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폭 넓은 치마

그래, 사실이다. 나는 정신 병원에 수용된 환자다. 나의 간호사는 거의 한눈도 팔지 않고 문짝의 감시 구멍으로 나를 지켜본다. 하지만 간호사의 눈은 갈색이기 때문에 푸른 눈의 나를 들여다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의 간호사는 도무지 나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이제는 내 편에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문 뒤의 감시자가 내 방에 들어오기만 하면 내 생애의 일들을 그에게 들려주곤 하는 것이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감시 구멍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나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선량한 남자는 물론 나의 이야기를 존중해 주는 눈치다. 내가 무언가 거짓이라도 보태어 말하는 순간이면 그는 애써 감사를 표하기 위해 최근에 만든 그의 노끈 작품을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가 예술가인지 아닌지는 불문에 붙이기로 하자.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전시된다면 신문들이 호평을 할 것이고, 또한 몇몇 구매자들의 관심도 끌게 될 것이다. 여하튼 그는 자기가 맡은 환자들의 방을 다니면서 수집한 보통의 노끈들을 풀어헤친 다음, 그것들을 여러 겹으로 다시 엮어 촉감이 부드러운 유령(幽靈)들을 만든다. 그러고 나서 그것들을 석고에 적셔 굳게 만든 후 나무 받침대에 고정되어 있는 뜨개 바늘에 꿰매는 것이다.

이따금 그는 자기 작품에 색칠을 하겠다고 골똘히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그만두라고 그를 말리고, 하얗게 래커칠한 나의 철침대를 가리키며 이 완전무결한 침대가 알록달록하게 칠해지면 어찌 될지 상상이나 해보라고 충고한다. 그러면 그는 깜짝 놀라며 영판 간호사의 것인 두 손을 머리 위에서 마주 잡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금은 굳어 있는 얼굴에 정말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 척하면서 색칠하려던 계획을 단념하고 만다.

그러므로 하얗게 래커칠한 나의 철침대는 하나의 척도인 것이다. 아니, 나에게는 더 이상의 것이다. 이 침대는 내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목적지이자 위안, 아니, 나의 신앙일 수도 있다. 병원 당국이 침대 개조를 허락해 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사실이지 나는 그 누구도 나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침대 격자를 높이고 싶은 것이다.

일주일마다 한번씩 있는 면회일이면 하얀 철제 격자들 사이에 엮어져 있는 나의 정적(靜寂)은 깨어진다. 그날이면 나를 구출하려는 자들이 찾아온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그들에겐 재미거리이다. 그들은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존경하며 알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나 맹목적이고 신경질적이며 돼먹지 않았는가. 그들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하얗게 래커칠한 나의 침대 격자를 긁어대고, 볼펜이나 청색 연필로 그 위에다가 길다랗고 천박스런 인물화들을 그린다. 나의 변호사는 매번 ‘어이’ 하고 소리치며 방으로 뛰어들어와서는 그의 나일론 모자를 내 침대의 발치에 있는 왼쪽 기둥 위에 씌운다. 그는 방문하고 있는 동안 내내 ─ 변호사들이란 언제나 할 이야기가 많은 법이다 ─ 그 난폭한 행동으로 내 마음의 안정과 명랑함을 빼앗아간다.

나의 방문객들은 아네모네를 그린 수채화 아래 놓여진, 방수포(防水布)를 씌운 하얀 테이블 위에 선물을 쌓아놓는다. 그리고 바로 지금 진행 중이거나 아니면 예정되어 있는 구출 계획들을 나에게 떠벌린다. 게다가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구출의 대상인 바로 나에게, 그들의 이웃 사랑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납득시키려 한다. 그렇게 하여 만족을 느낀 후, 그들은 다시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즐거움을 맛보면서 나로부터 떠나간다. 그러고 나면 나의 간호사가 와서 환기(換氣)를 시켜주고 선물꾸러미를 묶었던 끈을 주워 모은다. 그는 환기를 시키고 나서도 시간이 있을 때면 이따금 나의 침대에 걸터앉아 묶인 끈들을 풀면서 아주 오랫동안 정적을 지킨다. 정적이야말로 브루노이고 또한 브루노야말로 정적 그 자체라고 내가 말할 때까지 말이다.

브루노 뮌스터베르크는 ─ 이자가 바로 나의 간호사임을 밝혀둔다. 그리고 이제 익살은 그만 떨기로 하겠다 ─ 내가 준 돈으로 편지지 오백 매를 사왔다. 자우어란트 출신의 미혼이며 아이도 없는 브루노는 보관하고 있는 재고품이 부족할 경우엔 어린이 장난감도 팔고 있는 조그마한 문구점을 다시 찾아가서 ─ 그저 정확하기만을 바랄 뿐인 나의 기억력을 돕는 데 필요한 ─ 줄치지 않은 백지를 구해다 준다. 나는 방문객들, 예컨대 변호사라든지 클레프에게는 결코 이 일을 맡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안달복달하면서 매사를 규제하려는 그러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부류들이다. 그러므로 이 친구들은 백지와 같이 위험한 것을 내게 가져다줌으로써, 끊임없이 말을 분비하고자 하는 나의 정신이 그것을 사용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내가 브루노에게 “브루노, 순결한 종이 오백 장 사다 주겠니?”라고 말하자, 그는 천장을 바라보면서 이런 종이 아니겠느냐고 비교하는 뜻에서 집게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하얀 종이 말씀이죠, 오스카 씨.”

