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인터내셔널 데이

부다페스트 어부의 요새 부근에 위치한 세인트버나드 국제 학교에서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매년 9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는 학교가 설립된 1972년 이후로 작년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었다. 통제와 개방 사이에서 길을 잃은 소비에트연방의 감시를 피해 1989년 헝가리 민주공화국이 태동하고 있을 때, 1956년 10월 부다페스트에서 벌어졌던 비극을 떠올린 수십여 명의 서방 학부모들이 학교에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은 채 자식들을 데리고 급히 부다페스트를 빠져나가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교장은 행사를 멈추는 것은 헝가리의 미래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단언하면서 동구권 학생들과 학부모들만으로 행사를 강행했다. 그 결과는 부다페스트의 시민들을 고무시킬 만큼 성공적이었으며 헝가리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은 뒤늦게 화환을 보내어 교직원들의 용기와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 한 달 뒤 자식들의 손에 이끌려 학교를 찾아온 서방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경솔함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거액의 장학금을 기부하는 한편 친목 단체를 결성해서 학교의 자질구레한 업무를 교사들 대신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세인트버나드 국제 학교의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는 세계 곳곳의 국제 학교들이 교사들을 파견하여 행사 준비 과정을 배워 갈 만큼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행사 프로그램은 학교 안팎의 사정에 따라 매년 세심하게 조정되지만 세 가지 교육적 모토만큼은 첫 번째 행사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첫째, 세계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보다 훨씬 크다.

둘째, 인간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유일한 가치다.

셋째, 단 한 명의 인간이라도 존재하는 한 그 세계는 온전히 보호받아야 한다.

현재의 교장이 5년째 고수하고 있는 행사 일정표에 따르면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주요 인사들이 일일교사로 참여하는 직업 체험 수업이 진행된다. 그 후 점심 식사를 마친 학생들과 교사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국적이나 성별, 나이, 신체적 특성 등의 구별 없이 자신의 출신 국가 이름이 자음으로 시작하는지 모음으로 시작하는지에 따라, 또는 차가운 음식을 좋아하는지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는지에 따라, 또는 행사 당일에 신고 있는 신발의 밑창 무늬가 선형인지 도형인지에 따라 두 팀으로 나뉘어 축구나 농구 같은 단체 경기에 두 시간가량 참여하는데, 한 팀이 보통 마흔 명 이상의 인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개인의 재능이나 코치의 전술 따위가 승패를 결정하지 못하고 오로지 탄식과 폭소만이 경기를 추동하며 승패로 고무되거나 좌절하는 자는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휴식을 취하다가 오후 5시부터는 각국의 전통 복장을 갖춰 입은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을 세 바퀴 정도 순회하는 가장행렬이 시작되고, 행렬에 참여하지 않은 학부모들은 운동장 주위에 늘어선 천막에서 각국의 다양한 전통 음식을 판매하는데, 어느 누구도 현금으로 음식값을 지불할 수 없고 반드시 행사 운영위의 쿠폰을 구입하여 사용해야 한다. 판매 수익은 학생 전체의 이름으로 자선단체에 기부되기 때문에 굳이 경쟁할 필요가 없는데도 학부모들은 학교 측 몰래 돈을 갹출하여 쿠폰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모두 사 먹고 매진의 결과를 자랑하기도 한다.

학부모들과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자극하려면 행사를 금요일이나 주말에 진행하는 게 유리했으나, 금요일을 휴일로 삼는 무슬림이나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를 안식일로 삼는 유태인, 일요일에 교회나 성당을 방문해야 하는 기독교도, 천주교도의 종교적 신념을 고려하여 행사는 처음부터 여태껏 수요일에 열렸다. 종교의 역할을 공식적으로 부정하던 공산 정권 시절에는 일주일의 중간인 수요일이 노동하는 인민들의 생산성이 가장 낮아지는 날이기 때문에 1년에 한 번씩이나마 그들의 심신을 고양해 줄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당국의 의혹을 피해 갔다.

직업 체험 수업의 목적이 아이들에게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들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쟁취하는지 가르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학교는 아이들에게서 직업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학교의 명성을 유지하는 데 크게 헌신하고 있는 청소부와 우편배달부를 직업 체험 수업의 일일교사로 초청하려 했으나, 학부모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끝내 뜻을 굽히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일교사로 초대받는 데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는 자신들에게 공평하게 배부되어야 할 기회를 하찮은 자들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학부모들이 결탁하여 학교의 결정에 반대하는 여론을 은밀하게 부추겼다. 결국 교육부 고위 관리가 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헝가리 공화국은 모든 국민들의 직업을 존중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만큼은 좀 더 도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세계를 알려 주는 게 훨씬 교육적이라는 조언을 하기에 이르렀고, 교장은 심사숙고 끝에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공산 정권 아래에서 획일적인 평등과 희생을 강요하던 교육 방침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했다고 분노하는 교사들을 다독거리느라 교장은 탈진할 지경이었다.

