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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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년 후 질베르트에 대한 관심이 거의 사그라들었을 때, 난 할머니와 함께 발베크로 떠났다. 새로운 얼굴의 매력에 끌릴 때면, 또는 어느 소녀 덕분에 고딕 성당이나 이탈리아 궁전과 정원이 궁금해질 때면, 나는 서글프게도 어떤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우리 사랑은 어쩌면 현실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즐거운 몽상이나 고통스러운 몽상의 결합은 이 사랑을 한 여인에게 연결하여, 우리 사랑이 한동안 필연적인 방식으로 그 여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하지만, 한편 의도적으로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몽상과의 결합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면, 이번에는 오히려 그 사랑이 오로지 자신에게서만 왔다는 듯이 다른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발베크로 떠나 그곳에 처음 머물 때까지만 해도 내가 완전히 무관심한 상태였던 것은 아니다. 난 자주(우리 삶은 거의 연대순을 따르지 않으므로, 나날의 흐름에 많은 시간의 불일치를 끼어들게 한다.) 전날이나 그 전날이 아닌, 훨씬 더 오래전 내가 질베르트를 사랑했던 시절 속에 살았다. 그럴 때면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그때와 똑같은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녀를 사랑했던 자아는 이미 완전히 다른 자아로 바뀐 채 다시 불쑥 나타났고, 또 이런 일은 심각한 일보다 사소한 일을 통해 더 많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나의 노르망디 체류에 대해 미리 말해 본다면 나는, 발베크 방파제에서 스친 낯선 이에게서 ‘체신부 국장의 가족’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이 가족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내게 별 의미 없는 말로 비쳐야 했을 이 말이 단번에 내게 생생한 아픔을, 오래전에 질베르트와 헤어지면서 대부분 파괴된 자아가 느꼈던 아픔을 똑같이 불러일으켰다. 예전에 질베르트가 내 앞에서 자기 아버지와 체신부 국장 가족에 대해 했던 얘기,1) 결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얘기가 그제야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의 추억은 기억의 일반적인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며, 또 이 기억의 법칙은 보다 일반적인 습관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법이다. 습관은 모든 걸 약화하므로, 우리가 망각했던 부분이 바로 우리에게 어떤 존재를 가장 잘 생각나게 한다.(이 부분은 별 의미가 없었기에 모든 힘을 간직한 채로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 기억의 가장 좋은 부분은 우리 밖에, 비바람이나 밀폐된 방의 냄새 속에,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의 그을음 속에, 다시 말해 우리 지성이 필요로 하지 않아 방치했던 것, 과거의 마지막 저장소, 우리의 모든 눈물이 메말랐을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울리는 최상의 저장소를 발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 밖이라고 했던가? 아니다, 우리 안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 저장소는 우리 시선에서 빠져나가 조금은 오래 지속되는 망각 속에 존재한다. 바로 이런 망각 덕분에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옛 존재를 되찾을 수 있고, 이 존재가 대했던 그대로의 사물과 마주하며 다시 괴로움에 빠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더 이상 현재의 우리가 아닌 예전의 그 존재이며, 그 존재는 이제 우리에게 무관심해진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습관적인 기억의 찬란한 빛 아래서 과거의 이미지가 점차 희미해지고 사라지면서 그 이미지로부터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과거를 찾지 못하리라. 아니, 오히려 몇 마디 말이(‘체신부 국장’이라는 말 같은) 망각 속에 조심스럽게 담겨 있지 않았다면, 다시는 과거를 찾지 못했으리라. 마치 출판된 도서를 국립도서관에 맡기지 않으면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질베르트에 대한 이런 고통과 사랑의 부활은 자면서 꾸는 꿈과 마찬가지로 오래가지 않았는데, 발베크에는 이 감정을 오래 지속시켜 줄 옛 ‘습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이런 ‘습관’의 효과가 모순되어 보인다면, 그 이유는 습관이 다양한 법칙에 복종하기 때문이리라. 파리에서 내가 질베르트에게 점점 무관심해질 수 있었던 것은 ‘습관’ 덕분이었다. 습관의 변화, 즉 ‘습관’의 일시적 중단이 내가 발베크로 떠날 무렵에 ‘습관’의 작품을 완성했다. 습관은 사물을 약하게 하지만 안정시켜 주고, 사물의 붕괴를 초래하지만 그 붕괴를 무한히 유보한다. 몇 해 전부터 나는 날마다 이럭저럭 전날 정신 상태에 따라 다음 날 정신 상태를 가늠해 왔다. 그런데 발베크에서는 새로운 침대가 — 그 침대 옆으로 파리의 아침 식사와는 다른 식사를 가져오는 — 질베르트에 대한 내 사랑을 길러 왔던 상념을 더 이상 받쳐 줄 수 없었다. 칩거 생활은 세월의 흐름을 정지시키므로 시간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장소를 바꾸는 일일 때가 있다.(물론 드문 일이긴 하지만.) 발베크로의 내 여행은 그저 자신의 치유된 모습을 보고자 나서는 회복기 환자의 첫 외출과도 같았다.

오늘날이라면 우리는 아마도 이 여행을 보다 쾌적하다고 여겨지는 자동차로 했을 것이다. 지구 표면이 변하는 다양한 단계를 보다 가까이에서, 보다 내밀하게 쫓을 수 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의 특별한 기쁨은 우리가 피곤할 때 도중에 내리거나 멈출 수 있는 데 있지 않으며, 출발지와 도착지의 차이를 지각할 수 없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차이를 될 수 있는 한 더 깊이 느끼게 하여, 우리 상상력이 단 한 번의 비약으로 살던 장소에서 욕망하는 장소 한복판으로 데려다 주듯이 우리 상념 속에 있던 차이를 그 전체 안에서 그대로 느끼게 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거리를 통과한다기보다는 상이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지구상의 두 개별적인 고장을 결합하고, 하나의 이름에서 다른 이름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며, 또 기차역이라는 그 특별한 장소에서 실현되는 신비스러운 작업으로 압축되어 더욱 기적적으로 보인다.(원하는 곳 어디에서나 마음대로 멈출 수 있는 자동차 산책에는 도착 점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기차 여행이 훨씬 더 그렇게 보인다.) 기차역은 도시에 속한다기보다는, 표지판에 새겨진 이름이 그러하듯 도시의 본질을 함유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 모든 분야에는, 사물을 둘러싼 현실과의 관계에서만 사물을 보여 주려 할 뿐, 사물을 현실로부터 분리하는 본질적인 것, 즉 정신 활동은 제거하려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우리는 이런저런 그림을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가구와 장식품, 벽걸이 융단 한가운데 ‘진열’하는데, 이는 어제만 해도 무식했던 여주인이 이제는 갑자기 고문서 보관소나 도서관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오늘날의 저택에 능숙하게 배치해 놓은 빛바랜 장식품 같은 것으로, 그런 장식품 가운데서 우리가 식사를 하며 바라보는 걸작은 미술관 전시장에서만 기대되는 황홀한 기쁨은 주지 못한다. 미술관이야말로 모든 세부적인 장식품 없이 텅 비어 있는 모습이 예술가가 창작을 위해 전념하는 그 내면의 공간을 가장 잘 표현해 준다.2)

불행하게도 우리가 어느 멀리 떨어진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는 이 기차역이라는 경이로운 장소는 또한 비극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던 고장들이 우리가 직접 살 고장들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대합실을 나서기만 하면, 조금전까지만 해도 돌아갈 수 있었던, 우리가 머물렀던 친숙한 방으로의 복귀는 단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신비스러움에 이르는 역한 냄새가 가득한 동굴 속으로, 가령 내가 발베크로 떠나는 기차를 타기 위해 갔던 생라자르 역 같은 유리로 지어진 커다란 공장 작업실 안으로 일단 들어가기로 결심한다면, 집에 돌아와서 잠을 자겠다는 기대 따위는 모두 버려야 한다.3) 역은 내장을 비운 도시 위로 비극적인 흉조가 몰려와 무거워진 광막하고도 황량한 하늘을 펼치고 있었으며, 만테냐나 베로네제가 거의 현대적인 모습의 파리를 그린 몇몇 하늘과도 비슷한 하늘 아래서는 기차로 출발하는 일이나 십자가를 세우는 일 같은 뭔가 무시무시하고도 장엄한 일 외에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4)

파리의 내 침대 구석에서 폭풍우에 파도 거품이 이는 발베크의 페르시아 풍 성당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동안, 내 몸은 이 여행에 대해 아무 반대도 하지 않았다. 반대가 시작된 건 내 몸이 여행의 일부가 될 것이며, 또 그곳에 도착하는 저녁, 사람들이 내 몸은 알지 못하는 ‘나의’ 방으로 안내하리라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였다. 내 몸의 저항은 출발 전날 밤 어머니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더욱 격렬해졌다. 노르푸아 씨와 함께 스페인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던 아버지가 외무부 업무에 붙잡혀 차라리 파리 근교에 집을 빌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5) 게다가 발베크를 관조하는 일이 육체적인 불편함을 치러야 한다고 해서 보고 싶은 마음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이런 불편함이 내가 찾고자 하는 인상의 실재를 구체화하고 보증해 주는 듯했는데, 이 인상은 내가 보고 나서도 집에 돌아가 잠을 자는 데 방해되지 않았던, 자칭 그와 가치가 동등하다는 어떤 공연이나 ‘파노라마’로도 대체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기쁨을 주는 사람이 언제나 같지 않다는 사실을 느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나를 돌봐 주던 의사가 출발 날 아침 내 불행한 표정을 보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했다. “맹세하지만, 만약 일주일만 여유가 생긴다면, 난 누가 빌지 않아도 시원한 바람을 쏘이러 바닷가로 가겠네. 승마를 하거나 요트도 탈 수 있을 테고 아주 즐거울 걸세.” 나는 라 베르마를 보러 가기 훨씬 전부터 이미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고통스러운 탐색 후에야 얻을 수 있으며, 이런 최고 선을 위해서는 내 기쁨을 추구하는 대신 우선 그 기쁨을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물론 우리의 출발에 대해 뭔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셨고, 예전에 예술적인 성격을 띤 선물을 주려고 하셨을 때처럼, 이번 여행에 대해서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오래된 ‘판화’ 같은 걸 주고 싶어 하셨으며, 그래서 세비녜 부인이 파리에서부터 숀과 ‘퐁오드메르’를 거쳐 ‘로리앙’에 갔을 때처럼 반은 기차로 반은 마차로 하는 여정을 다시 하고 싶어 하셨다.6) 그러나 할머니가 여행 계획을 짤 때는 모든 지적인 유익함을 고려하는 까닭에 기차를 놓칠 위험이나 짐을 분실하거나 목이 아프거나, 교통 법규 위반이 따르리라는 걸 알았던 아버지가 반대해서 할머니는 그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바닷가에 나가는 순간 세비녜 부인이 “사륜마차를 탄 족속”7)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는 기뻐하셨다. 르그랑댕이 여동생에게 소개장을 써 주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발베크에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르그랑댕이 소개장을 써 주지 않은 데 대해 할머니의 자매인 셀린과 빅투아르8)는 할머니만큼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르그랑댕의 여동생이 처녀였을 때부터 알아왔던 할머니 자매분들은 예전의 친밀함을 표시하려고 여동생을 단지 ‘르네 드 캉브르메르’라고 부르면서 지금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데도 그녀로부터 받은 선물을 여전히 보존하면서 방에 장식하거나 화제로 삼아 왔는데, 이 소개장 사건 이후로는 캉브르메르 부인의 어머니 르그랑댕 부인 댁에 가서도 그 딸의 이름은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받은 모욕에 복수했다고 믿었고, 그 집에서 나올 때는 “난 네가 누군지 아는 사람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 “아마도 ‘부인이’ 알아챘을걸.”이라고 말하면서 서로를 칭찬하고 만족스러워했다.)

