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미

2008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目連正傳』,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 중편소설 『어제는 봄』이 있다. 제5회, 제6회, 제8회 젊은작가상, 대산문학상, 2019년, 2020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나는 흔들리는 그림자에 마음을 빼앗겨본 적이 있다.

밤새 등을 밝혀본 적이 있고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는 창인 채로도 바깥을 꿈꿔본 적이 있다.

빛과 동시에 존재하는 눈사람을 알고 있고

보이지 않아도 사라진 게 아닌 것들을 알고 있다.

소설을 조금은 덜 사랑하고 싶다고, 소설과 삶을 분리한 채 살고 싶다고 한쪽에선 늘 생각했지만, 내가 자기혐오에서 조금이라도 발을 뗄 수 있었다면 그건 모두 소설을 쓰던 시간 덕분이었다.

_'작가의 말'에서

 

표지 작품 최윤정,〈Illusion 01〉

디자인 표지 고은이본문 유현아




| 전자책 한정 |

작가의 말

 

 

 

 

며칠 전 수제 비누를 만들다가 오일을 녹이던 비커를 손으로 감싸보았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잔열이 따뜻했는데 그때의 온도가 육십오 도였다. 그 온도를 한 번쯤 기억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쓸 때의 나는 육십오 도보다 훨씬 저온이거나 고온이기 때문에 더욱.

 

집에 돌아와 소설 곳곳에 부려놓았던 것들을 다시 꺼내보았다. 슬라임과 에어 프라이어. 밀잠자리와 주먹맨드라미. 보석 비누. 트리케라톱스. 김부각과 목련꽃차. 여자아이 피규어와 영가등. 눈사람.

 

2021년 6월

최은미


| 전자책 한정 |

친필 메시지

 

 


차례

 

보내는 이

여기 우리 마주

눈으로 만든 사람

나와 내담자

운내

美山

내게 내가 나일 그때

11월행

점등

 

해설| 강지희(문학평론가)

파열하며 새겨지는 사랑의 탄성

 

작가의 말



 

 

 

 

 

진아씨를 떠올리면 나는 언젠가 그녀가 소화기를 사야겠다고 하던 게 생각난다. 진아씨와 많은 날 여러 얘기를 나누었지만 이상하게도 진아씨 하면 그때가 떠오른다. 휴대폰 화면을 밀어올리면서 진아씨는 투척형 소화기로 살까 스프레이형 소화기로 살까 물었다. 식탁에는 견과류 껍데기가 흩어져 있었다. 욕실 거울 위에 붙어 있던 동그란 시계. 변기 안에 떠 있던 참외 씨 하나그건 진아씨한테서 나온 것일까, 진아씨 남편한테서 나온 것일까, 진아씨 아이한테서 나온 것일까?

진아씨네서 건너다본 내 집 창문도 기억난다. 저 끝은 작은방 베란다 창. 오른쪽은 중간 방 창. 가운데에 작게 붙어 있는 건 주방 창. 진아씨네서 보면 이십층 외벽에 매달린 내 집은 놀랍도록 왜소해 보였다. 저기가 정말 거긴가? 몇 달 넘게 인테리어를 고민하고 여전히 대출금을 갚고 있는 그 집? 하지만 나는 진아씨네서 내 집을 바라보는 시간을 싫어하진 않았다. 그 시간을 기다리기까지 했다.

다 지난 얘기다. 이제 나는 두 번 다시 진아씨가 살던 집에 들어가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진아씨네서 시간을 보내던 때를 떠올린다. 창문 밖이 천천히 짙어지던 저녁을 생각하고 김치냉장고에서 꺼내 먹던 차가운 맥주를 생각한다. 어느 날엔 진아씨 남편의 것이 분명한 면도기로진아씨는 이 사실을 모른다겨드랑이 털을 재빨리 밀어버리기도 했다. 진아씨네 식탁 의자는 네 개였고 그중 두 개엔 늘 옷가지가 걸려 있었다. 냉장고 손잡이엔 한참 된 〈겨울왕국〉 스티커. 돌고 또 돌아가는 공기청정기. 나쁨. 상당히 나쁨. 매우 나쁨. 윤이들이 곧 가져올 생활통지표는 잘함. 매우 잘함. 이후 계속 매우 잘함.

하지만 내가 떠올리고 싶은 건 그런 것들이 아니다. 나는 진아씨가 소화기를 주문하던 일을 생각하고 싶다. 에어컨을 틀 만큼은 아니었지만 더웠다. 방문과 창문을 모두 열어젖혔다. 진아씨는 싱크대를 등지고 식탁에 앉아 있다. 쇼핑몰 앱을 열어 검색창에 ‘소화기’라고 친다. 어떤 업체에서 주문할까 잠시 탐색한다. 소방서에 납품도 한다는 업체를 선택한다. 스프레이형 소화기로 결정한 뒤에는 다용도실에서 먼지를 쓰고 있는 분말소화기를 보고 온다. 거기에 씌울 비닐 커버도 함께 주문한다. 곧 백십일 년 만의 폭염이 찾아올 예정이지만 진아씨도 나도 우리에게 어떤 여름이 올지 알지 못한다. 나는 다만 진아씨 맞은편에 앉아서, 저렇게 여분의 소화기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인생의 어떤 순간에 아주 나쁜 선택을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날 진아씨가 주문한 초기 진압 소화 용구는 택배 상자에 그대로 담긴 채 내 집에 있다. 소화기를 주문하는 마음과 이제는 소화기가 필요 없어진 마음, 진아씨, 그 사이엔 뭐가 있는지.

 

*

 

진아씨가 떠난 뒤로 내게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인지하는 기준은 진아씨가 되었다. 옆 동네로 칼국수를 먹으러 가서는 생각한다. 지난번에 이걸 먹을 땐 진아씨가 있을 때였지. 미용실에 가서 뿌리 염색을 하면서도 생각한다. 지난번 염색 때만 해도 나는 언제든 진아씨와 연락할 수 있었는데. 아이가 영어학원 핼러윈 파티 공지문을 가져왔을 때도 생각했다. 작년 핼러윈 때는 진아씨가 있었지. 우리는 두 윤이진아씨의 윤이와 나의 윤이를 나란히 세워놓고 뺨에 해골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눈두덩에 펄 섀도를 잔뜩 발라주고 입가에 피도 흘리게 해주었다. 다이소에 핼러윈 소품들이 등장하면 이젠 선풍기를 넣어놔야 한다. 에어컨에 커버도 씌워야 한다. 하지만 10월이 다 저물어가도록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벌써 캐럴을 튼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낀다. 말도 안 되지. 하늘이 저렇게 창창한데 어떻게 벌써 크리스마스를 기다릴 수 있지? 머플러로 목을 가린 사람들을 붙잡고 묻고 싶어진다. 올여름에 정말 더웠잖아요. 안 그래요? 벌써 잊었어요?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진아씨와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한다. 시간을 되돌릴 지점을 궁리하는 사람처럼 지난여름의 장면들을 불러오고, 뒤섞고, 밀어내고, 다시 불러들인다.

