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 본문 중 인용문 뒤에 달린 쪽 숫자는 해당 서적의 종이책을 기준으로 표시했다. 종이책 정보는 판권이나 참고문헌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장

한때 캘리포니아는 멕시코의 영토였고, 그 땅은 멕시코인들의 것이었다. 그런데 누더기를 입은 미국인들이 떼를 지어 이 땅으로 마구 몰려 들어왔다. 그들은 땅을 너무나 갈망한 나머지 이 땅을 빼앗아 버렸다. 수터의 땅을 훔치고 게레로의 땅을 훔친 것이다. 그들은 땅을 빼앗아 나눠 가졌으며, 땅을 놓고 서로 으르렁거렸다. 그들은 갈망 때문에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훔친 땅을 총으로 지켰다. 집과 헛간을 세우고, 땅을 갈아엎어 농작물을 심었다. 이런 것이 그들의 소유물이 되고, 소유물은 소유권이 되었다.

멕시코인들은 나약했다. 그들은 저항하지 못했다. 땅을 원하는 미국인들처럼 광적으로 원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시간이 흐르면서 땅을 무단으로 차지한 사람들은 더 이상 무단 점유자가 아니라 땅의 주인이 되었다. 그들의 자식들이 자라 그 땅에서 또 자식을 낳았다. 이제 그들에게 갈망은 없었다. 땅과 물과 그 위의 아름다운 하늘과 쑥쑥 솟아오르는 초록색 풀과 뚱뚱하게 살이 쪄 가는 식물의 뿌리에 대한 흉포한 갈망, 모든 것을 갉아먹고 찢어 버리는 그 갈망은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땅과 그 밖의 것들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이제는 그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비옥한 땅과 그 땅을 갈기 위한 반짝이는 쟁기, 그리고 공중에서 날갯짓을 하는 풍차와 씨앗에 대한, 창자를 찢어발기는 듯한 갈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잠에서 덜 깬 새들이 처음으로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없었다. 집 주위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소중한 땅으로 나가기 위해 첫새벽의 빛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잊혔고, 농작물은 달러로 계산되었으며, 땅의 가치는 원금과 이자를 합한 금액으로 결정되었고, 농작물은 땅에 심기도 전에 거래되었다. 흉작, 가뭄, 홍수도 이제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금전적인 손실을 뜻할 뿐이었다. 그들의 애정은 돈 때문에 점점 식어 갔고, 사나움도 이해타산 속에서 조금씩 사라져 이제 그들은 농부가 아니라 농작물을 파는 장사꾼, 물건을 만들기도 전에 팔아야 하는 소규모 제조업자가 되었다. 장사꾼 노릇을 잘 하지 못한 농부들은 장사를 잘한 사람들에게 땅을 잃었다. 아무리 영리해도, 땅과 농작물을 아무리 사랑해도, 장사를 잘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업가들이 농장을 소유하게 되었고, 농장은 점점 커져 갔으며, 농장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이제는 농업이 산업이 되었다. 지주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로마를 흉내 냈다. 그들은 노예를 수입했다. 비록 노예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중국인, 일본인, 멕시코인, 필리핀인 들을 수입한 것이다. 사업가들은 그들이 쌀과 콩만 먹는다고 말했다. 그놈들은 필요한 게 별로 없어. 임금을 많이 줘도 그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걸. 그놈들 사는 꼴을 좀 봐. 그놈들이 먹는 음식을 좀 보라고. 놈들이 우스운 짓을 하면 추방해 버리면 돼.

농장은 점점 커지고 지주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었다. 이제 자기 땅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의 숫자는 한심할 정도로 적었다. 외국에서 수입한 농노들은 매를 맞으며 두려움 속에서 굶주리다가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사납게 굴다가 죽임을 당하거나 국외로 추방당하기도 했다. 농장은 점점 커지고 지주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었다.

농작물의 종류가 바뀌었다. 곡식을 심는 밭이 있던 자리에 과실나무가 자라고, 전 세계로 팔려 나갈 채소들이 계곡 바닥에 퍼져 나갔다. 양상추, 콜리플라워, 아티초크, 감자 등. 모두 사람이 허리를 구부리고 가꿔야 하는 작물이었다. 낫이나 쟁기나 갈퀴를 사용할 때는 그냥 서 있어도 되지만, 줄지어 심어 놓은 양상추들 사이를 지나갈 때는 반드시 벌레처럼 기어야 한다. 목화 줄기 사이를 지나갈 때도 허리를 구부리고 긴 자루를 끌고 다녀야 한다. 또 콜리플라워 밭을 가로지를 때는 참회자처럼 무릎으로 기어다녀야 한다.

지주들이 더 이상 농장에서 일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그들은 서류로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그들은 땅의 냄새와 느낌을 잊어버렸다. 다만 자신들이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 땅을 통해 자신들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만 기억할 뿐이었다. 일부 농장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소득과 손실을 기록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장부 작성에 매달려야 할 정도였다. 토양을 검사해서 복구시키는 데는 화학자가 투입되었고, 허리를 구부린 인부들이 밭에서 가능한 한 빨리 움직이고 있는지 감시하는 데는 십장들이 투입되었다. 이런 농장주들은 사실상 가게를 운영하는 장사꾼이었다. 그는 인부들에게 임금을 지불하고, 그들에게 식량을 팔아 그 돈을 다시 빼앗아 왔다. 얼마 후에는 아예 임금도 지불하지 않아 장부 작성이 훨씬 쉬워졌다. 이런 농장들은 식량을 외상으로 주었다. 인부들은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식사를 해결하다가 일이 끝나면 자신이 오히려 회사에 빚을 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주들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농장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땅을 빼앗긴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캔자스, 오클라호마, 텍사스, 뉴멕시코, 네바다, 아칸소 등지에서 흙먼지와 트랙터에 밀려난 사람들이 몰려왔다. 자동차에 짐을 가득 싣고 대상(隊商)처럼 길을 나선 이 사람들은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다. 2만 명이 5만 명으로, 10만 명으로, 20만 명으로 불어났다. 그들은 굶주린 배를 안고 불안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산을 넘어왔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으려고 개미떼처럼 허둥지둥 돌아다니는 사람들. 그들은 짐을 드는 일이든, 밀거나 잡아당기는 일이든, 과일을 따는 일이든, 작물을 베는 일이든 가리지 않았다. 무슨 짐이라도 지려고 들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어요. 살 곳도 없습니다. 그들은 개미처럼 허둥거리며 일자리와 먹을 것을 구하려 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땅을 원했다.

우린 외국인이 아닙니다. 7대째 미국에 살고 있는 미국인이에요. 그 전에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독일에서 살았지만. 우리 조상 중에는 독립전쟁에 참전한 사람도 있습니다. 남북전쟁에 나갔던 사람도 많고요. 남군과 북군 양편에 모두. 미국인이에요.

