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윤택한 유년을 선물해준
나의 어머니와 어머니 세대에게,
그 시절의 소년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더 크게 날 수 있도록
우리가 줄 수 있는 선물과 배려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글을 시작하며

기억에 주문을 걸다

아직도 그 주문이 또렷하게 생각난다. 우랑바리나바랑 부다라까다라마까부랑야~. 변신하기 위해서 손오공이 외는 주문이다. 40년도 더 된 주문인데 내 기억 속에서는 아직 생생하다.

아마 저녁이 다 되어갈 무렵의 시간이었을 게다. 매일같이 뒷마루에 앉아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손오공〉이라는 연속극을 듣곤 했다. 뒤쪽에 자기 몸집만 한 크기의 배터리를 대고 고무줄로 단단히 묶여 있는 트랜지스터라디오였다. 이런 라디오 하나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집은 조금 특별할 수 있었다.

우랑바리나바랑 부다라까다라마까부랑야~. 어떻게 하면 큰 형님처럼 변신할 수 있느냐고 그 비법을 묻는 저팔계에게 손오공이 인심을 쓰며 알려준 주문이다. 방법은 10초 안에 이 주문을 세 번만 외면 무엇으로든 변신할 수 있다는 것. 저팔계는 번번이 중간에서 틀리곤 했다. 정말 답답하다. 나는 빠르게 그 세 번을 하나도 안 틀리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안 변하는 걸까? 박영남이라는 성우의 이름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정도로 〈손오공〉은 내 어린 시절에 푹 빠져서 들었던 연속극이다.

누나는 아침마다 눈을 비비며 지난 밤 문지방 밑에 붙여놓은 껌을 찾느라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곤 했다. 씹다 만 껌이 아니라 아예 단물이 없어진 지 오래된 껌이다. 특별한 주전부리는커녕 입이라도 심심하지 않게 씹어댈 껌조차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몰래 찬장에서 설탕 통을 꺼내 한 숟가락 입에 털어 넣어보기도 했다. 다섯 개 들이 껌 한 통 중 딱 한 개의 껌에만 따라 나오는 판박이 포장지를 아껴두었다가 공책에다 손톱으로 꾹꾹 누르면 묻어 나오는 그림이 친구들에게는 큰 자랑거리였다.

겨울은 양말 속의 발가락이 시릴 정도로 추웠고, 여름은 종일 냇가에서 놀고 또 놀아도 하루가 무척이나 길었다. 엄청나게 멀어 보이던 윗동네도 지금 와서 보면 겨우 500미터도 안 되는 짧은 거리일 뿐이다. 그때는 윗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왜 그리 먼 곳에 사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같은 장터, 한 동네에 살아도 학교 너머에 사는 아이들과는 쉽사리 어울리질 못했다. 모든 것이 물리적으로 아주 좁은 세계였건만, 그때에는 심정적으로 너무나도 넓은 세상이었다.

위인전이나 영웅담을 읽어보면, 그런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릴 적부터 무척 어른스러웠거나 한두 개쯤의 담대한 언행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어느 한 구석 그런 성숙한 모습이라곤 전혀 없다. 언제나 생각은 유치찬란했고, 어려운 일이라면 몸을 사리고 늘 피해 다녔다. 가끔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뻔한 거짓말도 했다. 심지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까지도.

나의 어린 이기심은 참외를 깎을 때도 잘 드러났다. 덜 익어 맛이 없을 줄 알면서도 나는 항상 무조건 가장 큰 놈을 골랐다. 어머니는 껍질을 다 깎고 나면 어린 내가 손에 잡기 좋으라고 밑동에 양쪽으로 칼집을 내서 손잡이를 만들어주셨는데, 내게 넘겨주기 전에 늘 엄마 한입만 달라고 하셨다. 나는 분명히 일부러 나를 시험하는 줄 알면서도 싫다고 외치며 참외를 들고 냅다 도망을 쳤다. 지금도 형과 누나가 분명히 기억하는 어린 시절 나의 욕심에 관한 에피소드다. 그러니 나는 애초에 훌륭한 사람이 될 수는 없었으리라.

어머니는 늘 집안을 티끌 하나 없이 쓸고 닦으셨다. 주위 사람들의 칭찬은 어머니로 하여금 더욱 더 깔끔을 떨게 만들었다. 나는 밖에서 놀다가도 집에 들어가기 전에 습관적으로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야만 했다. 방을 어지럽힐까봐 집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일도 거의 없었다. 어머니가 막 방바닥을 닦던 걸레를 뒤집어 이곳은 깨끗한 부분이니 괜찮다며 걸레 뒷부분으로 내 얼굴이며 손발을 닦아줄 때면 나는 그게 무척이나 싫었다. 더 더러워진 것 같아서 어머니가 안 볼 때 바지에 다시 쓱쓱 문지르곤 했다.

깔끔한 주변 정리만큼이나 어머니는 우리들의 공부에 관해서도 아주 냉철하셨다. 느슨하고 지저분한 시골생활은 어머니의 기대를 채워주기에는 늘 부족했다. 반면에 아버지는 친구들이 있고, 내킬 때마다 그물을 칠 수 있는 냇가가 있어 마음 편한 시골을 좋아하셨다.

할아버지가 골라준 사람과 마지못해 일찍 결혼을 하셨던 아버지는 6・25 전쟁 직후 피난 내려온 열일곱 살의 앳된 어머니를 만났다. 한 마을에서 같이 살기에는 불편한 상황을 피해 도시로 나가서 살던 두 분은 결국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다시 시골로 내려오셨다. 출세한 장남을 놔두고 막내가 왜 시골로 내려가느냐고 따지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던 어머니는 잠시 살다가 떠날 줄 알았던 그곳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도 살고 계시다.

