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1.

각주는 모두 옮긴이가 달았으며, 외래어는 주로 국립국어원의 표기법을 따랐다.

2.

거리를 나타내는 도량형의 경우, 원문에서는 킬로미터와 마일이 혼용되어 있지만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킬로미터로 통일하였다.

3.

등장인물 간의 관계에 따른 호칭과 어투를 옮기는 데 있어 정한 나름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폴란드어를 포함한 슬라브어, 나아가 대다수 유럽어에서는 상대와의 친소 관계나 화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대화에서 격식체, 비격식체를 구분하여 사용한다. 이러한 구별은 위계질서를 나타내기보다는 관계의 성격을 명시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어의 경어체, 평어체와는 개념적인 차이가 있다. 스나우트와 켈빈은 연구원으로서 직급도 비슷한 동년배이기에, 폴란드어 원문에서도 만나자마자 스스럼없이 비격식체로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사르토리우스와 켈빈의 대화에는 격식체가 사용된다. 사르토리우스는 우주 정거장의 책임자이면서 스나우트와 켈빈의 상급자다. 말할 때 거드름 피우는 경향이 있고, 옷차림에 신경을 쓰며,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기 싫어한다. 그래서 원문에서도 켈빈에게 끝까지 격식체를 일관한다. 이는 켈빈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거리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국어 번역에도 원문의 이러한 의도를 반영하고자 했다. 다만 하레이와 켈빈의 관계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폴란드어에서는 비공식적인 관계, 즉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가족이나 연인, 부부 사이에서는 격식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쪽은 격식체로 말하는데, 다른 한쪽은 비격식체를 사용하는 경우도 없다. 그보다는 부모 자식 간에도 비격식체를 사용하고, 자식 또한 부모를 ‘너’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일반이다.(그렇다고 한국어 번역본에서 원문에 충실하기 위해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말을 평어로 번역하고, 호칭을 ‘너’로 옮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솔라리스』에서 하레이와 켈빈의 나이 차이는 적어도 열 살 이상이라 추정된다. 켈빈이 하레이와 연인 사이였을 때, 그는 이미 대학원을 졸업하고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연구원 신분이었고, 하레이는 19세였다. 그래서인지 켈빈은 하레이를 “꼬마 아가씨”라고 부르며 줄곧 어린아이 취급 한다. 타르코프스키나 소더버그 영화에 등장하는 하레이는 꽤 성숙한 이미지인 데 반해, 소설 속 하레이는 소녀와 여인 사이에 있는, 어딘가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모습이다. 따라서 서로 간에 이름을 부르며 격의 없이 대화하는 원문의 친밀한 분위기는 그대로 전달하되, 한국적 현실을 고려하여 상대를 부르는 호칭은 ‘당신’으로 정하고, 하레이가 켈빈에게 사용하는 말투는 기본적으로 해요체를 쓰는 것으로 정리했다.

4.

1961년에 출판된 『솔라리스』는 폴란드를 넘어 세계 SF 소설의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했지만, 놀랍게도 제대로 된 영어 번역본이 나온 시기는 렘이 사망하고도 오 년이나 지난 2011년이다. 폴란드 문학 전공자이면서 인디애나 주립대학교 교수인 번역가 빌 존스턴이 최초로 폴란드어 원전을 번역하여 오디오북으로 출간했다. 그 전까지 영미권 독자들이 읽은 버전은 프랑스어판에서 영어로 중역된 판본이었다. 프랑스어판 자체가 원전의 내용을 임의로 축약한 데다 오역도 더러 있었으므로 이 판본을 통해 중역된 영어판 또한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종이책 형태로 독자에게 판매되는 영어판은 바로 이 문제의 중역본이다. 렘은 생전에 『솔라리스』의 영어판에 대해 꾸준히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일방적인 축약과 오역에도 불구하고, 소설 『솔라리스』는 1970년대에 이미 영미권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2002년에 할리우드에서 이 작품을 영화화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역시 불완전한 영어판으로 원작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책은 폴란드어 원전에서 한국어로 직접 번역하였으며, 폴란드의 출판사 리테라츠키에 2012년판을 그 대본으로 삼았다.