나는 순결한이라는 말을 고집하면서 가게에 가서도 그렇게 말해 달라고 브루노에게 부탁했다. 오후 늦게 짐꾸러미를 들고 돌아왔을 때, 그는 그 어떤 생각에 감동받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영감을 이끌어내었던 그 천장을 몇 번이고 계속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조금 후에야 말을 했다. “참 좋은 말을 해주셨어요. 순결한 종이를 달라고 했더니, 그 여점원이 얼굴을 몹시 붉히면서 그것을 내주었어요.”

문구점의 여점원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나는 종이를 순결하다고 부른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브루노가 방을 나가서야 오백 장의 편지지가 들어 있는 꾸러미를 풀었다.

나는 그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꾸러미를 잠시 손으로 들고 그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거기에서 열 장은 빼내고, 나머지는 침실용 테이블 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서랍 속 앨범 옆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잉크는 가득 들어 있다. 다시 넣을 잉크도 충분하다. 자,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이야기를 중간에서부터 시작하여 계속 앞으로 나아가거나 거꾸로 올라가기도 하면서 대담하게 활보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현대식으로 하자면, 모든 시대와 간격을 없애버리고서 나중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거나 선언하도록 할 수 있다. 마침내 최근에 와서 공간과 시간의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또는 오늘날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우선 주장해 놓고는, 나중에 등을 돌리고선 몹시 취한 척하여 결국에는 최후의 소설가인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또한 나는 소설의 서두에서 주인공이 없다고 미리 말해 두면 훌륭하고 겸손하게 보인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미 더 이상 개성적인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개성도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또한 인간은 고독하고,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은 고독하므로 개별적인 고독을 주장할 권리가 없으며, 다만 이름도 주인공도 없는 고독한 집단만이 생겨나기 때문에 소설에는 주인공이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며 저마다 타당성을 가진 것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 오스카와 간호사 브루노를 위하여 우리 두 사람이 주인공이며, 감시 구멍 저쪽에 있는 그와 이쪽에 있는 나는 완전히 다른 주인공임을 말해 두고 싶다. 그가 아무리 문을 열고 들어온다고 해도, 우리 둘이 이름도 주인공도 없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 모든 우정과 고독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의 이야기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기 이전에, 적어도 조부모님 중의 한 분이나마 기억하려는 인내심을 가지지 않은 자라면 누구든 자신의 생애를 서술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정신 병원 바깥에서 혼잡한 생활에 시달려야만 하는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고 내가 편지지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분들과 매주 찾아오는 방문객 여러분에게 오스카의 외가 쪽 할머니를 소개하겠다.

나의 할머니 안나 브론스키는 10월 어느 날 늦은 오후에 여러 벌의 치마를 껴입고 감자밭 가에 앉아 있었다. 만일 오전 중이었다면 할머니가 얼마나 솜씨좋게 시든 잎사귀를 갈퀴로 긁어모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지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점심 때에 그녀는 당밀로 달게 만든 버터빵을 먹었고, 마지막으로 밭을 고른 후, 여러 벌의 치마를 입은 채 감자로 거의 가득 찬 두 개의 광주리 사이에 앉아 있었다. 두 발끝이 나란하게 수직으로 위를 향하고 있는 장화의 바닥 앞쪽에서 감자 잎을 태우는 불이 천식처럼 이어졌다 끊겼다 하며 타오르고, 연기는 거의 경사가 없는 지표면을 따라서 편편하고 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때는 1899년이었다. 그녀는 카슈바이 중심지의 비사우 근처에, 벽돌공장과 더 가까운 곳, 람카우 앞쪽, 피어에크 뒤쪽, 브렌타우로 가는 거리 방향, 디르샤우와 카르타우스 사이에, 골트크루크의 검은 숲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끝이 까맣게 탄 개암나무 가지로 감자를 뜨거운 잿더미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나는 방금 특별히 할머니의 치마를 언급하면서 여러 벌의 치마를 껴입고 앉아 있었다고 분명하게 말했는데 ─ 물론, 이 장(章)의 표제는 ‘폭 넓은 치마’이다 ─ 이것은 내가 이 옷의 신세를 입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단 한 벌이 아니라 네 벌의 치마를 껴입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 벌의 치마와 세 벌의 속치마를 입고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녀는 네 벌의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그것은 한 벌의 치마가 다른 치마를 떠받치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네 벌을 하나의 체계에 따라 입고 있었다. 즉 치마의 순서를 매일 바꾸는 것이었다. 어제 맨 위에 입고 있던 치마는 오늘 바로 그 밑으로 들어갔고, 어제 두 번째이던 치마는 오늘 세 번째가 되었으며, 어제 세 번째였던 치마가 오늘은 그녀의 피부와 맞닿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피부와 맞닿았던 치마는 오늘 그 모양을 분명히 드러내었는데, 그것은 아무 무늬도 없는 것이었다. 나의 할머니 안나 브론스키는 그러니까 어느 것이든 감자색의 치마를 좋아했다. 아마 그 빛깔이 그녀에게 어울렸음이 분명하다.