그래서 우리는 1시 22분발 기차로 파리를 떠나기만 하면 되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차 시간표에서 찾아보기를 좋아했고, 그래서 내가 그 기차를 모른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매번 내게 감동을 주는, 거의 자비로운 출발의 환상을 주는, 그 기차로 떠나기만 하면 되었다. 상상 속에서 그리는 행복은 행복에 대한 우리 지식의 정확성보다는 그것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욕망과의 일치에서 오는 법이므로, 나는 내가 이미 행복을 자세히 아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객차 안에서 날씨가 서늘해지면 특별한 기쁨을 느낄 것이며, 어느 역이 가까워지면 이런저런 효과를 관조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하여 기차는 언제나 그것이 통과하는 오후의 빛 속에 감싸인 채로 도시 이미지들을 내 마음속에 깨어나게 했으므로 여느 기차와는 다르게 생각되었다. 마침내 나는, 한 번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우리가 그 우정을 차지했다고 믿으며 기뻐하는 사람에 대해 흔히 그러듯, 길을 가는 중에 날 데리고 갈 그 금발 예술가인 나그네에게 특별하고도 변치 않은 용모를 부여했는데, 그 나그네는 시간이 되면 석양빛을 향해 멀리 사라지기에 앞서 생로9) 대성당 발밑에서 작별 인사를 할 것이었다.

발베크에 ‘그저 멍청하게만’ 갈 수 없었던 할머니는 친구들 가운데 한 분 댁에 들러 이십사 시간 머무르기로 하셨고, 난 이런 할머니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그날 저녁으로 그분 댁에서 출발하여 다음 날 발베크 성당을 구경하기로 했다. 들은 바에 따르면, 발베크 성당이 발베크 해변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어, 내가 해수욕 요법을 시작하면 그곳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새로운 숙소에 들어가 머무르기로 승낙한 이상 그 첫 번째 잔인한 밤이 닥치기 전에 내 여행의 경이로운 목적을 먼저 실행하는 게 훨씬 덜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우선 나의 옛 처소를 떠나야 했다. 어머니는 우리와 역까지 함께 갔다가 집에 들를 필요 없이 곧바로 생클루로 이동하여 그곳에 머무를 준비를 하셨는데, 실제로는 짐짓 그런 척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발베크로 가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집에 간다고 할까 봐 걱정되셨던 모양이다. 또 어머니는 생클루의 집을 빌린 지 얼마 안 되어 할 일도 많고 시간도 없다는 핑계를 댔지만, 실은 내게 긴 이별로 인한 잔인한 슬픔을 맛보게 하지 않으려고, 기차 출발 시각까지 우리와 함께 기다리지 않겠다고 결심하셨다. 어떤 결정적인 약속도 끌어들이지 않는 이런저런 부산한 준비로 감추고 있다가 더 이상 이별을 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이별은 무력하고도 지극히 명철한 의식의 한 거대한 순간에 완전히 집중되어 돌연 나타난다.

처음으로 난 어머니가 나 없이도 살 수 있으며,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르게,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고 느꼈다. 아마도 나의 부실한 건강이나 신경증이 아버지의 삶을 조금은 복잡하고 우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고는, 어머니 쪽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려고 하는 게 틀림없었다. 이 이별이 더욱 나를 슬프게 한 것은, 아마도 어머니가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이것이 내가 어머니에게 연이어 끼친 실망에 대한 마지막 결정으로, 이제는 더 이상 바캉스를 함께 보낼 수 없다는 걸 어머니가 깨달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어쩌면 이 이별은 어머니가 미래를 위해 체념하기 시작한 첫 번째 삶의 시도로서, 아버지와 어머니께 앞으로 다가올 세월 동안 내가 어머니를 거의 만나지 못하고, 악몽에서조차 결코 나타나지 않았던 일, 즉 어머니가 내게 조금은 낯선 여인이 되어, 나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서는, 문지기에게 내게서 온 편지가 없는지 물어보게 될, 그런 삶의 시작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가방을 들어 주려는 짐꾼에게 나는 거의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가장 효과적인 듯 보이는 방법으로 나를 위로하려고 애쓰셨다. 어머니는 슬픔이 가득한 나의 얼굴을 못 본 척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부드럽게 농담을 건네셨다.

“발베크의 성당이 이렇게 불행한 얼굴로 자기를 보러 온 걸 보면 뭐라고 할까? 러스킨이 말하는 그 황홀한 나그네가 과연 이런 모습일까? 게다가 만약 네게 이런 상황에 대처할 만한 힘이 있다는 걸 엄마가 알게 된다면, 멀리서도 엄마는 우리 아들과 계속 같이 있는 거나 같아. 내일이라도 당장 엄마 편지를 받을 수 있을 거야.”

“어미야.” 하고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네 모습이 꼭 세비녜 부인 같구나, 눈앞에다 지도를 놓고 한순간도 우리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는.”

또 어머니는 내 기분을 바꿔 주기 위해 저녁 식사로 뭘 주문할 거냐고 묻기도 하고, 프랑수아즈에게 감탄하면서 그녀가 쓴 모자와 외투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사실 그 커다란 새가 달린 모자와 끔찍한 무늬에 흑옥 장식이 잔뜩 달린 외투는 전에 고모할머니가 입었을 때는 어머니를 소름 끼치게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외투가 더 이상 쓸모 없게 되자, 프랑수아즈는 외투를 뒤집어 무늬 없는 아름다운 빛깔 안감을 밖으로 나오게 했다. 또 모자에 붙인 새로 말하자면, 오래전에 망가져 폐품이 되었던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아주 의식 있는 예술가가 추구하는 세련미를 어느 민요나, 대문 위 적절한 위치에다 하얀빛 또는 유황빛 장미로 꽃피운 시골 농부의 집 정면에서 발견하고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프랑수아즈도 샤르댕이나 휘슬러10)의 초상화에서 보았다면 우리를 매혹했을 벨벳 띠와 둥근 리본 매듭을 정확하고도 소박한 취향으로 모자에 달아 모자를 더욱 근사하게 만들었다.

좀 더 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 집 늙은 하녀의 얼굴에 고상함을 주던 겸손함과 성실성이 그 의복에까지 배어들어, 신중하면서도 비천하지 않은, ‘자신의 신분을 지키고 자리를 보존할 줄’ 아는 여인으로서 그녀는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동반자로 손색없는 여행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빛바랜 버찌 빛 나사 천 외투와 투박하지 않은 모피 깃에 감싸인 프랑수아즈는, 어느 늙은 거장이 기도서에 그려 놓은 안 드 브르타뉴11) 왕비의 모습을 연상시켰는데, 그 그림에서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 있어 전체의 조화로운 느낌이 모든 부분에 골고루 퍼지면서 사치스럽지만 지금은 한물간 의상의 독특함이 눈이나 입술, 손과 더불어 독실한 신앙을 경건하게 잘 표현하고 있었다.

프랑수아즈에 관해서는 생각이 어떻다 하는 얘기를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그런 절대적인 의미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가슴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극히 몇 가지 진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녀에게는 광대한 관념의 세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서 나오는 밝은 빛, 코와 입술의 섬세한 선, 제아무리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만약 있다면 최고의 품위와 엘리트 정신의 고결한 초연함을 의미하는 여러 특징 앞에서 우리는, 모든 인간적인 개념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극히 총명하고도 선량한 개의 눈을 바라볼 때처럼 혼란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겸손한 형제들이나 농부들 사이에는 정신은 소박하지만 사교계의 뛰어난 사람들과 흡사한 이가 있는 게 아닐까, 아니 어떤 부당한 운명 탓에 소박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살게 되어 이성의 빛을 빼앗겼으면서도 교육을 많이 받은 자들보다 더 자연스럽게 본질적으로 엘리트의 본성에 근접하는, 마치 뿔뿔이 흩어진 채로 길을 잃은, 이성을 빼앗긴 성가족의 일원처럼, 가장 높은 지성을 지니고도(그들의 눈빛이 어떤 것에 적용되지 않아도 너무도 명백히 드러나 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그 재능을 발휘하기에는 단지 지식만이 부족한, 아직은 유년 시절에 머물러 있는 그런 친지들이 있는 게 아닐까 자문해 보았다.

어머니는 내가 눈물을 참기 힘들어하는 걸 보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레굴루스도 아주 중대한 상황에서는 ……하는 습관이 있었다던데.12) 또 이렇게 하면 네 엄마에게 상냥한 게 아니지. 할머니처럼 세비녜 부인을 인용해 볼까. ‘네게 없는 용기를 내가 대신 내야겠구나.’”13) 그러고는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이기적인 슬픔을 다른 쪽으로 돌려 준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생클루로 가는 여정이 순조로울 것 같으며, 예약한 대절 마차도 만족스럽고 마부도 예의 바르며 마차도 편하다면서 나를 기쁘게 해 주려고 애쓰셨다. 난 이런 세세한 이야기에 미소를 지으려고 애쓰면서 납득과 만족의 표시로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어머니와의 이별을 더욱더 절감하게 했을 뿐이라, 난 찢어지는 가슴으로 마치 어머니가 이미 나를 떠나가 버리기라도 한 듯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시골에 갈 때 쓰려고 산 둥근 밀짚모자를 쓰고 한창 더울 때 긴 여행을 하게 되어 가벼운 옷차림을 한 어머니는 다시는 내가 보지 못할 ‘몽트르투’14) 빌라에 속하는 다른 인물로 보였다.

여행으로 인한 호흡곤란을 피하기 위해 의사는 내게 출발하면서 맥주나 코냑을 충분히 마시라고 권했는데, 잠시 신경조직이 일시적으로 상처를 덜 받는, 그가 ‘쾌감’이라고 일컫는 상태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어떻게 할지 망설였지만 적어도 내가 그러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내게도 그만한 권리와 분별력이 있다는 걸 할머니가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내 망설임이 알코올을 마실 장소, 즉 역 구내식당이나 식당차의 바하고만 관계 있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이내 할머니의 얼굴에는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듯 질책하는 표정이 나타났고, 그 바람에 나는 “뭐라고요?” 하고 외치면서, 갑자기 술을 마시러 가기로 결심했다. 말로 통보하면 언제나 반대에 부딪혔으므로, 행동에 옮기는 것만이 내 자유를 증명하는 필수적인 방법인 듯. “뭐라고요?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아시잖아요. 의사가 뭐라고 말했는지도 아시고요. 그런데도 내게 그런 충고를 하시는 거예요!”