새로운 방문객

우주선 시각으로 19시, 나는 발사대 인근에 서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서 철제 사다리를 딛고 캡슐로 내려갔다. 내부는 팔꿈치를 벌리면 간신히 양 끝이 닿을 정도로 비좁았다. 캡슐 내벽에 튀어나와 있는 접속 단자에 우주복의 밸브를 연결하자 우주복이 금방 부풀어 올랐다. 이제 나는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가 되었다. 철제 갑옷을 연상시키는 압축 우주복과 하나가 된 나는 허공에 매달린 듯한 자세로 서 있었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니 볼록한 현창(鉉窓) 너머로 발사대의 외벽이 보였고, 멀리 위쪽에서 고개를 숙인 채 내려다보고 있는 모다르드의 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곧 사라졌다. 무거운 원뿔형 방호 덮개가 내려와서 캡슐에 덧씌워졌고, 이내 사방이 컴컴해졌다. 여덟 번에 걸쳐 추진기를 돌리는 전기 모터 소리에 이어 완충 장치가 쉭쉭거리며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눈이 점점 어둠에 익숙해졌다. 그러자 이 공간에서 하나뿐인, 계기판의 푸르스름하고 둥그런 윤곽이 보였다.

헤드폰에서 모다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됐나, 켈빈?

“준비됐어, 모다르드.” 내가 대답했다.

“아무 걱정 말게. 정거장에서 자네를 잘 맞아 줄 테니. 잘 다녀오게나.”

미처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위쪽에서 뭔가를 가는 듯한 드르륵 소리가 나더니 캡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근육이 본능적으로 긴장되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언제 발사되는 거야?

모다르드에게 묻는 순간, 고운 모래 알갱이들이 우주선의 겉면으로 와르르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켈빈, 지금 막 출발했어. 몸조심하게나!

모다르드의 목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깝게 들렸다. 그 말의 의미를 미처 실감하기도 전에 선체의 내벽에 넓은 틈새가 벌어지더니, 그 사이로 별들이 보였다. 프로메테우스 우주선이 현재 궤도 비행 중인 물병자리의 알파성을 찾아보려 했지만, 헛된 일이었다. 은하계에서도 이쪽 구역은 내게 낯선 곳이었다. 아는 성좌도 없었고, 방향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좁은 창문 너머로 점점이 반짝이는 먼지 같은 별무리만 보였다. 나는 그 무리 속에서 하나의 별이라도 선명하게 빛을 내며 눈에 들어오길 바랐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별들은 점점 희미해지더니 불그스름한 배경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대기층의 성층권에 들어섰음을 깨달았다. 나는 에어쿠션에 눌려 꼼짝도 못 한 채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수평선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비행 중이라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날고 또 날았다. 실내 온도가 상승하면서 조금씩 천천히 내 몸이 뜨거워졌다. 그 순간, 밖에서 젖은 유리를 날카로운 금속으로 긁어 대는 것 같은 마찰음이 들렸다. 계기판의 숫자가 점점 감소하는 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캡슐이 급격히 하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현창 너머로 밝은 선홍빛 광채가 가득했다. 묵직하게 뛰는 내 맥박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 얼굴은 불에 타는 듯 뜨거워졌지만, 목덜미에 부착된 냉각 장치에서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나는 프로메테우스호의 선체를 제대로 봐 두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자동 제어 장치가 작동하며 현창이 열린 순간, 우주선은 어느 틈에 내 시야를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의 충격으로 캡슐이 심하게 덜컹거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캡슐이 통째로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절연층을 통과한 진동이 에어쿠션을 뚫고, 내 몸속 깊숙이 전달되었다. 계기판의 푸르스름한 윤곽이 뿌옇게 번져 보였다. 하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모든 걸 응시했다. 목적지를 코앞에 둔 채로 죽음을 맞기 위해 이렇게 먼 곳까지 날아온 것은 아니니까.

내가 소리쳤다.

“솔라리스 우주 정거장! 솔라리스 우주 정거장! 지금 캡슐의 상태가 불안정하다. 조치 바란다. 솔라리스 우주 정거장, 나는 방문객이다. 여기는 프로메테우스 우주선에서 발사된 캡슐이다. 이상.”