그들은 굶주렸고, 사나웠다. 그들은 새로운 고향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발견한 것은 오로지 증오뿐이었다. 오키들. 지주들은 오키들을 미워했다. 자기들은 연약한 반면 오키들은 강인하다는 것, 자기들은 피둥피둥 살이 쪘지만 오키들은 굶주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납고 굶주린 사람이 무장을 하면 연약한 사람한테서 얼마나 쉽게 땅을 훔칠 수 있는지를 그들의 할아버지들이 이미 얘기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도시의 장사꾼들도 오키들을 미워했다. 오키들이 빈털터리였기 때문에. 장사꾼들의 경멸을 받는 데 이보다 더 지름길은 없다. 장사꾼들은 정확하게 반대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도시 사람들, 소규모 은행가들도 오키들을 미워했다. 그들에게서 얻어 낼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노동자들도 오키들을 미워했다. 배고픈 사람은 반드시 일자리를 구하려 할 테니까. 만약 오키들이 무슨 수를 써서든 일자리를 구하려 한다면 임금을 지불하는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임금을 깎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돈을 더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땅을 빼앗긴 이주민들이 캘리포니아로 흘러 들어왔다. 25만 명, 30만 명쯤. 그들이 떠나온 땅에서는 새 트랙터들이 땅 위를 오가고 있었고, 소작인들이 강제로 쫓겨나고 있었다. 새로운 물결이 움직였다. 땅과 집을 빼앗기고 더 강인해져서 위험해진 사람들의 물결이.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재산, 사회적 성공, 오락, 사치품, 은행 거래의 안전성 등 많은 것을 원했지만, 새로 이주해 온 야만인들이 원하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땅과 먹을 것. 그들에게 이 두 가지는 하나였다. 캘리포니아인들이 원하는 것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오키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길가에 널려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눈으로 보면서 갖고 싶어 했다. 파면 물이 나오는 좋은 땅. 푸르른 땅. 손으로 시험 삼아 흙덩이를 부스러뜨릴 수 있는 곳, 냄새를 맡아 볼 수 있는 풀, 목구멍에서 강렬한 단맛이 느껴질 때까지 씹어 볼 수 있는 귀리 줄기. 놀고 있는 땅이 눈에 들어오면 그들은 등을 구부린 채 양배추를 수확하는 모습을, 황금빛 옥수수와 순무와 당근을 수확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볼 수 있었다.

집도 없고 배고픈 남자가 옆자리와 뒷자리에 각각 아내와 여윈 아이들을 태우고 차를 몰다 보면 놀고 있는 땅이 보였다. 식량을 생산할 수는 있지만 이윤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땅을. 그 남자는 그렇게 땅을 놀리는 것이 죄악이며, 여윈 아이들을 해치는 범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길을 따라 차를 몰면서 땅이 눈에 띌 때마다 유혹을 느끼고, 이 땅을 차지해 농사를 지어서 아이들을 튼튼하게 만들고 아내를 조금 편안하게 해 주고 싶다는 욕망을 느낄 것이다. 그 유혹은 항상 그의 눈앞에 있었다. 땅이 그를 쿡쿡 찔러 대고, 좋은 물이 흐르는 토지 회사의 수로들도 그를 쿡쿡 찔러 댔다.

남쪽으로 내려오면 나무에 매달린 황금빛 오렌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검푸른 나무에 매달린 작은 황금빛 오렌지들. 여윈 자식들을 위해 오렌지를 따 가는 사람들을 막으려고 엽총을 든 경비원들이 순찰을 돌았다. 값이 너무 내리면 오렌지들을 그냥 버릴 거면서.

사람들은 낡은 차를 몰고 시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일자리를 찾으려고 여러 농장들을 돌아다녔다. 오늘 밤에는 어디서 자야 하나?

강가에 후버빌이 있어요. 거기 가면 오키들이 우글우글해요.

사람들은 낡은 자동차를 후버빌로 몰았다. 다시 사람들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어느 도시에나 변두리에는 후버빌 같은 곳이 있었으므로.

그 빈민가는 물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집이 아니라 천막에서 살았다. 잡초를 엮어 만든 울타리, 종이로 만든 집, 커다란 폐물 더미. 새로 온 사람들은 식구들과 함께 차를 몰고 들어가 후버빌의 주민이 되었다. 그런 마을은 항상 후버빌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가능한 한 물과 가까운 곳에 천막을 세웠다. 천막이 없는 사람들은 도시의 쓰레기장으로 가서 마분지를 가져다가 집을 지었다. 비가 오면 이런 집들은 녹아서 쓸려가 버렸다. 후버빌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일대를 돌아다녔다. 얼마 남지 않은 돈은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동안 자동차 휘발유 값으로 들어갔다. 저녁이 되면 남자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자기들이 본 땅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 서쪽으로 가면 3만 에이커나 되는 땅이 있어. 그냥 놀고 있더라고. 젠장, 그 땅만 있으면, 땅이 5에이커만 있어도 내가 못할 일이 없는데! 아이고, 먹고 싶은 걸 뭐든지 구할 수 있을 텐데.

그거 알아? 농장에 채소도 없고 닭도 없고 돼지도 없어. 여기 사람들은 딱 한 가지만 기른다고. 예를 들면, 목화나 복숭아나 양상추 같은 걸로. 다른 어디에는 오로지 닭만 키우는 곳도 있겠지. 여기 사람들은 앞마당에서 기를 수 있는 것들을 돈 주고 사 먹는다니까.

젠장, 돼지 두 마리만 있어도 못할 일이 없을 텐데!

그건 자네 것이 아냐. 앞으로도 그럴 거고.

앞으로 어떻게 한다지? 이런 식으로 애들을 키울 수는 없잖아.

천막촌 사람들이 서로 속삭이는 얘기들을 통해 소문이 퍼지는 경우도 있었다. 섀프터에 일자리가 있다더라. 그러면 사람들은 밤중에 자동차에 짐을 싣고 너도나도 고속도로로 몰려나왔다. 일자리를 잡으러 달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달려가 보면 필요한 인원보다 다섯 배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곤 했다. 일자리를 잡으러 몰려온 사람들. 어떻게 해서든 일자리를 잡으려고 밤중에 몰래 달려온 사람들. 길가에는 그들을 유혹하는 것들이 널려 있었다.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땅들이.

저건 주인이 있어. 우리 것이 아냐.

그래도 혹시 우리가 저 땅을 조금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아주 조금만이라도. 바로 저 아래에 밭이 있는데, 지금은 흰독말풀만 자라고 있어. 젠장, 땅만 조금 있으면 온 식구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감자를 키울 수 있을 텐데!

그건 우리 것이 아냐. 저긴 흰독말풀이 자라게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어.

가끔 시도를 해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몰래 들어가서 땅을 조금 개간하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도둑처럼 땅의 비옥함을 조금 훔치려 했다. 잡초 속에 숨은 비밀의 밭을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당근과 순무를 심고 감자도 심은 다음, 저녁에 그 훔친 땅으로 몰래 들어가서 괭이질을 했다.

가장자리의 잡초는 그냥 놔둬. 그래야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테니. 중간에도 키가 큰 놈으로 잡초들을 조금 놔둬.

저녁에 몰래 이루어지는 비밀의 밭 가꾸기. 그들은 녹슨 깡통으로 물을 날랐다.

그러다가 어느 날 보안관보가 나타났다.

이게 무슨 짓들이야?

저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요.

내가 네 놈을 감시하고 있었어. 여긴 네 땅이 아니잖아. 넌 지금 남의 땅을 침범한 거야.

여기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없어서요. 제가 이 땅을 망가뜨린 것도 아니고요.

이 뻔뻔스러운 놈들. 조금 있으면 이 땅이 제 것인 줄 알 테지. 너 혼날 줄 알아. 이 땅이 네 것인 줄 알지? 당장 나가.

초록색 당근 싹들이 발에 채이고 순무 이파리들이 짓밟혔다. 그리고 흰독말풀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보안관보의 말이 옳았다. 작물을 기르면 그것으로 주인이 되는 것이다. 괭이로 땅을 일구고 거기서 키운 당근을 먹은 사람은 자신이 식량을 얻은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움을 벌일지도 모른다. 그놈을 빨리 쫓아내 버려! 그놈이 그 땅을 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거야. 어쩌면 흰독말풀 사이의 그 작은 땅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지도 몰라.

우리가 순무를 발로 차 버렸을 때 그놈 얼굴 봤어? 아이고, 누구든 눈에 띄는 대로 죽여 버릴 태세던데. 그놈들 기를 죽여 놔야지 안 그러면 그놈들이 이 일대를 다 차지해 버릴 거야. 이 지역을 차지해 버릴 거라고.

다른 데서 온 놈들 주제에.

맞아. 우리랑 같은 말을 쓰기는 하지만 우리하고는 달라. 놈들이 사는 꼬락서니를 좀 봐. 우리더러 그렇게 살라고 하면 살겠어? 천만에, 말도 안 되지!