이 색깔 문제 말고도 할머니의 치마는 지나치게 넓은 면적의 옷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특이했다. 그것은 바람이 불면 배처럼 둥글게 불룩해졌고, 적당한 바람에는 느슨해졌으며,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는 펄럭펄럭 소리를 냈다. 그리고 바람이 뒤쪽에서 불어오면 네 벌의 치마 모두가 그녀의 앞쪽으로 휘날렸다. 자리에 앉을 때면 그녀는 치마를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언제나 부풀어 있거나, 드리워져 있거나, 주름이 잡혀 있거나, 아니면 빳빳하고 속이 빈 채 그녀의 침대 옆에 걸쳐 있는 네 벌의 치마 이외에도 그녀는 다섯번째 치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감잣빛의 다른 네 벌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다섯 번째의 치마가 항상 다섯 번째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 치마라는 단어가 남성 명사임에 유의하라! ─ 교체의 법칙에 따랐으며, 몸에 걸친 네 벌의 치마에 종속되어 있었고, 때가 되면 다른 치마와 마찬가지로 다섯 번째 금요일마다 빨래통 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부엌 창문 앞의 빨랫줄에 널려지고, 마른 뒤에는 다리미판에 놓여져야만 했다.

나의 할머니가 토요일에 집안 청소와 요리, 세탁과 다리미질을 하고, 소젖을 짜고 먹이를 준 후 목욕통에 몸을 푹 담그고 비누칠을 약간 한 다음, 다시 목욕통의 물을 끼얹고 커다란 꽃무늬가 있는 수건으로 몸을 감싼 채 침대 모서리에 앉으면, 그녀 앞의 마룻바닥에는 몸에 걸치던 네 벌의 치마와 새로 빤 한 벌이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오른쪽 눈 아래 눈꺼풀을 누르고 아무에게도, 그녀의 오빠 빈첸트에게도 상의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재빨리 결심하였다. 그리고 맨발로 서서 감잣빛 광택이 거의 바랜 치마를 발가락 끝을 사용하여 옆으로 밀쳐내고는 그 빈자리를 다른 깨끗한 치마로 채웠다.

그녀의 마음속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예수님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다음날 일요일 아침 람카우의 교회에 갈 때쯤이면 이 치마 순서를 새로 정하는 의식이 거행된다. 나의 할머니는 새로 빤 치마를 어디에 입었을까? 그녀는 깔끔할 뿐만 아니라 약간의 허영심도 있는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가장 좋은 치마를 햇살이 따스하고 화창한 날,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에 입고 다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오후 나의 할머니는 감자 굽는 불가에 앉아 있었다. 일요일에 맨 위에 입었던 치마는 월요일에는 한 벌만큼 그녀의 피부 쪽으로 다가갔고, 일요일에 그녀의 피부에 닿았던 치마는 월요일에는 정말 월요일처럼 침울하게 허리께에서 다른 치마들 위에 걸쳐져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곡조도 없는 휘파람을 불면서, 개암나무 가지로 맨 처음 구워진 감자를 잿더미에서 긁어냈다. 그러고는 바람에 쐬여 식히기 위하여, 그을고 있는 불더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감자를 밀었다. 그러고 나서 뾰족한 나뭇가지로 까맣게 타서 껍질이 벗겨진 감자를 찍어, 이제는 휘파람을 불지 않고 있는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바람에 거칠어지고 갈라진 입술로 감자 껍질에 묻은 재와 흙을 불어냈다.

할머니는 입으로는 불어대면서 눈은 감고 있었다. 충분히 불었다고 생각하자 그녀는 감았던 눈을 차례로 떴다. 그러고는 사이가 좀 벌어지기는 했으나 다른 흠집은 없는 앞니로 감자를 베어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베어 물었던 것을 곧장 입 밖으로 도로 내밀었다가, 아직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반쪽의 감자를 벌린 입 속으로 다시 넣었다. 그리고 연기와 10월의 공기를 들이마시느라 부풀어 오른 콧구멍 위쪽에 있는 둥그런 눈으로 밭을 따라 가다가 가까이에 있는 지평선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엔 전신주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고 벽돌 공장 굴뚝의 위쪽 부분 삼분의 일 정도가 보였다.