나는 솔라리스 행성이 모습을 드러내는 소중한 순간을 또다시 놓치고 말았다. 어느 틈엔가 거대하고 평평한 지면이 내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이었다. 하지만 지표면을 이루는 기다란 띠가 가느다랗게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아직은 꽤 높은 상공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천체와의 거리를 ‘고도’라는 개념으로 측정하기 시작하는, 무형의 경계선을 막 통과하고 있었다. 나는 밑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두 눈을 감고도 내가 하강 중이라는 사실이 생생히 느껴졌다. 하지만 감았던 눈을 금방 다시 떴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광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아 두고 싶었다.

나는 침묵 속에서 몇십 초 정도를 기다렸다가 또다시 교신을 시도했다.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헤드폰에서는 번개의 방전 시와 같은 잡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 너머에는 깊고 낮은 음조의 윙윙거림이 깔려 있었는데, 그 소리가 마치 행성의 속삭임처럼 느껴졌다. 오렌지색 하늘이 희뿌연 막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로 인해 창유리가 뿌옇게 흐려졌다. 나는 우주복의 탄력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지금 막 구름 사이를 통과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다 갑자기 누군가가 입김으로 불어서 날려 버리기라도 한 듯 구름층이 빠른 속도로 상층부로 빨려 올라갔다. 캡슐은 수직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나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활강했다. 내 눈앞에서 거대한 원반과도 같은 태양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왼편에서 나타나 오른편으로 사라졌다. 윙윙거림과 지지직거리는 소음 너머, 저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여기는 솔라리스 우주 정거장! 솔라리스 우주 정거장이 방문객에게 공지한다! 모든 게 정상이다. 방문객은 정거장의 지시에 따른다. 솔라리스 우주 정거장이 방문객에게 공지한다!0을 셀 때, 착륙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반복한다. 캡슐은 0을 셀 때, 착륙한다. 주목!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250, 249, 248……”

한마디 한마디에 아주 짧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섞여 음절이 또렷하게 구분되었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기계음이라는 증거였다. 우주 정거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방문객, 특히 지구에서 오는 새로운 연구원을 열렬히 환영하기 마련인데, 이상했다. 하지만 나는 내 주변을 맴돌며 거대한 원을 그리고 있는 태양의 궤적에 정신이 팔려 아무런 신경도 쓸 수가 없었다. 태양의 빛줄기가 내가 지금 향하고 있는 지표면을 기준으로 수직으로 우뚝 섰다가 다시 급격하게 수평으로 방향을 틀면서 예측하기 힘든 경사각을 보였다. 나는 현기증과 싸우며 커다란 시계추처럼 이리저리 흔들려야만 했다. 바로 그때 어두운 자줏빛과 검은빛의 가느다란 띠로 에워싸인 행성 표면이 마치 거대한 장벽처럼 내 눈앞에 다가왔다. 그 혼란스러운 광경 속에서 나는 초록색과 흰색의 작은 점들로 이루어진 체스판 문양의 표식을 발견했다. 우주 정거장의 위치를 알려 주는 표지인 셈이었다. 그때 철커덩거리는 소리와 함께 캡슐의 표면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갔다. 낙하산이 기다란 꼬리를 펄럭이며 급하게 펼쳐졌고, 거기서 지상에서나 듣던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구를 떠난 뒤, 몇 달 만에 처음 듣는 진짜 바람 소리였다.