저녁이 되면 쭈그리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남자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우리 스무 명이 땅뙈기 하나 못 빼앗는단 말이야? 우리한테는 총도 있잖아. 그냥 가서 빼앗아 버리고 이러는 거야. “할 수 있으면 쫓아내 봐.” 못할 이유가 없잖아.

놈들이 우리를 쥐새끼처럼 쏴 버릴 거야.

그럼 자네는 어느 쪽이 좋아? 죽는 거, 아니면 여기 있는 거? 땅속에 묻히는 거, 아니면 마대 자루를 이어 붙인 집에서 사는 거? 아이들한테는 어느 쪽이 좋을 것 같아? 지금 죽는 거, 아니면 놈들이 영양실조라고 부르는 병으로 이 년 후에 죽는 거? 일주일 내내 우리가 뭘 먹었는지 알아? 쓰디쓴 쐐기풀하고 밀가루 반죽 튀김이야! 튀김을 만든 밀가루는 어디서 났는지 알아? 화물차 바닥을 쓸어서 가져온 거라고.

천막촌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엉덩이가 뚱뚱한 보안관보들은 그 뚱뚱한 엉덩이에 총을 차고 거만한 걸음걸이로 천막촌을 걸어 다녔다. 놈들한테 겁을 줘야 돼. 놈들을 얌전히 눌러 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아무도 몰라! 젠장, 놈들은 남부의 깜둥이들만큼이나 위험하다고! 놈들이 한데 뭉치는 날에는 무슨 수를 써도 놈들을 막지 못할 거야.

 

로렌스빌에서 어떤 보안관보가 무단 거주자를 쫓아냈다. 그러나 그 무단 거주자가 저항하는 바람에 보안관보는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무단 거주자의 열한 살짜리 아들이 22구경 소총으로 보안관보를 쏘아 죽였다.

 

방울뱀 같은 놈들! 놈들을 상대할 때는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야. 놈들이 뭐라고 떠들어 대면 우선 총부터 쏴. 애가 경찰을 죽이는 마당에 어른은 뭔들 못 하겠어? 요는 놈들보다 더 거칠어져야 한다는 거야. 놈들을 거칠게 다뤄. 겁을 주라고.

놈들이 겁을 먹지 않으면? 놈들이 버티고 서서 같이 총을 쏴 대면? 이놈들은 어릴 때부터 총을 만졌어. 총은 그 놈들 몸의 일부야. 놈들이 겁을 먹지 않으면 어떡하지? 언젠가 놈들이 무리를 지어서 이 땅으로 몰려오면 어떡하지? 롬바르드족이 6세기에 이탈리아를 정복한 것처럼, 게르만족이 골에서 그랬던 것처럼, 터키족이 비잔티움에서 그랬던 것처럼. 롬바르드족이나 게르만족이나 터키족도 땅에 굶주려 있었고, 무기도 변변찮았어. 그런데 군대도 그놈들을 막지 못했다고. 학살을 하고 겁을 줘도 놈들을 막을 수 없었단 말이야. 자기뿐만 아니라 애들까지 굶주리고 있는 사람한테 어떻게 겁을 줄 수 있겠어? 그런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겁을 내지 않아. 그 무엇보다 무서운 게 뭔지 알고 있으니까.

후버빌에서는 남자들이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옛날에 인디언들한테서 땅을 빼앗았대.

이런, 그건 옳은 일이 아냐. 우리가 지금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있지만, 자네가 말하는 건 도둑질이라고. 난 도둑이 아냐.

그래? 자네 그저께 밤에 남의 집 현관에서 우유를 한 병 훔쳤잖아. 구리줄도 훔쳐다가 팔아서 고기를 샀고.

그래, 하지만 애들이 배를 곯고 있었어.

그래도 그건 도둑질이야.

페어필드 목장 말인데, 그게 어떻게 그놈들 것이 됐는지 알아? 거긴 전부 정부 땅이어서 누구나 가질 수 있었어. 그런데 페어필드 영감이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주정뱅이 300명을 끌어 모았지. 그 주정뱅이들이 땅을 차지했어. 페어필드는 그놈들한테 음식하고 술을 대줬고. 그러다가 놈들 덕분에 그 땅이 쓸 만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되자 페어필드 영감이 놈들한테서 그 땅을 빼앗아 버린 거야. 영감은 그 땅을 사는 데 1에이커당 싸구려 술 1파인트가 들었다고 말하곤 했지. 자네라면 그런 것도 도둑질이라고 하겠어?

글쎄, 옳은 일은 아니지만 그 영감이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가지는 않았잖아.

그렇지. 그 영감은 그 일 때문에 감옥에 가지 않았어. 그리고 짐마차에 배를 싣고 가서 땅이 죄다 물에 잠겨서 배를 타고 왔다고 보고한 놈도 감옥에 가지 않았어. 국회의원이랑 주의회 의원을 매수한 놈들도 감옥에 가지 않았고.

캘리포니아 주 곳곳에 있는 후버빌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런데 어느 날 경찰의 기습 단속이 있었다. 보안관보들이 무장을 하고 무단 거주자들의 천막촌을 덮친 것이다. 나가. 보건부의 명령이다. 이 천막촌이 보건에 위협이 되고 있어.

우리더러 어디로 가라는 겁니까?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우리는 네 놈들을 여기서 쫓아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삼십 분 후에 여기다 불을 지를 거야.

저 아래쪽에 장티푸스 환자가 있어요. 그 병을 사방에 퍼뜨릴 작정입니까?

우리는 네 놈들을 여기서 쫓아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나가! 삼십 분 후에 우리가 이 천막촌을 태워 버릴 거야.

삼십 분 후 종이로 만든 집과 잡초를 엮어 만든 오두막들에서 하늘을 향해 연기가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나가 또 다른 후버빌을 찾아갔다.

캔자스와 아칸소, 오클라호마와 텍사스와 뉴멕시코에서는 트랙터들이 들어와 소작인들을 쫓아냈다.

캘리포니아에 이미 30만 명이 와 있었고, 지금도 계속 사람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도로들은 물건을 미는 일이든 드는 일이든 가리지 않고 일을 하려고 개미처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 사람이 들 수 있을 만한 짐을 들어 올릴 때마다 다섯 명이 그 일을 하겠다고 달려들었다. 한 사람의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있으면 다섯 명이 입을 벌렸다.

대지주들, 소요가 일어나면 땅을 잃을 수밖에 없는 대지주들은 역사를 살펴보고 굉장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재물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 재물을 빼앗아간다는 것. 그리고 이와 더불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다 보면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을 빼앗기 위해 무력을 동원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역사를 통틀어 작은 소리로 비명을 질러 대고 있는 또 다른 사실 하나. 억압은 억압받는 자들을 강하게 만들고 단결시킬 뿐이라는 것. 대지주들은 역사의 이 세 가지 외침을 무시했다. 땅은 더욱더 소수의 손에 집중되었고,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대지주들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엄청난 재산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무기와 독가스를 사는 데 많은 돈을 썼다. 혹시 사람들 사이에서 불온한 소리들이 오가지는 않는지 감시하기 위해 첩자들도 보냈다. 폭동이 일어나면 짓밟아 버리기 위해서였다. 대지주들은 경제적 변화도 무시했고, 변화를 위한 계획도 무시했다. 폭동의 원인이 계속 존재하는데도 대지주들은 폭동을 분쇄할 방법만 생각했다.