내 불편함이 어떤지 할머니에게 설명하자 할머니는 몹시 비통해하면서도 다정한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그럼 어서 가서 맥주나 리큐어를 마시고 오렴. 그게 그렇게도 너의 기분을 좋게 해 준다면.” 곧바로 나는 할머니에게 달려들어 키스를 퍼부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기차 바에 가서 술을 과하게 마신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심한 발작이 일어날 것 같았고, 또 그렇게 하면 할머니 마음이 가장 많이 아플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역에 도착했을 때, 난 우리 객차로 돌아와서 할머니께 내가 발베크에 가게 되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며, 만사가 잘될 것 같고, 어쨌든 내가 엄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내는 데 금방 적응할 것이며, 기차는 쾌적하고 바의 남자와 승무원 들이 정말 매력적이라 그들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이런 여행을 자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이 모든 좋은 소식에도 나처럼 기뻐하지는 않으시는 듯했다. 할머니는 내 눈을 피하시면서 “잠을 좀 자야 하지 않겠니.”라고 대답하시고는 시선을 창문 쪽으로 돌렸다. 창에는 커튼이 쳐졌지만 창틀을 완전히 가리지는 못했으므로, 햇살이 출입문의 반짝거리는 떡갈나무와 의자를 덮은 천 위로 스며들어(객차 안 너무 높은 곳에 붙어 있어 지명을 읽을 수는 없지만 여기저기 풍경을 보여 주는 철도회사의 배려로 붙인 포스터보다 더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설득력 있게 광고라도 하듯이) 숲의 빈터에서 낮잠에 빠지게 하는 따사롭고도 졸린 빛과도 흡사한 빛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눈을 감았다고 생각한 할머니가 이따금 커다란 물방울무늬 베일 너머로 나를 힐끗 쳐다보다가는 눈길을 돌리고 다시 쳐다보는 모습이 보였는데, 마치 고통스럽기만 한 훈련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할머니께 말을 걸었지만 내 말이 할머니 마음에 들지는 않은 듯했다. 그러나 내 목소리는 내게 기쁨을 주었고 내 몸의 가장 무감각한 움직임이나 가장 내적인 움직임도 마찬가지였다. 난 그 움직임을 지속하려고 애쓰면서 내 각각의 억양을 낱말에 오래 머무르게 했고, 그러자 눈길 하나하나가 기분 좋게 그 눈길이 닿은 지점에 여느 때보다 오래 머무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서 쉬어라.” 하고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래도 잠이 안 오면 뭘 좀 읽어 보렴.” 그러고는 세비녜 부인의 책을 한 권 주셨는데, 내가 책을 펼치는 동안 할머니는 보세르장15) 부인의 『회고록』에 열중하셨다. 할머니가 여행을 할 때면 이 두 부인의 책도 언제나 함께였다. 할머니가 선호하는 작가들이었다. 그 순간 나는 머리를 움직이기 싫었고, 이미 취한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큰 기쁨을 느꼈으므로 세비녜 부인의 책을 펼치지도 않은 채 그냥 손에 쥐고는 시선을 떨구지도 않았다. 내 앞에는 온통 창문의 푸른빛 차양뿐이었다. 하지만 차양을 바라보는 일은 너무도 경이로웠고 난 내 명상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하는 사람 누구에게도 대꾸하지 않았다. 차양의 푸른빛은 어쩌면 아름다움이 아닌 그 강렬한 선명함으로,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조금 전 내가 술을 마셨을 때까지, 또 술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순간까지 내 눈앞에 있던 모든 빛깔을 지워 버린 듯했으며, 이런 차양의 푸른빛에 비하면 다른 빛깔들은 흐릿하고 무의미해 보였다. 마치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어둠 속에서 살다가 나중에 수술을 받아 마침내 빛깔을 구별하게 되면 어둠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듯이. 나이 든 승무원이 차표를 검사하러 왔다. 그가 입은 재킷에 달린 금속 단추가 계속 은빛으로 반사되면서 날 매혹했다. 그에게 우리 옆 자리에 앉으라고 청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승무원은 다른 객차로 갔고 난 향수에 젖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기차에서 보내는 까닭에 이 나이 든 승무원을 하루도 빼 놓지 않고 볼 수 있는 철도 종사원들의 삶을 상상했다. 푸른빛 차양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기쁨, 내 입이 반쯤 벌어진 데서 느꼈던 기쁨이 드디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을 조금 흔들었다. 할머니가 내민 책을 열고, 여기저기 내가 택한 페이지에 주의력을 고정할 수 있었다. 책을 읽을수록 세비녜 부인에게 더욱 감탄하게 되었다.

시대나 살롱의 삶에 관계되는 순전히 형식적인 특징에 속지 않으려면 주의가 필요하다. 몇몇 사람들은 세비녜 부인의 글을 읽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게 알려 다오, 내 착한 애야.” “그 백작은 아주 재치 있는 분으로 보였단다.” 또는 “건초를 말리는 일은 아주 재미있단다.”16) 일찍이 시미안 부인은 자신이 할머니인 세비녜 부인과 닮았다고 생각하며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17) “라불리 씨는 아주 건강해요. 본인의 사망 소식을 들을 수 있을 만큼 말이죠.” 또는 “후작님, 당신 편지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몰라요! 답장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군요.” 또는 “제 생각으로 당신은 제게 답장을, 저는 당신에게 베르가모트 향이 든 상자를 보내기로 한 것 같군요. 우선 여덟 상자를 보내는 걸로 제 책임을 다하겠어요. 나중 것도 곧 갈 거예요. 이처럼 땅에서 많은 수확물을 거둔 적도 없었답니다. 필시 당신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일 겁니다.” 시미안 부인은 피를 흘리는 요법이나 레몬나무 재배 같은 편지를 쓰면서 세비녜 부인이 쓴 편지와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자기 가족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세비녜 부인에 이르게 된 할머니는 세비녜 부인 편지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주 다른 아름다움을 내게 가르쳐 주셨다. 그 아름다움은 세비녜 부인이 내가 곧 발베크에서 만나게 될 엘스티르18)라는 화가와 같은 부류의 위대한 예술가라는 점에서 더욱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될 것이었다. 엘스티르는 사물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발베크에서 세비녜 부인이 엘스티르와 동일한 방식으로, 즉 원인부터 설명하지 않고 우리 지각이 받아들이는 순서에 따라 사물을 제시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미 그날 오후 객차 안에서 달빛을 묘사한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그 점을 깨달았다. “나는 유혹에 견디지 못했단다. 그래서 필요도 없는 모자와 카자크19)를 걸치고는 내 방 공기만큼이나 그렇게도 상쾌한 산책로로 나갔단다. 거기서 난 수많은 환영들을 발견했다. 흰옷과 검은 옷을 입은 수도사들, 회색과 흰색 옷을 입은 몇몇 수녀들, 땅 위에 여기저기 던져진 천 조각들, 나무에 기댄 채 똑바로 매장된 사람들 등등.”20) 나중에 내가 『세비녜 부인 서간문』에 있어서의 도스토옙스키적 양상이라고 부르게 될 그 점에 난 매혹되었다.(세비녜 부인은 도스토옙스키가 인물을 묘사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풍경을 묘사한 게 아닐까?)

저녁에 할머니 친구분 댁에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 몇 시간 지낸 후 다시 혼자 기차를 탔을 때, 난 다가올 밤이 그렇게 힘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졸음이 오는 상태가 오히려 날 깨어 있게 하는 그런 감옥 같은 방에서 보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내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활동으로 날 둘러싸며 동반하는 기차의 온갖 움직임은 내가 잠 못 이루면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소리로 날 잠들게 해 주었고, 또 나는 그 소리를 콩브레의 종소리마냥 이런저런 리듬과 짝을 지웠다.(내 충동적인 움직임에 따라 처음에는 네 개의 균등한 십육분음표로 들렸다가 다음에는 십육분음표가 사분음표에 격렬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내 불면증에 반대되는 압력을 행사하면서 불면증의 원심력을 약화해 내 몸의 균형을 유지해 주었고, 그런 반대 압력 위에서 내 부동 자세와 오래지 않아 내 수면은, 조류와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졸음 속에서 이리저리 떠돌다가 바닷속에서 잠든 물고기 또는 단지 폭풍우의 도움으로 날개를 펼치는 어느 독수리의 화신이라도 된 듯, 뭔가 강력한 힘이 주의 깊게 보호하는 가운데 휴식을 취할 때와 같은 그런 상쾌한 인상에 이끌려 가는 듯 느꼈다.