일기예보 앱에 일주일 내내 우산이 표시돼 있었다. 아마 7월 초였을 것이다. 홈쇼핑에서 전동 발 각질 제거기 두 개를 주문했다. 하나를 진아씨한테 주었지. 7월 중순엔 젊고 멋진 남자가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영수증 버려드릴까요?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질문도 받았다. 임신 가능성이 있으신가요? 나는 간호사에게 속삭이듯 답해주었다. 없혀. 방학 전의 어느 저녁엔 아이랑 둘이 근린공원 옆에 있는 닭갈빗집에 갔다. 아이한테 막국수를 시켜주고 옆에서 청하 한 병을 비웠지.

밤새도록 더웠다.

너도나도 한 손에 미니 선풍기를 들고 다녔다. 고무장갑의 손가락 끝이 자꾸 녹았다. 밖에 오 분만 서 있어도 살갗이 아렸다. 차문을 열면 헉 소리가 났다.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한 시간도 견디기 힘들었다. 가마솥 더위.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더위. 1994년을 훌쩍 넘어선 더위.

진아씨네 집에 가게 된 걸 폭염 때문이라고 해두자. 아니다. 여름방학 때문이라고 하자. 아이들은 폭염 한중간에 방학을 했고 밖에서 노는 건 불가능했으니. 아이가 방학을 하면 개인 시간은 어차피 없었다. 핸드 로션 바를 틈도 없이 낮시간을 보내다 저녁이 되면 우리는 만났다. 그리고 나는 이제 이런 것들을 되짚는다. 더운데도 머리를 풀고 다니던 것. 바닥에서만 부풀던 풍선. 끈 원피스를 입고 나란히 걸어가던 열한 살 윤이들. 앨리스 양산. 창문이 흔들리던 소리. 바람이 보여준 것들. 그리고 진아, 진아씨. 나는 오늘도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

 

진아씨가 이전 글들을 지우지 않았는지 보기 위해 매일 지역 맘 카페에 들어간다. 하루에 서른아홉 번, 어쩌면 아흔아홉 번. 진아씨는 새 글을 올리지도 않았고 이전 글과 댓글들을 지우지도 않았다. 지난 두 달, 어디서도 진아씨가 움직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나는 진아씨가 그동안 올린 글 목록을 습관처럼 읽는다. 오늘 문 여는 안과 있나요? 지금 코스트코 주차장 상황. 아이사랑적금 넣고 계신 분. 머리는 몇 살 돼야 혼자 말릴까요. 외부 새시 교체 견적이요. 티벳버섯 효과 어떤가요?

고추청을 담갔다는 게시 글도 있다. 나는 그 글을 제일 자주 클릭해본다. 내가 아는 진아씨는 그런 걸 담가 먹는 사람이 아니다. 담갔다면 나한테 나눠주지 않았을 리도 없다. 나는 고추청 때문에 그 닉네임윤이맘7이 진아씨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글들은 진아씨가 아니라고 보기가 더 힘들었다. 무엇보다 윤이맘7이 올린 사진 중엔 진아씨의 카톡 프로필 사진과 같은 게 있었다. 진아씨네 식탁 등 사진이었다.

누군가 매직펜을 든다. 천장에서부터 선 하나를 그어 내린다. 허공에 탐스럽고 둥근 갓 하나를 띄운다. 폭염에 갈 곳 없는 이들을 위해. 무채색으로 가라앉은 진아씨네 집에서 식탁 등은 제일 빛나는 사물이었다. 우리는 그 등 아래에서 얼마나 여러 초저녁 함께 술을 마셨던가. 윤이들은 집안에서 안전하게 놀고 있고 남편들은 안 오거나 늦었고 우리에겐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그 등 아래에서 나는 진아씨한테 이런 얘기를 들었다.

진아씨는 어느 해 여름에 과 사람들과 엠티를 갔다.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더워도 야구모자는 한번 쓰면 벗기 힘들잖아. 머리가 눌려서 엉망이니까.” 과 사람들이 다 모인 자리, 친한 동기가 장난을 치다 진아씨의 야구모자를 확, 벗긴다. 벌겋게 익은 얼굴과 납작하게 엉겨붙은 머리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몇 초간의 정적과 시선이 진아씨한테로 쏟아진다.

이런 얘기도 들었다.

서윤이는 밤에 잠을 안 자는 아기였다. 두 돌이 막 지난 진아씨의 윤이는 새벽 세시, 주방 놀이 장난감을 펼쳐놓고 거실 한쪽에서 도마질을 한다. 그러다 심심하면 엄마를 부른다. “진아야. 진아야!” 진아씨는 잠이 쏟아져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새벽 네시, 윤이는 주방 놀이를 접고 블록을 쌓는다. 그러다 역시 “술 취한 노인네처럼” 집안이 떠나가라 엄마를 부른다. “진아야. 진아야아아아!”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윤이는 난장판이 된 거실 아무데나 누워 잠이 든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나는 거실 저쪽에서 도란도란 놀고 있는 윤이들을 아득한 마음이 되어 쳐다보곤 했다. 이젠 다 컸어. 그치? 쟤들 어릴 때 우리 얼마나 힘들었어. 지금은 그때보다 낫잖아. 그렇잖아? 잘 놀다가도 툭하면 싸우고, 식탁으로 조르르 달려와서 한 명이 한 명을 일러바쳤잖아.