그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방금 전까지는 내가 낙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막연히 인지했지만, 이제는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초록색과 흰색의 체스판 문양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는 중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고래를 연상케 하는, 가늘고 기다란 은빛 구조물의 지붕 위에 체스판 표식이 그려져 있었고, 그 양쪽 측면에는 레이더 안테나들이 촘촘히 세워져 있었다. 이 거대한 금속 구조물은 행성 표면이 아니라, 암청색 타원형 그림자를 지표면 깊숙한 곳까지 드리운 채로 상공에 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핏빛 바다 위로 짙은 자줏빛 고랑을 만들며 일렁이는 잔물결이 보였다. 그러다 불현듯 가장자리에 진홍빛 테두리를 두른 구름층이 높은 상공으로 솟구쳤고, 주황빛 하늘이 구름 사이로 점점 멀어지더니 마침내 모든 윤곽이 희미해졌다. 캡슐이 빙글빙글 돌며 고속으로 회전 낙하를 시작한 탓이었다. 내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짧고 날카로운 충격이 캡슐을 다시 수직으로 곤두세웠다. 현창 너머로 수은처럼 반짝이며 물결치는 파도와 희뿌연 안개에 휩싸인 수평선이 보였다. 낙하산의 고리와 줄이 순식간에 분리되면서 일렁이는 파도를 타고 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인공 자기장 속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캡슐은 자기장 덕분에 특유의 느린 동작으로 천천히 흔들리며 부드럽게 하강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본 것은 격자무늬로 포개진 우주선 발사대들과 포물선을 그리며 2~3층 높이까지 뻗어 나간 전파 망원경 둘에 부착된 반사경뿐이었다. 강철과 강철이 강하게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비행장의 해치1)가 열렸다. 그러고는 캡슐이 마침내 작동을 멈췄다. 지금까지 나를 부동자세로 옭아매었던 철제 갑옷이 길고 거친 한숨을 토해 내며 여행을 마감한 것이었다.

자동 관제 장치로부터 생기 없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여기는 솔라리스 우주 정거장. 제로, 제로. 착륙 완료. 착륙 완료. 교신 끝.”

가슴 언저리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북한 압박이 느껴졌고, 그와 동시에 속이 무겁고 더부룩해졌다. 나는 양손으로 제어용 레버를 잡아당기고는 동력 스위치를 껐다. ‘착륙’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녹색 표시등이 켜지고, 캡슐 외벽이 열렸다. 압축 패드가 내 등을 가볍게 떠미는 바람에 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걸음을 내딛어야만 했다.

체념의 한숨 같은 쉬익 소리를 내면서 우주복이 공기를 뱉어 냈다. 이제 해방이었다.

나는 교회의 측랑보다 높이 솟은, 은빛 깔때기 모양의 구멍 속에 서 있었다. 경사진 벽을 따라 내리막을 그리며 촘촘히 부착된 색색 파이프들이 벽에 난 원형 배수관과 연결되어 있었다. 거대한 환풍기가 굉음을 내며, 캡슐이 착륙할 때 정거장으로 유입된 유해 가스를 빨아들였다. 터진 누에고치처럼 속이 텅 빈, 여송연 모양의 캡슐이 강철로 만든 오목한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었다. 캡슐 외벽은 비행 중에 열에 그을어 지저분한 적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비좁은 경사로를 따라 몇 걸음 내려갔다. 앞쪽의 강철 바닥은 플라스틱으로 용접되어 있었는데, 로켓 운반용 카트의 바퀴에 피복이 찢겼는지 군데군데 강철 파이프가 드러나 있었다. 어느 순간 환풍기의 부스터가 작동을 멈췄고, 정적이 흘렀다.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대신 화살표 모양의 초록빛 네온등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무빙 워크웨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 무빙 워크웨이에 몸을 실었다. 비행장 천장이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며 점점 내려앉더니 이어 터널처럼 난 복도로 연결되었다. 거기에는 압축 가스통과 계량 용기들, 낙하산과 각종 상자를 비롯한 온갖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무빙 워크웨이는 복도가 둥글게 넓어지는 지점에서 끝났다. 그곳은 좀 전의 복도보다 어수선했다. 양철 깡통 더미에서 기름 같은 액체가 흘러나와 바닥에 흥건하게 번져 있었고, 악취가 코를 찔렀으며, 끈적끈적한 액체 탓인지 여기저기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또한 전신 부호가 찍힌 흰 종이테이프들과 찢어진 종잇조각, 쓰레기 등이 양철 깡통에 너저분하게 엉겨 붙어 있었다.