해돋이는 삶은 달걀이나 그림이 든 신문, 카드놀이, 또는 배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강물처럼 긴 여행의 동반자다. 어느 순간 내가 잠이 들었는지 확인해 보려고 조금 전 내 정신을 가득 채웠던 생각들을 열거해 보려 했을 때(또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 불확실성조차 긍정적인 대답을 주려 했을 때) 나는 차창 너머 작은 검은 숲 위로 부드러운 솜털 같은 부분이 장밋빛으로 고정되어 꼼짝하지 않는 깊게 파인 구름을 보았는데, 그 빛을 흡수하여 물들인 날개의 깃털이나 화가의 충동적인 몸짓이 칠해 놓은 파스텔처럼 변하지 않을 장밋빛이었다. 하지만 난 이 빛깔이 무기력하거나 변덕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필연성이자 삶 자체인 듯 느껴졌다. 이내 이 빛깔 뒤로 빛의 공간이 몰려왔다. 그러자 빛깔은 더욱 선명해졌고 하늘은 살구색으로 변했다.21) 나는 창문에 눈을 붙이면서, 마치 빛깔 자체가 자연의 심오한 삶과 관계된다는 듯 더 잘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선로가 방향을 바꾸면서 기차도 방향을 틀었고, 그러자 아침 경치는 창틀 안에서 달빛 비치는 푸른빛 지붕이 있는 밤의 마을로, 온갖 별이 뿌려진 하늘 아래 어둠의 유백색 진주 빛 때가 낀 빨래터 있는 밤의 마을로 바뀌었다. 내가 분홍빛 하늘의 띠를 잃어버리고 슬퍼했을 때, 그 띠는 다시 반대편 차창을 통해 그러나 이번에는 붉은빛이 되어 나타났고, 선로의 두 번째 모퉁이에서는 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진홍빛을 발하는 변덕스럽고도 아름다운 아침의 그 불연속적이고도 대립되는 단편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화폭에 담기 위해, 이런 단편들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과 연속적인 화폭을 가지기 위해, 이 창문에서 저 창문으로 계속 쫓아다니며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풍경이 가파르고 험해지더니 기차는 두 산 사이에 있는 작은 역 앞에 멈췄다. 골짜기 밑바닥 급류가 흐르는 시냇물 가에 창문이 물에 닿을 듯 말 듯 잠겨 있는 어느 산지기의 집 한 채만이 보였다. 만약 한 존재가 그 고장의 산물이어서, 지난날 메제글리즈 쪽이나 루생빌 숲 속을 혼자 돌아다니면서 내가 그렇게도 나타나 주기를 열망했던 농부 아가씨에게서보다 그 고장 특유의 매력을 더 많이 음미하게 해 주었다면, 그 존재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때 그 집에서 나와 저 떠오르는 해가 비스듬히 비치는 오솔길을 따라 우유 항아리를 들고 역 쪽으로 오는, 내가 본 바로 그 키 큰 소녀였으리라. 높은 산이 다른 세계를 가리는 골짜기에서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은 오로지 잠시 멈추는 기차에 탄 사람들뿐이리라. 그녀는 기차 옆을 따라가면서 잠에서 깨어난 몇몇 승객에게 카페오레를 내밀었다. 아침 햇살이 반사되어 다홍색으로 물든 그녀의 얼굴은 하늘보다 더 분홍빛이었다. 그녀 앞에서 나는, 매번 우리가 아름다움과 행복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때마다 마음속에 다시 생겨나는 그 살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아름다움과 행복은 개별적인 것이건만 우리는 늘 그 사실을 잊고, 이 아름다움과 행복을 우리 마음에 들었던 여러 다른 얼굴들이나 우리가 체험했던 갖가지 기쁨들 사이에서 일종의 평균치를 형성하는 관습적인 표본으로 대체함으로써 무기력하고도 무미건조하며 추상적인 이미지만을 간직한다. 그러나 이 이미지에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물의 성질이, 아름다움과 행복의 고유한 성질이 결핍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삶에 대해 비관적인 판단을 하며, 이 판단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름다움과 행복을 충분히 고려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아름다움과 행복을 없애고 이에 관해 단 하나의 분자도 들어 있지 않은 종합적인 사실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누군가가 새로 나온 ‘좋은 책’에 대해 말하면 어떤 문인은 그 책이 자기가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좋은 책들을 한데 모아 놓은 일종의 합성물일 거라 상상하고 미리부터 권태의 하품을 한다. 그렇지만 좋은 책이란 특별하고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나간 모든 걸작들의 합산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완전히 흡수해도 아직 발견되기에 충분치 않은 그 어떤 것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이유는 바로 책이 이런 합산 밖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기도 전에 싫증부터 냈던 문인도 이런 새로운 작품을 접하면 작품에 묘사된 현실에 흥미를 느낀다. 이처럼 내가 혼자 있을 때 내 상념이 그리던 아름다움의 모델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이 아름다운 소녀는, 즉시로 내게 어떤 종류의 행복에 대한 취향을,(행복에 대한 취향은 순전히 형태, 언제나 특별한 형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녀 곁에서 살면 실현될 듯 보이는 그런 행복에 대한 취향을 주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여전히 ‘습관’의 일시적 중단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우유 파는 아가씨가 이용할 수 있도록 내가 그녀 앞에 내민 것은 생생한 쾌락을 음미할 능력이 있는 나의 존재 전부였다. 평상시 우리는 최소한으로 축소된 존재로 살아간다. 우리 능력의 대부분은 잠들어 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며 다른 능력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습관에 그 능력들이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여행 날 아침, 틀에 박힌 삶이 중단되고 장소와 시간이 바뀌자 이런 능력은 그 존재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방 안에 틀어박혀 살며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 자리를 채우려고 내 모든 능력이 달려와 서로 열심히 경쟁하면서 — 바다 물결처럼 여느 때와는 다른 높이로 똑같이 높아지면서 — 가장 저속한 것에서 가장 고상한 것으로, 호흡이나 식욕, 혈액순환으로부터 감성이나 상상력으로 높아져 갔다. 그 소녀가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고 믿게 하는 이 장소의 야생적인 매력이 그녀의 매력에 덧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녀는 이 장소에 그런 매력을 더했다. 만일 내가 매시간 그 소녀와 함께 지낼 수 있다면, 급류나 소, 기차가 있는 곳까지 함께 가서 항상 곁에 머물 수 있다면, 그녀가 날 안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녀의 생각 속에서 한자리를 차지할 수만 있다면 삶이 정말이지 무척이나 감미로울 것 같았다. 소녀는 내게 시골 생활과 이른 새벽의 매력에 대해 가르쳐 주었으리라. 나는 소녀에게 카페오레를 달라고 손짓했다. 소녀의 주의를 끌 필요가 있었다. 소녀가 날 보지 못해서 난 그녀를 불렀다. 소녀의 커다란 몸 위로 그 얼굴이 얼마나 금빛과 분홍빛으로 빛나던지, 마치 조명을 받은 채색 유리를 통해 보이는 듯했다. 소녀가 왔고 나는 점점 더 크게 보이는 그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얼굴은 우리가 고정할 수 있는, 아주 가까이 당신 곁으로 다가와 눈앞에 보이며, 금빛과 붉은빛으로 당신 눈을 부시게 하는 태양과도 같았다. 그녀는 내게 날카로운 눈길을 던졌지만, 그때 마침 승무원이 출입문을 닫았고 기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역을 떠나 다시 오솔길로 접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날이 환히 밝았다. 여명에서 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내 열광이 이 소녀 탓에 생겼는지, 또는 반대로 그녀 가까이에서 느꼈던 기쁨 대부분이 내 열광으로부터 야기되었는지, 어쨌든 그녀는 내 기쁨과 아주 밀접하게 어우러졌고, 그녀를 다시 보고 싶은 내 욕망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이 흥분 상태가 완전히 가시지 않기를 바라는, 거기에 자기도 모르게 끼어들게 된 존재와 영원히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그런 정신적인 것이었다. 이 상태가 쾌적하게 느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특히 이 상태가 내가 보는 것에 다른 음색을 주고,(팽팽하게 당겨진 현이나 신경의 빠른 진동이 다른 음향이나 다른 안색을 생겨나게 하듯이) 나를 한 명의 배우로서 미지의 세계 속으로, 무한히 흥미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기차가 속도를 내는 동안에도 여전히 내 시야 안에 있던 그 아름다운 소녀는 하나의 경계로 분리된, 내가 아는 삶과는 다른 삶의 일부처럼 보였고, 사물에 의해 깨어난 감각들도 더 이상 이전과 동일한 감각이 아니어서, 이제 거기서 빠져나온다는 사실이 내게는 마치 죽음처럼 생각되었다. 적어도 이 새로운 삶과 연결된 듯 보이는 감미로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이 시골 소녀에게 카페오레를 청하기 위해 역 근처에 사는 것만으로도 족했으리라. 그러나 슬프게도 그녀는 내가 점점 더 속도를 내어 달려가는 저 다른 삶에는 영원히 부재할 것이며, 그래서 내가 체념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날엔가 같은 기차를 타고 같은 역에서 멈추기로 계획을 세워야만 했으리라. 이런 계획은 타산적이고 능동적이며, 실질적이고 기계적이며, 또 게으르고 원심적인 우리 정신의 성향에 약간의 양분을 제공해 준다는 이점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 정신에는, 우리가 받았던 즐거운 인상을 보다 일반적이고 초연한 방식으로 그 자체로서 심화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기꺼이 회피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이 인상을 계속 음미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정신은 이 인상을 미래 속에서 상상하기를 좋아하며, 이 인상을 다시 태어나게 해 줄 환경을 능숙하게 준비하기를 좋아한다. 이런 일은 인상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지만, 우리 마음속에서 그 인상을 다시 만드는 수고를 피하게 하며, 밖에서 새로 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 준다.

베즐레, 샤르트르, 부르주, 보베 등 몇몇 도시명은 그 약칭만으로도 그곳에 있는 주요 성당을 지칭한다.22) 우리가 자주 받아들이는 이런 부분적인 말의 의미는 —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장소인 경우 — 마침내 그 이름 전체를 주조하여, 우리가 그 이름에,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도시의 관념을 집어넣으려 할 때면, 마치 주물처럼 동일한 조각술과 동일한 양식을 부과하면서 일종의 거대한 대성당을 만들어 낸다. 그렇지만 내가 발베크라는 페르시아 풍에 가까운 이름을 읽은 것은 기차역 구내식당 위 하얀색 글자로 쓰인 파란 게시판에서였다. 난 활기차게 역을 나와 성당으로 가는 큰길을 건너서는 다만 성당과 바다를 보겠다는 생각에 모래사장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상대방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내가 있던 곳은 옛 발베크, 즉 ‘발베크 육지’로서 바닷가도 항구도 아니었다. 물론 어부들이 그 기적의 그리스도를 발견한 곳은, 전설에 따르면 바로 바닷속이었으며, 나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성당의 채색 유리가 그 발견을 얘기해 주었다. 성당 중앙 홀과 탑을 만드는 데 사용된 돌도 물론 파도치는 절벽에서 캐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나는 성당 채색 유리창 밑에서 바다가 끝이 날 거라고 상상했는데, 실제로 바다는 이십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발베크 해변’에 있었고, 성당 둥근 지붕 옆에 있는 종탑은, 곡식의 낟알이 쌓이고 새들이 빙빙 도는 노르망디의 험한 절벽과도 같다고 읽은 적이 있어 절벽 밑에서 높이 솟아오르는 파도의 마지막 거품을 받으리라 늘 상상해 왔건만, 두 개의 전차 선로 분기점이 있는 광장에 세워져 있었으며, 종탑 앞 카페에는 금색으로 ‘당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종탑은 집들을 배경으로 뚜렷이 드러났으며, 집의 지붕 사이로는 돛단배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성당은 — 카페와 내가 길을 물어보았던 행인과 내가 되돌아갈 역과 더불어 내 관심 안에 들어온 — 나머지 다른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 이 늦은 오후의 어떤 사건 또는 산물인 양 보였고, 이 시간에 하늘로 부풀어 오른 흐물흐물한 그 둥근 지붕은 집의 벽난로를 적시던 빛과 같은 빛으로 그 껍질을 분홍빛과 금빛으로 녹이면서 무르익게 하는 과일과도 같았다. 그러나 트로카데로23) 박물관에서 모형으로만 보았던 사도상들이 성당 정문 깊숙한 부분의 조각된 성모상 양쪽에서 마치 나에게 인사라도 하듯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오로지 조각상의 영원한 의미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싶었다. 호감 가는 얼굴에 코가 납작한 온화한 모습의 등 굽은 사도상들은, 화창한 날을 찬미하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우리를 마중하려고 앞으로 나온 듯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죽은 자처럼 굳어 있었고, 우리가 그들 주위를 돌 때만 변화를 보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여기구나, 발베크 성당이구나, 자신의 영광스러움을 아는 듯 보이는 이 광장은 발베크 성당을 소유한 세계에서 유일한 장소구나. 이제껏 내가 본 것은 이 성당의 사진과 그 유명한 성당 정문의 사도상들과 성모상의 모형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보는 것은 성당 그 자체이며 조각상 자체다. 바로 이것들이다. 다시 말하면 유일한 것들,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것을 훨씬 능가하는 그 이상의 것이다.