윤이들이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던 세 살 때부터였으니까 진아씨를 알고 지낸 시간은 짧지 않았다. 그땐 진아씨도 나도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보긴 힘들었다. 그래도 마음으론 다른 사람들보다 서로를 각별히 생각했다. 둘 다 외동인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었고이름 끝 자까지 같은, 같은 단지 안에서도 앞동 뒷동에 살았고둘 다 꼭대기 층인, 많은 것들이 불안했지만 적어도 서로 때문에 불안하진 않았다. 윤이들이 다른 유치원에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지만 몇 달 만에라도 불쑥 이런 메시지를 주고받곤 했다. ‘뒤 베란다에 계속 불 켜져 있네, 영지씨.’ ‘이런 깜빡했네. 고마워, 진아씨.’

윤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아이들이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버텨온 직장생활을 진아씨도 나도 포기했다. 그후에는 놀이터, 단톡방, 투썸 모닝 세트, 그 담임 어때? 그 학원 어때? 그 엄마 어때?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이제 윤이들은 열한 살이 되었다. 나는 단톡방과 투썸에서 빠져나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 건너, 지진이 나면 제일 먼저 흔들릴 꼭대기 층, 불이 나면 가장 빠져나오기 힘든 톱 층의 플라워포트 펜던트 아래에서, 진아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 동기는 어떻게 했어?”

그러니까 진아씨의 야구모자 굴욕 사건이라든지, 진아씨의 윤이가 한때 얼마나 엄청났는지 하는 얘기들을 나는 수년에 걸쳐 천천히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4학년이 되어서야 같은 반이 된 윤이들이 방학을 한, 지난여름의 한 달 동안에 알게 된 것이었다. 진아씨가 아직 윤이의 배냇머리 일부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 자신이 스물두 살에 뽑은 사랑니와 사랑니를 감싸고 있던피 묻은거즈까지도 보관하고 있다는 것. 진아씨네는 칼이 아주 잘 들고, 진아씨 남편은 주말에만 온다는 것. 그리고 진아씨는 주걱을 꼭 보온중인 밥통 속에 넣어놓았다. 진아씨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진아씨의 엄마는 말했다. 주걱은 밥통 속에 넣어놓으면 안 된다, 진아야. 살아오면서 진아씨는 엄마의 말대로 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었다. 이제 진아씨는 엄마의 말을 매일매일 어기기 위해 매일매일 주걱을 밥통 속에 넣는다. 그리고 또…… 팔 년을 봐오면서도 진아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구나 싶을 만큼 진아씨는 단기간에 나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성큼성큼 빨아들였다. 진아씨한테 빠져들어갔다.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는데, 실은 정신을 차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예전부터 그런 편이었다. 좋아할 만하다 싶으면 쉽게 마음을 주었다. 마음을 먹고, 마음을 주고, 그런 후에는 전력을 다했으며, 다한 만큼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처를 받고, 더 나아가면 남몰래 앙심을 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진아씨네 식탁 등이 아무리 각별해도 여긴 내 아이의 친구 집이다. 진아씨는 내 아이 친구의 엄마이며,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 비슷한 여건과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 관계를 이어가는 게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제 아는 나이이므로, 이 관계를 오래 가꿔가고 싶다면 훅 들어가선 안 된다. 우리를 짓누르는 사회구조적인 것들에 대해선 얼마든지 얘기를 나눠도 좋지만 개인적인 고통을 털어놓는 건 신중해야 한다. 아이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내 아이에게 불리한 빌미가 될 수도 있으므로, 내 스트레스 상황 또한 너무 드러내는 건 좋지 않다.

하지만 한낮의 폭염이 조금씩 내려앉고 저 아래 땅에서 식은 김이 올라오는 저녁이 되면, 아이들이 남긴 저녁 반찬을 안주 삼아 한 잔, 또 한 잔 마시다보면 나는 그 선을 살짝 넘어가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펜던트 조명 아래에 있으면 나는 어느 때보다도 예뻤다그 무렵 내가 건진 셀카는 다 진아씨네 식탁에서 찍은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진아씨와 마주앉아 있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 진아씨네 집으로 건너가 있으면 나는 혼자서 마시는 키친 드링커도 아니었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느낌에서도 잠시간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한테 뭔가를 해주고 있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단짝 친구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느낌. 아이를 통해 맺는 인간관계의 한계, 그걸 넘어선 친밀감을 갈망하면서도 아이를 포함시키지 않으면 불안했다.

마무리 의식처럼 혼자 진아씨네 베란다로 나가는 건 대체로 술이 관자놀이 아래까지 차오른 때쯤이었다. 저희들끼리 재미있는 윤이들과 식탁의 그릇을 정리하는 진아씨를 뒤로하고 베란다로 나서면 다른 온도, 다른 소음, 다른 공기가 나를 감쌌다. 나는 일단 숨을 한 번 내뿜고, 베란다 외부 창을 드르륵 연다. 에어컨 실외기의 후끈한 바람에 먼저 얼굴을 내준다. 이십층 베란다 난간을 짚고 서서 8월의 열대야 공기를 들이켠다. 다시 뱉어내며 몇 초간 더운 바람을 고르고 나면 저 건너 꼭대기 가장자리, 내 집이 보였다. 내가 사는 집. 두세 방울의 불빛으로 겹쳐지면서 아른아른 떠 있는 집. 나는 그 순간의 느낌을 위해 집에 일부러 불을 켜두고 오기도 했다. 내 십여 년이 통째로 담겨 있는 곳을 보려고. 일어났다 사라지고, 솟아났다 흩어지고, 눌리고, 찌그러지고, 터져나와 천장에 파편처럼 박혀버린 모든 감정, 말들, 욕과 사랑, 애원과 멸시, 체념, 기대, 자책과 비명, 난간을 잡고 비틀, 하면서 그걸 건너다보고 있으면, 하…… 그래 씨발, 뭐 있나, 나의 윤이도, 진아씨의 윤이도, 진아씨도, 남편도, 나 자신까지도, 나는 다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떤 수단으로든 나에겐 그런 감정적 고양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다. 그런 걸 안 느낀 날은 초조하고 또 초조할 정도로.

아이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가슴은 식을 줄을 몰랐다.

“하윤아.”

나는 아이의 어깨를 힘껏 당겨 안고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우리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자.”

“우리?”

“서윤이네랑 말이야. 하윤아, 너 다른 애랑은 싸워도 서윤이랑은 싸우면 절대 안 돼. 알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쓸어준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예뻐서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새끼. 나는 니가 좋아서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아이를 으스러지게 껴안는다. 볼을 비빈다. 코도 비비고 이마도 맞대고 입술에도 뽀뽀, 뽀뽀. 엘리베이터에 타서도 두 손으로 귀를 당기고, 쓰다듬고, 다시 껴안고, 터뜨릴 듯이 끌어당긴다.