또 다른 초록빛 네온등에 불이 켜졌고, 화살표가 가운데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그 문으로 들어서자 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만큼 비좁은 터널형 복도가 나왔다. 볼록 렌즈가 끼워진 창문이 하늘을 향해 뚫려 있었는데, 거기서 스며드는 햇빛이 실내를 밝혀 주었다. 그곳에 초록색과 흰색의 체스판 문양이 그려진 또 다른 문이 있었는데, 빼꼼히 열려 있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오목한 벽으로 둘러싸인 반원형 방에는 옆으로 길게 퍼진 파노라마식 전망 창이 나 있었다. 창밖으로는 안개에 휩싸인 하늘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쪽에서는 시커먼 파도가 조용히 일렁였다. 벽면 대부분은 문이 없는 장식장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거기에 온갖 기구들과 책, 뿌연 유리잔들과 먼지가 잔뜩 낀 진공 플라스크와 공병들이 그득했다. 지저분한 바닥에는 바퀴 달린 작은 탁자 대여섯 개와 바람이 빠져서 축 늘어진 튜브형 안락의자 몇 개가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공기가 제대로 주입된 의자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그 의자에 작고 여윈 몸집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얼굴은 햇볕에 검게 그을었고, 코와 광대뼈 주위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내가 아는 인물이었다. 인공두뇌학자이면서 기바리안의 보좌 역할을 맡은 스나우트였다. 『솔라리스 연감』에서 그가 전성기에 발표한 독창적인 논문 몇 편을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와 대면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스나우트는 희끗희끗한 가슴 털이 삐져나와 있는 올이 굵은 망사 셔츠에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흰 리넨 바지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인공 중력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우주선에서 음료를 마실 때 쓰는 서양배 모양의 플라스틱 플라스크가 들려 있었다. 스나우트는 눈부신 불빛이라도 마주한 것마냥, 두 눈을 찡그리며 나를 쳐다보더니 깜짝 놀라며 플라스크를 떨어뜨렸다. 그 바람에 플라스틱 플라스크가 바닥에서 풍선처럼 두어 번 튕겨지면서 투명한 액체가 바닥에 쏟아졌다. 나 또한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스나우트의 두려움이 설명하기 힘든 방식으로 내게 전이되었다.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자 스나우트는 의자에서 몸을 웅크렸다.

“스나우트……” 내가 속삭이듯 그를 불렀다. 스나우트는 내게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움찔했다. 나를 바라보는 스나우트의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혐오감이 담겨 있었다.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난 당신을 몰라…… 당신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요. 대체 내게 뭘 원하는 거지?

바닥에 쏟아진 액체는 금방 증발했다.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을 마시고 있었던 걸까? 지금 취한 건가? 대체 무엇을 저렇게 두려워하는 거지? 나는 여전히 선실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지만,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고, 마치 솜으로 틀어막아 놓은 듯 귀가 윙윙거렸다. 두 발을 지탱하고 서 있는 바닥이 자꾸만 밑으로 꺼져 드는 느낌이었다. 곡면으로 처리된 유리창 너머로 바닷물이 규칙적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붉게 충혈된 스나우트의 두 눈이 내 얼굴을 계속해서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두려운 기색은 점차 사라졌지만, 뭐라 표현하기 힘든 혐오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래요? 어디 불편한가?” 내가 나직이 물었다.

“날 걱정하는군……” 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하, 근데…… 왜 날 걱정하는 거지? 난 당신이 누군지 모르는데.”

“기바리안은 어디에 있나?

내가 물었다. 순간 스나우트가 숨을 멈췄고, 그의 눈이 몇 초간 반짝이다가 빛을 잃었다.

“기…… 기바…… 안 돼! 안 돼!!!

스나우트가 입속말로 웅얼거렸다. 그러고는 몸을 들썩이며 바보처럼 웃어 대다가 갑자기 웃음을 뚝 그쳤다.

“그러니까 자네는 기바리안을 만나러 왔군, 그렇지? 용건이 뭔가?

어느 정도 진정된 목소리로 스나우트가 물었다. 이제 내가 더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듯한 말투였다. 대신 그의 어조에는 적대적인 반감이 서려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기바리안은 지금 어디에 있지?

나는 당혹스러움에 말을 얼버무렸다.

그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모르나?

술에 취한 게 분명했다.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쯤에서 선실을 나왔어야 했는데, 나는 그만 인내심을 잃고 소리쳤다.