어쩌면 그 이하일지도 모른다. 마치 한 젊은이가 시험 보는 날이나 결투하는 날, 제시된 질문이나 쏜 총알이 자기가 가진, 또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지식이나 용기에 비해 아주 하찮게 여겨지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내 정신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복제품 밖으로 ‘성당 정문의 성모상’을 높이 세우면서 복제품을 위협하는 변전으로부터 격리하여, 설령 복제품이 파괴된다 할지라도 성모상은 온전하게 남아 이상적이고 보편적 가치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토록 수천 번이나 새겨 보았던 조각이 이제 돌이라는 그 고유 속성으로 환원되어 내 팔이 미치는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선거 포스터와 내 지팡이 끝과 경쟁하며, 광장으로 이어져 큰길로 진입하는 부분과 분리되지 않고, 카페와 합승 마차 사무실의 눈길을 피할 수 없어 그 얼굴에 석양빛의 — 그리고 몇 시간 후에는 곧 가로등 불빛의 — 절반을 받고, 어음할인 사무소가 나머지 절반 빛을 받으며, 이 신용 은행 출장소와 동시에 제과점 부엌에서 나오는 악취에 배어 ‘개체’의 폭력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자 그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이 돌 위에 내 이름을 새겨 놓고 싶었다면, 그건 바로 성모상이, 저 유명한 발베크의 성모상이 내가 이제껏 보편적인 삶과 신성불가침의 아름다움을 부여해 온 유일한(슬프게도 단 하나임을 뜻하는) 조각상이었기 때문인데, 이제 그것이 이웃집과 똑같은 그을음으로 때가 잔뜩 낀 몸에서 때를 벗겨 내지도 못한 채로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 모여든 모든 찬미자들에게 내 분필 조각 자국과 내 이름 글자를 함께 전시할 것이었다. 또 끝으로,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욕망해 왔던 불멸의 예술 작품인 성모상은 이제 성당과 함께 내가 그 높이를 재고 주름살을 셀 수 있는 작고 늙은 돌로 된 노파로 바뀌어 있었다. 시간이 흘렀고 역으로 돌아가야 했다. 거기서 할머니와 프랑수아즈를 기다려 함께 ‘발베크 해변’으로 가야 했다. 발베크에 대해 내가 읽은 글과 스완이 한 말을 생각해 보았다. “정말 근사하다네, 시에나24)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지.” 나의 이런 환멸에 대해 난 여러 우발적인 이유들, 즉 그때 좋지 못했던 내 몸 상태나 피로, 사물을 제대로 바라볼 줄 모르는 무능력을 탓하면서, 나를 위해 예전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도시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어쩌면 머지않아 캥페를레의 진주 빛 비 한가운데로, 시원한 물방울 소리 속으로 뚫고 들어갈 것이고, 또 퐁타뱅을 적시던 그 초록빛과 분홍빛 반사광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25) 그러나 발베크로 말하자면, 내가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지금까지 완전히 밀폐한 채로 가두어야 했던 이름을 내가 방긋 열어 놓았다는 듯이, 또 그 이름이 내가 조심성 없이 제공한 이런 출구를 이용해 그때까지 그 안에 살던 모든 이미지들을 내쫓았다는 듯이, 전차며 카페며 광장을 지나가는 행인들이며 할인 은행 지점이 어떤 외부 압박과 압력 공기의 힘에 의해 발베크라는 음절 안으로 밀려와서는, 음절이 그 위로 닫히면서 페르시아 풍 성당 정문을 감싸도록 내버려 두고 또 계속해서 그것들을 음절 안에 가두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발베크 해변’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작은 지방 열차에서 난 할머니와 다시 만났지만 할머니는 혼자였다. 모든 준비를 미리 해 두기 위해 할머니는 프랑수아즈를 먼저 보내셨는데(그러나 잘못된 정보를 주셔서 그만 프랑수아즈를 틀린 방향으로 가게 하는 데만 성공하셨다.) 지금쯤 프랑수아즈는 그런 줄도 모르고 낭트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아마도 보르도에 도착해서야 깨어날 것이었다. 사라져 가는 석양빛과 오후의 끈질긴 더위로 가득한(아! 슬프게도 오후의 더위가 할머니를 얼마나 피로하게 했던지 난 석양빛 덕분에 할머니의 얼굴에서 뚜렷이 그걸 보고 말았다.) 객차에 앉자마자 할머니는 내게 “그래 발베크는?” 하고 미소를 지으며 물으셨다. 내가 느꼈으리라 생각되는 그 커다란 기쁨에 대한 열렬한 기대로 그 미소가 얼마나 환하게 빛났던지 나는 감히 할머니께 실망했단 얘기를 단번에 털어놓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내 정신이 찾았던 인상은 내 몸이 익숙해져야 할 장소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난 아직도 한 시간 이상이나 걸릴 여정의 끝에 가서야 만날 발베크 호텔 지배인을 상상해 보려고 애썼다. 그에게 난 지금 존재하지 않는 인간일 테지만 할머니보다는 멋진 동반자, 틀림없이 숙박료를 깎아 달라고 할 할머니보다는 멋진 사람을 동반한 자로 소개되고 싶었다. 지배인은 내게 오만한 자의 모습으로 분명히 각인되었지만 그 윤곽은 매우 불분명했다.

매번 작은 열차가 ‘발베크 해변’에 이르는 정거장들 중 하나에 멈출 때마다 내게는 이름 자체가(앵카르빌, 마르쿠빌, 도빌, 퐁타쿨뢰브르, 아랑부빌, 생마르르비외, 에르몽빌, 멘빌)26) 낯설어서, 만약 그 이름들을 책에서 읽었다면 콩브레 근교 몇몇 마을 이름과 연관 지었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음악가의 귀에는 여러 동일한 음을 가지고 물질적으로 구성된 두 모티프가, 화음이나 오케스트라의 색깔이 달라지면서 그 유사성을 잃을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래와 지나치게 바람이 잘 통하는 텅 빈 공간, 소금으로 만들어진 이 쓸쓸한 이름들 위로 ‘빌(ville)’이란 어미가 ‘비둘기 날다(Pigeon-vole)’라는 놀이의 ‘날다(vole)’처럼 빠져나오는데도, 이 이름들은 루생빌이나 마르탱빌 같은 이름들을 전혀 연상시키지 않았다.27) 그 이유는 내가 이런 고장 이름들을 콩브레 ‘식당’의 식탁에서 고모할머니가 발음하는 걸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과일 잼 맛, 장작불 냄새, 베르고트가 쓴 책 종이 냄새, 건너편 집 사암토 빛깔 같은 추출물이 섞인 어떤 어두운 대지의 매력만이 담겨 있는 그곳에서 말이다. 오늘날까지도 이 이름들은, 여전히 내 기억 밑바닥에서 가스 거품마냥 솟아오를 때면, 표면에 도달하기에 앞서 통과해야 하는 여러 다른 환경들의 포개진 단층 너머로 여전히 그 특별한 효능을 간직하고 있다.

모래언덕 높은 곳에서 바다를 멀리 내려다보는, 또는 이제 막 도착한 호텔 방의 긴 의자마냥 무례하고도 강렬한 초록빛 언덕 기슭에 이미 어둠에 적응한 몇몇 별장들로 구성되어 테니스 코트까지 뻗어 나간, 또 때로는 서늘하고도 공허하며 불안한 바람에 깃발을 펄럭거리는 카지노까지 있는 이 작은 휴양지는, 내게 처음으로 그들의 친숙한 손님들을, 그러나 겉모습만 보여 주었고 — 흰 모자를 쓰고 테니스 치는 사람들, 자기 집 타마레스크 나무와 장미꽃 옆에 사는 역장,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삶의 일상적인 자취를 그리면서 사냥개를 부르지만 늑장 부리는 개 탓에 등불이 켜진 후에야 별장으로 돌아가는 ‘납작한 밀짚모자’를 쓴 부인 — 또 그 일상적이고도 친숙한 모습이, 이상하게도 오히려 날 무시하는 듯 보여 낯설기만 한 내 시선과 향수에 젖은 마음을 무척이나 아프게 했다. 그러나 우리가 드디어 ‘발베크’28) 그랜드 호텔의 로비에 상륙해서 그 거대한 인조대리석 계단 앞에 섰을 때, 내 고통은 얼마나 격심했던지! 그동안 할머니는 우리가 함께 살게 될 낯선 사람들의 적의나 경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배인과 호텔 ‘방 값’을 흥정했다. 지배인은 얼굴이나 목소리가 상처투성이인(얼굴에는 수많은 여드름 자국이 있었고, 목소리에는 먼 이국 태생과 유년 시절을 여러 나라에서 보낸 데서 온 상이한 억양이 배어 있었다.) 키 작고 뚱뚱한 땅딸보였는데, 사교계 인사가 입는 연미복 차림에 심리학자 같은 눈길로 ‘합승 마차’가 도착할 때마다 보통 대귀족들은 불평분자로, 호텔 도적들은 대귀족으로 혼동했다! 자신의 월급이 500프랑도 안 된다는 사실은 아마도 잊은 듯, 그는 500프랑, 아니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25루이’ 정도를 ‘상당한 금액’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이 그랜드 호텔에 머무를 자격이 없는 파리아족에나 속한다고 여겼다.29) 사실 이 고급 호텔에서 그다지 비싼 값을 내지 않고도 지배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들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인색함 때문에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배인이 확신하는 경우였다. 사실 인색함이란 사회적 명성에는 조금도 누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인색함은 악덕이며 따라서 어떤 사회적 신분에서나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분,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신분이 높다는 걸 함축하는 듯 보이는 표지야말로 유일하게 지배인의 관심을 끌었다. 이를테면 호텔 홀에 들어서면서 모자를 벗지 않는다거나, 무릎 아래로 끈을 매는 골프 반바지나 허리가 꼭 끼는 반코트를 입거나, 납작한 모로코 가죽 담배 케이스에서 자줏빛과 금빛 띠를 두른 여송연을 꺼내는 모습이 그러했다.(아! 슬프게도 내게는 이런 이점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사업 이야기에 세련된 표현, 하지만 왜곡된 표현을 덧칠했다.

지배인이 모자도 벗지 않고 휘파람을 불며 듣는데도 할머니가 화도 내지 않고 약간은 가식적인 어조로 “그럼 얼만가요? 내 적은 예산으로는 너무 비싸군요.” 하고 물어보시는 소릴 나는 들었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서 나는 내 깊은 곳으로 도피했고, 영원한 상념의 세계로 이주하여 나로부터 어떤 것도, 어떤 살아 있음의 흔적도 내 몸 표면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 마치 상처를 입으면 생리 기능의 억제로 죽은 시늉을 하는 몇몇 동물들처럼 무감각한 상태가 되려고 — 평상시 습관이 완전히 결핍된 이곳에서 지나치게 괴로워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런 습관의 결핍은, 같은 순간에 지배인이 존경을 표하며 뒤따르는 강아지에게조차 친밀하게 대하는 한 우아한 귀부인이나, 모자에 깃털을 꽂고 홀에 들어서면서 “편지 있어요?”라고 묻는 잔뜩 멋 부린 젊은이, 인조대리석 계단을 올라가면서 자기 ‘집(home)’에 들어가는 듯한 이들이 보여 주는 습관적인 태도를 보는 동안 더욱 예민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미노스와 아이아코스 또 라마단토스30)의 시선이,(나는 그 시선 속으로, 마치 아무것도 더 이상 보호해 주지 않는 미지의 인간에게 내던지듯 내 벌거벗은 영혼을 내던졌다.) 아마도 ‘접대’ 기술에 정통하지 않을 듯한 ‘접대 담당 책임자’란 직함을 가진 신사들로부터 준엄하게 내게로 떨어졌다. 조금 더 멀리 닫힌 유리문 뒤에서는 사람들이 독서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들을 묘사하려면 조용히 그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선택된 사람들의 행복과, 할머니께서 지금 내가 느끼는 이런 인상에는 아랑곳없이 그곳에 들어가 책을 읽으라고 명령할 경우의 공포를 생각하면서, 이런 두 가지 감정에 따라 단테가 ‘지옥과 천국’에 부여한 색깔들을 차례로 택해야 했을 것이다.

내 고독의 인상은 잠시 후 더 커졌다. 내가 할머니께 몸이 좋지 않으니 파리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놓자 할머니는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않으셨지만, 우리가 그곳을 떠나든 머무르든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야겠다고 말씀하셨다.(프랑수아즈가 내 소지품을 전부 다 가져갔기 때문에, 다 나를 위한 물건들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할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밖에서 서성거리려고 나갔는데, 군중으로 혼잡한 거리는 방과 같은 더위를 유지했고, 이발소와 제과점 문은 아직 열려 있었으며, 제과점 안에서는 단골들이 뒤게트루앵31) 동상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군중의 모습은 외과 의사 대기실에서 ‘화보’를 뒤적이던 환자가 군중 사진을 보고 느끼는 그런 정도의 기쁨을 주었다. 이런 거리 산책을, 지배인은 어떻게 기분 전환이 되리라고 내게 권할 수 있었으며, 또 지극한 고통의 장소인 이 새로운 숙소가 어떻게 호텔 안내 책자가 말하듯이 어떤 이들에게 “지극히 감미로운 체류”가 될 수 있는지, 난 나와 다른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물론 과장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호텔 책자는 모든 손님들에게 호소하며 그들 취향에 영합했다. 이 책자는 손님들을 발베크 그랜드 호텔로 불러들이기 위해 “진미”와 “카지노 정원이 보이는 환상적인 전망”, “유행의 여왕이 내린 칙령이니 이를 어기는 자는 당장 교양이 없는 자로 간주될지니 누구든 훌륭한 교육을 받은 자는 이런 위험에 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구를 내세웠다.

