공부하는 것이다. 

 

 

꿈, 자연스러운 무의식의 속삭임

 

꿈은 무의식 세계가 의식 세계로 말을 거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그 안에는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 자랄 때 결코 허용되지 않았던 모습도 있다. 또 집안이나 사회 규범에 따르느라 억압되고, 편향되게 발달하느라 남겨진 부분들이 간직되어 있다. 무엇보다 온전한 자신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자원이 있다. 이런 무의식이 꿈이라는 말 걸기 방식을 통해 본래의 자신을 만나는 데 장애물이 되는 상처들을 다시금 어루만지도록 계기를 만들어준다. 또 이전에는 몰랐던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들을 발견해 창의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 저마다의 ‘진정한 나’를 발견하도록 접촉을 시도해오는 방식이 꿈인 것이다. 그러니 ‘꿈에 관심을 갖고 꿈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꿈과 친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꿈과 친해지자’고 말하면 종종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낮에 깨어 있는 삶도 골치 아픈데, 잠도 제대로 못 자게 꿈까지 들여다보라고요?” “눈앞에 펼쳐지는 하루하루 현실이 버겁고 힘겨운데 그럴 여유가 있나요?” 

하지만 현실이 혼란스럽고 막막하기에 꿈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표층이 아닌 내면의 깊은 층위에서 올라오는 본질의 언어인 꿈에는 삶에 얽힌 실타래를 풀어낼 실마리가 들어 있다. 뒤죽박죽된 감정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와 지혜를 길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계를 갈망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한다. 감정 조절이 어려워 의도와 달리 가까운 사람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초조하고 불안하며 공허함에 시달리는 현대병에서 자유롭지도 못하다. 이렇게 버거운 무게를 양 어깨에 지고 살지만, 왜 힘겨운지 원인조차 모른다. 이럴 때 무의식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잠도 편히 못자게 일거리를 하나 더 만들자는 게 아니다. 한 번 더 강조하건대 깨어 있을 때의 삶을 좀 더 평안하고 순리대로 풀자는 것,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만들기 위해 꿈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이런 심층심리학의 주장이 생경한가? 그렇지 않다. 이른바 선각자들이 한결같이 해왔던 가르침이다. 현자들은 늘 “깨어나라!”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깨어나느냐고 물으면 일관된 답변이 돌아온다. “답은 네 안에 있다.” 그렇다. 분명, 이 진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나는 이분들을 친절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안에서 진정한 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모두의 한결같은 갈망이되, 늘 ‘어떻게’가 문제다. 

“좋은 말인 줄은 알겠는데, 들여다보면 뭐가 나오나?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잡혀. 대체 어쩌란 말이야!” 이런 막연함과 막막함이 우리 모두의 느낌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기능적 성취와 효율성에 극단적으로 편향된 발달 때문이다. 특별히 의식 세계만을 탐색 대상으로 간주해온 것이 현대의 특징이다. 이 편향을 가속화시키는 시스템에 사회적 보상이 주어지는 게 현실이다.

수능을 잘 보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사고력, 논리력, 암기력 등 고득점에 필요한 재능이 필요하다. 자연을 존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신을 섬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미적 감수성이 발달했다면 이는 계량적 점수로 대변되는 사회적 성취와 거리가 멀다. 

신화학자는 한결같이 ‘편향된 신화는 언제나 위험하다’고 말한다. 의식, 이성, 좌뇌만 중시해온 결과, 무의식 세계와 단절된 현대인은 위험하다. 심층심리학자 칼 융은 현대인의 문제를 의식과 무의식의 단절이라 진단했다. 

고대에는 주기적인 의례를 통해 비가시적인 세계, 즉 무의식의 내용들을 존중하고 관계를 맺고 소통할 기회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이 세계와 차단된 현대인은 통제할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혼돈의 세계에 대해 두려움을 증폭시켜왔다. 물론 무의식에 함부로 다가갈 수는 없다. 무의식과 소통의 길이 열려 있던 선조들도 무의식에 대한 두려움은 늘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는 현대인이 지닌 두려움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것이다. 고대인이 무의식에 대해 지녔던 두려움을 엿볼 수 있는 신화 한 대목을 살펴보자. 

그리스 신화 중 디오니소스 탄생 신화는 잘 알려져 있다. 어머니 세멜레가 디오니소스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그 옆에서 행복감에 도취된 제우스가 호기를 부린다. 그는 세멜레에게 말한다. “뭐든 들어줄게. 말만 해.” 세멜레는 제우스에게 가면을 벗고 진짜 얼굴을 한 번만 보여 달라고 한다. 순간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제우스는 다른 청을 이야기하면 뭐든 들어주겠다고 설득하지만 세멜레는 완강하다. 어쩔 수 없이 가면을 벗는데 그 순간 제우스에게서 나오는 광휘로 세멜레는 완전히 타버린다. 마침 불에 가장 강하다는 담쟁이덩굴 잎이 세멜레의 자궁을 가리고 있었기에 태아는 숨이 겨우 붙어 있다. 결국 제우스가 자기 허벅지 안에 태아를 집어넣게 되고 이런 연유로 디오니소스는 아버지 허벅지에서 태어나게 된다. 