“정신 차려! 지금 막 이곳으로 날아온 내가 기바리안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게 뭐야! 스나우트,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스나우트가 놀라서 입을 벌렸다. 한순간 또다시 숨을 멈췄다. 그의 눈동자가 조금 전과는 달리 생기로 반짝였다. 스나우트는 떨리는 손으로 의자 팔걸이를 붙잡고는 관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힘 주며 벌떡 일어섰다.

“뭐라고? 지금 막 날아왔다고? 어디서 왔는데?

갑자기 술이 깬 말투로 스나우트가 물었다.

“지구에서 왔지!” 나는 화가 나서 쏘아붙였다. “설마 지구가 어딘지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은 뭔가?

“지구? 맙소사! 그럼 자네가…… 켈빈?!

“맞아. 어째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야? 내가 여기 온 게 그리 놀랄 일인가?

그가 빠르게 눈을 끔뻑이며 대답했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스나우트가 이마의 땀을 훔쳤다.

“미안해, 켈빈. 별일 아니야. 그저 좀 놀랐을 뿐이네. 자네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거든.”

“날 만날 줄 몰랐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이미 몇 달 전에 연락을 받지 않았나? 더구나 오늘도 모다르드가 프로메테우스호에서 무전을 보냈을 텐데?

“그래, 그랬지…… 다만 보다시피 여기가 지금 아수라장이어서.”

“그래, 딱 봐도 아수라장이구먼.” 내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스나우트는 내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내가 착용한 우주복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가슴팍에 각종 케이블이 달려 있고, 벨트에 와이어가 연결된 지극히 평범한 우주복이었다. 그가 몇 차례 헛기침을 하고는 뼈만 앙상한 코를 문질렀다.

“샤워하고 싶지 않나? 씻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걸세. 저기 보이는 맞은편의 파란 문을 열면 욕실이 나오네.”

“고마워. 정거장의 구조는 이미 알고 있네.”

“혹시 배는 안 고픈가?

“아니. 그건 그렇고 기바리안은 어디 있지?

스나우트는 마치 내 질문을 못 들었다는 듯, 내게서 몸을 돌려 말없이 창가로 다가갔다. 등을 돌린 그의 뒷모습은 앞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바짝 치켜 깎은 머리는 허옇게 세었고, 햇볕에 검게 그을은 목덜미에는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다. 창밖에서는 산처럼 거대한 파도가 천천히 솟아올랐다가 내려앉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석양에 물든 진홍빛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정거장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토대의 한 부분이 살짝 기울어졌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오면서 균형을 맞추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착각일 것이다. 파도의 이랑 사이로 피처럼 시뻘건 점액질 거품이 수북하게 일어났다. 순간 목구멍에서 메스꺼움이 느껴졌다. 문득 프로메테우스 우주선에서 보낸 나날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통용되던 엄격한 규율과 질서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소중한 가치로 느껴졌다.

스나우트가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양손을 신경질적으로 비비며 말을 꺼냈다.

“잘 들어…… 당장은 나 말고 아무도 만날 수 없을 걸세…… 당분간은 말일세. 그러니까 나하고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해. 나를 ‘생쥐’라고 부르고, 편하게 대하게나. 지금까지는 사진으로만 날 봐 왔겠지만, 뭐, 상관없어. 다들 날 그렇게 부르니까. 사실 우리 부모님은 나에 대해 포부가 대단했었네만, 지금 나는 ‘생쥐’처럼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기바리안은 어디에 있나?

내가 다시 한번 고집스럽게 물었다. 그는 눈만 껌뻑거렸다.

“자네를 이런 식으로 맞이하게 된 건 정말 미안하네. 하지만…… 내 잘못만은 아니야. 보다시피…… 워낙 많은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는 바람에 그만 까맣게 잊고 있었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지만 기바리안은 어떻게 된 거지? 정거장에 없는 건가? 어디 탐사 비행이라도 나갔나?

“아니야.” 스나우트가 케이블이 뒤엉킨 채 뒹굴고 있는 구석을 쳐다보며 고개를 적었다. “기바리안은 아무 데도 안 갔어. 탐사 비행에 나서지도 않을 거고. 실은…… 어떻게 된 거냐면……”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그가 지금 어디에 있다는 거지?