아버지가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고 있을 때면 어머니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나왔다는 인텔리 친구를 찾아가 그분이 하는 바느질집에서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보냈다. 그 집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모르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어머니는 자식들 공부에 열중하기 시작하셨다.

인생관의 차이로 크게 다투고 나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달래려고 늘 화해의 여행을 가셨다. 어린 나는 그 어색한 두 분 사이에 끼어서 뜻하지 않은 호사를 누리곤 했다. 나는 그렇게 다투기도 하고 풀어나가기도 하는 두 분을 보면서 자랐다.

지금 그곳에 가보면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해 있다. 친척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버리고, 명절에 내려가도 아는 얼굴이 거의 없다. 집 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지 않은 채 서울로 되돌아올 때가 많다.

버스 정류장이 위로 조금 옮겨갔을 뿐인데, 마을의 중심지는 내가 살던 아랫동네에서 윗동네로 바뀌었다. 정육점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동네에서 무시를 당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TV에도 나오는 유명한 한우고기마을의 가게 주인이 되었다. 어쩌면 공부를 한답시고 객지로 떠난 우리들보다 이들이 고향의 지역경제를 더 잘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추억의 자리는 계속해서 줄어만 간다. 벌써 40년 전의 기억들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어머니가 어두운 방안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주문을 걸면 추억 속 친구들이 대문 밖에서 뛰어놀고 있다.



.엄마 등 좀 밟아라.

 

 

 

애들이 가버리면 어떡하지? 허겁지겁 집안으로 뛰어 들어오면,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어머니가 부르신다. 정규 왔니? 조심을 한다고 했건만 작은 광의 문고리를 달깍 하고 잡아당기는 소리에 어머니가 깨셨나보다. 들키면 안 되는데······. 할 수 없이 작은 소리로 예~ 하고 대답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어머니의 말 한 마디가 이어진다. 얼른 안방으로 들어와서 엄마 등 좀 밟아봐라.

어머니는 늘 허리가 아프셨다. 장을 보러 가거나 바느질집으로 놀러갈 때면 아픈 구석이 전혀 없다가도 집에만 들어오면 늘 아랫목에 누우셨다. 여름에도 장마철에는 군불을 지폈다. 어머니의 앓는 소리는 집안 분위기를 무겁게 했다. 나나 아버지 앞에서 그 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런 어머니가 꾀병을 부리는 건 아닌가 하고 의심해보기도 했다.

내가 안 좋은 표정을 드러내면 어머니는 우리 3남매를 낳느라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하셨다. 특히 마지막에 나를 낳느라고 허리가 더 아팠다고 하면, 어린 나는 내가 일부러 태어난 것도 아닌데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누군가는 어머니 연세쯤 되면 소위 아홉수를 넘기느라고 그런 것 같다고도 했다. 주워들은 이야기다. 다른 설명도 있다. 어머니가 등 밟히는 것을 좋아하는 까닭은 원래 외갓집의 내력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저녁이 되면 매번 외할아버지의 등을 어린 어머니가 올라가서 밟으셨다고 한다. 그러면 외할아버지는 시원하다고 하셨는데, 아마 코끼리만 한 덩치가 올라가도 끄떡 없으셨을 거라고도 했다.

구슬치기 중간에 다 잃고 구슬이 부족해서 집에 들어올 때면 나는 늘 마음이 초조했다. 나는 잃었고 애들은 딴 상태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돌아가면 애들이 가버릴 것 아닌가! 얘들아, 거기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어. 내가 집에 가서 구슬을 좀 더 가지고 금방 돌아올게.

나는 내 책상의 한쪽 서랍에는 딱지 묶음을, 다른 한쪽에는 구슬을 세서 넣어둔다. 언젠가 양쪽을 꽉 채우는 것이 내 목표다. 어쩌면 그게 올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하루라도 잃어서는 안 된다. 매일같이 스무 개씩 세서 서랍에 넣어두고 자투리로 남은 구슬은 광에 있는 깡통에 담아뒀다. 자투리 구슬들을 가지고 지금 나가면 오늘 잃은 것을 금방 만회할 수 있을 거야. 나는 구슬치기에서 하루도 쉽게 잃은 적이 없다. 올해 따서 채워야 할 구슬의 목표가 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순간에 어머니가 부르신다. 5분만 밟아주고 나가거라. 그래 분명히 딱 5분이랬지?

먼저 벽에 손을 짚고 어머니 등 위에 서서 목덜미부터 허리로 천천히 밟아 나간다. 서너 번을 빠른 속도로 오르락내리락한다. 그 다음 수순으로 허벅지로 내려가려는데 어머니는 시원치 않다며 목부터 다시 한 번 천천히 하라고 주문을 하신다. 내가 건성건성 하는 것을 알아채신 것이다. 괜히 잔꾀를 부리다가 손해를 보고 말았다. 마지못해 다시 한 번 밟아드린다. 허벅지, 종아리 하고 어머니가 힘없이 부르는 대로 밟아 내려간다. 이제 거의 다 됐다. 어머니가 팔~ 하고 신호를 주면 양쪽 팔을 내 한 발로 자근자근 밟아 나간다. 물론 한 발은 등에다 그대로 올려놓은 채로 말이다.