사람들에게서 일을 빼앗아 버린 트랙터, 짐을 운반하는 순환선, 물건을 생산하는 기계, 이 모든 것들이 점점 증가했다. 그래서 고속도로 위에서 허둥거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그들은 대지주들에게서 빵 부스러기나마 얻어먹을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매며 길가에 널려 있는 땅을 갈망했다. 대지주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연합회를 만들어 사람들을 위협하고 죽이고 독가스를 뿌리는 방법들을 논의했다. 그들은 항상 주동자를 두려워했다.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도자가 하나라도 나오는 날에는 끝장이었다.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굶주림 속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의 의식이 깨어난다면 땅은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그때는 이 세상의 모든 독가스와 총을 동원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 엄청난 재산 때문에 인간보다 더 위대한 존재이자 더 못한 존재가 되어 버린 대지주들은 자신들의 파멸을 향해 달음질쳤다. 궁극적으로 자신들 을 파괴해 버릴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한 것이다. 모든 수단, 모든 폭력, 후버빌에 대한 모든 기습 단속, 초라한 천막촌을 으쓱거리며 돌아다니는 모든 보안관보들은 운명의 날을 조금씩 미루면서 결국 그날이 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더욱 확고한 사실로 만들었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남자들, 날카로운 표정의 남자들. 그들의 몸은 굶주림 때문에 여위었으며, 허기에 맞서 싸우느라 단단해져 있었다. 눈은 음침했고, 턱은 단단했다. 그들 주위에는 풍요로운 땅이 있었다.

저 아래 네 번째 천막에 사는 아이 얘기 들었어?

아니. 내가 방금 돌아왔거든.

그 아이가 자다가 울면서 데굴데굴 구르더래. 식구들은 기생충이 생긴 줄 알고 약을 먹였는데 애가 죽어 버렸다는구먼. 혀가 까맣게 되는 병이었대.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라더군.

애가 불쌍하네.

그렇지. 그런데 식구들이 그 애를 묻어 줄 수가 없어서 애가 군립(郡立) 공동묘지에 묻혔대.

아이고, 젠장.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동전들을 조금 꺼냈다. 아이가 죽은 천막 앞에는 작은 동전 더미가 생겼다. 가족들이 그것을 발견했다.

여기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야. 우리는 착한 사람들이야. 하느님, 착한 사람들이 전부 가난해지지 않는 세상이 오게 해 주세요. 아이들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오게 해 주세요.

지주 연합회는 언젠가 이런 기도가 멈추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가 그들에게는 끝장이었다.


20장

식구들은 짐 위에 올라가 있었다. 아이들과 코니와 샤론의 로즈와 목사는 비좁은 곳에서 뻣뻣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은 베이커즈필드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큰아버지가 검시관 사무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그 앞에서 더위 속에 계속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바구니가 하나 들려 나오고 이불로 싼 길쭉한 꾸러미가 트럭에서 내려졌다. 사람들이 시신을 검사하는 동안, 사인을 밝혀내서 사망 증명서에 서명하는 동안 식구들은 햇빛 속에 앉아 있었다.

앨과 톰은 한가로이 거리를 걸으며 상점의 진열장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거리의 낯선 사람들을 지켜보기도 했다.

마침내 아버지와 어머니와 큰아버지가 나왔다. 모두들 침울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큰아버지는 짐 위로 기어 올라갔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앞좌석에 앉았다. 톰과 앨도 어슬렁어슬렁 돌아왔다. 톰이 운전석에 앉았다. 그는 말없이 앉아서 뭔가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검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똑바로 앞만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손가락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어머니의 눈은 멍하니 초점이 없었고, 피로 때문에 생기도 없었다.

아버지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달리 별도리가 없었어.”

아버지가 말했다.

“알아요. 하지만 어머님은 근사한 장례식을 원하셨을 텐데. 항상 그런 장례식을 바라셨거든요.”

어머니가 말했다.

톰이 곁눈질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군립 묘지예요?”

“그래.”

아버지가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현실로 돌아오려는 것처럼.

“돈이 모자라서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무슨 짓을 해도 어쩔 수 없었으니까. 돈이 없는 걸 어떡해. 방부 처리를 하고, 관을 사고, 목사도 부르고, 묘지도 사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금 가진 돈의 열 배가 필요할 거야. 우린 최선을 다했어.”

“알아요. 어머님이 근사한 장례식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시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서 그래요. 잊어버려야 하는데.”

어머니는 깊이 한숨을 내쉬며 입가를 문질렀다.

“저기 있던 사람은 꽤 친절하던데요. 엄청 으스대기는 했지만, 꽤 친절했어요.”

“그래. 우리한테 아주 솔직하게 얘기를 해 줬지.”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가 손등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고 턱을 굳게 다물었다.

“이제 가야죠. 어딘가 머물 곳을 찾아야지. 일자리를 찾아서 정착을 해야지. 어린 것들 배를 곯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어머님이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테니까. 어머님은 장례식에서 항상 좋은 음식을 드셨어요.”

“어디로 가죠?”

톰이 물었다. 아버지가 모자를 들어 올리고 머리카락 사이를 긁었다.

“천막촌으로.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얼마 남지도 않은 돈을 쓸 수는 없잖니. 도시 밖으로 나가자.”

톰은 차에 시동을 걸고 거리를 지나 도시 밖으로 차를 몰았다. 다리 옆에 천막과 판잣집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톰이 말했다.

“여기에 차를 세워도 괜찮겠는데요. 형편이 어떤지, 일자리가 어디 있는지 한번 물어보죠.”

그는 가파른 흙길을 내려가 천막촌 가장자리에 차를 세웠다.

천막촌에는 질서가 전혀 없었다. 작은 회색 천막들, 판잣집들, 자동차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제일 앞에 있는 집은 도무지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남쪽 벽은 녹슨 함석판 세 장을 붙여 만든 것이었고, 동쪽 벽은 널빤지 두 개 사이에 곰팡이가 핀 카펫을 고정시켜 만든 것이었으며, 북쪽 벽은 지붕을 덮을 때 쓰는 종이 조각과 너덜거리는 캔버스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서쪽 벽은 마대 자루 여섯 장을 이어 붙인 것이었다. 이 사각형 벽 위에 다듬지 않은 버드나무 가지들이 놓여 있고 그 위에 풀이 쌓여 있었다. 풀을 엮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작은 둔덕처럼 쌓아 올린 모양이었다. 마대 자루를 이어 붙인 서쪽 벽에 나 있는 입구에는 이런저런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5갤런들이 휘발유 통이 풍로 역할을 하는지, 옆으로 누워 있는 휘발유 통의 한쪽 끝에서 녹슨 연통(煙筒)이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벽에는 빨래를 삶는 그릇이 기대어져 있었고, 이런저런 상자들이 주위에 놓여 있었다. 의자와 식탁 대용으로 쓰이는 상자들이었다. 이 판잣집 옆에는 모델 T 포드 세단과 2륜 트레일러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리고 천막촌 전체에 자포자기에 가까운 절망이 퍼져 있었다.

오두막 옆에는 작은 천막이 하나 있었다. 낡아서 회색으로 변했지만 깔끔하게 제대로 세운 천막이었다. 천막 앞의 상자들도 천막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입구의 휘장에는 풍로 연통이 튀어나와 있었고, 천막 앞의 흙바닥에는 누군가가 비질을 하고 물을 뿌려 놓은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빨래를 담가 둔 양동이는 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이 천막은 깔끔하고 튼튼했다. 모델 A 무개 자동차와 집에서 만든 작은 침대 트레일러가 천막 옆에 서 있었다.

이 천막 옆에는 커다란 천막이 있었다. 누더기가 다 되어서 너덜너덜해진 것을 철사로 기워 놓은 천막이었다. 입구의 휘장은 열려 있고, 안에는 널찍한 매트리스 네 개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벽에 매달아놓은 빨랫줄에는 분홍색 면 원피스와 작업복이 몇 벌씩 걸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천막과 판잣집이 사십 채나 되었다. 그리고 그 천막이나 판잣집 옆에는 각각 자동차가 서 있었다. 저 아래쪽에 아이들 몇 명이 서서 새로 도착한 트럭을 지켜보다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작업복 차림에 맨발인 사내아이들이었다. 흙먼지 때문에 아이들의 머리가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톰은 트럭을 세우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데요. 어디 다른 데로 갈까요?”