“숨막혀, 엄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아이는 탈출하듯 달려가 현관 도어록을 누른다. 남편은 귀가 전이다. 내 집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시간, 나는 알알하고 허망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허망한 채로도 이렇게 차올라서, 이 마음을 이제 어디에 쓰지.

 

*

 

당연한 말이지만 내 집에서도 진아씨네 집이 보인다. 싱크대 앞에서 고개만 들면 주방 창문 저편으로 뒷동의 스카이라인이, 진아씨네 집 전면이 보인다. 외부 창마다 엑스 자가 그어져 있는 건 지난여름의 흔적이다. 엑스 자는 고층일수록 많고 주로 알루미늄 창인 집들에 집중돼 있다.

진아씨는 정말로 창호를 새로 하고 싶었을까. 카페에 올린 글을 보면 주기적으로 견적을 알아봤던 것 같다. 아파트 톱 층은 여러 가지가 과하게 오는 곳이었다. 빛과 열도 과하게 쏟아졌고 바람도 과하게 통과했다. 지어진 지 이십 년이 넘은 노후된 아파트에는 창호 광고지가 자주 날아들었다. ‘지난겨울에 추웠던 창호, 올겨울에는 더 춥습니다.’ ‘창호만 바꿔도 연간 냉난방비 사십 프로가 절감됩니다.’ ‘태풍은 매해 오고 미세먼지는 매일 옵니다. 건강과 안전을 위해 창호를 바꾸세요.’ 그런 광고지가 현관에 붙어 있던 어느 날은 줄자와 계산기를 품에 안고 창호 교체의 열망에 싸여 밤을 보내기도 했다. 뒷동과 앞동을 훑다보면 창호를 새로 한 집들은 도드라지는 흰 선 안에 안전하게 들어가 있었다. 올 수리의 정점이자 핵심은 바로 창호지. 이십육 밀리 로이 유리로 외부 창을 전부 바꾸고 내부 창은 폴딩 도어를 다는 거야. 단열과 방음은 기본, 이젠 강풍이 불어도 집이 덜그럭거리지 않는 거야.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창호 생각을 접었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어느 순간 집을 손보고 가꾸는 데 돈을 쓰는 게 의미 없게 느껴졌다. 얘기를 나눠보면 진아씨도 나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와 새삼.” 우리는 에어 프라이어에 먹태 껍질을 튀겨 먹으며 그런 얘기를 했다. 윤이들이 여름내 슬라임을 사랑하는 동안 우리는 에어 프라이어를 사랑했다. 오늘은 여기다 뭘 해 먹어볼까. 웨지감자에 닭 윙에 고구마스틱에 식빵 러스크도 만들고, 인스타에서 보니까 막창도 맛있겠더라. 에어 프라이어가 돌아가는 동안 윤이들은 슬라임을 직접 만들겠다고 천사점토와 물풀 같은 것들을 가져다 거실에 늘어놓았다. 비율을 따져가며 베이킹 소다도 넣고 리뉴도 넣고 셰이빙 폼도 넣어서 섞고 또 섞었다. 그러면 정말로 슬라임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 이물스럽고 차가운 덩어리를 만지고 뭉치고 바닥에 대고 늘여서 풍선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환호를 하면서 엄마들을 부르면 우리는 역할극을 하는 배우처럼 거실로 걸어가 바닥에서 부풀었다 바닥으로 꺼지는 풍선을 묘한 마음으로 내려다보곤 했다. 에어 프라이어를 열고 간식을 꺼내놓으면 아이들은 슬라임 한 덩어리씩을 내밀며 엄마들한테도 만져보라고 애원했다. 같이 좀 좋아해줘, 우리 좀 이해해줘, 라고 말하듯이. 그러면 진아씨도 나도 손사래를 쳤다. “이거 다 안 좋은 성분이야. 그만 만져.” “우리가 직접 만든 건 괜찮다니까.” 그런 실랑이들. 아이들이 식탁 위로 몸을 숙일 때마다 식탁 저편의 진아씨가 조금씩 가려졌다. 그때마다 나는 이상하게 조급하고 애틋한 마음이 되어 진아씨를 건너다봤다. 집에선 늘 냉장고 바지를 입고 있는 진아씨. 눈밑 살이 점점 꺼져가는 진아씨. 수학 경시대회만 나가면 톱이었던 진아씨. 주말에는 거실 블라인드를 한 번도 올리지 않는 진아씨. 어두컴컴해지면 동 옆 공터에서 혼자 줄넘기를 하는 진아씨. 윤이맘7이 확실한 진아씨, 내 앞에선 집 따위에 초연했었는데 뒤에선 계속 창호 견적을 알아보고 있었어. 그렇지?