내가 충분히 밟아드린 것 같은데도 오늘따라 어머니는 그만하라는 소리를 안 하신다. 도대체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거야? 시간이 벌써 많이 흐른 것 같다. 언제 어머니가 발바닥을 밟아달라고 주문하실지 조바심이 난다. 발바닥은 이제 마무리를 해도 된다는 어머니의 신호다. 내 발꿈치로 양쪽 발바닥을 꾹꾹 눌러주면 된다. 그래도 끝까지 모를 일이다. 어떤 때는 앞으로 돌아누우면서 허벅지부터 다시 밟아달라고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애들이 기다리다가 다른 데로 가버렸으면 어떻게 하지? 오늘 잃은 것은 영영 못 찾게 될 텐데. 다행히 어머니는 이제 내려가라고 하셨다. 내가 허겁지겁 훑어 내려가는 것을 보고 어머니도 어린 내 마음이 급하다는 것을 느낌으로 아시는 모양이다. 어머니가 수고했다고 하는 것을 듣는 둥 마는 둥, 그 소리를 뒤로 한 채 방문을 열고 냅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애들이 없으면 어떡해?

그날 이후 나는 자투리 구슬을 우리 집 대문의 콘크리트 기둥 위쪽 빈 공간에다 옮겨놓았다. 이제부터 예비 구슬을 가지러 집에 안 들어가도 될 거다.


.목표는 구슬 천 개.

 

 

 

나는 구슬치기를 아주 잘한다. 나에게는 올해 목표가 있다. 남들은 모르게 연초부터 내 마음속에 정해놓은 숫자다. 올해 안에 천 개까지 구슬을 모을 거다. 어머니가 알면 놀기만 할 거냐고 그럴 테니까 남들에게는 숨겨야 한다. 무모한 욕심이다 싶겠지만 대충 계산을 해보니 가능할 것도 같다. 매일 하루에 스무 개 이상을 따오면 된다. 잃은 애들이야 좀 속상하겠지만.

아랫동네에서만 따서는 올해 안에 천 개를 모으기 어렵다. 윗동네까지 가야 할 것 같다. 물론 거기는 나보다 더 잘하는 애가 있어서 위험할 수도 있다.

구슬치기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한다. 하나는 구슬이 놓여 있는 곳에서 왼손의 새끼손가락을 땅에 대고 그 왼손의 엄지손가락에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을 건 다음에 오른손의 엄지와 중지로 구슬을 튕기는 것이다. 상대방의 구슬을 정확히 맞추거나 손으로 재서 한 뼘 거리 안에만 붙이면 상대방 구슬을 따먹게 된다. 상대방의 구슬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맞추기가 어렵다. 너무 가까이에 붙여놓으면 내 구슬을 잃을 수도 있으므로 아주 조심해서 구슬을 움직여야 한다. 예전에는 발로 굴려서 구슬치기를 했는데, 구슬이 금세 더러워진다고 해서 손으로만 한다.

다른 하나는 땅에다 삼각형을 그리고 그 안에 각자 같은 개수의 구슬을 모아 놓는다. 그리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순서를 정한 다음에 내 차례가 오면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구슬을 잡고 멀찌감치 금을 그어놓은 선에서 구슬을 던져 삼각형 안의 구슬을 맞춰서 밖으로 밀어낸 만큼 따먹는 것이다. 가위바위보 같은 운에 맡기기 싫어서 나는 이 방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구슬치기는 장소를 잘 골라야 한다. 콘크리트 바닥에서는 구슬이 잘 멈추지 않는다. 튕겨서 멀리까지 구르므로 구슬치기 장소로는 좋지가 않다. 역시 진흙이 약간 섞인 마른 땅이 제격이다. 매일같이 빗자루로 쓸어서 구슬이 구르는데 길이 잘 든 마당이 최고다. 그게 용길이네 앞마당이다. 비가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 눈 오는 날에는 용길이와 내가 열심히 눈을 치우면 구슬치기를 할 수 있다. 이런 정성도 없이 구슬이 저절로 생기는 법은 없다. 공짜로 굴러들어오는 구슬은 없다.

울퉁불퉁한 굴곡과 경사가 있는 장소라면 더욱 재미가 있다. 바로 50센티미터 이내에 있는데도 상대방 구슬에 붙이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려가서 오히려 구슬을 잃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냥 한 뼘 거리에 붙이면 그 구슬을 쉽게 따먹게 되지만, 상대방 구슬을 맞추고 나서 한 뼘 거리에 멈추게 되면 상대방은 구슬 한 개를 추가로 더 내놓아야 한다. 소위 보너스다. 규칙이 그렇다. 그래서 모험을 걸었다가 오히려 불발되고 상대방의 사정거리에 들어가 위기를 맞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소심해 보일지라도 욕심을 죽여야 하는 순간이다.

어떤 고약한 친구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서는 집에서 빗자루를 들고 나온다. 자기가 구슬을 굴려야 할 때는 빗자루를 이용하여 살짝 흙을 덮어서 구슬이 잘 미끄러지지 않게 했다가, 내가 공격을 할 때면 빗자루로 바닥을 마구 쓸어서 땅을 매끄럽게 하여 내 구슬이 미끄러져 내려가게 만들어버린다. 내가 너무 잘 하니까 치사하게 나오는 거다. 한때는 싸리빗자루를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공정해야 한다. 이런 친구는 상대를 안 해주니까 빗자루도 사라졌다.