“여기가 어딘지 알기 전에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지. 일자리에 대해서도 물어봐야 하고.”

톰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식구들이 짐 위에서 내려와 신기한 듯 천막촌을 바라보았다. 루티와 윈필드는 여행을 하면서 생긴 버릇대로 양동이를 가지고 내려와 버드나무 숲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물이 있을 테니까. 줄지어 서 있던 아이들이 루티와 윈필드를 위해 길을 내주었다가 다시 자리를 메웠다.

첫 번째 판잣집의 입구 휘장이 열리더니 어떤 여자가 밖을 내다보았다. 반백의 머리를 땋아서 묶은 그녀는 더러운 꽃무늬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몹시 여위고 무표정했으며, 텅 빈 눈 아래로 처진 살은 짙은 회색이었다. 입가도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냥 아무 데나 차를 세우고 천막을 쳐도 되나요?”

여자가 판잣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입구 휘장이 열리면서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셔츠 바람으로 나왔다. 여자는 그의 뒤에서 밖을 내다보았지만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말했다.

“안녕하슈?”

그리고 그는 검은 눈동자를 부지런히 굴리며 식구들 하나하나를 살펴보고는 트럭과 살림살이까지 살펴보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아무 데나 천막을 쳐도 되는지 방금 부인에게 물어봤소.”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강렬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마치 아버지가 깊이 생각을 해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현명한 말을 한 것 같았다.

“여기서 아무 데나 천막을 친다고?”

그가 물었다.

“그렇소. 혹시 우리가 천막을 치기 전에 만나 봐야 하는 주인이 있는 거요?”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한쪽 눈을 거의 감은 것처럼 가늘게 뜨고 아버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여기다 천막을 치고 싶수?”

아버지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반백의 여자가 판잣집 안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내가 한 말을 어디로 들은 거요?”

아버지가 말했다.

“뭐, 여기다 천막을 치고 싶다면 그냥 그렇게 하슈. 난 말리지 않을 테니.”

톰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알아들은 모양인데요.”

아버지는 화를 눌렀다.

“난 혹시 주인이 있느냐고 물었을 뿐이오. 우리가 돈을 내야 하는지 몰라서.”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턱을 불쑥 내밀었다. 그가 다그치듯 물었다.

“주인이 있냐고?”

아버지는 고개를 돌렸다.

“관둡시다.”

여자의 머리가 판잣집 안으로 다시 쏙 들어갔다.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위협적인 태도로 다가섰다. 그가 다그치듯 물었다.

“주인이 있냐고? 누가 우리를 여기서 쫓아낸단 말이야? 당신 알아?”

톰이 아버지 앞을 막아섰다.

“가서 잠이나 푹 자는 게 좋겠소.”

그가 말했다.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입을 떡 벌리더니 더러운 손가락으로 아래쪽 잇몸을 만졌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톰을 바라보다가 몸을 홱 돌려 판잣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톰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에요?”

아버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버지는 야영지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천막 앞에 낡은 뷰익 한 대가 서 있는데, 지붕이 날아가고 없었다. 어떤 젊은 남자가 밸브를 이리저리 비틀면서 돌리다가 고개를 들어 조드 일가의 트럭을 바라보았다. 식구들은 그 남자가 혼자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사라지자 젊은 남자가 일을 그만두고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그가 말했다. 그의 푸른 눈이 재미있다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방금 시장님과 만나는 걸 봤어요.”

“도대체 그 사람 왜 그래요?”

톰이 다그치듯 물었다. 남자가 쿡쿡 웃었다.

“당신들이나 나처럼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래요. 아냐, 나보다 조금 더 미쳤나? 나도 몰라요.”

아버지가 말했다.

“난 우리가 여기다 천막을 쳐도 되냐고 물어봤을 뿐이네.”

남자가 기름 묻은 손을 바지에 닦았다.

“되고말고요. 안 될 거 뭐 있어요? 이제 막 도착하신 거예요?”

톰이 말했다.

“그래요. 오늘 아침에 도착했어요.”

“후버빌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후버빌이 어딘데요?”

“여기가 거기죠.”

“아! 우린 방금 도착했다니까요.”

윈필드와 루티가 물을 채운 양동이를 양쪽에서 들고 돌아왔다.

어머니가 말했다.

“천막을 세우자. 아주 피곤해 죽겠어. 이제 다들 좀 쉴 수 있겠다.”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방수포와 매트리스를 내리려고 트럭 위로 올라갔다.

톰은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로 젊은 남자에게 다가가 그가 손보고 있던 자동차로 함께 걸어갔다. 밸브를 가는 가죽 띠가 받침대 위에 놓여 있고, 밸브를 갈 때 쓰는 약품이 담긴 작은 노란색 깡통이 진공 탱크 위에 끼워져 있었다. 톰이 물었다.

“저 수염 난 늙은이는 왜 저러는 거예요?”

남자는 가죽 띠를 집어 들고 밸브를 이리저리 비틀어 가며 갈기 시작했다.

“시장님 말이에요? 그걸 누가 알겠어요. 어쩌면 경찰 공포증인지도 모르죠.”

“경찰 공포증?”

“경찰들한테 하도 시달려서 시장님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라고요.”

“경찰이 왜 저런 사람을 괴롭혀요?”

남자는 일을 멈추고 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걸 누가 알겠어요? 방금 도착했다고 했죠? 어쩌면 당신이 스스로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죠. 사람마다 얘기가 달라요. 하지만 한곳에서 천막을 치고 어느 정도 지내다 보면 보안관보들이 얼마나 사람을 못살게 구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밸브를 하나 들어 올려 밸브가 들어갈 자리에 약품을 발랐다.

“도대체 왜 사람을 못살게 구냐고요?”

“모른다고 했잖아요. 어떤 사람들 말로는 우리한테 투표권을 주기 싫어서 그런대요. 한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해서 투표를 못 하게 하려고. 하지만 우리가 구호 기관의 도움을 못 받게 하려고 그런다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가 한곳에 자리를 잡으면 조직을 갖출까 봐 그런다는 사람도 있고. 난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거라고는 우리가 항상 시달리고 있다는 것뿐. 두고 봐요. 당신도 알게 될 테니.”

“우린 부랑자가 아니에요.”

톰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우린 일자리를 찾고 있어요. 우린 무슨 일이든 할 겁니다.”

남자가 가죽 띠를 밸브 구멍에 맞춰 넣다가 손을 멈췄다. 그리고 놀랍기 그지없다는 표정으로 톰을 바라보았다.

“일자리를 찾는다고요?” 그가 말했다. “일자리를 찾는단 말이죠? 그럼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은 뭘 찾고 있는 것 같아요? 다이아몬드? 내가 녹초가 될 때까지 찾아다니는 게 뭔 것 같아요?”

그는 가죽 띠를 앞뒤로 비틀었다.

톰은 더러운 천막들과 낡아 빠진 살림살이, 낡은 자동차, 햇빛을 받고 있는 우툴두툴한 매트리스, 사람들이 요리를 하면서 불을 피울 때 썼던 구덩이에 놓인 불길에 검게 그을린 깡통 등을 둘러보았다. 그가 조용히 물었다.

“일자리가 없나요?”

“몰라요. 있겠죠. 지금 이 근처에는 수확할 농작물도 없어요. 포도를 따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하고, 목화도 그렇고. 우린 떠날 거예요. 여기 밸브를 다 고치는 대로. 나와아내와 애들이 다 같이. 저 위 북쪽에 일자리가 있다고 하던데. 우린 북쪽으로 설리너스 근처까지 갈 겁니다.”

큰아버지와 아버지와 목사가 천막 기둥에 방수포를 올리는 모습과 어머니가 그 안에서 무릎을 꿇고 바닥에 놓인 매트리스의 먼지를 털어 내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새로 도착한 가족이 자리를 잡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맨발에 얼굴이 더러운 아이들이었다. 톰이 말했다.