할머니를 필요로 하는 마음은 내가 할머니께 실망을 안겨 드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더욱 커졌다. 할머니는 내가 이 정도의 피로에도 힘들어하는 걸 보고 어떤 여행도 나를 이롭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틀림없이 낙담했으리라. 나는 호텔로 돌아가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지배인이 직접 와서 버튼을 눌러 주었다. 그러자 ‘리프트’32)라고 불리는 아직은 내게 생소한 인물이(노르망디 성당이라면 천창이 있을 법한 호텔 가장 높은 곳의 자기 방에서, 마치 카메라 렌즈 뒤의 사진사나 파이프오르간 연주자처럼 기다리다가) 우리에 갇혀 길든 부지런한 다람쥐마냥 민첩하게 나를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기둥을 따라 다시 미끄러지듯 올라가면서 나를 이 상업용 건물 중앙 홀에 위치한 둥근 지붕 쪽으로 끌고 갔다. 층계마다 작은 연결 계단이 양쪽에 있었고, 그 사이로 복도가 부채처럼 펼쳐졌으며, 기다란 침대 베개를 든 하녀가 복도를 지나갔다. 석양의 어둠으로 흐릿해진 그녀의 얼굴에 내 꿈속의 가장 정열적인 얼굴을 포개 보았지만, 나를 돌아다보는 그 시선에서 나는 내 허무의 공포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쉴 새 없이 올라가는 동안 층마다 하나뿐인 화장실 유리창 불빛이 단 하나의 수직선으로 이어지는 그 시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명암의 신비를 침묵 속에 통과하면서, 나는 내가 느끼는 지극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내 여행의 기술자이자 포로 생활의 동반자인 젊은 오르간 연주자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는 끊임없이 악기의 스톱을 조작하고 파이프를 누르면서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었다.33) 내가 그만큼 장소를 차지하고 수고를 끼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또 그의 기술을 행사하는 데 혹시 방해가 되지 않았는지 묻고 나서는, 그의 현란한 재주를 칭찬하기 위해 호기심 이상의 몸짓을 보이며 그에 대해 내가 느끼는 호감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상대방은 내 말에 놀랐는지, 일에 열중한 탓이었는지, 아니면 예의를 지키려 했는지, 귀가 멀었는지, 장소를 고려해서인지, 위험이 두려웠는지, 아니면 머리가 아둔해서인지, 또는 지배인의 명령 때문이었는지,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하찮은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에 우리와 관련해서 달라지는 인물의 위상만큼 외부 현실에 대한 인상을 각인해 주는 것도 없다. 나는 그날 오후가 끝날 무렵 발베크행 작은 기차를 탔던 바로 그 사람이었고 내 마음에도 같은 영혼이 있었다. 그런데 영혼 속 그 장소, 오후 6시에는, 아직 지배인과 고급 호텔과 그 종업원들을 상상할 수 없는 불가능성과 더불어 내가 도착할 시각에 대한 막연하고도 불안한 기대만이 있었는데, 지금 이 장소에는 국제적 인물인 지배인의 얼굴에 난 여드름 짠 자국과(그는 원래 루마니아 태생으로 모나코인으로 귀화했으며, 틀린 줄도 모르고 자기 딴에는 품위 있다고 생각되는 표현들을 늘 사용했는데, 이를테면 ‘루마니아의 독창성(originalité roumaine)’34)이란 표현이 그랬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그의 몸짓이며 엘리베이터 보이며, 말하자면 그랜드 호텔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로부터 나온 부인할 수도, 파기할 수도 없는, 그리고 실현된 모든 것이 그러하듯 메마른 꼭두각시 같은 인물들이 마치 기둥을 장식하는 프리즈처럼 나란히 놓여 있었다.35) 그러나 나의 참여 없이 이루어진 이 변화는, 적어도 그 일이 내 밖에서 일어났다는 걸 증명해 주었는데, — 그 자체로는 별 흥미가 없는 — 이는 마치 해를 앞쪽에서 보면서 출발한 여행자가 해가 뒤쪽에 있는 걸 보고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확인하는 것과도 같았다. 난 피로로 기진맥진했고, 열이 났고, 자고 싶었지만 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잠시나마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그래 봐야 소용없을 일이었다. 신체적인 몸이 아니라, 그저 감각들의 총체인 지각하는 몸으로는 휴식을 취할 수 없었을 테니까. 또 우리 몸을 둘러싼 낯선 물건들이 지속적으로 경계를 하며 방어 태세를 취하도록 우리 지각에 강요하면서, 내 시각이나 청각, 내 모든 감각들을, 마치 우리 안에 갇혀 설 수도 앉을 수도 없었던 라 발뤼36) 추기경처럼 그토록 축소되고 불편한 자세로(설령 내가 다리를 뻗는다 해도) 만들었을 테니까. 우리 주의력이 방 안에 물건이 있다는 걸 의식하게 해 준다면, 우리 습관은 이런 물건의 존재에 대해 무감각해지도록 만들고 대신 우리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그런데 이런 자리가 발베크의 내 방에는(명목상의 내 방에는) 없었다. 그 방은 내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했으며, 내가 그 물건들에 던진 것과 똑같은 경계의 눈길을 되돌려 보내면서 내 존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그들의 일상을 방해한다는 걸 증명했다. 추시계만 해도 — 집에서는 한 주에 몇 초 동안, 내가 깊은 명상에서 깨어났을 때에만 들렸는데 — 여기서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더구나 내 마음을 틀림없이 상하게 할 이야기를 계속 떠들어 댔고, 커다란 보랏빛 커튼은 제삼자가 있는 게 성가시다는 걸 보여 주려고 마치 어깨를 으쓱하는 이와 흡사한 태도를 취하면서 대답도 없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보랏빛 커튼은 천장이 아주 높은 이 방에 거의 역사적인 성격을 부여하여, 기즈 공작의 암살이나 훗날 쿡 여행사 안내원이 인솔하는 관광객들의 방문에 어울리는 방으로 만들었을지는 모르지만,37) 내 수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벽을 따라 쭉 늘어선 유리문이 달린 작은 책장들의 존재와 특히 방 한구석에 가로로 놓인 다리 달린 커다란 거울이 날 고통스럽게 했는데, 그 방을 떠나기 전에는 휴식을 취하는 게 거의 불가능할 듯 보였다. 매 순간 나는 시선을 들어 올려 — 파리에 있는 내 방 물건들은 나 자신의 눈동자와 마찬가지로 날 방해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물건들이 이미 내 기관의 부속품이자 나 자신의 확장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할머니가 나를 위해 일부러 선택한 호텔 꼭대기에 있는 전망 좋은 방의 높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쇠풀 냄새가 우리가 보고 듣는 지대보다 더 내밀한 지대, 냄새의 성질을 시험하는 지대, 말하자면 자아의 거의 내부까지 공격하며 나를 꼼짝 못하게 했고, 난 겁에 질린 채 코를 킁킁거리며 끊임없이 반격을 해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이 그저 지칠 뿐이었다.38) 날 포위한 적들로부터 위협을 받으며 몸에 난 열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외에 세계도 방도 육체도 가지지 못한 난 혼자였고 죽고 싶었다. 그때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억압되었던 내 마음은 이내 무한의 공간을 향해 열리면서 확장되었다.

할머니는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아플 때면 항상 퍼컬린39)으로 만든 실내복을 입으셨는데(그 옷을 입으면 편하기 때문이라며 항상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이기적인 이유를 둘러대셨다.) 그 옷은 우리를 돌보고 우리 옆에서 밤을 새기 위해 하녀나 간병인이 입는 작업복 또는 수녀복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의 보살핌과 친절함 또는 미덕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고마움은 우리가 그들에게서 어느 한 사람에 불과하며, 그래서 혼자 있다는 느낌, 자기 생각이나 삶에 대한 욕망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데 반해,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면 내 마음속에 있는 슬픔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 슬픔이 보다 큰 연민의 정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또 나와 관계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내 근심이나 소망이 할머니 마음속에서 나 자신의 소망보다 더 강렬하게 내 생명을 보존하고 성장하고 싶은 소망으로 떠받쳐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내 생각이 내 정신에서 할머니의 정신으로, 환경이나 인격의 변화 없이 옮겨 갔으므로 할머니의 마음속에서 어떤 빗나감도 없이 연장되리라는 사실도 잘 알았다. 그리고 —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맬 때, 눈에 보이는 쪽이 손을 움직이는 쪽과 다른 편에 비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누군가처럼, 또는 벌레가 춤추며 날아가는 그림자를 땅에서 쫓는 개처럼 — 육체의 겉모습에 속은 나는, 마치 영혼을 직접적으로 지각하지 못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자주 속듯이, 할머니 품 안에 몸을 던졌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할머니가 열어 주는 그 넓은 마음에 이를 수 있다는 듯 할머니 얼굴에 내 입술을 내밀었다. 이렇게 할머니의 뺨과 이마에 입술을 대고 있으면 아주 유익하고도 영양이 풍부한 뭔가를 길어 올리는 느낌이 들어 나는 젖 빠는 아이처럼 꼼짝도 않고 그 진지하고도 평온한 식탐을 간직했다.

그리고 난 그 열렬하며 고요하고 아름다운 구름마냥 뚜렷이 드러난 할머니의 커다란 얼굴을, 그 뒤로 애정이 빛을 발하는 게 느껴지는 얼굴을 지칠 줄 모르고 바라보았다. 무엇이든 할머니의 느낌을 조금이라도, 아무리 적다 해도 받기만 하면, 그게 뭐든 할머니와 관계되는 것이기만 하면, 그것은 즉시 영적이고 성스러운 것이 되었다. 아직은 흰머리가 많지 않은 할머니의 아름다운 머리칼을, 난 마치 할머니의 선한 마음을 애무하듯 그렇게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손으로 쓰다듬었다. 할머니는 내 수고를 하나라도 덜어 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히 기뻐하셨고, 또 내 피곤한 사지가 꼼짝 않고 조용히 있을 때에도 할머니가 침대에 누운 나를 도와 장화를 벗겨 주면서 큰 기쁨을 느낀다는 걸 알았으므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말리면서 나 스스로 옷을 벗으려는 몸짓을 하자 할머니는 내게 애원하는 눈길로 웃옷과 반장화 첫 번째 단추에 댔던 내 손을 멈추게 했다.

“제발, 내가 하게 해 다오. 너는 이 일이 이 할미한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모른단다. 그리고 특히 오늘 밤, 필요한 게 있으면 잊지 말고 벽을 두드리거라. 내 침대도 이 침대와 같은 쪽에 붙어 있고 벽도 아주 얇으니. 지금이라도 곧 침대에 눕자마자 한번 해 보렴. 우리가 잘 이해했는지 알아보게.”