나 혼자서는 목표관리를 잘하는 편이다. 내 육촌 친척 중에 나와 또래인 창규라고 있는데, 나보다 키는 약간 작아도 심정적으로는 늘 골목대장인 친구다. 그런데 구슬치기 실력은 별로다. 도대체가 목표도 잊어먹고 계산을 잘 안 한다. 대신 창규는 재미난 일을 잘 만든다. 나는 특별한 방법으로 창규와 좀 더 친해져보고 싶다. 그래서 구슬을 같이 모으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부패를 먹는다’고 말한다. 그 말이 어디서 유래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합작을 한다’는 뜻이다. 같이 열심히 모아서 목표에 이르면 똑같이 반씩 나누기로 약속을 한다. 생각해 보니 창규랑은 이미 두어 번 동업을 해봤다. 그런데 결과가 안 좋았다. 부패를 먹고 구슬치기를 한 경우 처음에 투자한 구슬보다 항상 적었다. 한 친구가 열심히 구슬을 벌더라도 다른 한 친구가 칼싸움이나 축구에 빠져 있으면 절대로 같이 부패를 먹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교훈인데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잊어버리는 게 나의 문제다.

집에 오면 양쪽 호주머니에서 구슬을 죄다 꺼낸다. 묻은 흙을 닦아내야 하기 때문에 세숫대야에 쏟아놓는다. 많이 닳아서 볼품없이 찌그러진 구슬이 있는가 하면 새로 샀는지 빛깔이 영롱한 구슬도 있다. 새 구슬들은 잘 보관을 하고 절대로 구슬치기에 가지고 나가서는 안 된다. 내가 제일 아끼는 것은 쇠구슬이다. 방앗간 기계에서 나온 베어링인데, 은색의 쇠구슬 하나는 유리구슬 스무 개와 맞먹는다. 오늘은 궁지에 몰린 승태에게서 유리구슬 열 개를 주고 바꾼 다음에 유리구슬마저 도로 따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더러운 구슬을 왜 얼굴 닦는 세숫대야에서 씻느냐고 성화시다. 그러니까 내 손톱에 늘 때가 끼는 것 아니냐고 다그치신다. 언제쯤 철이 들래 하는 표정이다. 그래도 나는 나날이 구슬이 불어나는 게 너무 좋다. 내 서랍이 목표한 구슬로 가득 차간다. 그때가 되면 나도 분명 구슬치기에서 손을 뗄 거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간에.


.예방주사는 진짜 싫어.

 

 

 

1년에 한 번씩 학교에서 전교생이 예방주사를 맞는다. 콜레라나 장티푸스 주사다. 어떤 때는 불주사라고 부르는 뇌염주사도 놓는다. 물자가 풍부하지 않았던 때라 한 주사기로 여러 사람이 주사를 맞기 때문에 알코올램프로 소독을 해서 쓴다고 불주사라고 불렀다. 주삿바늘을 알코올램프 불에 달군 다음 어깨에 주사를 놓는데, 간호사 누나가 알코올램프에 불을 붙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섭다. 여자애들 중에는 주사를 맞기도 전에 울음부터 터트리는 애들도 있다. 나 같은 남자애들도 속으로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숨기고 있을 뿐이다.

예방주사를 꼭 맞아야 되나? 물을 끓여먹거나 모기장을 치고 자도 그것만으로는 전염병을 막기 힘들다고 한다. 구슬치기로 늘 손톱에 때가 끼는 나는 더욱 더 주사를 맞아야 할지 모르겠다.

담임선생님이 며칠 전부터 접종 날짜를 알려주셨다. 사실 그때부터 두려움이 시작된다. 하루하루 접종 날짜가 다가올수록 어떻게 하면 그날 내게 무슨 일이 생겨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고 갖가지 궁리를 해본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일이다. 친구들과 놀다가 광에 숨겨둔 자투리 구슬을 가지러 집에 들어왔는데, 어머니가 나를 부르더니 안방에 들어와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라고 하셨다.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커피잔까지 내온 걸로 보면 굉장히 중요한 손님들인가 보다. 아닌 게 아니라 안방에는 손님 두 분이 앉아 있었다. 그분들은 예비 입학생을 확인하느라고 우리 집에 들른 선생님들이었다. 학교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학교에는 절대로 안 갈 거라고 방안에서 나뒹굴고 소란을 피웠다. 느닷없는 난동에 선생님들은 어머니에게 다음에 보자고 찡긋 눈짓을 하며 집을 나섰다.

이후로 어머니는 걱정이 많아지셨다. 막내아들도 자기 아버지처럼 학교를 못 다니려나? 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국민학교밖에 안 나오셨다. 그런데 그 이유가 좀 특이하다. 국민학교 때까지는 한복 바지에 저고리를 입고 편하게 지냈는데, 중학교에 가면 단추가 달린 교복을 입어야 한다고 하니 그게 싫었다고 한다. 막내아들의 고집에 할아버지께서도 뜻을 굽히고 학교에 보내질 않으셨다고 한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여러 번 그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셨다. 나는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동네 형들이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많이 때린다고 겁을 줘서 그랬던 것뿐이다.

그런 난리를 친 데 비해서 나는 학교에 잘 다녔다. 처음 일주일가량은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학교에 데려다주셨다.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보통 오전에 세 시간 정도 수업을 하는데, 그 시간 동안 밖에서 유리창 너머로 수업받는 걸 간간이 지켜보다가 수업을 마치면 다시 내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데려가셨다.