“고향에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이 전단을 가져왔어요. 오렌지색 전단. 여기서 농사를 지을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 우리 같은 사람들이 30만 명이나 된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전부 그 전단을 봤을걸요.”

“그렇겠죠. 하지만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면, 뭣하러 그런 전단을 일부러 찍어서 돌리겠어요?”

“머리를 좀 써요.”

“그거야 그렇지만 난 사실을 알고 싶어요.”

“이봐요, 일자리가 있고,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이 달라는 대로 돈을 줘야겠죠. 하지만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연장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빛이 강렬해지고 목소리도 날카로워졌다.

“그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100명이라고 생각해 봐요. 그 사람들한테 전부 딸린 애들이 있고, 그 애들이 굶주리고 있다면? 10센트만 있으면 아이들에게 옥수수 죽을 사 먹일 수 있다면? 5센트만 있어도 아이들에게 뭐든 사 줄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100명이나 돼요. 그럴 때 그냥 5센트만 주겠다고 한다면? 다들 그 5센트 때문에 아귀다툼을 벌이겠죠. 내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곳에서 품삯이 얼마였는지 알아요? 한 시간에 15센트였어요. 열 시간 일하면 1달러 50센트. 하지만 거기서 숙식까지 해결할 수는 없으니 자동차 기름을 써 가며 거기까지 가야 했죠.”

그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의 눈이 증오로 번득였다.

“여기 사람들이 전단을 돌린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인부들한테 시간당 15센트를 주면서 절약한 품삯으로 전단지쯤은 얼마든지 찍을 수 있으니까.”

톰이 말했다.

“정말 구린 놈들이네요.”

남자가 거친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 살면서 혹시 향기로운 냄새가 나거든 나한테도 알려 줘요.”

“하지만 일자리가 분명히 있잖아요.”

톰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젠장, 농사짓는 데가 이렇게 많은데. 과수원도 있고, 포도도 있고, 채소도 있고. 오면서 봤어요. 거기서 틀림없이 사람들이 일하고 있을 거예요. 나도 다 봤다고요.”

자동차 옆의 천막 안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 젊은 남자가 천막 안으로 들어가고, 캔버스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왔다. 톰은 가죽 띠를 집어 들어 밸브 구멍에 맞춰 넣은 다음 손을 앞뒤로 움직이면서 밸브를 갈았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쳤다. 젊은 남자가 밖으로 나와 톰을 지켜보았다.

“어떻게 하는지 아는군요. 다행이네요. 앞으로 그 기술이 필요해질 테니까.”

“아까 내가 한 말 어떻게 생각해요?”

톰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면서 수많은 밭을 봤어요.”

젊은 남자가 쭈그리고 앉았다.

“잘 들어요.”

그가 조용히 말했다.

“난 커다란 복숭아 과수원에서 일했어요. 일 년 내내 인부가 아홉 명만 있으면 되는 곳이죠.”

그는 이야기를 강조하려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복숭아가 익었을 때는 이 주일 동안 3000명이 필요해요. 인부들을 구하지 못하면 복숭아가 썩어 버리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사방에 전단지를 뿌려요. 그러면 필요한 사람은 3000명인데, 실제로는 6000명이 몰려오죠. 과수원 쪽에서는 자기들이 원하는 품삯으로 사람들을 골라 쓸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이 주는 품삯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어요. 1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일자리를 얻으려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래서 복숭아를 따고 또 따죠. 일이 끝날 때까지. 그 일대가 온통 복숭아밭 천지예요. 그 밭의 복숭아들이 전부 한꺼번에 익죠. 복숭아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따고 나면 그 지역에서는 할 일이 하나도 없어요. 과수원 주인들은 인부들을 더 이상 원하지 않죠. 사람이 3000명이나 되는데. 일이 다 끝나 버렸으니까. 거기서 일했던 사람들이 도둑질을 할 수도 있고, 술을 퍼마실 수도 있고, 소란을 피울 수도 있거든. 게다가 꼬락서니도 별로 좋지 않고 낡은 천막에서 사는 사람들이니. 아름다운 고장이 그 인부들 때문에 고약해진다 이거예요. 그래서 인부들이 근처에 있는 걸 싫어해요. 어디 다른 데로 가라고 내쫓아 버리는 거지. 여기 사정이 그래요.”

톰은 식구들의 천막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피곤에 지친 몸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며 쓰레기를 모아다가 작게 불을 지피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둥글게 둘러서 있던 아이들이 좀 더 가까이 다가들어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어머니의 손놀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켜보았다. 나이가 아주 많아서 등이 굽어 버린 노인이 어떤 천막에서 나와 코를 킁킁거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뒷짐을 진 자세로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루티와 윈필드는 어머니 옆에 서서 호전적인 표정으로 낯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톰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이 바로 복숭아를 따는 철이잖아요, 안 그래요? 복숭아가 언제 익죠?”

“지금이 그때예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복숭아가 썩게 내버려두자고 하면요? 그러면 품삯이 금방 올라갈 거 아니에요!”

젊은 남자가 시선을 들어 조롱하는 듯한 표정으로 톰을 바라보았다.

“뭔가 생각을 해내긴 하셨군. 머리를 좀 쓰셨어.”

톰이 말했다.

“난 지금 피곤해요. 밤새 운전을 해서. 당신하고 말싸움 하고 싶지 않아. 지금 너무 피곤해서 누가 조금만 뭐라고 해도 싸움을 벌일 것 같아. 나한테 잘난 척하지 말아요. 부탁이에요.”

남자가 히죽 웃었다.

“나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당신은 여기 없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 생각을 했죠. 복숭아 과수원 주인들도 그 생각을 해냈고. 이봐요, 사람들이 한데 모인다면 반드시 지도자가 있게 마련이에요.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 그런데 그 사람이 입을 열자마자 여기 사람들이 그 사람을 붙들어다가 감옥에 넣어 버려요. 또 다른 지도자가 나타나면 그 사람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톰이 말했다.

“감옥에 들어가면 어쨌든 밥은 먹을 수 있잖아요.”

“그 사람 애들은 아니지. 당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 애들이 굶어 죽는다면 어떻겠어요?”

“그렇군요.”

톰이 천천히 말했다.

“그래요.”

“문제가 또 있어요. 블랙리스트라고 들어 봤어요?”

“그게 뭔데요?”

“다 함께 모이자는 얘기를 한번 해 봐요. 그러면 알게 될 테니. 여기 사람들이 당신 사진을 찍어서 사방에 퍼뜨리는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어디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요. 만약 당신한테 애들이 있다면…….”

톰은 모자를 벗어 손으로 비틀었다.

“그러니까 주는 대로 그냥 받든지 아니면 굶어 죽는 길밖에 없다? 소리를 지르면 굶어 죽는다?”

젊은 남자가 손을 휘저어 천막촌 일대를 가리켰다. 초라한 천막들과 녹슨 자동차들도 그가 가리킨 범위 안에 포함되었다.

톰은 다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앉아서 감자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둥글게 늘어선 아이들이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톰이 말했다.

“난 그렇게 못 해요. 젠장, 나랑 우리 식구들은 겁쟁이가 아냐. 누구든 냅다 걷어차 줄 거야.”

“경찰들처럼?”

“경찰이든 뭐든 상관없어요.”

“미쳤군. 그랬다간 그 사람들한테 당장 찍힐 거예요. 당신은 유명하지도 않고 부자도 아니죠. 코와 입에 피가 말라붙은 모습으로 도랑에 누워 있게 될걸요. 그리고 신문에 짧게 한 줄 실리겠죠. 신문에서 뭐라고 할지 알아요? ‘부랑자 시체 발견.’ 그게 다예요. 앞으로 그런 기사를 아주 많이 보게 될 거예요. ‘부랑자 시체 발견.’”

