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시작


저자 소개






대화 디자이너.

비폭력 대화 훈련을 계기로 밖으로만 향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렸다. 예수와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 그리고 회복적 정의, 서클 프로세스, 시스템 사고, 내면 가족 시스템 등을 만나면서 내면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가 둘이 아님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자연스런 귀결로, 내면 수행과 사회 변화는 동전의 앞뒤라 보고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하며 공동체 대화 시스템과 내면 대화 시스템 둘 다를 구축하고자 한다.

공교육 현장에서 회복적 교육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세워 나가는 일도 함께하고 있다. ‘대화의정원’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새로운 나를 여는 글쓰기(새나글)’를 개발하여, 듣기-말하기와 쓰기-읽기를 통합한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통합 프로그램 안내자 양성에도 힘 쏟는다. 조계종 화쟁위원과 경찰청 위촉 회복적 경찰활동 민간 파트너도 맡고 있다.

함께 지은 책으로 《몽실학교 이야기》, 《평화로운 학교를 위한 회복적 생활교육 매뉴얼》, 《회복적 서클 현장 이야기》, 《하이, 화쟁》 등이 있다.




여는 글



삶과 사람과 사랑은 한 뿌리에서 나온 다른 싹이다. 뿌리인 ‘살-’에서 ‘-음’이라는 싹이 트면 ‘삶’이 되고, ‘-암’이 트면 ‘사람’이 되며, ‘-앙’이 터지면 ‘사랑’이다. 그러니 삶과 사람과 사랑은 자매요 형제다.

삶은 사랑이고 사람이다. 사람이 삶을 산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은 마땅히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이 사랑하는 삶을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게 대화다, 이야기다. 이야기는 삶을 품고 있고 사람을 품고 있고 사랑을 품고 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다. 그 안에는 삶이 있고 사람이 있고 사랑이 있다. 웃음이 있고 눈물이 있고 장탄식과 환호성이 있다. 이야기는 사람과 삶을 이어 주고 사람과 사랑을 이어 주는 매개체다, 접착제다.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꽃밭을 함께 가꾸어 가고 싶다.

대화의 정원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1장

대화

홀연함

다섯 살의 대화

발가벗기

계획은 깨지라고 있는 것

말의 생태학

침묵의 방

희망이라는 장벽

멈춤이 환대다

‘사랑하기’와 ‘사랑에 빠지기’

대화 습관이 달라진다는 것은

프레임

아이는 태도에서 배운다

어른에게 속는 아이들

신념 넘어서기

말의 무게

우리는 모두 다른 걸 듣는다

진실의 조각

3분 동안의 침묵

듣는다는 것은



2장

변화

코끼리는 말해야 해

변화를 위한 듣기

분노가 말해 주는 것

두려움

그건 안 돼

너는 어느 편이냐

다름을 위한 기도

선과 악

비난의 한계

관점 선택

선택의 힘

절벽 오르기

기쁨만 추구하는 공동체

내려놓는 용기

차이에서 생명을 일구려면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앎은 동사

변화를 초대하는 법



3장

회복

빈틈을 가꾸는 이유

최고를 이끌어 내는 힘

정서적 연결

행주

여림의 선물

고통을 말할 용기

실과 바늘

나를 대하는 방식과 남을 대하는 방식

‘나’라는 ‘관계’

인간이라는 강물

회복적 정의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의 조건

모닥불

용기를 북돋는 사람

역지사지

원수를 사랑하라

마음의 장애물 끌어안기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



닫는 글

인용한 책

추천의 말


용어 설명

서클: 여럿이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대화 시스템을 말한다. 중심을 향해 내면의 진실을 내어놓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며, 내어놓인 진실은 서로에게 선물이 된다. 지금의 서클 대화는 북아메리카 선주민의 대화 방식에서 유래했지만, 세계 각지에도 그 원형들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신라시대 화랑의 대화 및 의사 결정 방식에 대한 기록과 불가의 대중공사 등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회복적 정의: 응보적 정의에 대응하는 철학적·실천적 운동이다. 미국 메노나이트 대학 하워드 제어 박사가 제창했으며, 현재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기존 사법 시스템의 대안으로 추천되고 있다. 갈등이나 폭력 등 공동체의 질서를 위협하는 요소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먼저 살피며 피해자의 욕구를 우선해서 사안을 다루도록 권고된다. 피해를 유발한 행위자와 해당 공동체 모두 관계 회복과 복구에 자발적으로 책임지도록 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일러두기