입학식 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수영이라는 친구가 학교에 안 다니겠다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고집을 피웠다. 그러자 그 애 어머니는 내년에 1학년으로 다시 입학시키겠다며 수영이를 그냥 집으로 데리고가버렸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혀를 차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절대로 못 도망가게 하려고 말이다. 그래서 수영이는 나랑 동갑이지만 한 학년 늦게 학교에 들어왔다. 다행히 그때 나는 별 소동을 안 부렸다.

입학을 하자마자 단체로 예방주사 접종이 있었다. 아마 담임선생님이 어머니에게는 미리 이야기를 했을 텐데, 어머니는 나에게 전혀 귀띔조차 하지 않고 평소보다 더 좋은 말을 하면서 학교에 데려갔다. 운동장에 들어서자 애들이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길게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느낌이 이상하다. 게다가 청진기를 하고 가운을 입은 의사선생님이 보였다. 주사기를 들고 있는 간호사 누나가 분주히 돌아다녔다. 아픈 주사다! 그제야 나는 눈치를 챘다. 어머니가 내 팔을 꽉 잡고 두 팔로 부둥켜안으려는 순간, 나는 그 자리를 냅다 빠져나왔다. 주사 놓으려는 거지? 나 주사 안 맞을 거라고!

 

 

후다닥 내달렸다. 뒤에서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숨이 목까지 차서 대문을 밀어제치며 안방으로 들어섰다. 아니야, 여기에 있으면 안 되지.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는 커다란 쌀통이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드럼통인데, 노란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다. 어머니가 서울에서부터 가지고 내려온 거다. 구석에 세워두면 그 옆으로 빈 공간이 나는데, 그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어머니가 나를 찾으러 올까봐 한참을 숨죽이고 있었다.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내 이름을 부르며 찾았다. 나는 일부러 대답을 안 했다. 분명히 다시 데리고 운동장으로 끌고 갈지 모르니까. 처음에는 웃으면서 상냥하게 내 이름을 부르시던 어머니는 마침내 화난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쌀통 뒤에 숨어 있는 나를 보고는 꼭 안아주셨다. 이제 의사와 간호사는 다 갔다며 달래셨다. 싫으면 주사를 맞지 말라고도 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다시는 학교에 안 다닌다고 할까봐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결국 예방주사는 피했다.

다음날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갔다. 정말로 의사와 간호사가 없었다. 다른 애들은 팔뚝을 걷어붙이고 용감하게 주사 맞은 것을 우쭐대며 자랑했다. 그래도 나는 주사를 안 맞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동네 형들이 주삿바늘이 팔뚝을 뚫고 나오는 일도 있다고 겁을 줬다. 담임선생님은 주사를 맞지 않은 애들은 나중에 다시 맞을 거라고 하셨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더 이상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지 않으셨다. 혼자 가라고 대문 앞에서 손짓만 하셨다.


.씨름판의 기적.

 

 

 

우리 집 근처에는 병옥이라는 아저씨가 살았는데, 몸이 좀 마르고 말 수가 적었다.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서 동네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폐결핵을 앓는 중이라고 했다. 본래 우리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중간에 객지에서 떠돌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걸음걸이도 느릿느릿하며 늘 기운이 없어 보였고, 시골 사람과는 다르게 하얀 얼굴이 곱상해 보였다. 이 아저씨에게는 젊은 색시가 있고, 어린 딸아이도 하나 있었다.

어쩌다 길에서 만나면 아저씨는 늘 기침을 하곤 했다. 내가 학교 수업을 마칠 무렵이니까 아마 오후 늦은 시간이었을 게다. 아저씨는 동네 사람들 눈을 피해 집 앞의 신작로에서 학교 앞까지 산책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이 떠들며 노는 것을 철조망 주변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러나 학교 안으로 들어온 적은 없었다. 나는 아저씨가 먼발치에서부터 가까이 다가오면 은근히 피했다. 한번은 나에게 말을 걸을 것 같아서 얼른 방향을 돌려 다른 길로 가버린 적도 있었다. 어른들이 한 이야기도 있고, 혹시 뭔가 병이 옮을까봐 그랬다.

학교 안에는 조그마한 모래사장이 있다. 체육시간에 멀리뛰기를 할 때 이용하는 곳이다. 방과후에 우리가 모래장난을 하고 놀고 있으면 늘 소사 아저씨가 쫓아와서 다른 데 가서 놀라고 혼을 내곤 하셨다. 아마 모래가 사방에 흩어져 줄어들면 강변에서 무겁게 다시 퍼다 날라야 하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소사 아저씨의 아들인 건영이는 우리의 친구이면서도 절대로 모래사장에서는 놀지 않았다. 아마 우리보다 어른스러워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같은 학년이지만 건영이는 나보다 한 살이 더 많다.

어느 날 학교 모래사장에서 씨름판이 벌어졌다. 군 대항으로 국민학교 간 씨름대회가 있다고 해서 선수를 뽑는 중이었다. 운동신경이 있고 깡다구가 있는 애들은 일찍부터 발탁되어 있었다. 예상대로 그 애들이 학교 대표선수로 뽑혔다. 애들 씨름은 보통 샅바를 잡자마자 밑으로 파고들어 상대방의 한쪽 다리부터 잡아채서 넘기는 것으로 승부가 났다. 금방 끝나버리고 싱거웠다. 덩치가 큰 애들도 작지만 날랜 애들에게 그런 식으로 넘어가기 일쑤다.