지역 맘 카페에서 진아씨 글을 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진아씨가 어떤 얘기들은‘펑 예정’이라는 사전 경고도 없이올리고 곧 지운다는 걸 몰랐다면 어땠을까. 맘 카페에 들락거리는 그 마음을 나 또한 모르지 않았다. 어디에도 말할 수가 없는 마음, 너무 사랑해서 말할 수 없고, 사랑하지 않아서 말할 수 없고, 가까워서 말할 수 없고, 멀어서 말할 수 없고, 구차하고 흔해서 말하고 나면 별게 아닌 게 되어버리는 얘기들. 힘내라는 댓글 딱 하나만 보고 내리려고 올리는 글들. 아무리 억지스러운 얘기를 올려도 수십만의 회원 중에 한 명은 호응을 달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거기선 모두가 거침없었다. 재판관과 상담사와 의사와 친구 역할을 돌아가며 했다. 당장 이혼하세요. 안 봐도 뻔해요. 그런 엄마 그냥 차단하세요. 그걸 왜 참으세요? 얼마나 속상하셨을까요. 에궁. 토닥토닥. 하트를 날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격하게 껴안는 브라운과 코니. 즉각적인 공감과 위로를 받고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내린다. 하지만 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 앞에선 에어 프라이어에 뭘 해 먹을까만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아씨, 진아씨가 오 분 만에 내린 글을 읽은 육십육 명의 조회자 중에 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설마 못했는지. 게시 글이 아니라 무심코 달아놓은 댓글에서 진아씨에 대한 여러 정보를 얻었다는 걸 알고 있는지. 친정 식구들이랑 가려고 스리 베드룸 풀 빌라 알아보고 있다며. 진아씨, 다낭 가? 나한텐 그런 얘기 없었잖아. 동파육을 추천한다는 댓글도 달았더라. 진아씨, 지난 주말에 신랑이랑 이연복 셰프 식당에 간 거야? 나한테 그런 얘기 없었잖아?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진아씨가 어떤 얘기를 해도 서운했고 어떤 얘기를 하지 않아도 서운했다. 겉으로는 티내지 않았다. 진아씨가 나한테 해주지 않은 얘기를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진아씨는 전혀 몰랐다. 맘 카페에서 진아씨를 봤다고 터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윤이맘7이 단 댓글에선 남이 알기를 바라지 않을 듯한 진아씨의 아주 사적인 얘기까지도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아씨에 대해서 몰라도 되는 걸 알게 될 때마다 진아씨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런 마음이 들수록 진아씨와 나누는 얘기들이 점점 시시해졌다. 전엔 4나 5까지만 가도 즐겁고 흥미로웠지만 이젠 8을 넘어가지 않으면 충족이 되지 않았다. 나는 더 가길 원했다. 시이모가 암인데, 그러니까 무슨 암이냐고, 몇 긴데. 힘든 건 알아. 그러니까 뭐가 어떻게 힘든데. 진아씨 사정은 뭔데. 너도나도 비슷하게 겪는 그런 거 말고 난 진아씨만의 질감을 원해. 조금 더 간질간질한 디테일을 나한테 달라고, 진아씨. 맘 카페에서 모르는 여자들이랑 나누지 말고 나랑 나눠. 우리가 특별한 사이라는 걸 조금만 더 느끼게 해줘. 나는 다른 거 안 바라. 무심코라도 하루 안부 물어주는 거. 하루에 십 분쯤은 온통 그 사람한테만 집중해주는 거. 남편이랑은 이제 못하는 거. 남편 때문에 다른 사람이랑도 못하게 된 거. 그걸 나랑 하자.

당연히 이 모든 건 속으로만 한 생각이었다. 나는 진아씨한테 대놓고 묻거나 재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서운하고 허탈한 마음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불을 끈 주방 창문 앞에 서서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진아씨네를 건너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진아씨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일은 하윤이가 좋아하는 약단밤을 구워보자느니 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일이 생겼다거나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며 진아씨네로 건너가는 날을 줄였다. 더워서 집에만 틀어박혀 아침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다시 점심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간식을 만들고 다시 저녁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기진맥진해서 혼자 맥주 캔을 따고, 왜 잘함이 두 개나 돼, 전부 다 매잘이어야지! 아이한테 취중 진담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주방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진아씨네 어느 방에 불이 켜져 있는지를 지켜보곤 했다.

어느 날 점심을 먹다가 윤이가 말했다.

“엄마, 어제 서윤이가 고양이 카페에 갔는데, 거기 고양이 중에서……”

아이는 고양이 얘길 계속하고 싶어했지만 나한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누구랑 갔대?”

윤이들을 데리고 같이 고양이 카페에 가자고 했던 건 진아씨였다. 그랬던 진아씨가 메시지 하나 없이 다른 집이랑 간 걸 알고 나서 나는 거실을 서성였다.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다가도 갑자기 배신감에 휩싸였고 환영을 만들었다. 진아씨네 식탁 등 아래에 다른 여자가 앉아 있는 환영. 진아씨의 윤이가 나의 윤이가 아닌 다른 아이랑 단짝이 되는 환영. 아이가 잠든 뒤 나는 아이의 휴대폰 비번을 풀고 문자 메시지 내역을 살폈다. 다른 아이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는 그대로 남아 있는데 서윤이와 주고받은 메시지만 보이지 않았다.

요 며칠 문제집을 펼쳐놓고 끙끙거리다 숨을 길게 내쉬던 아이 모습이 떠올랐다. 끙끙거린 게 숙제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나는 하윤이를 앉혀놓고 물었다.

“싸웠니?”

하윤이가 한참을 그대로 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메시지도 다 지웠다고 털어놓았다.

“나쁜 말 썼어?”

“서윤이도 썼단 말이야. 근데 우린 벌써 화해했어.”

“내가 서윤이랑은 싸우지 말라고 했잖아. 이런 인연이 또 있는 줄 아니?”

아이가 여러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웅얼웅얼 말했다.

“서윤이 좀 짜증날 때 있어.”

“짜증? 어떻게 친구한테 그런 말을 써!”

“잘 있다 갑자기 삐친단 말이야. 근데…… 이유를 모르겠어.”

표정을 보니 그 문제가 아이를 꽤 힘들고 답답하게 하는 것 같았다.

“니가 뭐 섭섭하게 한 거 없어?”

그 말에 하윤이가 억울하다는 듯 나를 건너다봤다. 곧이어 눈에 눈물이 고여들었다.

“나는 정말…… 모르겠다고. 서윤이가 좋은데 모르겠다고.”

 

하윤이가 잠든 뒤 나는 이쪽 윤이와 저쪽 윤이의 마음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했다. 열대야는 계속 이어졌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주말이 되자 진아씨네 집은 블라인드가 내려졌다. 저녁에도 계속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면 외식을 하러 나가지도 않은 것 같았다. 남편이 올라와 있는 주말이 되면 진아씨네 집은 이상한 고요에 휩싸여 있고는 했다. 다른 집의 움직임들텔레비전을 튼 거실에서 나오는 푸른 빛, 러닝셔츠를 입고 오가는 할아버지, 소파에서 뛰고 있는 아이들을 훑다가 진아씨네 집에 시선을 고정시키면 외부 창에 촘촘히 내려진 블라인드 안쪽으로 빨래로 짐작되는 사물이 희미하게 감지될 뿐이었다. 나는 진아씨가 직접 사고 널고 했을 옷과 수건들을 그려보면서 주말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보내보자 생각했다. 얼마 전만 해도 수시로 얘기를 나누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진아씨한테 다시 말을 거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망설이는 사이 월요일이 지나갔고 하윤이는 서윤이가 학원에 오지 않았다는 말을 전했다. 토요일부터 내려진 블라인드는 화요일 아침이 되도록 그대로였다. 뉴스에서는 온통 붉게 이글거리는 지구, 지열로 들끓는 도시와 기록을 경신한 폭염 이야기가 나왔다.