사실 난 그날 밤 세 번 노크를 했다. 일주일 후 몸이 아프면서는 며칠 동안 매일 아침 이 노크를 반복했는데, 할머니가 이른 시간에 우유를 주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머니가 깨어난 기척을 들었다고 생각되면 — 할머니가 우유를 주고 나서 바로 주무실 수 있도록 — 수줍은 듯 조그맣게 그래도 알아들을 수는 있게 세 번 노크했다. 혹시 할머니가 주무시는데도 내가 착각해서 할머니를 깨우는 게 아닌지 두려웠고, 또 할머니가 처음에 알아듣지 못한 신호를 계속해서 기다릴까 봐 두려워 감히 다시는 노크를 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노크를 하자마자 세 번의 노크 소리가, 보다 침착한 권위를 띤 다른 어조의 노크 소리가, 두 번에 걸쳐 보다 분명하게 되풀이되었고, 또 그 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흥분하지 말거라. 소리 들었다. 곧 그곳으로 가마.” 그러고는 이내 할머니가 오셨다. 난 할머니가 내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봐, 또는 옆방에서 두드린 걸로 착각했을까 봐 걱정했다고 말했고, 그러면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셨다.

“내 귀여운 손주의 노크 소리를 다른 것과 혼동할 리가 있나! 아마 수천 개의 소리가 들려도 할머니는 구별할 수 있을걸! 그렇게도 바보 같고, 열에 들뜨고, 날 깨우지나 않을까, 내가 알아듣지 못하면 어떡하나, 그렇게도 애태우는 녀석이 이 세상에 또 있을라고? 사람들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듣고도 금세 자기 생쥐라는 걸 알아차리지. 특히 이 할미의 것처럼 단 하나뿐인 투정 부리는 생쥐인 경우에는 더더구나 그렇단다. 난 벌써 조금 전부터 네가 망설이며 침대에서 뒤척거리며 온갖 궁리를 하는 걸 다 듣고 있었단다.”

할머니가 덧창을 열었다. 호텔 앞에 불쑥 나온 별관 지붕 위에는, 아직 잠들어 있는 도시를 깨우지 않으려고 아침 일찍 작업을 시작해서 조용히 일을 마친, 이런 도시의 부동성으로 더욱 민첩해 보이는 지붕 잇는 일꾼마냥, 햇살이 벌써 자리 잡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창문까지 갈 필요가 없도록 시각과 날씨를 알려 주셨고, 바다에 안개가 꼈으며 빵 가게가 벌써 문을 열었고, 들리는 마차 소리가 어떤지, 다시 말해 하루의 서막을 알리는 모든 사소한 이야기들을,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 미사의 ‘입장 기도’를, 우리 두 사람에게만 속하는 삶의 작은 편린들을 말씀해 주셨다. 이 이야기들을 나중에 프랑수아즈나 낯선 사람들에게 다시 들려주면서, 이를테면 오늘 새벽 6시에는 칼로 자를 듯한 짙은 안개가 꼈었다고, 습득한 지식이 아니라 나 혼자만이 받은 애정의 표시를 자랑할 것이었다. 부드러운 아침이 교향곡처럼 내가 두드리는 세 번의 노크 소리에 운율을 맞춘 대화로 열렸고, 애정과 기쁨이 스며든 칸막이벽은 조화롭고도 비물질적인 것이 되어, 천사처럼 노래하며 열렬히 기다려 온 연이은 세 번의 노크 소리로 두 차례 되풀이되면서, 할머니의 모든 영혼과 할머니가 오신다는 약속을 수태고지의 환희와 음악의 정확성으로 옮길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도착한 이 첫날 밤, 나는 할머니가 방을 나가시자 파리에서 집을 떠나는 순간 그랬던 것처럼 다시 괴로움에 빠져들었다. 어쩌면 내가 느낀 이 공포는, — 다른 많은 사람들도 느끼겠지만 — 낯선 방에서 잔다는 이 공포는, 어쩌면 현재 우리 삶의 가장 좋은 부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우리 정신이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 나타나는 저 커다란 절망적인 거부, 그런 거부의 가장 소박하고도 막연하며 생리적이고 거의 무의식적인 형태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 거부는 우리 부모님께서 언젠가는 돌아가실 것이며, 삶의 불가피함이 나와 질베르트를 멀리 떨어져 살게 할 것이며, 또는 그저 친구들도 다시 만나지 못하는 고장에서 영구히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느껴지는 공포의 맨 밑바닥에 놓여 있었다. 이 거부는 또한 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야 할 때면, 또는 베르고트가 그의 책에서 약속한 사후 삶을 생각할 때면 느껴지는 어려움의 밑바닥에 놓여 있었다. 나는 이런 사후의 삶 속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관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내 추억이나 내 결점, 내 성격 들을 가져갈 수 없으며, 또 나를 위해서도 이런 것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무나 영원을 원치 않았다.

스완이 파리에서, 특히 내가 괴로워했을 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자네는 오세아니아 주의 아름다운 섬으로 떠나야 하네, 그러면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걸세.” 그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그러면 따님을 보지 못할 텐데요. 따님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물과 사람 들 사이에서 살아야 할 텐데요.” 하지만 내 이성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넌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텐데.’ 왜냐하면 내 이성은 습관이 — 이제 이 낯선 숙소를 좋아하게 하고, 거울 위치와 커튼 빛깔을 바꾸고, 추시계를 멈추게 하는 임무를 담당할 — 처음엔 우리 마음에 들지 않던 동반자들을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그들 얼굴에 다른 형태를 주고, 그들 목소리에 호감을 느끼게 하고, 그들 마음의 성향을 변하게 하는 임무를 맡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장소와 사람에 대한 이런 새로운 우정은 옛 우정의 망각을 바탕으로 짜인다. 하지만 내가 영원히 사람들과 헤어져 그들에 대한 추억마저 잊어버리는 그런 삶의 전망을 별 두려움 없이 예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내 이성이었고, 또 이 이성이 나를 위로하려는 듯 내 마음에 망각의 약속을 제공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절망감만을 부추겼다. 이별이 드디어 완성될 때, 우리 마음은 습관이 가져다주는 진정 효과를 틀림없이 느낄 테지만, 그때까지는 계속 괴로워하리라. 또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오늘 가장 소중한 기쁨을 느끼는 이들에 대해, 그들의 모습도 보지 못하고 대화를 나눌 기회도 박탈당할지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결핍에서 연유하는 고통에, 현재 우리에게 보다 잔인하게 느껴지는 고통, 즉 우리가 현재 느끼는 고통은 더 이상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으며 또 그 고통에 무관심해지리라는 생각이 덧붙으면서, 이 두려움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져 간다. 왜냐하면 그때 가면 우리 자아는 변할 것이며, 더 이상 우리 주위에는 우리 부모님이나 정부, 친구들의 매력도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우리 애정도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마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애정도 그때 가면 우리 마음에서 송두리째 뽑혀 나가, 현재는 끔찍하게만 생각될 그들과 헤어진 삶을 오히려 즐겁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 자신의 진정한 죽음이다. 물론 이 죽음 뒤에는 부활이 따르겠지만, 이 부활은 다른 자아로의 부활이므로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옛 자아의 부분들은 이 새로운 자아를 사랑하는 데 절대 도달할 수 없다. 놀라서 거부하는 것은 — 방 크기나 분위기에 대한 막연한 애착 같은 아주 사소한 요소라 할지라도 — 바로 이런 옛 자아의 부분들이며, 우리는 이런 거부의 몸짓에서,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은밀하고도 부분적이며 명백하고도 진정한 저항을, 단편적이고 연속적인 죽음에 대한 절망적이고도 일상적인 긴 저항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모든 삶의 여정 속에 슬그머니 끼어든 이 죽음은 매 순간 우리로부터 우리 자신의 조각들을 떨어져 나가게 하지만, 그 죽어 가는 조각들 위에는 새로운 세포들이 증식한다. 그리고 나처럼 예민한 사람이 — 다시 말하면 그 중개자인 신경조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여 곧 사라져 갈 자아의 가장 보잘것없는 요소로부터 나오는 신음 소리를 의식에 이르는 도중에 막지 못하고, 반대로 피로에 지친 무한히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만 뚜렷이 들리도록 내버려 두는 — 지나치게 높아 낯설기만 한 천장 아래서 느끼는 이 불안한 공포감은, 내 몸속에 아직 남아 있는 그 낮고도 친숙한 천장에 대한 우정의 항변이었다. 아마도 언젠가는 이런 우정도 사라지고, 다른 우정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리라.(그때 죽음이, 그리고 다음에는 새로운 삶이, ‘습관’이라는 이름으로 그 이중 작업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이 우정은 자신이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매일 저녁 괴로워할 것이며, 특히 이 첫날 저녁에는 이미 실현된 미래 앞에서 자신이 있을 자리를 발견하지 못한 채 저항했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딴 데로 돌릴 수 없었던 내 시선이 그 접근하기 어려운 천장에 닿을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내 가슴을 찢어 놓았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 종업원이 나를 깨우러 오고 더운 물을 가져다준 후 세수를 하고 나서 필요한 물건을 찾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 봐야 소용없을 정도로 뒤죽박죽인 가방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만 꺼내는 동안, 벌써 점심 식사와 산책의 즐거움을 생각하면서, 또 방 창문과 책장 모든 유리문을 통해 마치 선실의 둥근 유리창을 통해 보듯 그 황량하고도 그늘 없는 바다, 그렇지만 바다 넓이 절반에 가느다랗고 움직이는 선 하나로 그어진 부분이 그늘져 보이는 바다를 보면서, 또 점프대 위에 올라간 사람들마냥 파도가 잇따라 솟아오르는 모습을 시선으로 좇으면서 난 얼마나 큰 기쁨을 느꼈던가! 그리고 매번 호텔 이름이 쓰인 빳빳하게 풀 먹인 수건을 손에 들고 얼굴을 닦아 보려 하지만 잘 닦이지 않을 때마다, 난 창문으로 다가가 그 광대하고도 눈부신 산악 지대의 서커스로, 여기저기 갈고닦은 반투명 에메랄드 광석이 물결치는 눈 덮인 산꼭대기로 시선을 던졌는데, 물결은 잔잔하면서도 세차게 잔뜩 찌푸린 사자의 형상을 만들어 내며 위로 높이 치솟아 올랐다 이내 부서지며 흘러내렸고, 태양은 그 경사진 면에 얼굴 없는 익명의 미소를 덧붙였다. 마치 승합마차 차창에 기대어, 보고 싶은 산맥이 밤사이에 가까워졌는지 혹은 지나쳐 버렸는지를 확인하려고 하다 잠들어 버리는 나그네처럼 매일 아침 나는 창문에 기대었는데 — 이 창문에서 바다의 언덕은 뒤로 물러났다 춤을 추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으며 멀리서 보이는 첫 파동은 토스카나의 프리미티프40) 그림 배경에 나오는 빙하처럼 투명하고도 어렴풋하며 푸르스름한 원경 속에 비치는 모래사장 맨 끝머리에 지나지 않았다. 때로는 태양이 내 바로 옆 초록빛 물결 위에서 웃고 있었는데, 그 초록빛은 땅의 물기보다는 오히려 빛의 액체 같은 유동성을 머금은 듯, 알프스 산 초원에(태양이 거인처럼 여기저기 드러누웠다 즐거운 듯 불규칙하게 껑충껑충 뛰면서 비탈길을 내려오는 산에) 보존된 초록빛처럼 그렇게도 부드러웠다. 게다가 바닷가와 물결이 빛을 통과하고 축적하기 위해 나머지 다른 요소들 한복판에 파 놓은 이 빈틈 사이로 우리 눈이 좇는 것도 빛이요, 빛이 오는 방향에 따라 바다의 높낮이를 바꾸고 위치를 정하는 것도 바로 빛이었다. 조명의 다양성은 여행 중 우리가 오랫동안 실제로 답사하는 거리와 마찬가지로 장소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또 우리 앞에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는 도달하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기도 한다. 태양이 호텔 뒤쪽에서 솟아올라 내 앞에 모래톱을 드러내며 바다의 첫 번째 지맥까지 조명하는 아침이면 바다의 또 다른 사면이 나타나는 듯했고, 또 구불구불한 빛의 길을 걸어가면서 시간의 기복에 따른 풍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가로질러 부동의 다채로운 여행을 계속하도록 부추기는 듯했다. 그리고 이 첫날 아침부터 태양은 내게 미소를 머금은 손가락으로 멀리, 어떤 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바다의 그 푸른 꼭대기들을 가리켰고, 물마루와 눈사태로 울려 퍼지는 혼돈의 표면에서 최상의 산책으로 얼이 빠진 태양은, 바람을 피하려고 내 방에 들어와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휴식을 취하며 젖은 세면대와 열린 가방 안으로 풍요로운 빛을 뿌려 놓아, 바로 그 찬란함과 어울리지 않는 사치로 무질서의 인상을 더했다. 아! 슬프게도, 한 시간 후에는 커다란 식당에서 —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하며 레몬을 담은 가죽 호리병에서 금빛 레몬즙을 몇 방울 가자미 위에 뿌렸지만, 이내 접시에는 깃털처럼 꼬불꼬불한, 고대의 키타라41)마냥 울리는 생선 가시만이 남았다. — 투명하지만 닫혀 있어 활력적인 바닷바람을 느끼지 못해 할머니에게 잔인하게만 보였던 유리창은 진열창처럼 환히 보이는 바닷가와 우리를 갈라놓았고, 그 안으로 하늘 전체가 다 들어와 하늘의 푸른빛은 유리창 빛깔로, 하늘의 흰 구름은 유리의 흠집으로 보였다. 나는 보들레르가 말하는 “방파제에 앉아 있는 듯”, 또는 “규방” 깊숙이 있는 듯 느껴져 그의 “바다에 빛나는 태양이”42) — 떨리는 황금빛 화살처럼 단조롭고도 표면적인 저녁 광선과는 아주 다른 — 바로 이 순간 바다를 토파즈마냥 태우고 맥주처럼 발효시켜 금빛 우유로 만들고, 또는 우유마냥 거품 일게 하는 이런 태양이 아니었을까 하고 자문해 보았다. 한편 여기저기서 이따금 커다란 푸른빛 그림자가 떠돌아다녔는데, 마치 어느 신(神)이 하늘에서 거울을 움직이고 이동하면서 즐거워하는 듯했다. 이런 발베크 식당이 건너편 집에 면한 콩브레 ‘식당’과 다른 점은, 단지 수영장 물처럼 아무것으로도 가려 있지 않고 초록빛 태양으로 가득하며,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만조와 한낮의 햇볕이 천상의 도시 앞에서처럼 에메랄드와 황금의 파괴할 수 없는, 그러나 움직이는 성벽을 세우는 그런 겉모습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콩브레에서는 누구나 우리를 알고 있어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해수욕장 생활에는 이웃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 젊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 마음에 들고 싶었으며, 그들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단념하기에는 지나치게 감수성이 풍부했다. 내게는 식당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나 방파제 위를 걸어가는 젊은이들과 소녀들에 대해 사교계 인사가 느낄 법한 고상한 무관심은 없었으며, 그들과 함께 소풍을 갈 수 없다는 게 괴로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교계 예절은 무시하고 내 건강만 중시하는 할머니께서 혹시 그들에게 나를 산책 동반자로 받아들여 달라며, 내게는 굴욕적인 부탁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훨씬 괴로움이 덜했다.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별장 쪽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테니스장에 가려고 손에 라켓을 들고 별장에서 나오기도 하고, 또는 말에 올라타 그 말발굽으로 내 가슴을 짓밟기도 했는데, 나는 이런 그들을 열정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았고, 사회적 비율이 달라진 이 바닷가의 눈부신 조명 아래서 나는 그들의 모든 움직임을, 그토록 많은 빛이 들어오는 그 커다란 유리창의 투명함을 통해 좇았다. 그러나 유리창은 바람을 가로막았고, 할머니 의견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유리창의 결점이었다. 내가 한 시간 동안이나 바깥 공기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할머니가 인내심을 잃고 슬그머니 창문 하나를 열자 단번에 메뉴와 신문, 식사하던 사람들의 머리 베일과 모자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 천국의 숨결에 기운을 얻은 할머니는 욕설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마치 성녀 블랑딘43)처럼 침착하게 미소를 지었고, 이런 모습이 나의 고립과 슬픔의 느낌을 더욱 가중하는 가운데, 헝클어진 머리 때문에 분노한 그 건방진 관광객들을 우리에 맞서 결집시켰다.