대충 선수들이 정해지자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선생님들과 동네 어른들 사이에 씨름 시합이 벌어졌다. 동네에서 힘 좀 쓴다는 청년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렸고, 선수들을 인솔해야 하는 선생님도 물러서기가 그랬는지 한판 하자고 바람을 잡았다. 졸지에 십여 명의 어른들이 순번을 정하고, 곧 시합이 벌어졌다. 우리는 좋은 구경거리라고 떠들고 좋아했다. 떠들썩해지자 모래사장에는 다른 동네 사람들까지 모여들었다. 어느새 씨름판이 커져버렸다.

어른들의 시합도 결국은 들배지기같이 힘쓰는 기술보다는 바깥다리 걸기나 한쪽다리 잡아채기 같은 단순한 기술로 승부가 났다. 누군가가 말했다. 어이, 병옥이 자네도 한번 해보지 그래. 얼핏 보니 내 뒤에는 삐쩍 마른 병옥이 아저씨가 서 있었다. 설마 저렇게 마르고 아픈 사람이 무슨 씨름을 하겠나? 사람들이 연약한 아저씨를 놀리는 것 같아서 괜히 내가 다 불쾌해졌다.

그런데 아저씨가 마다 않고 모래사장으로 나서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는 신고 있던 흰 고무신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리며 모래판 안으로 들어섰다. 상대방은 이미 두어 판을 이긴 상태였다. 병옥이 아저씨는 상대방의 샅바를 잡는가 싶더니만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뒤집기로 상대를 모래판에 그냥 넘어뜨렸다. 나는 처음 보는 기술이었다. 모두가 놀랐다. 두 번째 판도, 세 번째 판도 다 똑같이 현란한 뒤집기 기술로 승부가 났다. 결국 그날 우승은 병옥이 아저씨가 차지했다.

아저씨는 객지를 돌아다니며 몸이 망가지기 전 젊은 시절에 씨름을 배웠던 것 같다. 씨름이 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은 겉보기와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어머니는 사람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씨름 이야기를 또 공부에 빗대서 말씀하신다.

얼마 지나서 어머니는 옆집의 병옥이 아저씨가 결핵으로 병원에 실려가 죽었다고 했다. 결핵은 정말 무서운 병이다. 덩치 큰 사람도 가볍게 넘겨버리는 아저씨를 잡아가다니. 젊은 색시와 어린 딸아이는 어찌 되는 걸까? 이들 모녀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우리 동네를 떠났다. 색시는 나이가 있으니까 어디선가 다시 가정을 꾸리지 않겠냐고, 동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래도 나는 곱상한 두 모녀가 우리 동네에서 그냥 살았으면 했는데.


.월간 잡지 좀 빌려주라.

 

 

 

《어깨동무》, 《소년중앙》, 《새소년》은 너무너무 기다려지는 월간 잡지다. 매달 초가 되면 면사무소 가는 길목에 있는 매점에 신간이 나와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매점에서는 같은 월간지를 절대로 한 권 이상 갖다놓지 않는다. 그 한 권이 팔려버리면 끝이다. 사실 우리 동네에서 돈 주고 애들에게 기꺼이 월간지를 사줄 부모는 거의 없다. 우리 어머니도 이번 호에는 공부에 필요한 과학기사가 나온다고 며칠 전부터 졸라대면 어쩌다 한 권 사주는 정도다. 사실 나는 지난달 별책부록에서 끊긴 만화의 뒷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남다른 교육열을 보이는 어머니를 자극해서 월간 잡지를 얻어내려는 게 내 얄팍한 속셈이다.

월간 잡지에는 만화책이 별책부록으로 여러 권 따라 나온다. 우주소년 아톰, 요괴인간, 타이거마스크가 그려진 총천연색의 겉표지가 내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다.

후다닥 별책부록 만화부터 다 읽고 나면, 아까운 듯 이제 두꺼운 잡지의 비닐을 뜯고 무슨 내용이 들어 있는지 목차부터 살펴본다. UFO와 화성인 이야기는 단골이고,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다는 카르타고의 한니발 같은 영웅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래도 가장 먼저 펼쳐보는 것은 대여섯 쪽 분량의 명랑만화다. 길창덕 화백의 〈꺼벙이〉나 〈만복이〉 같은 명랑만화를 보면서 키득거리면 어머니는 그렇게 재미있냐고, 좀 조용히 하라고 핀잔을 주신다. 알겠다고 대답하지만 이내 다시 킥킥거리게 된다. 그런 식으로 만화나 볼 거면 다시는 잡지를 안 사주겠다고 어머니는 다시금 한소리를 하신다. 그럭저럭 만화를 다 훑고 나면 초기의 설렘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요즘 《보물섬》, 《만화왕국》이라는 잡지들이 새로 등장했다. 정말 대단하다. 온통 만화로 가득 차 있다. 두께도 보통 월간지의 두 배나 된다. 하필이면 내게 눈길 한번 안 주는 연희라는 계집애가 이 잡지를 여러 권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연희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서 서울서 시골로 내려왔다고 한다. 한 권이라도 얻어 보려면 잘 보여야 한다. 가만 보니까 냇가 건너 한 동네까지 같이 걸어다니는 훈섭이에게는 벌써 빌려줬다. 그 녀석은 내가 옆에서 좀 같이 보자고 하면 연희에게 허락을 받고 오라며 심하게 튕긴다. 자존심이 상한다. 집에 와도 도통 잠이 안 온다. 연희에게 빌려달라고 어떻게 말을 붙이지?