‘진아씨, 집에 있어?’

고르고 고르다 메시지를 보냈지만 진아씨는 몇 시간이 지나도록 확인하지 않았다. 해가 내리꽂히는 오후 두시, 나는 아이를 학원차에 태워 보낸 뒤 뒷동으로 건너가 꼭대기 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

 

진아씨는 흰색 별이 촘촘히 박힌 냉장고 바지에 목이 늘어난 것인지 루즈 핏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젖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문을 열어주자마자 진아씨는 계속 거기 앉아 있었던 사람처럼 식탁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앉았다. 모든 문은 닫혀 있었고 집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실내에 항상 깔려 있던 미세한 소음이 사라져 있었다. 그게 집이 이렇게 후텁지근한 이유일 터였다. 묶어 올린 머리가 다 삐져나와서 목에 엉겨붙은 게 보였다. 진아씨는 정수리에서부터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할말이 있으면 해, 영지씨.”

진아씨는 땀을 훔칠 생각도 안 하고 식탁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진아씨.”

“응.”

“에어컨 좀 켜줘. 너무 더워.”

하지만 진아씨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식탁 등도 꺼져 있고, 술도 없고, 아이들도 없네.”

진아씨 말대로 등도 없고 술도 없이 진아씨와 나는 마주앉아 있었다. 아이들 없이 둘이서만 만나니 생각보다 어색해서 나는 놀라고 있었다. 나는 우리의 관계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진아씨와 차근차근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진아씨, 내가 뭐 실수한 거 있어?’라고 물어볼 예정이었다더워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까, 내가 어때 보여?”

진아씨가 나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더워 보여. 그 티셔츠 진짜 더워 보여.”

진아씨가 픽, 하고 웃더니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낮에 온 게 처음은 아닌데도 한낮에 보는 진아씨네 집은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시트지가 일어난 싱크대 문짝과 욕실 스위치 주위의 얼룩덜룩한 손때. 수화기가 사라진 인터폰. 식탁 펜던트 등갓에는 먼지가 촘촘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진아씨가 냉동실에서 비닐 팩 뭉치를 꺼내더니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덥다는 느낌이 점점 차올랐다. 목 뒤와 겨드랑이로 땀이 본격적으로 배어나오는 게 느껴졌다. 진아씨는 옷을 껴입고 사우나에 들어간 사람처럼 이미 몸 전체가 땀범벅이었다. 그 모습이 말할 수 없이 후줄근하게 느껴졌다.

“선풍기라도 좀 꺼내와, 진아씨!”

나는 치밀어오르는 뭔가를 숨기지 않고 말했다. 진아씨가마치 닥치라는 듯이의자를 확 빼며 몸을 일으키고는 내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야구모자 벗긴 그 동기 애,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어쨌는데.”

“……”

“죽였어?”

“결혼했어.”

진아씨가 냉동실에서 꺼낸 비닐 팩 뭉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진아씨를 보았다.

그러니까, 그냥 한번 벗겨본 거라는 그 남자랑, 아이 앞에서 자기 와이프를 진아야, 진아야아아아! 하고 소리쳐 부른다는 그 남자랑, 발기만 되고 사정을 못해서 할 때마다 사람 진을 다 빼놓는다는 남자, 항문이 아니면 하기 싫다고 졸라대는 남자, 자기 뜻이 안 받아들여지면 이상한 장막을 치면서 주말마다 온 가족을 불편한 분위기로 몰아넣는 남자, 서윤이 아버지인 남자, 자기 면도기로 겨드랑이 제모를 하면 개정색을 한다는 그 남자랑 살려고, 질 타이트닝 시술 후기에 정보 좀 달라고 댓글로 구걸을 했어?

“숨막혀서 더 못 있겠어, 진아씨. 에어컨 틀 거 아니면 다음에 얘기하자.”

“그냥 있어.”

식탁 의자에 젖은 솜뭉치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진아씨가 말했다. 웅크리고 웅크리다가 한 계기만 생기면 몸을 부풀리며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진아씨를 보며 분명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거 다 녹을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있어.”

나는 식탁 위를 보았다. 진아씨가 펼쳐놓은 건 언젠가 가래떡을 꺼내다 진아씨가 지나가듯 말해주었던, 냉동을 시켜놓은 모유였다. 손바닥만한 유축 팩이 여섯 개였다. 그것들에 유성펜으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2008년 8월 21일 100ml, 2008년 8월 26일 130ml, 2008년 9월 3일 80ml, 2008년 9월 10일 150ml. 모유는 누르스름한 빛깔로 단단하게 얼어 있었고, 기온 차로 생긴 물방울들이 팩 위로 빠르게 돋아 오르고 있었다.

지난 십 년간 냉장고 청소를 할 때마다 이 팩들이 녹을까봐 아이스박스에 넣고 번개같이 청소를 했다고 진아씨는 말했었다. 처음엔 젖 양을 맞추기 위해서 짜놓았던 것들이겠지. 또 어느 날은 외출을 해야 하니까. 젖을 뗄 무렵엔 혹시라도 아이가 다시 찾을 수도 있어서. 그래서 얼려놓았던 것들을 어느 순간엔 버릴 방법을 찾지 못했겠지. 언 떡을 버리듯이 그냥 버릴 수는 없었겠지. 그렇게 십 년을 얼어 있던 것들이 그런데 지금, 진아씨와 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녹고 있었다.

실내온도가 몇 도쯤 되는 걸까. 사십 도? 사십오 도? 옥상으로 내리꽂히는 태양열이 아무런 여과 없이 꼭대기 층을 달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진아씨가 저걸 십 년 동안 갖고 있었다는 것에 기함을 하면서도 저것이 녹고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진아씨, 이러다 정말 다 녹겠어.”

진아씨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난 오늘 이걸 녹일 거야. 녹여서 흘려버릴 거야. 싱크대 개수대에 남은 물을 버리듯이 그렇게 버릴 거야.”

그러면서 진아씨가 옆 의자에 놓여 있던 종이 다발을 집어 내밀었다. 한때 만점을 받았던 착실한 학생 같은 표정으로. 모유 수유표였다. 생후 구 일, 생후 삼십 일, 생후 오십육 일, 생후 구십팔 일, 생후 칠 개월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수유 시간과 좌우 수유량, 아이 몸무게에 따른 목표 수유량과 아이의 소변 횟수, 대변 횟수가 기록되어 있었다.