착륙 이후 먹먹했던 귀는 여전히 뚫리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스나우트의 말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렸다.

“이미 자네도 짐작하고 있는 거 아닌가?

스나우트가 아까와는 전혀 딴판인 음성으로 냉정하게 대답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찌나 차가운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스나우트는 취한 상태였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있었나……?

“있었지.”

스나우트가 나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면서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언제?

“오늘 새벽에.”

이상하게도 별로 충격이 느껴지지 않았다. 짧게 몇 마디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도 냉정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지금까지의 스나우트의 기묘한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떤 사고였는데?

“그만 방으로 돌아가서 우주복부터 벗고, 짐 정리를 하는 게 어때? 음…… 한 시간쯤 뒤에…… 이곳으로 다시 오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렇게 하지.”

“잠깐!

문을 향해 걸어가는 나를 그가 불러세웠다. 스나우트가 애틋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좀처럼 말을 꺼내기 힘든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원래 이곳에는 세 명이 있었는데, 자네가 오면서 또다시 세 명이 되었군. 혹시 사르토리우스와 아는 사이인가?

“자네와의 경우나 마찬가지야. 사진으로만 봤네.”

“사르토리우스는 지금 위층 실험실에 있어.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는 내려오지 않을 걸세…… 아무튼 그와 마주치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야. 혹시 나도 아니고, 사르토리우스도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러면……”

“그러면…… 뭐?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검은 파도가 저물어 가는 석양 아래에서 핏빛으로 물들었다. 스나우트는 본래 있던 안락의자로 되돌아가서 머리를 숙이고는 한쪽 구석에 놓인 케이블 뭉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 아무 짓도 하지 말게나.”

“대체 여기서 누구를 만난단 말이지? 유령이라도 있다는 건가?!

나는 다시 노여움에 북받쳤다.

“내가 돌았다고 생각하는군. 이해하네. 하지만 아닐세. 나는 미치지 않았어. 그저…… 지금 당장은 다른 방식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을 뿐이야……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기억하게나. 나는 분명 자네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했다네.”

“아니, 무얼 조심하라는 거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진정하게. 모든 것에 대비하고 있으라는 뜻이야.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노력해 보게나. 이게 내가 자네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충고일세.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으니 말야.”

“하지만 내가 뭘 보게 될지는 말해 줘야 하지 않나!!!

나는 고함에 가까운 고성을 질렀다. 햇볕에 검게 타고, 피로에 찌든 얼굴로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방구석을 응시하고 있는 스나우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당장이라도 그의 어깨를 움켜잡고 흔들어 버리고 싶었다. 스나우트는 한마디 한마디에 힘주어 쥐어 짜내듯 말했다.

“나도 확실히는 몰라. 어떤 의미에서 그건 자네한테 달린 일이니까.”

“환각을 말하는 건가?

“아니, 그건 실제로 눈앞에 존재한다네. 잊지 말게. 절대 공격하면 안 된다는 걸.”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목소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거친 음성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우리는 지금 지구에 있는 게 아닐세.”

“폴리테리움2)을 말하는 건가? 하지만 그들은 인간과는 전혀 다르지 않나?

내가 소리쳤다.

스나우트는 계속해서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괴상하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저 몽상의 늪에서 스나우트를 건져내고 싶었지만, 아무런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그래서 더 위험하다는 거야. 내 말을 잊지 말고, 부디 방심하지 말게나!

스나우트가 속삭이듯 말했다.

“기바리안은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르토리우스는 뭘 하고 있나?

“한 시간 뒤에 다시 오게.”

나는 몸을 돌려 그 방에서 나왔다. 문을 닫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스나우트를 돌아보았다. 얼룩투성이의 바지를 입은 그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작은 체구를 웅크리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을 발견했다.


솔라리스 학자들

터널처럼 생긴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귀를 기울이며 잠시 서 있었다. 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가 안에서도 들리는 걸 보면, 벽의 두께가 상당히 얇은 듯했다. 그 순간 문틈에 비스듬히 끼워져 있는 네모난 반창고 조각이 눈에 띄었다. 거기에 연필로 ‘인간’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그 단어를 보는 순간, 나는 곧장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