다행히 내게는 요즘 새로 산 월간 잡지가 있다. 학교에 가면 인기 만점이다. 서로 빌려달라고 난리다. 나도 아직 다 못 본 책이기 때문에 빌려줄 수가 없고, 쉬는 시간에 별책부록 정도는 좀 보여줄 수 있다고 뻐긴다. 혹시 지난 잡지라도 내가 못 본 다른 월간 잡지를 가진 친구가 있으면 서로 바꿔볼 수는 있다. 그런 것조차 없으면 아직 사랑땜조차 안 한 책인데 굳이 빌려줄 이유가 없다. 나는 새 거니까 연희가 내 책에 관심을 보여서 이번에 그 애가 가진 《보물섬》 몇 권과 바꿔봤으면 좋겠다.

내가 신간 잡지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옆 반에도 퍼졌다. 다음날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보건소에 다니며 피임약을 나눠주는 일을 하는데, 말투도 마치 선생님 같다. 혼자서 춘국이와 호국이라는 아들 둘을 키우는데, 이 두 형제는 나하고 별로 안 친하다. 애들이 수줍음이 많고, 도대체 밖에 나와서 노는 일이 거의 없다. 구슬치기도 안 해서 내게 도움이 안 된다.

아마 내가 새로 나온 월간 잡지를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내게는 감히 말을 못하고 자기 엄마를 엄청 졸라댔나 보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다. 어머니는 나더러 다 봤으면 빌려주라고 하셨다. 나도 아직 한 번밖에 안 읽었다. 내가 멈칫거리자 어머니는 눈짓으로 혼내는 시늉을 하셨다. 그 집 애들이 공부를 잘하니까 빨리 빌려주라고 덧붙이셨다. 할 수 없이 두 손으로 아주머니에게 잡지를 건네 드렸다. 애들이 보고 나면 곧 돌려주겠다고 말하고 아주머니는 서둘러 가셨다. 정작 연희는 관심을 안 보이고 졸지에 샌님 같은 형제만 끼어들었다.

야, 내 잡지 다 봤어? 길에서 만난 춘국이에게 다그쳤다. 아직 내 동생이 다 못 봤어. 빨리 보고 줘라. 나도 다 보지 못했단 말이야. 치사하게 네 엄마를 시켜서 뺏어 가냐? 너희도 사서 보면 되잖아. 춘국이는 울먹이며 집으로 돌아갔다. 대신에 몇 달 지난 잡지 몇 권을 빌려주겠다며 들고 나왔다.

내 신간 잡지책이 되돌아온 것은 며칠이나 더 지난 다음이었다. 두 형제가 여러 번 읽었는지 구겨지고 헌책이 되어서 돌아왔다. 속이 부글거렸다.

기분도 울적하던 차에 멀리 마세리에 사는 진구가 자기 동네 마을회관에 가면 월간 잡지가 무수히 많다고 했다. 솔깃했다. 그러면 학교 끝나고 나 따라서 갈래? 그래서 나는 진구와 한 시간 이상 먼 동네까지 걸어갔다. 잡지를 실컷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들떴다. 그런데 마세리 마을회관에 있는 것은 온통 《새농민》이라는, 나라에서 무료로 배포한 잡지뿐이었다. 이게 네가 말한 월간 잡지야? 진구는 잘 찾아보면 그 안에 만화도 좀 있다고 둘러댔다. 속았다. 내가 신간 잡지를 가지고 너무 재니까 골탕을 먹이려고 작정을 한 것이었다. 진구가 논에 가서 일을 해야 한다고 내빼는 바람에 기억을 더듬어 혼자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보물찾기 1등 어디 갔어?.

 

 

 

저학년은 아주 가까운 데로 봄소풍을 간다. 점심만 먹고 돌아오기 때문에 집에 와서 오후 내내 놀 수가 있다. 고학년은 조금 더 먼 곳으로 간다.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보면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살목산으로 간다. 엊그제 진구의 꼬임에 넘어가서 갔다 온 마세리보다 더 먼 곳이다. 거기는 깊이 들어가면 살모사 같은 독사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살목산인가 보다. 오후 늦게는 돼야 돌아올 것 같다. 다행히 집에 와서 구슬치기를 하며 놀 시간은 있을 듯하다. 주머니에 먹다 남은 과자라도 넣고 구슬치기를 할 생각에 뿌듯하다.

어머니는 늘 김밥을 싸주신다. 하루 전날 가게에 가서 나무 도시락과 단무지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신다. 과자며 사탕이며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한 가지씩 사오라고 돈을 조금 더 얹어주신다. 주전부리 중에 내가 꼭 챙기는 것이 하나 있다. 사이다다. 가게에 오래 있어서 종종 뚜껑이 녹슬긴 했어도 이게 빠지면 소풍 가는 재미가 없다. 어머니는 담임선생님께도 드리라고 꼭 도시락을 하나 더 싸신다. 사실 우리 동네 같은 객지까지 전근을 와서 혼자 사는 선생님은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유리병에다가 오이소박이도 몇 조각 담아주셨다. 담임선생님에게 잘 보이고자 도시락을 가져다 드리는 것도 이 날밖에 기회가 없다. 나는 그냥 시켜서 가져다 드리는 것뿐이지만. 학교에서 가까운 장터에서 살 만하다고 여기는 어머니들 사이에는 서로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는 경쟁이 있다. 소풍 때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에는 여러 학생들이 가져온 도시락과 간식이 넘쳐난다. 앞집 경미는 시골에서 보기 힘든 귤까지 들고 왔다. 그러면 내가 드린 도시락은 묻혀버린다.