보통은 부자들과 국제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이런 사치스러운 호텔 투숙객들에게 어느 정도 발베크의 지방 색채를 부여하는 것은, 투숙객 중 일부가 바로 프랑스 내 이곳 주요 행정구역의 저명인사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인데, 캉의 법원장과 셰르부르의 변호사협회 회장, 르망의 대공증인 같은 이들은,44) 한 해 동안 전쟁터의 저격병이나 체커 게임의 말처럼 흩어져 있다가 바캉스 철이 되면 이 호텔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해마다 같은 방을 차지하고 귀족인 척하는 아내들과 함께 작은 그룹을 이루었고, 거기에 파리 유명 변호사나 의사 들이 합류했으며, 파리에서 온 사람들은 출발하는 날 이렇게 말했다.

“아! 그렇군요. 당신들은 우리와 같은 기차를 타지 않는군요. 점심 식사 전에 집에 돌아갈 수 있다니 특권층이시네요.”

“특권층이라니요? 당신들은 수도이자 대도시인 파리에 사시면서요. 우리는 겨우 인구 10만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도청 소재지에 사는걸요. 아니, 최근 조사로는 12만 명이라고는 하더군요. 그래도 250만이나 되는 당신네에 비하면, 또 아스팔트며 파리 사회의 모든 광채를 되찾게 될 당신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들은 파리(Paris)의 ‘리(ri)’를 시골 사람처럼 굴려서 발음했지만, 거기에는 씁쓸함 같은 건 조금도 배어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지방 명사였고, 다른 사람들처럼 파리에 갈 수도 있었지만 — 캉 법원장은 파리 대법원 판사로 여러 번 추천받은 적이 있다. — 자기가 사는 도시를 사랑해서, 또는 이름 없이 살고 싶어서, 또는 명예욕 때문에, 아니면 단지 보수적인 성향 탓에 성관(城館)에 사는 사람들과 이웃으로 지내기를 더 좋아해서 그곳에 남아 있는 편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 중 몇몇은 곧바로 그들 도청 소재지로 돌아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 발베크 만(灣)은 대우주 한복판에 있는 별도의 소우주로서 계절을 담은 바구니에는 날씨가 다양한 날들과 연이은 달들이 원처럼 모여 있어, 리브벨45)이 보이면 소나기가 온다는 전조였지만, 발베크가 캄캄할 때에도 집들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걸 볼 수 있었고, 또 추위가 닥쳐도 이쪽 다른 해안에서는 아직도 이삼 개월 동안 더위가 계속될 거라고 확신했으므로 — 바캉스를 늦게 시작하거나 바캉스가 긴 그랜드 호텔의 고객들은 가을이 가까워 오면, 곧 도착할 비와 안개를 염두에 두어 가방을 작은 배에 싣고 여름을 보내러 리브벨 또는 코스트도르로 갔기 때문이다. 발베크 호텔의 이 작은 그룹은 새로운 손님이 도착할 때마다 경계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아무 관심도 없는 척하다가 그 손님에 대해 나중에 그들의 친구인 식당 책임자 에메에게 물어보았다. 해마다 그곳에 와서 여름 한철 일하고 그들의 식탁을 잡아 두는 이가 언제나 같은 에메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 부인들은 에메의 아내가 아기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는, 식사 후 각자 갓난아기 옷을 만들었는데, 그러면서도 손안경 너머로 우리를 경멸하듯 위아래로 훑어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와 내가 삶은 달걀을 샐러드에 넣어 먹었기 때문인데, 이는 알랑송46)의 상류사회에서는 하지 않는 저속한 행동으로 취급되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폐하”라고 부르는 한 프랑스인에 대해서도 경멸하듯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척했는데 그자는 스스로를 야만인들이 사는 오세아니아 주 한 작은 섬의 왕이라고 칭했다.47) 그는 얼굴이 예쁜 정부와 호텔에 투숙했고, 정부는 해수욕을 하러 갈 때마다 지나는 길에 50상팀짜리 동전을 비처럼 뿌렸으므로 아이들은 그녀에게 “여왕 만세.”라고 외쳤다. 법원장과 변호사 회장은 그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척했고 친구들 중 누군가가 그녀를 쳐다보기라도 하면, 그녀가 직공 아가씨라는 걸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저 두 사람이 오스탕드48)에서 왕실용 탈의실을 사용한 건 확실하다고 하던데요.”

“당연히 그랬겠죠. 20프랑이면 빌려 주니까요. 당신도 원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요. 저 사람이 왕에게 뵙기를 청하자, 왕이 저런 꼭두각시 군주는 알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더군요.”

“아! 그래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아마도 이 모든 이야기는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원장과 변호사 회장과 공증인이, 그들이 카니발이라고 부르는 무리가 지나갈 때면 무척이나 기분 나빠하며 큰 소리로 분개한 것은 그들 자신이 대다수 군중의 눈에는 돈을 아낌없이 써 대는, 왕이나 왕비도 알지 못하는 평범한 부르주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북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 점을 간파한 그들 친구인 식당 책임자는 진짜 군주보다는 인심이 후한 군주에게 더 상냥한 얼굴을 지어야 한다는 걸 잘 알았으므로 군주의 주문을 받으면서도 멀리서 옛 고객에게 의미 있는 윙크를 보냈다. 또한 어쩌면 그들이 ‘우아하지’ 않다고 잘못 알려졌다는 점과 더구나 ‘멋쟁이 신사’에게 그들이 우아하다는 점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멋쟁이 신사’란 대기업가의 아들로 폐병 환자이며 백수인 한 건방지고 우아한 젊은이에게 그들이 붙여 준 이름으로, 그는 날마다 새 재킷을 걸치고 단춧구멍에 난초 꽃을 꽂고, 샴페인을 곁들인 점심을 먹으며, 창백하고도 무표정한 얼굴로 입술에 무심한 미소를 지으면서 카지노의 바카라49) 게임에 막대한 돈을 걸러 갔다. 공증인은 뭔가 아는 듯한 표정으로 “달리 돈을 낭비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하고 법원장에게 말했다. 법원장 부인은 확실한 소식통에게서 들었다며 이 ‘퇴폐적인’ 젊은이가 부모를 슬픔으로 죽게 했다고 말했다.50)

한편 변호사 회장과 친구들은 작위를 가진 어느 부유한 노부인에 대해 야유를 멈추지 않았는데, 그 노부인이 언제나 하인을 있는 대로 거느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공증인 부인과 법원장 부인은 식사 시간 식당에서 노부인을 만날 때마다 무례하게도 그들의 손안경을 들고 아주 세밀하게 경계하는 눈초리로 살펴보았다. 마치 화려한 이름이 붙어 있으나 수상쩍게 생긴 음식을 체계적으로 관찰한 뒤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