그런데 전신주 사이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할머니는 입을 다물고, 입술을 안쪽으로 끌어당겼으며 눈을 찡그린 채로 감자를 오물오물 씹었다. 전신주 사이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뛰어가고 있었다. 세 사나이가 전신주 사이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세 사나이는 굴뚝 쪽으로 뛰어가더니 그 앞쪽에서 몸을 돌렸다. 키가 작고 땅딸해 보이는 그중의 한 사나이는 벽돌 공장을 가로질러 다시 뛰어갔다. 좀더 마르고 키가 큰 다른 두 사나이도 벽돌 공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다시 전신주 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키가 작고 땅딸해 보이는 사나이가 급히 몸을 돌렸는데, 마르고 키가 큰 두 사나이보다 더 서두르는 것 같았다. 앞서 가는 사나이가 굴뚝 쪽으로 굴러가 버렸기 때문에 다시 굴뚝 쪽으로 뛰어가야 했던 두 사나이는, 엄지손가락 두 개 정도 떨어져서 쫓아가면서 새롭게 힘을 내는 듯했으나 의욕을 잃었던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굴뚝 쪽으로 뛰어가던 작은 사나이도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아마 그곳에 멈추어 서서 휴식을 취하거나 아니면 옷을 갈아입었을 것이다. 아니면 벽돌을 만들고 그 대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동안에 쉬고 있던 할머니는 두번째의 감자를 찍으려 했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키가 작고 땅딸해 보이던 그 사나이가 같은 옷을 입고 지평선 위로 기어올라왔던 것이다. 그 사나이는 뒤에서 쫓아오던 두 사나이를 울타리 뒤, 벽돌들 사이, 아니면 브렌타우로 통하는 도로에서 떼어놓은 듯이 보였다. 그 사나이는 전신주들보다 더 빨리 달리려는 듯 서두르긴 했지만 멀리서 보면 밭 위를 천천히 그리고 한참 동안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밭의 진창을 뛰어넘으려 했지만, 구두창에서는 진흙이 튀었고, 또 가능한 한 보폭을 넓혀 뛰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진창 위를 겨우 기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따금 그는 땅바닥에 달라붙은 것 같다가 다시 대기 속에 조용히 멈춰 섰다. 작고 땅딸막한 체구로 뛰어가다가 멈추어 서서 이마의 땀을 훔치려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새로 갈아놓은 밭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거기에서 10에이커 정도의 고랑이 있는 감자밭을 지나면 오목하게 좁은 길이 연결되어 있었다.

힘들여서 좁은 길까지 간 그 작고 땅딸한 사나이가 그 길에서 모습을 감추자마자, 그 사이에 벽돌 공장을 다녀온 듯한, 키가 크고 마르긴 했지만, 결코 수척하지는 않은 두 사나이가 다시 지평선 위로 나타나서는 진창 위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의 할머니는 다시 감자를 헛 찍었다. 매일같이 볼 수는 없는 그런 광경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다르게 자라긴 했지만 다 자란 어른 셋이 전신주 주위를 뛰어다니고, 거의 굴뚝을 쓰러뜨릴 기세로 벽돌 공장을 가로지르더니, 처음에는 작고 땅딸한 자가, 그 다음에는 키가 크고 마른 자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그러나 셋 다 한결같이 힘들게, 구두창에 진흙을 잔뜩 묻힌 채, 이틀 전 빈첸트가 새로 갈아놓은 밭을 지나 좁은 길로 사라지는 게 아닌가.

이제 세 사나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나의 할머니는 거의 식은 감자를 마음 놓고 찍을 수 있었다. 그녀는 감자 껍질에 묻은 흙과 재를 훅 불어버렸다. 감자는 벌린 입의 크기와 꼭 맞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만일 생각했다면 말이다. 그들은 벽돌 공장 사람들일 거라고. 한 사나이가 좁은 길에서 뛰어나왔을 때도 그녀는 입 안의 감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씹고 있었다. 그 사나이는 검은 콧수염 위의 두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두어 걸음 불 있는 곳으로 다가와 불의 앞과 뒤 그리고 옆에서 서성거렸다. 그리고 욕설도 하고 불안해하기도 하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뒤쪽에서는 야위고 키가 큰 두 사나이가 좁은 길을 따라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되돌아갈 수는 없는 처지였다. 그는 무릎을 꿇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두 눈은 튀어나올 것 같았으며,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는 콧수염을 떨고 헐떡거리면서 할머니의 장화 밑창 바로 앞에까지 기어와서는 작고 땅딸막한 가련한 동물이 되어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고, 더 이상 감자를 씹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제 벽돌 공장, 벽돌, 벽돌 굽는 사람 그리고 벽돌 제조공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장화 밑창을 바깥쪽으로 기울이며 치마를 높이 들었다. 아니, 네 벌의 치마를 동시에 높이 쳐들었다. 벽돌 공장 사람이 아닌, 키가 작고 땅딸막한 그 사나이가 그 밑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높이 쳐들었다. 그 사나이는 이제 콧수염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이제 더 이상 가련한 동물이 아니었고, 람카우나 피어에크 출신도 아니었다. 그는 치마 속에서 불안에 떨었지만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작지도 더 이상 땅딸막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자리를 잡았고, 헐떡이거나 떠는 것도 잊고 있었다. 주변은 마치 세상 최초의 날이거나 아니면 최후의 날인 것처럼 조용했다. 살랑이는 바람에 감자 줄기를 태우는 불은 가볍게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전신주들은 소리없이 자신들의 수를 헤아리고, 벽돌 공장의 굴뚝은 의연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나의 할머니는 맨 위의 치마를 두 번째 치마 위로 차분하게 골고루 쓰다듬어 내렸으며, 네 번째 치마 안에 있는 그 사나이를 거의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세 번째 치마도 또한 그녀의 피부에 새롭고도 놀랄 만한 경험을 가져다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지만 차분하게 진행되었고, 두 번째 치마도 세 번째 치마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감자 두세 개를 잿더미에서 끌어내었고, 오른쪽 팔꿈치 아래에 있는 광주리에서 네 개의 날감자를 꺼내어 차례차례 잿더미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더 많은 재를 덮어씌우고는 다시 연기가 피어나도록 꼬챙이로 들쑤셨다. 그녀로서는 이렇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있었겠는가?