“영지씨, 아이를 가진 걸 알자마자 그때부터 내 목표는 자연분만과 모유수유가 되었어. 옆에서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내 달성 목표는 그게 됐어. 정말 열심히 했어. 서윤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는데, 의사가 아이 몸무게를 보더니 수유를 정말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더라. 기뻤어. 난 말이야 영지씨,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완모를 하는 게 목표였어. 근데 서윤이가 칠 개월이 됐을 때 더이상 젖을 먹일 수가 없었어. 젖을 끊어야 했어. 왠지 알아?”

식탁 위의 모유 팩은 이제 고체 형태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먹어선 안 되는 걸 내가 먹어야 했기 때문이야.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었거든.”

진아씨가 나를 봤다.

“이게 그 당시에 내 몸을 돌던 것들이야. 아이한테 먹일 수 있었던 마지막 모유. 잠든 아이를 보면서 밤새 울다가 짜놓은 모유. 수십 번씩 천장과 바닥을 오가던 그때의 하루, 그때의 나, 그때의 윤이까지도 다 동결돼 있는 여섯 개의 덩어리야. 이제 이게 녹을 거야.”

땀으로 머리칼이 뺨에 다 붙어버린 진아씨가 말했다.

“이게 나야.”

그리고 이어 말했다.

“이게 다야.”

잘 지내. 진아씨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잘 지내, 영지씨.

 

*

 

진아씨가 잘 지내, 라고 한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파악이 되지 않아서 나는 집에 와서도 편히 앉지 못했다. 지나가다 눈인사만 주고받는 이웃으로 돌아가자는 건가. 아니면 아예 안 보겠다는 건가. 내 인간관계는 또 한번 이렇게 실패하는 건가. 다음주면 아이들이 개학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진아씨네서 보내던 여름 저녁들이 말할 수 없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여름이 그렇게 끝날 리는 없었다. 우리에게 남은 방학 일정이 있다는 걸 예매 알림이 알려왔던 것이다. 폭염이니 저녁에 나가보자며 방학 초, 진아씨와 함께 ‘야행’이라는 이름이 붙은 궁궐 기행 프로그램을 예매해두었던 게 떠올랐다. 나는 하윤이한테 그날이 다가왔음을 슬쩍 흘렸고 하윤이는 서윤이한테 알렸으며 서윤이가 진아씨를 조른 끝에 우리 넷은 그 방학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을 하게 되었다.

지하철에 나란히 앉아서도 슬라임을 손에서 안 놓던 윤이들의 정수리가 생각난다. 윤이들이 슬라임을 만들 때 넣은 윤이 아빠들의 셰이빙 폼 냄새가 주위를 떠돌던 것도. 지하철에서 내린 아이들은 한 손에는 슬라임 통을 들고 한 손에는 그 여름의 필수품이 된 미니 선풍기를 든 채 우리 앞에서 나란히 걸어갔다. 진아씨와 나는 이십 년쯤 같이 산 부부처럼 서로 말도 섞지 않고 아이들만 보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다. 도심의 막바지 열기가 내려앉은 보도를 걸어 덕수궁 쪽으로 가는 동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세종대로를 오가는 퇴근 차량들을 보면서 밑도 끝도 없는 외로움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난다. 궁 입구에서 아이들은 문화유산 해설사가 나눠준 모기 퇴치제를 엄마들한테 뿌려주고는 서로의 몸에도 뿌렸다.

한여름이라 야간 느낌이 천천히 온다며 해설사는 그날 야행 팀들을 중화문 옆 회랑에 오래 앉아 있게 해주었다. 해설사의 목소리를 배경음처럼 들으면서 나는 궁을 둘러보는 척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진아씨를 보았다. 냉장고 바지 대신 스키니진에 운동화를 가뿐하게 신은 진아씨는 무언가가 빠져나간 것 같은 허허로운 얼굴로 중화문 기단을 두른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진아씨가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엔 편안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러자 안도감이 들었다.

전각 몇 개를 지나 석어당 앞까지 갔을 때는 날이 어두워져 모든 전각들이 창살 무늬를 드러내면서 안에서부터 불빛을 밝혀오는 게 보였다. 해설사가 말했다. 중층건물인 석어당은 살구꽃이 필 때만 개방을 한다고. 윤이들은 그때 꼭 다시 와서 저 안에 들어가보자고 습관처럼 엄마들을 졸랐다. 해설사가 또 말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지금도 볼 수 있다고. 그러자 아이들이 석어당 기단을 뛰어올라 문에 달라붙었다. 해설사가 포토 타임을 주어서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고종이 커피를 마시는 곳이었다는 정관헌을 지나 최초의 유치원이라는 준명당 앞으로 갔을 때는 다리가 아플 타임이라며 해설사가 일행 모두를 다시 계단에 앉아 쉬게 해주었다.

그날의 덕수궁을 떠올리면 넷이서 나란히 준명당 계단에 앉아 있던 짧은 시간이 생각난다. 낮 동안의 폭염에 달구어진 돌이 저녁이 되도록 따끈따끈했다. 윤이들이 말했다. 엄마, 엉덩이가 따뜻해.

그러게, 그렇게 더웠는데, 이렇게 또 여름이 가나보다. 준명당 계단 돌에 손바닥을 대보면서 나는 궁을 둘러싼 빌딩 불빛들을 올려다보았다.

윤이들이 계단에서 일어나 서로 잡고 잡히면서 앞뜰을 뛰기 시작했다. 어린 남자아이와 함께 온 부부가 아이한테 막대사탕을 까주는 게 보였다. 내내 손을 잡고 다니던 커플이 얼굴을 맞대고 셀카를 찍었다. 해설사는 태블릿 화면을 넘기며 물을 마셨다. 진아씨는 윤이가 내려놓은 미니 선풍기를 만지면서 오스스하게 감겨오는 저녁 공기에 팔을 맡기고 있었다. 나는 땀을 흘리던 날을 생각했다. 여기 있는 이 사람들 모두 지난 백십일 년 동안 누구도 겪지 않은 더위를 막 겪어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궁을 나와 돌담을 따라 걸어가면서 나는 진아씨에게 하윤이가 한 남자아이와 주고받은 메시지 얘기를 해주었다. 하윤이가 남자아이한테 이런 말을 보낸다. ‘나 오늘 학원 가다 너 봤다.’ 어느 날은 그 남자아이가 하윤이한테 보낸다. ‘나 아까 복도에서 너 봤다.’ 또 어느 날은 둘이 이런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어디야?’ ‘치과.’ ‘송곳니 빼?’ ‘아니, 어금니.’