결국 일일교사의 명예는 부유하거나 유명한 자들에게 돌아갔는데, 자신들이 일일교사 후보로 추천됐다가 탈락했다는 소식을 뒤늦게나마 전해 들은 청소부와 우편배달부는 부담감 때문이라도 자신들이 먼저 나서서 학교 측의 제안을 거절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약자에 대한 학교의 배려에 깊이 감사했고, 한동안 더욱 열정적으로 학교 주변을 청소하거나 우편물의 수신인들을 찾아다녔다. 그들은 이따금씩 마치 교사처럼 거들먹거리면서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늘어놓는 바람에 원성을 사기도 했다.

학교의 의도와는 다르게 부다페스트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라면 하나같이 세인트버나드 국제 학교의 직업 체험 수업에 일일교사로 초청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또는 반대로 그 행사에 참여한 자들은 훗날 하나같이 성공 가도를 질주하게 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이름깨나 알려진 자들은 교사와 학부모들을 상대로 추악한 로비 활동을 벌였고 그로 인한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매년 일어났다. 공산 정권 시절부터 학교는 부당한 방법을 동원했다고 의심되는 후보나 이에 대응한 교사와 학부모, 심지어 학생들에게까지 엄격한 교칙을 적용하여 법적인 책임을 물었다.

일례로 한때 헝가리의 대외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하던 공산당 부주석의 처남이 교감을 매수하여 일일교사로 나서려 했다가 발각된 적이 있었다. 공산 정권은 학교 측을 압박하여 사건을 무마하려 했으나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던 교장은 이 사건이 서방 세계와의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고, 즉 그 불법적인 거래를 묵인할 경우 헝가리에 우호적인 서방의 외교관들이 모욕을 느낄 것이고, 그 결과로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더 많은 자치권을 확보하려는 정책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강조하면서 부주석이 학교를 방문하여 교사들과 학생들 앞에서 사과하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매수자들의 자발적인 사퇴 선언까지 이끌어 냈다. 교장은 부주석을 그의 처남 대신 일일교사로 강단에 세워 정권과 학교의 명예를 동시에 지켜 낼 수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일일교사 선정과 관련된 추문은 크게 줄어들었으나 공산 정권이 붕괴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본가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면서 경쟁은 다시 치열해졌다. 그들의 로비는 더욱 조직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목적과 연루자를 밝혀내는 데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학교 측은 늦게라도 밝혀진 진실을 건성으로 다루는 법이 없어서, 수년 전 일일교사 선정 과정에서 부당한 이익을 챙긴 것으로 밝혀진 교사들을 가차 없이 해고하고 그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학부모들에게 명예훼손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한편 자녀의 졸업 기록을 삭제했다. 끈질긴 법적 투쟁을 거쳐 교사들이 학교로 복귀하고 학부모들은 손해배상의 의무에서 해방됐으며 그 자녀들이 졸업장을 되돌려 받게 된 뒤에도 언론과 사회단체들로부터 무한한 지지를 받고 있던 학교 측은 끝까지 그들을 죽은 자나 유령으로 취급하여 그들 스스로 학교와 인연을 정리하도록 만들었다. 죽은 자들과 유령의 그악스러운 반발에 사회 지도층과 여론이 동조하자 교장은 때마침 부다페스트에서 열리고 있던 국제 노동자 협의회의 참석자들을 일일교사로 초대했다. 그들은 아시아의 노동단체 지도자들과 아프리카의 농부들, 유럽의 광부들, 남미의 원주민 대표들, 북극의 어부들로 이루어져 있어 세계 각국 언론의 관심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여론을 이끌어 내며 전세를 뒤집었다.

두어 해 뒤에 실리적 성향의 교장이 부임해 왔다. 새로운 헝가리가 다국적 자본주의자들에게 엘도라도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간파한 그는 전통의 제약을 뛰어넘는 혁신을 강조하면서, 일일교사로 참여하는 자들에게 공개적으로 후원금을 거둬 학교 발전 기금으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선의가 탐욕과 무법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후원자와 학부모와 지역 유지로 학교 운영 위원회를 구성하여 기금을 관리하게 하고, 2년의 재임 기간에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운영 위원들에게 일일교사의 자격을 부여했다. 일일교사 후보들은 후원금 액수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고 학교 측으로부터 영수증을 발급받아 소득세를 감면받기까지 했으니, 성공 확률이 낮고 법적 처벌 위험만 높은 사적 채널을 굳이 활용할 필요가 없었다.