나의 할머니의 치마들은 이제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심하게 무릎을 치거나 자리를 바꾸거나 불을 들쑤셔 일으킬 때마다, 수시로 그 방향을 바꾸던 모닥불의 짙은 연기는 다시 바람을 받아 남서쪽 방향으로 밭을 기어가면서 누렇게 퍼져나갔다. 바로 그때 키는 작지만 옆으로 벌어진 자, 지금은 치마 밑에서 자리잡고 있는 자를 뒤쫓아온, 키가 크고 마른 두 사나이가 좁은 길로부터 씩씩거리며 나타났다. 키가 크고 마른 그들은 지방 경찰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할머니 곁을 날아가듯 지나갔다. 심지어 그중 한 사람은 모닥불 위를 뛰어넘어가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들도 뒤꿈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아니 뒤꿈치를 의식하고는 갑자기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와서 제복에 장화를 신은 채로 연기 속에 멈추어 섰다가 기침을 하였다. 연기를 피하려고 움직였으나 다시 연기가 따라왔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기침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콜야이체크가 좁은 길을 통해 달아났으므로 할머니가 그를 보았음에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할머니는 콜야이체크라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며, 콜야이체크를 보지 못했노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녀가 벽돌 공장 사람들밖에 모르므로 혹시 그자가 벽돌 공장 사람이 아닌지 물었다. 그러면서 그자는 키가 작고 땅딸막하다고 설명했다. 나의 할머니는 기억나는 체하면서 그런 사람이 뛰어가는 것을 보았노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김이 나는 감자를 꽂은 뾰족한 꼬챙이로 비사우 방향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감자가 가리키는 방향에 따르자면, 벽돌 공장의 굴뚝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의 전신주 사이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까 달려간 자가 콜야이체크인지 아닌지는 모르며, 그것은 장화 바닥 앞에 있는 모닥불 때문이라고 변명을 했다. 모닥불을 피우려면 여러모로 신경을 써야 하고, 적절히 타오르도록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 근처를 달려서 지나간 사람이건 연기 속에 서 있는 사람이건 간에 다른 사람에 대해 신경을 쓸 수 없으며, 더군다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더욱더 그렇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아는 사람이라곤 비사우, 람카우, 피어에크와 벽돌 공장에 있는 사람들뿐이며, 자신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할머니는 살짝, 그러나 제복을 입은 자들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궁금해할 정도로 분명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모닥불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한숨을 내쉰 것은 불을 알맞게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이며 또한 조금은 연기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듯이 말이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는 서로 멀찌감치 벌어진 앞니로 감자를 절반 베어 물고 열심히 씹으면서, 눈길을 왼쪽 위로 옮겨갔다.

지방 경찰의 제복을 입은 자들은 할머니의 멍한 시선에서 아무 낌새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전신주 뒤편에 있는 비사우를 수색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옆구리에 찬 대검으로 곁에서 아직 타고 있지 않은 감자잎 더미를 한동안 쿡쿡 찔러댔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그들은 동시에 할머니의 팔꿈치 밑에 있는, 감자로 거의 가득 찬 광주리 두 개를 뒤집어 엎었다. 그리고 광주리로부터 콜야이체크가 아닌 감자들만이 그녀의 장화 앞으로 굴러나오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한동안 서 있었다. 못내 미심쩍어하면서, 그들은 마치 콜야이체크가 재빨리 그 속에 숨어버리기나 한 것처럼 감자 구덩이 주위를 살금살금 걸어보았다. 그리고 여기저기 겨냥하여 찔러보았지만, 찔린 자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아쉬워했다. 그들은 이미 시들어버린 덤불 하나하나, 모든 쥐구멍, 두더지가 파헤쳐 만든 흙더미, 그리고 거듭해서 나의 할머니에게 의혹을 두었다. 그녀는 뿌리라도 내린 듯 그 자리에 앉아서 한숨을 내쉬고,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를 움직여 흰자위를 내보이면서 카슈바이의 모든 성자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그것은 적당하게 타오르는 불과 뒤집어 엎어진 두 개의 감자 광주리 때문에 더욱 비통스럽고 크게 들렸다.

제복의 사나이들은 족히 반 시간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그들은 가끔 불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은 벽돌 공장의 굴뚝 쪽으로 나아가 비사우를 점령하려고 하다가 공격을 연기하고는 푸르죽죽한 손을 불에 쬐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들은 한숨을 그치지 않고 있는 나의 할머니로부터 타서 껍질이 벗겨지고 꼬챙이에 꿰어진 감자 하나씩을 받았다. 그러나 씹는 동안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제복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금작화가 피어 있는 좁은 길을 따라 돌팔매질한 거리만큼 뛰어가 보기도 했다. 그러는 바람에 토끼 한 마리가 쫓겨갔지만, 콜야이체크라는 사나이는 없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들이 불가에 있는 것이 다시 그들의 눈에 띄었다. 그들도 이제는 지쳐서 평화를 바라 마지않았으므로 조금 전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뒤집어 엎어버렸던 광주리에 생감자들을 다시 주워담았다.