‘그 너머’를 직면하는 순간 타버리고 만 세멜레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미지이지만 한편으로 무의식에 다가가는 태도에 대한 경각심도 불러일으킨다. 명상이든 의례든 무의식을 만나는 방식들은 언제나 주의가 필요하고 안전한 틀이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꿈 선생님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 박사는 가장 적절한 현대인의 명상법은 꿈을 들여다보는 것이라 한다. 꿈은 안전하게 무의식 세계를 탐색할 수 있는 좋은 도구다. ‘네가 알고 있는 너, 네가 생각하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거든. 그 너머에 다른 것들이 있단다. 그러니 꿈을 들여다보고 의식을 확장시켜봐.’ 꿈은 밤마다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답은 네 안에 있다

 

심리학에서는 종종 거대한 빙산의 뿌리를 무의식에 비유한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을 흔히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얼핏 크기만 보더라도 빙산의 뿌리, 즉 무의식이 얼마나 거대하고 압도적인지 파악될 것이다. 

이 빙산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전부가 빙산의 일각이고 그 기저에는 아직 내가 탐색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나 자신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빙산의 아래, 즉 무의식의 영역에는 온갖 데이터들이 있다. 무의식이라는 하드 드라이브 용량은 무한대이다. 거기에는 잊혀진 개인사와 가족사, 그리고 민족사를 비롯해서 인류와 우주 전체의 기억이 다 들어 있다. 현자들이 “답은 네 안에 있다” “너 자신을 알라” “네가 바로 부처다”라고 말한 이유는 결국 거대한 무의식을 탐색의 영역으로 포함시켜 의식만을 전부라 착각하지 말고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찾으라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 무의식을 안전하게 탐색하는 방법은 꿈과 대화하는 것이다. 꿈은 잠에 빠져 바삐 움직이던 의식이 퇴각할 때 빙산의 뿌리인 무의식이 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꿈에는 꿈을 꾼 사람에게 ‘바로 그 순간’ 가장 절실히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들어 있다. 흔히 쓰는 ‘개꿈’이란 말은 이러한 꿈의 역할을 도외시하는 부적절한 표현이다. 모든 꿈은 저마다 겹겹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언제나 꿈꾼 사람을 돕는다. 의미 없는 꿈도 없고 덜 중요한 꿈도 없다.

무의식은 밤마다 의식을 넓히는 데 필요한 엄청난 정보를 보내준다. 자신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하룻밤에 5~7번 꿈을 꾼다. 이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수면 상태의 뇌파를 살펴보면 자는 동안 눈꺼풀이 떨리는 ‘렘수면REM sleep’ 단계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데 이때가 바로 꿈을 꾸는 시간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꿈에 대한 실험들을 많이 해왔는데 그중 한 실험을 예로 들어보자. 

총 수면 시간을 8시간으로 한정하고 실험 대상자를 재운 후, 렘수면 단계에 들어가면 깨우기를 반복했다. 꿈을 꾸지 못하게 하면서 하루 8시간을 재운 이 실험에서 대부분의 참여자가 사나흘이 지나자 환각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이런 현상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모두 정상적으로 꿈을 꾸고 있다는 이야기다. 꿈을 안 꾼다는 말은 ‘나는 습관적으로 꾼 꿈을 잊어버려’라고 표현해야 정확하다. 기억하지 못할 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꿈, 신이 보낸 연애편지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꿈을 묘사해왔다. 나는 그중 『탈무드』에 나오는 시적인 표현을 가장 좋아한다. “신이 매일 밤 우리에게 연애편지를 보내주는데, 우리는 봉투도 뜯지 않은 채 버리고 만다.” 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전언이 꿈이라는 말이다. 꿈 공부를 해온 세월이 늘어날수록 이 표현의 맛이 더 깊어진다. 이보다 더 고운, 게다가 더 없이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백설공주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녀 왕비는 항상 거울을 들고 있다. 이 거울은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지?”라는 왕비의 질문에 거울이 “왕비님이 제일 예쁘지요”라고 듣기 좋게 답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왕비가 신바람이 나서 독사과를 들고 산 속 공주의 집을 찾아가 살해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화 속 거울은 끝내 난쟁이와 사는 공주가 가장 예쁘다고 답한다. 진실만을 말해주는 이 거울은 꿈의 역할을 제대로 빗댄 상징이다. 

꿈은 마음을 비추어주는 거울이다.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내가 듣고 싶어 하거나 바라는 바와 다를 수 있다. 꿈이란 인간 존재의 근원인 영혼의 진실을 반영한다. 의식에 아첨하여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에, 때로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진실을 보여주기도 하고 기대치 않은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여 잔잔한 마음을 휘젓는다. 