돌담 불빛을 따라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윤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 유치도 다 안 빠진 것들이” 하며 조금 웃었다. 비슷한 길이로 자른 두 윤이의 머리카락이 어깨쯤에서 찰랑거리며 멀어졌다. 지금은 유치도 다 안 빠진 저 아이들이 어느 날부터는 영구적으로 써야만 하는 이를 가지고 살아가겠지. 지금보다 기다란 팔다리로 허우적거리면서 누군가한테 다가가고, 멀어지고, 사랑이 가져오는 것들을 모른 채로 사랑하고, 알고도 사랑하면서. 윤이들이 시기마다 겪어갈 상실감의 무늬들을 생각하자 가슴 제일 깊은 곳이 아려왔다.

진아씨와 나는 그날 이런 얘기도 나누었던 것 같다. 나중에 윤이들이 아이를 봐달라고 하면 봐줄 거야? 한 명은 나는 절대 못 봐줘, 라고 말했다. 다른 한 명은 안 봐주기가 어려울 것 같아, 라고 했다. 이렇게 힘들게 키운 아이들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걸 어떻게 봐. 우리가 봐주지 않아도 저애들이 힘들지 않은 때가 올까? 와야지. 그런 얘기를 하는 와중에 윤이들이 몸을 획 돌리고는 멈춰 서서 엄마들을 기다렸다. 지하철역이었다.

“한 것도 없는데 방학이 다 갔어.”

아이들이 울상을 지었다. 한 게 없다니. 아이들의 그 말에 진아씨와 나는 그제야 눈을 맞추며 방전된 듯 웃었다. 늘 그랬지. 실컷 놀고도 또 놀고 싶고, 더 놀고 싶고, 더 더 놀고 싶어하는 이 악동들.

 

*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우리는 제주 아래쪽에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주말이면 남부지방에 상륙해 주초에 중부지방으로 북상할 거라고 했다. 태풍이 오는 걸 보니 폭염이 꺾이려나보다고, 우리는 지하철에 앉아서 그런 얘기를 심상하게 주고받았다. 동 사이에서 헤어지면서 윤이들은 월요일 개학 날에 보자고 서로 인사했다. 서윤이와 함께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는 진아씨를 보면서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여름이 그렇게 마무리될 줄만 알았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고 눈을 뜨자 온통 태풍 소식이었다. 비보다 바람이 위험한 태풍이라고 했다. 태풍이 도착한 남쪽 도시에서 강풍 때문에 가로수가 뿌리째 뽑히고 있다는 말이 들렸다. 보도기사 아래에는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댓글과 이런 바람소리는 처음 들어봤다는 댓글이 달렸다. 그런 소식을 듣는 중에도 나는 이 태풍이 나한테 영향을 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대구의 어느 아파트 유리창이 조각나는 영상을 보기 전에는.

아이 실내화를 빨아서 들고 나오다 그 영상을 보고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PVC 창호가 아닌 알루미늄 창호, 오래된 아파트의 고층, 그중에서도 제일 고층. 내 집은 이번 태풍에 타격을 입을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주방에 서서 마찬가지로 알루미늄 창에 톱 층인 진아씨네를 건너다보았다. 다른 주말 때와 같이 모든 창에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진아씨는 지금 어떤 상태인 걸까 생각하다가 나는 진아씨가 아파트 고층 화재로 일가족이 사망한 사건을 접한 바로 다음날 소화기를 주문한 사람이었다는 걸 생각해내고는 주방 창문을 닫았다.

태풍 특보가 내려졌고 개학 날은 휴교를 한다는 알림이 왔다. “방학이 하루가 더 늘었어.” 윤이가 말했다. 나는 뇌를 비상 체제로 작동시키고 모든 촉수를 태풍 소식에 열어놓았다. 맘 카페에 들어가니 유리창 파손 대비테이프 붙이실 거예요, 신문지 붙이실 거예요?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태풍 전야 일요일 밤, 나는 남편과 함께 외부 창에 엑스 자로 테이프를 붙이면서 우리처럼 창문에 무언가를 붙이고 있는 앞동과 뒷동의 사람들을 보았다. 어수선하고 불안한 채로 일요일 밤이 지나갔다.

아이들의 개학 날이었지만 방학 마지막날이 된 그날을 떠올리면 분무기로 신문지에 물을 뿌리던 칙칙 소리가 기억난다. 거인이 집을 잡고 흔드는 것 같았던 무시무시한 소리도. 정오로 갈수록 바람은 거세졌고 나는 테이프를 붙인 창문에 신문지를 빼곡히 덧붙이고는 분무기로 계속 물을 뿌렸다. 물이 마르면 신문지를 붙인 효과가 없다고 해서 쉬지 않고 뿌렸다. 사거리 신호등이 강풍에 꺾였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뿌리고 인천대교가 통제됐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뿌리고 옆 단지 어느 집 창이 깨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뿌리고 식구들 중 누구도 나만큼 집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상해하면서 뿌렸다. 이쪽을 뿌리면 저쪽 신문이 마르고 앞쪽 창을 뿌리면 뒤쪽 창이 말라서 울고 싶은 심정이 된 채로 이럴 줄 알았으면 육십 개월 할부로라도 창호를 바꾸는 건데, 생각하면서 뿌렸다. 괜찮으냐는 메시지를 보내도 확인하지 않는 진아씨를 야속해하다가 건너다보면 진아씨네 창 전체가 앞뒤 좌우 위아래로 마구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것은 실로 놀랍고 무서운 장면이었다. 내 집을 울리는 이 소리가 창이 저렇게 흔들리면서 나는 소리구나, 나는 진아씨네 집을 보면서 실감했다.

동네를 뒤흔들던 태풍은 늦은 오후가 되면서 점차 서쪽 바다로 이동했다. 관리사무소에서 안내방송을 했다. 강풍이 남아 있습니다. 방심하면 안 됩니다. 건물 밖 외출도 아직 하지 마세요. 창문 잠금장치를 풀지 마세요. 창문을 열지 마세요. 아직 창문을 열면 안 됩니다.

나는 거의 탈진한 채로 싱크대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