책 제목은 겹화살괄호(《 》)를, 시 제목은 홑화살괄호(〈 〉)를 써서 표기했다.


1장 대화


·



불 피워 본 사람은 안다. 나무와 나무 사이 숯과 숯 사이에 바람 들어갈 틈이 있어야 불이 활활 타오른다는 걸. 빨리 붙여 볼 심산으로 나무나 숯을 켜켜이 쌓아 놓는다고 불이 잘 붙는 게 아니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공기가 든다. 불은 그곳에서 타오른다. 그리하여 나무에 옮겨 붙은 불이 은은한 숯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꽃이나 풀도 마찬가지다. 틈이 없는 콘크리트에서 꽃은 피어나지 못한다.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인간이 흔히 잡초라 부르는 풀조차 살아남지 못한다. 풀과 꽃에 필요한 자양분이 들어갈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공기도 물도 햇빛도 거기엔 스밀 수 없다. 꽃과 풀과 나무가 어우러진 숲은, 그래서 무수한 없음의 틈에서 있음이 생겨나는 경이와 황홀의 공간이다.

대화에도 틈이 필요하다. 말과 말이 흐르는 틈에서 새로움이 움튼다. 생명이 자란다. 이야기꽃은 틈에서 피어난다.


· 홀연함



어떤 대화도 사전에 기획될 수 없다. 대화는 만남이고, 만남은 은총이다. 은총은 벼락처럼 다가와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삶에 뚜렷한 결을 남기고야 만다.

홀연함, 그것이야말로 대화다. 대화는 언제나 현재다. 과거에 매여 있거나 미래에 발목 잡혀 있는 한 대화와 만남은 불가능하다.

만남과 대화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말을 되씹는다. “과거의 기억에 의존한 것도 아니며, 미래적 희망에 기인한 것도 아닌, 현재라는 초시간적 시간성 속에서만 나-너의 만남은 가능하다.”


· 다섯 살의 대화



A: 나 그거 가지고 놀고 싶어.

B: 나 계속할 거야.

A: 나두 할래.

B: (잠시 생각) 그럼, 내가 두 번만 하고 줄게.

A: (잠시 생각) 그래.

(5분 뒤)

B: 너 해.

A: 난 딴 거 할 거야.

B: 응.


다섯 살 아이 둘의 대화다. 지난 주말에 놀러 온 친구의 아이와 자기 아이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고 워크숍 참여자 한 분이 들려주었다. 이렇게 아이들이 함께 논 덕에 아이 신경 안 쓰고 친구와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자신의 것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타인의 요구에 응답하며 평화를 유지하는 두 아이의 대화는 어른이 나눠야 할 대화의 모범으로 삼기에 손색없다.

어른인 우리는 언제 이런 대화법을 잃어버렸을까? 이런 대화법을 되찾을 수는 있을까? 되찾는 게 바람직할까? 무엇이 우리가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걸 막고 있을까?


· 발가벗기



뭐든 새로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발가벗는 걸로 시작해야 한다고 크리슈나무르티는 강조한다. 특히 자신이 쌓고 있다고 여기는 지식을 몽땅 버려야 한다고.

지식이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갑옷에 불과하다. 기존의 지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개입하는 건 쉬운 길이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헌데 그런 태도는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걸 막는 심대한 장애물이다.

새로움을 원하는가, 창조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발가벗어라. 알량한 지식과 경험의 옷 따위는 벗어 버리고 나서야 하리. 돈 미겔 루이스의 말처럼 “그 어떤 것에도 ‘나’를 개입시키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양의 자유가 성큼 다가올 것이다.”