일일교사 후보들이 투명하고도 건설적인 경쟁을 벌이는 만큼 학교 측 역시 일일교사를 선정하는 데 지나친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을 수 있었다. 처음엔 교장과 보직교사들이 후보자들 중에서 일일교사를 최종 선정하여 행사 일주일 전에 개별 통보했으나 학교 운영 위원회가 비민주적 절차를 문제 삼자 교사들과 학교 운영 위원들이 동수로 참석하는 선정 위원회에서 투표로 일일교사를 선정하게 하고 행사 한 달 전에 투표 결과를 발표하여 선정 위원회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의혹들을 일반 학부모들이 검증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곧 이런 방식은 교육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는 불평이 주로 제3세계 출신 학부모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일교사로 선정된 자들의 대부분은 서방 사업가들이거나 그들의 사업을 직간접으로 돕는 자들 또는 외교관들이었다. 그들 모두가 중산층 백인에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기독교도라는 공통점은 결코 우연이 중첩된 결과라고만 간단히 설명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질투와 적의를 품은 비전문가들의 무분별한 검증 작업은 기괴한 소문들을 양산했고, 일일교사로 낙점된 자들이나 스스로 후보 자격을 포기한 자들 모두 행사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소문들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장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그의 짧은 재임 동안 헝가리는 엘도라도로 칭송받지 못했다. 새롭게 부임한 교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학교 운영 위원회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인터내셔널 데이는 엄연히 학업의 연장인 이상 행사를 주관하는 권력은 교사들과 학생들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교장은 강조했다. 확고한 교육 철학과 다양한 현장 경험을 지닌 교사들만이 적합한 일일교사를 선정할 수 있다고 교장은 확신했다. 교사들의 언행을 관리하고 그들의 선택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일은 교장의 임무이므로 일일교사 선정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결과는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학교 운영 위원회가 심하게 훼손했던 교사들의 권위를 원상으로 회복시켰다. 후원금이 갑자기 끊기면서 학교 재정이 어려워지자 교장은 학비를 올리고 정부의 지원금을 추가로 요청하는 한편 청소부를 포함한 시설 관리 직원들을 대거 해고하여 인건비를 크게 줄였다.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일일교사 선정은 해가 지날수록 더욱 어려워졌다. 친서방 정권이 출범한 이후로 다국적기업의 주재원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세인트버나드 국제 학교의 입학생 숫자도 덩달아 늘어났고 국가별, 직업별, 종교별, 인종별로 사교 모임을 만든 학부모들이 서로 교류하거나 경쟁하여 학교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가 지난 학기의 활동을 마무리 짓는 자리이자 새로운 학기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에 행사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경쟁자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서 가장행렬을 위해 전통 복장을 직접 만들고, 모국의 음식 재료를 비행기로 실어 날랐으며, 팸플릿과 포스터를 만들어 줄 전문 디자이너를 고용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무엇보다도 관심을 쏟은 건 자신의 모임에서 얼마나 많은 일일교사를 배출하느냐였다. 그 숫자에 따라 향후 자신들의 지위와 아이들의 성적이 결정된다고 그들은 굳게 믿었다. 직업 체험 수업에 참여한 일일교사의 이야기는 매년 책으로 묶여 주요 관공서와 다국적기업에 배포됐기 때문에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기업을 적극 홍보하고 그 업적으로 자신의 주재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도 영광의 끝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5년 전 부임한 현재의 교장은 교사들에게 작년 행사와는 분명하게 차별화된 행사를 준비하라고 작년과 똑같은 지시를 행사 반년 전부터 여러 차례 전달했다. 그렇다고 작년보다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해 둔 것도 아니었고 기업이나 지역 유지들의 특별한 지원을 유치할 만큼의 호재도 없었다. 작년 행사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 즉 일일교사 두 명의 갑작스러운 불참, 네 명의 학생들이 일일교사 앞에서 기습적으로 벌인 피켓 시위, 축구 시합에서 발생한 한 학생의 발목 골절, 가장행렬 순서를 두고 벌어진 학부모 사이의 몸싸움, 쿠폰 도난 사고, 이웃 주민들의 항의 소동 등을 기억하는 학부모들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그러니 작년의 불명예를 만회하려면 작년에 초대했던 일일교사들보다 더 유명하고 능력 있는 자들을 불러 모으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교사 한 사람당 세 명씩 후보자들을 추천하면 교장을 제외한 열한 명의 보직교사들이 갖가지 방법을 총동원하여 후보자들의 자격을 검증했다. 마땅한 후보자를 떠올리지 못한 교사들은 최근 언론이나 SNS에서 주목을 끄는 인물들과 연락을 시도하기도 했다. 각자 검증해야 할 후보자들의 숫자가 할당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숫자를 채우지 못할 경우 보직교사들은 친구나 먼 친척의 이름이라도 후보자 목록에 적어 넣어야 했다. 1차 검증을 무사히 통과한 후보자에게 연락하여 한 달 뒤에 있을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확답을 받아 내는 일은 후보자를 추천한 교사가 맡았다.