저녁 무렵 10월의 하늘이 비스듬히 내리는 가랑비와 잉크빛의 황혼을 짜내었다. 그때서야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둑어둑하게 보이는 경계 표석(標石)에 대해 재빨리 그리고 별로 내키지 않게 공격을 가하였다. 그렇게라도 하고 보니 어느 정도 만족이 되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걸음을 디디고 저린 발을 풀면서, 그들은 비에 젖은 채 사방으로 연기를 뿜고 있는 모닥불 위에서 손을 비볐다. 그러면서 그들은 연방 푸르스름한 연기에 기침을 하고, 누르스름한 연기에 눈물을 짜내고, 다시 기침을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비사우 쪽을 향하여 성큼성큼 걸어갔다. 콜야이체크가 여기에 없다면 비사우에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지방 경찰들이란 언제나 두 가지 가능성밖에 알지 못하는 것이다.

천천히 사그라져가는 모닥불의 연기가 마치 다섯번째의 폭 넓은 치마라도 되는 양 나의 할머니를 감쌌다. 그러므로 네 벌의 치마를 입은 그녀는 콜야이체크와 마찬가지로 치마 아래에 있는 셈이었다. 탄식을 하고 성자들의 이름을 부르긴 했지만 말이다. 제복 입은 자들이 흔들거리면서 전신주 사이의 점이 되어 천천히 사라져간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의 할머니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마치 그동안에 뿌리라도 내린 듯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실뿌리들을 흙과 함께 끌어당겨 뽑으면서 이제 막 시작된 성장을 멈추게 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갑자기 머리 위쪽의 덮개가 벗겨지고 땅딸막한 온몸이 빗속에 노출되자 콜야이체크는 추위를 느꼈다. 그는 재빨리 치마 밑에 있는 동안 풀어놓았던 바지의 단추를 채웠다. 불안감에서 그리고 은신처를 찾으려는 끝없는 욕망 때문에 그동안 단추를 풀고 있었던 것이다. 음경의 귀두가 너무나 차가워질까 두려워하면서 그는 허겁지겁 단추를 채웠다. 그만큼 가을의 냉기가 가득한 차가운 날씨였다.

그 와중에서도 나의 할머니는 잿더미 속에서 뜨거운 감자 네 개를 더 찾아내고는, 콜야이체크에게 세 개를 주고 자신은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감자를 깨물기 전에 콜야이체크가 벽돌 공장이 아닌 다른 어떤 곳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벽돌 공장 사람인지를 물었다. 그러고 나서 그의 대답에는 아랑곳없이 가벼운 광주리는 그의 등에 지게 하고 무거운 것은 몸을 구부려 자신이 맡았다. 비어 있는 손으로 갈퀴와 괭이를 든 그녀는 광주리, 감자, 갈퀴 그리고 괭이와 함께 바람을 맞으면서 네 벌의 치마를 껴입은 채 비사우 채굴장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것은 바로 비사우 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람카우 쪽이었다. 벽돌 공장을 왼편으로 한 채 그들은 검은 숲 지대로 갔다. 그곳에는 골트크루크 마을이 있고 그 너머에는 브렌타우가 있었다. 숲의 앞쪽 동굴이 있는 곳이 비사우 채굴장이었다. 그곳까지 키가 작고 땅딸막한 요젭 콜야이체크는 나의 할머니를 따라갔다. 그는 이미 그녀의 치마를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뗏목 아래에서

여기 비누로 깨끗이 씻어낸 정신 병원의 철침대에서, 그것도 유리를 끼운 감시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는 브루노의 감시하에서, 감자 줄기를 태우던 카슈바이에서의 모닥불 연기와 실낱같이 내리던 10월의 비를 묘사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나의 북을 능숙하고 끈기 있게 사용하면 중요한 일들을 기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을 머리에 떠오르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북이 없다면, 그리고 매일 세 시간 내지 네 시간 나의 양철북으로 하여금 말하도록 하는 병원의 허락이 없다면, 나는 조부모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가련한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어쨌든 나의 북이 말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때는 1899년 10월의 오후, 남아프리카에서는 크뤼거 아저씨1)가 그의 영국에 적대적인 텁수룩한 눈썹을 솔질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장소는 디르샤우와 카르트하우스 사이에 있는 비사우의 벽돌 공장 근처에서였다. 네 벌의 같은 색깔의 치마 밑에서 연기와 불안과 한숨에 시달리고, 비스듬히 내리는 빗속에서 비통하게 성자들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며, 연기 때문에 시선이 흐려진 두 지방 경찰의 지루한 심문을 받는 가운데 키가 작고 땅딸막한 요젭 콜야이체크에 의해 나의 어머니 아그네스가 잉태됐던 것이다.

나의 할머니 안나 브론스키는 그날 밤 어둠 속에서 관대하게 성사(聖事)를 집행한 한 신부님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이름을 안나 콜야이체크로 바꾸었다. 그리고 요젭을 따라 비록 이집트로 가지는 않았지만, 모틀라우 강가의 시골 군청 소재지로 갔다. 거기서 그는 뗏목꾼이 되어 일하면서 당분간 지방 경찰의 감시를 피해 있었다.