우리는 누구나 거짓을 말하며 산다. 의도적인 거짓말은 논외로 하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하는 거짓말이 있다. 예를 들어 “요즘 잘 지내시지요?”라고 물으면 거의 “예, 잘 있어요”라고 답한다. 진짜 잘 사는지 여부와 무관한, 습관적인 거짓말이다. 본인이 거짓이 아니라 진짜 잘 산다고 믿기도 한다. 나는 지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종종 “요즘 어떤 꿈꿔? 우리 꿈 얘기 하자”고 제안한다. 가까운 사람들 속을 들여다보자는 의도가 아니다. 귀한 시간, 진솔한 만남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심층심리학의 아버지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王道’라고 표현한다. 무의식을 탐색하는 가장 좋은 도구가 꿈이라는 말이다. 앞서도 말했듯 꿈이 무의식을 탐색하는 유일한 도구는 아니지만, 가장 안전한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잠만 자면 꾸니 가장 경제적이기도 하다. 

꿈 공부를 한 지 20년 된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삶의 나침반’이라 답하겠다. 나침반은 어느 방향이 북쪽인지를 항시 알려주는, 방향을 알고자 할 때 꼭 필요한 계기이다. 꿈은 삶의 방향을 알려준다. 여기서 꿈이라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이란 온전한 건강, 자아실현, 진정한 나의 발견, 신과 온전히 하나되는 체험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꿈은 매일 밤 꿈꾸는 사람이 조금씩 북쪽으로 향하도록, 즉 영혼이 궁극적으로 돌아가는 자리로 나아가도록 매 순간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꼭 알아야 할 꿈에 관한 지식

 

꿈은 늘 완전한 형태를 띠지만, 일련의 흐름에서 보면 꿈의 방향성이 확연히 보인다. 일정 기간 자신의 꿈을 관찰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꿈은 시종일관 의도를 가지고 꿈꾼 이를 이끌어간다. 나는 여러 강의에서 이 흐름과 방향성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그린 화가의 작업을 소개하곤 한다. 

이 화가는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자신의 꿈 이미지를 스케치했다. 이중 70여 점을 그림으로 완성했고, 이를 모아 꿈 이야기 책을 출간했다. 이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무의식의 방향성, 즉 꿈이 지니는 의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사람은 어린 시절 겪은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리고 이를 망각한 채 50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꿈을 통해 그 기억을 살려내고 사건에 연루된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다루면서 서서히 상처를 치유해갔다. 그뿐 아니라 상처와 함께 갇히고 막힌 자신의 힘과 건강을 되찾았다. 

나는 2년 이상 지속된 꿈 드라마를 보며 장엄하고 신비로운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한 느낌이었다. 이처럼 꿈이 펼쳐보이는 장대한 흐름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꿈 세계를 공부하는 초심자에게 나는 꿈 일기를 적는 것으로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그 꿈의 기록을 통시적으로 관찰하면 여러 꿈의 흐름이 드러난다.

나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꿈과 대화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 애쓴다. 꿈 보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한, 삶의 중심에서 벗어나 표류하지 않을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꿈은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 진정한 나를 발견하도록 이끈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 교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편향된 사고에 빠질 때면 반대편 이미지를 등장시켜 재고하도록 해주고, 보고 싶지 않은 나의 취약함과 열등함도 대면하게 해 용기를 북돋워준다. 정직할 수 있도록 나를 비추어주는 거울이자 나를 이끌어가는 가장 믿을 만한 길라잡이도 꿈이다. 얼마나 든든한가. 내 안에는 이미 거울도 나침반도 모두 들어 있다. 이 풍성하고 기발한 꿈의 작용은 밤마다 놀라운 삶의 신비를 선물해준다. 

꿈 세계로 나를 입문시킨 분은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이었다. 내가 한국에 소개해온 그룹 투사 꿈 작업Group Projective Dreamwork을 1960년대에 만든, 꿈에 관한 한 단연 마에스트로다. 그는 노숙자부터 성직자까지, 감옥, 정신병동, 유치원을 가리지 않고 베트남 참전용사나, 성적 소수자까지 전 세계 수십 만 명의 사람들과 꿈 작업을 하며 ‘꿈에 관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연구로 남겼다. 지금부터 그의 연구를 몇 가지로 정리해 소개한다. 

 

첫째로, 꿈은 언제나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되며 꿈꾼 사람의 건강과 자기 실현을 돕는다. 이때 자기 실현이라는 표현은 온전성wholeness의 획득, 진정한 나의 발견, 삶의 의미의 발견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좋다. 모든 꿈은 건강과 성장을 위한 것이라는 데 어떤 예외도 없다. 

그렇다면 왜 무섭고 끔찍한 악몽을 꿀까? 악몽은 건강이나 성장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최근에 나는 광주민주화항쟁 희생자 분들과 그룹투사 꿈 작업을 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