톰이 말했다.

“그럼 그 부랑자 바로 옆에서 다른 사람 시체도 발견될 거예요.”

“미쳤군. 그래 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는 기름때가 묻어 줄무늬가 생긴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남자의 눈에 베일이 한 꺼풀 씌워진 듯했다.

“아무것도. 어디서 왔죠?”

“우리 말이에요? 오클라호마 샐리소 근처예요.”

“방금 도착했다고요?”

“오늘.”

“여기 오래 있을 건가요?”

“모르겠어요. 어디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곳에 머무를 거니까. 왜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남자의 눈에 다시 베일이 씌워졌다.

톰이 말했다. “가서 좀 자야겠어요. 내일 나가서 일자리를 찾아볼 거예요.”

“시도는 해 봐야겠죠.”

톰은 몸을 돌려 식구들이 세워놓은 천막으로 향했다.

남자는 약품이 든 깡통을 들고 그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이봐요!”

그가 소리쳤다.

톰이 몸을 돌렸다.

“왜 그래요?”

“말해 주고 싶은 게 있어요.”

그가 약품이 묻은 손가락으로 손짓을 했다.

“말해 주고 싶은 게 있어요. 공연히 문제 일으키지 말아요. 아까 경찰 공포증에 걸린 사람 기억나요?”

“저 위의 천막에 있던 사람?”

“그래요. 멍청해 보이고, 머리도 정상이 아닌 것 같죠?”

“그 사람이 어쨌다는 거예요?”

“경찰들이 왔을 때, 경찰들은 항상 오지만, 어쨌든 그럴 때 그 사람처럼 굴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처럼.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게 경찰들이 우리한테서 바라는 모습이니까. 절대 경찰을 때리면 안 돼요. 그건 자살 행위야. 경찰 공포증에 걸린 사람처럼 굴어요.”

“그 망할 놈의 경찰들이 날 제멋대로 다루게 내버려 두고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요?”

“그래요. 잘 들어요. 오늘 밤에 내가 당신한테 갈게요. 어쩌면 내가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경찰 끄나풀들이 항상 돌아다니니까. 이건 나한테도 모험이에요. 나한테는 애도 있는데. 그래도 내가 당신한테 갈게요. 만약 경찰을 보거든 정말로 멍청한 오키처럼 구는 거예요. 알았어요?”

“우리가 뭐라도 하는 거라면 그래도 괜찮겠죠.”

톰이 말했다.

“걱정 말아요. 우리 나름대로 뭔가 하고 있는 거니까. 다만 날 잡아가라고 목을 내밀지 않을 뿐이지. 애들은 빨리 굶어 죽어요. 이삼 일밖에 안 걸리니까.”

그는 다시 일을 시작해 밸브가 들어갈 자리에 약품을 발랐다. 가죽 띠 위에서 그의 손이 빠르게 앞뒤로 움직이고, 그의 얼굴은 둔하고 멍청해 보였다.

톰은 천천히 천막으로 걸어갔다.

“경찰 공포증이라.”

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천막으로 다가왔다. 마른 버드나무 가지를 한 아름 안고 온 두 사람은 불 옆에 나뭇가지를 던져놓고 바닥에 앉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장작을 꽤 많이 주워 왔어. 나무를 구하려고 멀리까지 갔다 왔지.”

아버지는 둥글게 둘러서서 식구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세상에! 너희들 어디서 온 거냐?”

아이들은 다들 어색한 표정으로 자기 발을 내려다보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음식 냄새를 맡은 모양이에요. 윈필드, 좀 비켜라.”

어머니는 앞에서 거치적거리는 윈필드를 밀어냈다.

“스튜를 좀 만들어야겠다. 집 떠난 후로 제대로 된 요리를 전혀 먹지 못했어. 여보, 저기 가게로 가서 목살 좀 사다 줘요. 맛있는 스튜를 만들게.”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앨은 자동차의 엔진 뚜껑을 열고 기름투성이 엔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톰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가 말했다.

“말똥가리처럼 기분 좋아 보이네.”

“그래, 봄비 맞은 두꺼비처럼 기분 좋다.”

톰이 말했다.

“엔진 좀 봐.”

앨이 손가락으로 엔진을 가리켰다.

“아주 좋아, 그렇지?”

톰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보기에도 괜찮은 것 같다.”

“괜찮아? 세상에, 이 정도면 굉장한 거야. 기름도 안 새고, 다른 문제도 없다고.”

그는 점화전을 풀어서 뽑은 다음 구멍 속에 검지를 집어넣었다.

“찌꺼기가 조금 끼었지만 바싹 말랐어.”

톰이 말했다.

“그래, 차를 잘 골랐어. 나한테서 이 말을 듣고 싶었던 거지?”

“그야 뭐, 오는 동안 내내 걱정을 했거든. 자동차가 고장 나면 다 내 탓이다 싶어서.”

“아냐, 잘 골랐어. 차 손질 잘 해 놔. 내일 일자리를 찾으러 나갈 거니까.”

“문제없이 달릴 거야. 걱정 같은 건 전혀 하지 마시라고요.”

앨은 주머니칼을 꺼내 점화전 끝을 긁었다.

톰은 천막 옆을 돌아가다가 바닥에 앉아 있는 케이시를 발견했다. 그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한쪽 맨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톰은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괜찮을 것 같아요?”

“뭐?”

“그 발가락 말이에요.”

“아! 그냥 앉아서 생각 좀 하고 있었어.”

“항상 그렇게 태평하고 기분이 좋은가 봐요.”

케이시는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억지로 뭔가를 생각하려고 하는 건 힘든 일이야.”

“며칠째 아무 말씀도 안 하셨잖아요. 항상 생각만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 항상 생각을 하지.”

톰은 천으로 만든 모자를 벗었다. 모자는 이제 더럽고 너절하게 변해 있었다. 차양이 새의 부리처럼 뾰족했다. 그는 땀을 흡수하는 띠를 뒤집어서 길게 접은 신문을 꺼냈다. 그가 말했다.

“땀을 하도 흘려서 오그라져 버렸네.”

그는 꼼지락거리는 케이시의 발가락을 바라보았다.

“잠깐 생각을 그만두고 얘기 좀 들어 줄 수 있어요?”

케이시는 길쭉한 목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항상 얘기를 듣고 있지. 그래서 생각을 하는 거야.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다 보면, 금방 사람들의 기분을 알 수 있게 되거든. 항상 그래. 사람들 얘기를 듣고, 그 사람들의 기분을 느껴. 사람들은 다락방에 갇힌 새처럼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지. 밖으로 나가려다가 먼지투성이 창문에 부딪혀서 날개가 부서져 버릴 걸세.”

톰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20피트 거리에 있는 회색 천막을 바라보았다. 천막을 지탱하고 있는 밧줄에 빨아 널어 놓은 청바지, 셔츠, 원피스가 걸려 있었다. 톰이 조용히 말했다.

“제가 말하려던 게 바로 그거예요. 이미 알고 계셨군요.”

케이시가 말했다.

“알고 있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무 장비도 없이 우글거리고 있지.”

그는 고개를 숙이며 손을 뻗어서 천천히 이마를 쓸어 올렸다.

“오는 동안 계속 알고 있었어. 우리가 멈출 때마다 그게 보였어. 굶주린 사람들. 고기를 얻더라도 충분히 먹질 못하지.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파지면 나한테 기도를 해달라고 했어. 가끔 내가 기도를 해 준 적도 있고.”

그는 끌어 올린 무릎을 팔로 감싸 안고 깍지를 낀 다음 다리를 더욱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난 그러면 될 줄 알았네. 기도를 제물로 삼은 거지. 끈끈이에 파리가 달라붙듯이 모든 근심이 기도에 달라붙고, 기도가 하늘로 날아가면서 근심도 같이 가져간다고 말이야. 하지만 이제는 그게 소용없어.”