독자 여러분을 더욱더 안달이 나게 하기 위해 나는 모틀라우 강가에 있는 그 도시의 이름을 지금은 말하지 않기로 한다. 비록 그 도시가 나의 어머니의 출생지로서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1900년 7월 말경 ─ 제국 해군의 전함 건조 계획을 두 배로 늘리기로 결정한 바로 그때였다 ─ 어머니는 사자좌(獅子座)의 별 아래에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자신감과 열광, 관용과 허영의 별 아래에서였다. 운명의 성좌에 나타난 도무스 비타이라고도 불리는 제1궁은, 쉽사리 외부의 영향을 받는 물고기좌이다. 해왕성과 마주 보는 위치에 있는 제7궁, 즉 도무스 마트리모니 욱소리스는 혼란을 가져오는 별이다. 금성은 토성과 마주 보고 있다. 알려져 있다시피 토성은 비장과 간에 병을 가져오므로 사람들은 그것을 심술궂은 혹성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산양좌(山羊座)에서 빛을 발하다가 사자좌에서 찬란하게 사라진다. 그리고 해왕성으로부터는 뱀장어를 제공받고 그 대신에 두더지를 준다. 토성은 벨라도나, 양파 그리고 사탕무를 좋아하며 용암을 토해 내고 포도주를 시게 한다. 토성은 금성과 함께 제8궁, 즉 죽음의 궁에 위치하면서 불의의 사고를 예언하고 있었다. 한편 이 감자밭에서의 임신은 친척궁에서 수성의 보호를 받는 아슬아슬한 행운을 약속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는 어머니의 항의를 한마디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왜냐하면 그녀는 감자밭에서 임신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언제나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곳에서 시도하기는 했지만 ─ 그녀도 이 점만은 인정한다 ─ 그의 체위와 안나 브론스키의 자세는 콜야이체크가 임신을 시켰다는 가정을 입증할 만큼 충분치는 않았다는 것이다.

“도망치던 날 밤이거나 아니면 빈첸트 삼촌의 궤짝차 안에서, 아니 어쩌면 나중에 트로일로 가서 뗏목꾼의 집에서 방과 숨을 곳을 찾았던 때였음이 틀림없어.”

이런 말로 어머니는 자신의 존재가 시작된 날짜를 정하려 했다. 진상을 알고 있음이 분명한 할머니도 그럴 때면 끈질기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을 이해시키려고 했다.

“그렇고 말고. 궤짝차 안이거나 아니면 트로일에서겠지. 결코 감자밭에서는 아니지. 그땐 바람이 심했고 도깨비라도 나올 만큼 비가 내렸으니까 말이야.”

할머니 오빠의 이름은 빈첸트였다. 그는 아내를 일찌감치 여의고 난 후 첸스토하우로 순례를 했고, 마트카 보스카 체스토호브스카로부터 그녀를 미래의 폴란드 여왕으로 생각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이후 그는 진기한 서적들을 찾아서 뒤적거렸고, 모든 문장에서 이 성녀가 폴란드 제국의 왕위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고는 그의 누이에게 저택과 약간의 밭을 양도했다. 그리고 당시에 네 살이던 그의 아이 얀은 곧잘 울곤 하는 허약한 아이로서 거위를 키웠고 가지각색의 그림들을 모았으며 어처구니없이 이른 나이에 우표를 수집했다.

그리하여 나의 할머니는 폴란드의 성모를 숭배하는 저 농가에 감자 광주리와 콜야이체크를 데리고 왔던 것이다. 빈첸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듣고는 람카우로 달려가서 문을 두들겨 급히 신부를 깨웠다. 성사를 집행할 차비를 갖추고 안나를 요젭에게 맡기기 위해서였다. 잠에 취해 하품을 하느라 길게 늘어진 축복을 베푼 신부가 베이컨의 맛있는 부분을 받아들고 거룩한 뒷모습을 보이자마자, 빈첸트는 말을 궤짝차에 매달고 신랑 신부를 뒤에 싣고는 짚과 빈 푸대로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며, 추위에 떨며 훌쩍거리고 있는 얀을 자기 옆자리에 앉혔다. 그러고 나서 말에 채찍질을 하여 곧장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신혼 여행은 이처럼 서둘러 진행되었다.

아직 어둡긴 하지만 희미하게 동이 틀 무렵 마차는 군청 소재지의 목재 전용 부두에 닿았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곧 콜야이체크에게 뗏목꾼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도망자인 그들 부부를 숨겨주었다. 그제서야 빈첸트는 안심을 하고 방향을 바꾸어 다시 비사우 쪽으로 말을 몰아갔다. 한 마리의 암소, 염소, 새끼들을 거느린 돼지, 여덟 마리의 거위 그리고 집 지키는 개 한 마리에게 먹이를 주어야 하고, 아들 얀도 열이 조금 있어서 잠자리를 돌보아주어야 했던 것이다.