처음 가보는 살목산은 역시 가파르다. 힘들게 올라가는데 내 발 끝에 채인 돌멩이 하나가 비탈을 타고 마구 굴러 내려갔다. 속도가 붙는다. 큰일이다. 다행히도 뒤에 오는 1반의 용감한 여자 선생님이 발로 잡아서 멈추었다. 자칫 다른 애들의 정강이나 머리에 맞기라도 했다면 정말 크게 다칠 뻔했다. 선생님은 산에 오르는 내내 누가 부주의하게 돌멩이를 굴렸느냐고, 본인이 잡았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고 연신 말씀하셨다. 옆 반 남자 선생님은 칭찬하며 거들었다. 나는 들킬까봐 숨죽이고 있어야만 했다. 조금 비겁하기는 해도 내가 그랬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소풍의 가장 큰 재미는 보물찾기 놀이다. 점심 때 후다닥 싸온 것을 다 먹고 나면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보물찾기가 시작된다. 그전에 애들 모르게 누군가는 보물쪽지를 숨겨야 한다. 1등이 한 장, 2등은 세 장, 3등은 열 장. 상품이라야 순서대로 공책 다섯 권 한 묶음, 필통 한 개, 연필 한 다스 등이다. 서운해 하지 말라고 장려상으로 낱개 연필을 여러 명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담임선생님이 몰래 나를 부르셨다. 보물쪽지 한 묶음을 주면서 점심을 일찍 먹고 나서 친구들 모르게 근처 곳곳에다 숨기라고 시키셨다. 물론 내가 보물 찾을 기회는 사라진다. 우리 집이 장터에서 살 만하다고 여기시고 그깟 학용품쯤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나는 마치 특별대우를 받는 것 같아서 우쭐해진다. 미리 답을 알고 문제를 내는 선생님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름 보물의 등수에 따라 여기저기 어렵게 숨기면 된다. 3등 정도는 손이 닿는 나뭇가지에 묶어두고, 2등은 바윗돌 아래에 숨겨둔다. 문제는 1등이다. 어디다 숨겨야 애들이 어렵게 찾을까? 결국 좀 기어서 올라가야 하는 바위틈 사이에다 숨기고 내려왔다.

일찍부터 도시락을 까먹었거나 싸온 것이 부족한 먼 동네 애들은 심심하더라도 선생님들이 둘러 앉아 점심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식사가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들이 여흥으로 시킨 여자애들의 노래자랑까지 끝나고, 드디어 교감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얘들아, 지금부터 딱 30분간 보물찾기 시간이다.

여기저기서 보물을 찾았다는 소리가 들린다. 대부분 3등이나 장려상이다. 2등짜리 보물도 간간이 나온다. 애들은 내가 보물을 숨긴 것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일부러 보물을 찾는 척했다. 1등짜리가 안 나타나도 문제다. 결국 애들에게 주려고 준비한 상품인데 졸지에 남아돌게 된다. 내가 너무 어렵게 숨긴 게 되고 만다. 잡지라도 얻어 보려면 연희 계집애에게 슬쩍 귀띔이나 해줄까보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가갔다. 야, 저 위에 있는 바위틈을 좀 잘 살펴봐라. 그런데 이 계집애가 무서워서 못 올라간다며 질겁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올라가서 찾아줄 수는 없잖아. 결국 1등짜리 보물은 안 나왔다. 그 1등짜리 상품은 오늘 선생님들 앞에서 노래를 가장 잘 불렀다고 해서 결국 연희에게로 돌아갔다. 내가 괜히 보물쪽지를 어렵게 숨기는 바람에 나와는 상관없이 저 얄미운 계집애가 스스로 타간 꼴이 됐다. 더 잘난 체만 하게 생겼다. 월간 잡지 얘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지?

 


.회충약과 채변봉투.

 

 

 

오늘은 회충약을 나눠줄 테니까 집에 가서 밥 먹기 전에 꼭 먹도록 해라. 밥을 굶고 꼭 빈속에 먹어야 한다. 밥을 먹으면 회충이라는 놈들이 약을 안 먹는단다. 알았지? 그리고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여기 채변봉투를 하나씩 나눠줄 테니까 며칠이 걸리든 꼭 회충이 나오는 것을 확인해서 이 봉투에 받아와야 한다. 채변봉투 안에는 작은 비닐봉지가 하나씩 들어 있다. 담임선생님은 하얀 회충약 두 알과 채변봉투를 일일이 나눠주셨다.

1년에 한 번씩 학교에서는 회충약을 무료로 나눠준다. 우리들 몸속에 회충, 촌충, 편충 같은 기생충이 있으면 우리가 아무리 잘 먹어도 키가 크지 않는단다. 촌에서 먹고 살기도 힘든데, 이놈들이 영양분까지 빨아먹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연시간에 담임선생님이 그림으로 보여주셨다. 촌충은 길이가 어마어마하다. 어떤 놈은 우리 몸을 두 바퀴나 감을 정도로 길다고 했다. 무서운 이야기다. 생선을 덜 익혀 먹거나 밭에서 거름을 준 상추를 따다가 덜 씻어 먹어도 생긴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한 번도 몸에서 회충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남들에게 말을 못하지만 가끔 아침에 깰 때 항문 근처가 살살 가려울 때가 있다. 어머니는 아마 나에게 편충이 좀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편충은 아주 작은 회충이다. 작다고 하니까 조금은 안심이 되고 덜 창피한 것 같다.

문제는 항상 누나다. 대변에서 회충이 나온 적이 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