“기도 덕분에 고기가 생긴 적은 없어요. 고기를 구하려면 돼지 새끼가 필요하죠.”

“그래. 그리고 전능하신 하느님이 품삯을 올려 주신 적도 없지. 여기 이 사람들은 점잖게 살면서 애들을 점잖게 키우고 싶어 해. 늙어서는 문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젊었을 때는 춤추고 노래하고 같이 자고 싶어 하고 말이야.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일을 하고 싶어 해. 그게 다야. 이 사람들은 그저 피곤해질 때까지 그 빌어먹을 근육을 움직이고 싶어 한다고. 젠장!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모르겠는데요. 괜찮은 얘기 같은데. 언제쯤이나 돼야 일거리를 얻어서 생각하는 걸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린 일자리를 구해야 돼요. 돈이 거의 다 떨어졌거든요. 페인트칠한 판자를 사서 할머니 무덤에 세우느라고 아버지가 5달러를 썼어요. 이제 남은 돈이 얼마 안 돼요.”

여윈 갈색 잡종 개가 코를 킁킁거리며 천막 옆을 돌아 나왔다. 녀석은 겁을 집어먹고 도망칠 준비를 한 채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오다가 두 남자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녀석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펄쩍 옆으로 뛰어 비쩍 마른 꼬리를 말고 달아나 버렸다. 케이시는 녀석이 어떤 천막 옆을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야. 나한테나 다른 사람한테나. 그냥 혼자서 떠날 생각을 했네. 내가 자네 식구들 음식을 축내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러면서 자네 식구들한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잖아. 혹시 안정적인 일을 구한다면 자네 식구들이 나한테 해 준 걸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톰은 입을 벌리고 아래턱을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그리고 마른 겨자 줄기로 아랫니를 두드렸다. 그는 천막촌과 회색 천막들, 잡초와 양철과 종이로 지은 판잣집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담배가 좀 있으면 좋을 텐데. 담배를 피워 본 게 언젠지. 맥알레스터에 있을 때는 담배를 구할 수 있었는데. 정말이지 그리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그는 다시 이빨을 두드리다가 갑자기 목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감옥에 들어가 본 적 있어요?”

“아니. 한 번도 없어.”

케이시가 말했다.

“아직은 떠나지 마세요……. 아직은.”

톰이 말했다.

“일자리를 빨리 찾으러 나설수록 일을 빨리 구할 수 있을 텐데.”

톰은 반쯤 감은 눈으로 그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다시 모자를 썼다.

“케이시. 여긴 목사들이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에요. 여기선 비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요. 여기 사람들은 우리처럼 서부로 오는 사람들을 겁내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겁을 줘서 돌려보내려고 경찰을 보내죠.”

케이시가 말했다. “그래. 나도 알아. 그런데 왜 나더러 감옥에 가 본 적이 있냐고 물은 건가?”

톰이 천천히 말했다.

“감옥에 있으면, 뭐랄까, 육감이 날카로워져요. 거기 사람들은 죄수들이 많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게 내버려 두질 않으니까. 기껏해야 두 명쯤 모일 수 있을까. 그래서 느낌으로 많은 걸 알아내게 되죠. 뭔가 일이 터지려고 할 때, 예를 들어 누군가가 살짝 돌아서 걸레 자루로 간수한테 대드는 일이 터지려고 할 때, 우리는 그걸 미리 알 수 있어요. 탈옥이나 폭동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굳이 누구한테 미리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죠. 이미 육감으로 알고 있으니 까.”

“그래?”

“여기 계세요. 어쨌든 내일까지는 여기 계세요.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아요. 저기 저쪽에서 어떤 젊은 친구하고 얘기를 했는데, 녀석이 코요테처럼 교활하고 영리하더라고요. 하지만 너무 영리해요. 코요테는 자기 일만 신경 쓰면서 순진하고 즐겁게 지내는 척, 남한테 해를 끼칠 생각이 전혀 없는 척하지만, 웬걸, 바로 옆에 닭장이 있지요.”

케이시는 그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뭔가 물어보려다가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는 천천히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무릎을 펴서 다리를 뻗었다.

“그래. 당장 떠나지는 않겠네.”

“사람들이, 착하고 조용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때, 그때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여기 있을게.”

“내일 트럭을 타고 나가서 일자리를 찾아볼 거예요.”

“그렇지!”

케이시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발가락을 위아래로 꼼지락거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유심히 살펴보았다. 톰은 팔꿈치를 바닥에 짚고 뒤로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천막 안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샤론의 로즈의 목소리와 코니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수포가 어둠침침한 그림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양쪽 끝에 빛이 비치는 부분이 쐐기 모양으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샤론의 로즈는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고 코니는 그녀 옆에 앉아 있었다.

“엄마를 도와야 되는데.”

샤론의 로즈가 말했다.

“노력은 해 봤는데 몸을 움직일 때마다 구역질이 나.”

코니의 눈은 우울해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 안 왔을 거야. 고향에서 밤에 트랙터 공부를 해서 3달러짜리 일자리를 구했을 거야. 하루에 3달러면 진짜 잘살 수 있어. 매일 밤 영화도 보러 갈 수 있고.”

샤론의 로즈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밤에 라디오를 공부한다고 했잖아.”

그러나 그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아냐?”

그녀가 다그치듯 물었다.

“그래, 해야지. 조금 여유가 생기는 대로. 돈이 조금 생기면.”

그녀는 팔꿈치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공부를 포기할 거 아니지?”

“그럼, 당연히 아니지. 하지만 우리가 이런 데서 살게 될 줄은 몰랐어.”

로저샨의 눈빛이 딱딱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 그래, 나도 알아. 어떻게든 여유를 만들어야지. 돈을 조금 벌어야 해. 고향에 남아서 트랙터 공부를 하는 편이 더 나았을 텐데. 거기 사람들은 하루에 3달러를 벌잖아. 과외 수입도 챙길 수 있고.”

샤론의 로즈의 눈이 뭔가를 열심히 계산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눈에서 자신을 평가하는 듯한, 자신의 가치를 계산해 보는 듯한 표정을 보았다.

“하지만 공부할 거야. 여유가 생기는 대로.”

그녀가 사나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집을 구해야 돼. 천막에서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어.”

“물론이지. 여유가 생기는 대로.”

그는 천막 밖으로 나가 웅크린 자세로 모닥불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샤론의 로즈는 몸을 돌려 똑바로 누운 채 천막 천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엄지손가락을 재갈처럼 입 안에 집어넣고 소리 없이 울었다.

어머니는 불가에 무릎을 꿇고서 스튜 냄비 밑의 불길을 유지하기 위해 나뭇가지들을 꺾고 있었다. 불길은 솟아올랐다가 수그러지고, 다시 솟아올랐다가 수그러지기를 반복했다. 열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말없이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튜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아이들의 콧잔등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흙먼지 때문에 황갈색으로 변한 아이들의 머리에서 햇빛이 반짝였다. 아이들은 거기 그렇게 서 있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했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둥글게 늘어서서 음식을 먹고 싶어 애를 태우는 그 아이들 중 원 안쪽에 서 있는 어린 여자 아이에게 어머니가 조용히 뭐라고 얘기를 했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아이는 한쪽 발로 서서 아무것도 신지 않은 발등으로 종아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팔은 뒷짐을 진 채였다. 아이는 흔들리지 않는 작은 회색 눈으로 어머니를 지켜보았다. 아이가 제 의견을 말했다.

“괜찮다면 제가 나무를 꺾어 드릴 수 있어요, 아줌마.”

어머니가 요리를 하다가 시선을 들었다.

“음식을 같이 먹고 싶어서 그러지?”

“예, 아줌마.”

아이가 흔들림 없이 말했다.

어머니가 나뭇가지들을 냄비 밑으로 밀어 넣자 불에서 탁탁 소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