요젭 콜야이체크는 3주일 동안이나 숨어서 지냈다. 그러고 나서 머리 모양을 바꾸어 가르마를 타고, 콧수염을 깎았으며, 흠잡을 데 없는 신분증을 마련하여 요젭 브랑카라는 가명으로 뗏목꾼의 일자리를 얻었다. 그런데 왜 콜야이체크는 싸우다가 뗏목에서 떨어져, 부크 강의 상류인 모들린에서 익사했으나 당국에 신고조차 되지 않은 뗏목꾼 브랑카의 신분증을 호주머니에 넣고 목재상과 제재소에 그 모습을 나타내야 했던가? 까닭인즉 이러하다. 그는 얼마 동안 뗏목꾼 일을 그만두고 슈베츠의 제재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울타리를 선동적인 햐얀색과 빨간색으로 칠했다는 이유로 지배인과 싸웠던 것이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말처럼 별다른 이유도 없이 지배인이 멀쩡한 울타리에서 하얀 판자와 빨간 판자를 한 장씩 떼내었다. 그러고는 폴란드 국기와 같은 색을 가진 이 판자들이 부서져서 상당한 양의 희고 붉은 장작이 생겨날 정도로 심하게 카슈바이 출신인 콜야이체크의 등을 두들겨 팼다. 그토록 두들겨 맞았기 때문에 그는 다음날 밤 ─ 별이 총총한 밤이었다고 한다 ─ 분열되기는 했지만 바로 그 때문에 통일되어 있는 폴란드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백회를 칠한 새 제재소를 불태워버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콜야이체크는 방화범, 그것도 여러 겹의 의미에서 방화범이었다. 왜냐하면 그날 이후 서부 프로이센 전 지역에서 제재소와 재목 적치장들이 두 가지 빛으로 타오르는 애국적인 감정의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폴란드의 장래 문제가 달려 있을 때면 언제나 그렇듯이, 이 화재 사건의 경우에도 성모 마리아가 관여하고 있었다. 목격자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 그들 중 일부는 아마 아직도 살아 있을 것이다 ─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몇 개 제재소의 불타 쓰러지는 지붕 위에서 폴란드의 왕관을 쓰고 있는 성모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재 사건의 현장이면 언제나 있게 마련인 불구경꾼들이 성모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콜야이체크가 불을 질렀을 때에 그러한 일이 장엄하게 이루어졌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여러 차례 다짐까지 했으니 말이다.

방화범 콜야이체크는 이처럼 죄를 지어 수배를 받고 있었다. 반면에 뗏목꾼 요젭 브랑카는 나무랄 데 없이 순진한, 아니 고루하기까지 한 고아로서 쫓겨다닐 만한 죄를 범할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씹는 담배를 하루분씩 나누어서 가지고 다녔으며, 겉저고리를 입은 채 부크 강에 빠져 죽음으로써 신분증과 3일분의 씹는 담배만을 달랑 남겨놓기 전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익사한 브랑카가 관청에 출두할 수도 없었고, 또 익사한 브랑카에 관해 그 누구도 이것저것 귀찮게 캐물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익사자와 체격이 비슷하고 똑같이 둥그런 머리를 가진 콜야이체크는 처음에는 그 사나이의 겉저고리 속으로, 그러고 나서는 전과가 없으며 공식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그 사나이의 피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파이프 담배를 끊고, 씹는 담배를 피웠으며, 심지어는 아주 개성적인 브랑카의 어눌한 말투까지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후 몇 년 동안 그는 정직하고 검소하면서 약간 말을 더듬는 뗏목꾼 역할을 했다. 그는 예멘, 보브르, 부크, 바이크셀 유역의 숲 전역에서 목재를 뗏목으로 만들어 내려보냈다. 그리고 또 말해 둘 점은, 그가 마켄젠의 지휘하에 있는, 황태자 근위 기병대에 복무하면서 상병 브랑카로 출세했다는 사실이다. 브랑카가 아직 병역을 마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익사자보다 네 살이 많은 콜야이체크는 토른의 포병대대에서 나쁜 성적을 남긴 일도 있었다.

모든 도적과 살인범과 방화범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자는, 도적질과 살인과 방화를 하면서도 착실한 직업을 가질 기회를 노리고 있는 자들이다. 노력을 했건 우연이건 간에 많은 자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 콜야이체크는 브랑카라는 이름으로 선량한 남편이 되었고 발끈하는 성격을 고쳤기 때문에 이제는 성냥이 눈에 띄기만 해도 몸이 부르르 떨리게 되었다. 이전에는 성냥이 없어 그렇게도 안절부절못했었지만, 이제는 부엌 식탁 위에 아무렇게 놓여 있는 성냥갑도 그냥 두고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을 유혹하는 그 물건을 창 밖으로 집어던지곤 하였기 때문에 할머니는 제때에 따뜻한 점심 식사를 식탁에 차리느라고 애를 먹을 지경이었다. 가끔은 석유 램프에 불을 붙일 수가 없어서 가족들이 어둠 속에 그대로 앉아 있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브랑카는 폭군이 아니었다. 일요일마다 그는 안나 브랑카를 아랫마을의 교회로 데리고 갔으며, 자기와 정식으로 결혼한 그녀에게 감자밭에서와 마찬가지로 네 벌의 치마를 껴입도록 허락했다. 강이 얼어붙어 뗏목꾼의 일이 없어지는 겨울철이면 그는 착실하게도 뗏목꾼, 하역 인부 그리고 부두 노동자들만이 살고 있는 트로일의 집에서 살면서 그의 딸 아그네스를 보살펴주었다. 그 아이는 아버지를 닮은 것처럼 보였는데, 침대 밑에 기어들어가지 않을 때에는 옷장 속에 숨었고, 손님이 있을 때에는 낡은 헝겊 인형과 함께 테이블 밑에 앉아 있곤 했다.

그리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