· 계획은 깨지라고 있는 것



한때 세계 복싱 헤비급에서 적수를 찾을 수 없었던 복서 마이크 타이슨은 말했다.


누구나 계획을 세우고 경기에 들어서지만, 얼굴에 한방 맞으면 그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복서는 상대의 약한 곳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섬세하며 원대한 계획을 품고 링에 오른다.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리며 상대가 빈틈을 보이길 기다리고, 드디어 상대가 슬쩍 흘린 빈틈에 힘껏 훅을 날리려는 찰나, 상대의 주먹이 콧등을 강타한다.

그 순간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계획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몸의 기억뿐이다. 누구의 몸에 새겨진 기억이 더 날카롭고 강력한지가 복싱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다.

어디 링 위에서뿐이겠는가. 링 밖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상대가 하지 않았을 때, 상대를 향한 비난의 마음이 올라온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면 상대는 그걸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그리하여 내가 받을 건 또 다시 비난이다.

대화의 목적은 승패를 가르는 일이 아니다. 모두가 승자가 되는 길을 여는 게 대화의 목적이다. 그러려면 대화 전에 짜 두었던 계획을 대화 과정에선 잠시 내려놓는 게 상책이다. 《대화의 재발견》에서 윌리엄 아이작스는 말한다.


대화는 ‘의미의 자유로운 흐름’을 이끄는데, 이는 참여한 사람들의 힘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런 자유로운 흐름이 발생하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소유하거나 결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링 위에서 그렇듯 링 밖의 대화에서도 계획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 말의 생태학



말과 마음과 몸은, 셋이면서 동시에 하나다. 고로 말에 대한 탐구는 마음과 몸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고, 마음이나 몸에 대한 탐구 역시 말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말한다는 행위 또는 듣는다는 행위는, 마음의 작용이자 동시에 몸의 작동이기도 하다. 말, 마음, 몸 모두 전체 현실로 서로 이어져 있다.

똑같은 자극이 들어오더라도 몸과 마음이 평온한 상태라면 말이 부드럽게 나가고, 몸과 마음이 어딘가 아프고 어수선하면 말이 사납게 나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즉 말을 순하고 부드럽게 하면 몸과 마음도 평온해지고, 말을 사납게 하면 몸과 마음도 아프고 어수선해진다. 말과 몸과 마음은 이렇게 우리네 삶을 엮어 가는 생태계를 이룬다.


· 침묵의 방



수피 격언에 이런 것이 있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

통과해야 할 문이 셋 있다.

첫 번째 문, 스스로에게 물어라.

‘진실인가?’

두 번째 문, 스스로에게 물어라.

‘필요한가?’

세 번째 문, 스스로에게 물어라.

‘친절한가?’


별들이 가르쳐 준 말을 다른 이에게 하려면 우리 안에서 그 말이 자라야 하며, 그건 침묵에서 가능하다고 법정 스님은 말씀했다.

침묵에서 자라난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 할 때 진실의 문, 필요의 문, 친절의 문을 모두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 말은 침묵의 방으로 되돌아가야 하리.


· 희망이라는 장벽



알아줄 거라 믿었던 친구에게 깊은 속내를 털어놓았는데 기대했던 공감이나 수용을 받지 못하면 깊은 실망과 좌절을 경험한다.

그럴 때 가끔은 공격적으로 변해서 친구의 잘못을 찾는 데 골몰한다. 그렇게 꼬투리를 찾아서 한바탕 퍼붓는 데 성공하면 속이 시원해질까? 오히려 정반대다. 시원하기는커녕 속만 더 아파지고, 애초 소망하던 공감이나 수용과는 더 멀어진다. 악순환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중간에 다른 친구라도 있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이에 못 이기는 척 응하더라도 마음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한 뒤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번에는 또 친구들에게 미안해지면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자기 자신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두 번째 악순환의 소용돌이다. 여기에 말려들면, 이때까지 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