검증 결과가 항상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학교가 견지하고 있는 세 가지 교육 모토를 앞장서서 파기한다는 비난이 제기될 만큼 보직교사들의 후보 검증 방식은 지나치게 무례하고 잔혹한 데다가 모호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마치 전범 재판소의 검사처럼 후보자들을 다루었다. 한 외교관은 세계 시민의 상식과 상반되는 검열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에서 파견됐다는 트집이 잡혀 낙선했고, 한 사업가는 자신이 판매하는 전자 제품에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채굴한 광물이 사용된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음주 운전이나 탈세 혐의에 발목이 잡힌 후보자들은 그나마 판결의 논거라도 전해 들었지만, 한 학부모와 불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후보의 서류엔 평가 결과조차 기입되어 있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범국에 무기를 판매하면서 성장했는데도 전후 지금까지 도의적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는 자동차 회사의 주재원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견해를 피력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탈락자로 분류됐다. 그 이외에도 많은 후보들이 진위를 전혀 알 수 없는 소문이나 인터넷 정보에 희생됐다.

추천했던 후보들이 불분명한 이유로 거부당하자 공개적인 해명을 요구하는 교사들이 생겨났다. 교감은 아무래도 자신의 분야에서 명망을 쌓으려면 많은 시행착오와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체로 나이 많은 후보들이 검증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젊은 교사들은 자신의 부모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일교사들의 고리타분한 설교에 아이들이 거의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결국 교사들 사이의 불편한 분위기를 감지한 교장이 나서서 나이대별로 합격자들의 숫자를 할당한 뒤 1차 검증 합격자들의 목록을 수정했다.

그 목록은 다시 한번 소란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2차 검증 후보자들의 지위와 명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이름을 알파벳순으로 정렬한 목록을 사용하길 원했으나, 몇몇 보직교사들은 후보자들의 목록이 지역 사회와 아이들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의 척도를 파악하여 작성돼야 하며, 동명인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후보자들의 직업을 기록할 수 있는 공란을 추가해야 한다고 맞섰다. 교장은 보직교사들의 주장에 동조했지만 차마 겉으로 내색할 순 없어서 공정한 원칙 준수와 교사들 사이의 화합만을 강조한 채 소모적인 논쟁을 급히 갈무리했다.

일일교사들을 선정하고 분류하는 작업은 결국 보직교사들의 의지에 따라 일사천리로 마무리됐다. 다른 교사들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은 일정이 지체되었다는 이유로 과감히 생략한 채 합격자들에게 개별 통보했다. VIP로 구분된 일일교사들은 보직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 운동장에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업에 앞서 교장실에서 간단한 다과를 나눌 기회를 제공받았는데, 이 내용은 교사들과 또다시 지루한 설전에 휘말리는 게 두려웠던 교장의 지시에 따라 VIP들의 초대장에서 삭제됐다.

일일교사로 선정된 자들은 행사 전 두 차례의 토요일 아침 학교를 방문하여 소양 교육을 받아야 했다. 직업 체험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그들은 행사 목적과 관련 없는 사항을 말해서는 안 됐으며, 특히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곡해될 수 있는 언행은 삼가야 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역사와 영토,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꺼낼 수 없었다. 또한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는 고가의 의복이나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것은 금지됐고, 고성능의 전자 제품도 사용할 수 없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그들이 성인이 되어 왕성하게 활동할 시대에는 국경과 인종과 재력과 종교와 정치 체계와 언어와 교육 제도가 더 이상 미래를 제한할 수 없고 부당한 제약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며 그들은 모두 같은 높이의 지면을 딛고 결코 중첩되지 않는 방향과 서로 다른 속도로 나아가게 될 테니 경쟁보다 협력이 훨씬 유용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교장은 여러 번 강조했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민족주의자와 선민의식에 경도된 교장이 헝가리를 미래 세계의 중심에 세우려 한다고 의심할 수도 있었지만, 어렵게 얻어 낸 자리를 스스로 위태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일일교사들은 침묵하거나 무용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난처한 순간을 피해 갔다.

아동심리학과 교습 방법에 대한 강의가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다. 교장은 교육자가 종교 지도자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 설명하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전자는 아이를 성인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반면 후자는 성인을 아이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문장으로 그의 강의를 요약할 수 있겠다. 교육은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활동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교육자는 늘 예민한 균형 감각을 견지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귀가한 일일교사 예정자들은 녹초가 되어 식사도 거른 채 침대나 소파에 쓰러졌다. 행사 당일만큼은 교장에게 시달리지 않으리라는 기대에 안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