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1. 이 전자책은 2012년 10월 25일에 출간된 종이책 1판 1쇄를 기준으로 제작했다. 그러나 전자책의 제작 환경에 맞추어 체재 등을 일부 수정했다.

2. 이 전자책은 용량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종이책에 수록되었던 이미지 자료와 부록을 포함하지 않았다.


추천의 글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독자의 기쁨이자 권리다. 도서관처럼 책이 그리 많이 출간되지 않은 주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도서관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이용하는 시민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도서관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중에 이 책의 기획 소식을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이자 직업이 도서관 사서인 나에게는 매우 기쁜 소식이다.

인류는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자신의 일상에 일어난 일을 비롯해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들, 새로 얻은 지식 등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책으로 만들어 서로 공유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 공유 활동의 중심에는 늘 도서관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대 이후 공공도서관 제도를 받아들이고 꾸준히 도서관을 발전시켜왔다. 최근에는 도서관이 지역사회의 중심 의제가 될 정도로 시민들의 삶 속에 녹아들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도서관은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성장을 이루지는 못한 상태이다. 도서관다운 도서관이 아직 드물고, 또 시민들도 도서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해의 폭을 넓히자면 도서관의 가치와 역할, 매력을 제대로 알려주는 책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따뜻한 마음과 부지런한 발을 가진, 열정적인 저자들이 쓴 도서관 관련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이 책 또한 도서관을 뜨겁게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들은 이미 출판사의 인터넷 블로그에 꾸준히 도서관 산책기를 연재한 바 있다. 나는 그 글들을 즐겁게 읽어왔다. 그래서 그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아름다운 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더욱 기쁘다. 블로그의 글과 책의 글은 비슷한 내용이라도 그 맛은 꽤 다르다. 물도 담은 그릇이 다르면 맛이 다르듯, 같은 글이라도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지니 읽는 맛이 새롭고 달콤하다. 디지털 시대에도 이렇게 종이에 꼼꼼하게 인쇄해서 읽는 것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또 책은 블로그의 글보다 그 내용과 사진이 훨신 풍부해졌다.

이 책을 통해 도서관을 보는 나의 시야도 더욱 넓어졌다. 저자들이 건축가라서 도서관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표현이 남달랐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저자들이 도서관에 대해 이렇게 매력적인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분야에만 매이지 않고 깊은 인문적 소양과 현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발로 뛰며 꼼꼼하게 도서관을 살핀 덕분이기도 하다. 다른 독자들도 도서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만나고, 자신의 생각과 섞어보는 과정을 통해 좀 더 객관적으로 도서관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는 이 책의 원고가 연재되는 동안 저자들을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겸손하면서도 의욕 넘치는 두 젊은 건축가에게서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이들의 열정과 따뜻한 마음이 이 책에 잘 녹아 있다. 저자들의 이야기는 앞으로 내 도서관 활동의 지침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도서관에 관한 책이다. 다른 나라의 멋진 도서관들을 유람하고 쓴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리 이웃이 매일 드나드는 도서관을 직접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다른 이들이 잘 보지 못한 것, 도서관 사서들도 쉽게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저자들이 찾은 도서관이 우리나라 도서관 가운데 ‘가장 잘 운영되는 곳’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저자들이 해당 도서관을 선택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운 곳도 있다. 그런 다른 관점과 선택까지도 새로운 도서관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저자들이 도서관 관계자들이 아니라, 도서관을 필요로 하고 찾아가는 시민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도서관 사람들은 저자들의 관점과 시각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나도 저자들을 만나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생각을 들어야겠다.

도서관은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공 시설이다. 사람들은 도서관에 갈 일이 생겼을 때, 보통 큰 고민 없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을 간다. 그런 도서관을 한번쯤 관람과 관찰의 대상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도서관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고 책들은 어떻게 도서관에 들어와서 이용자들을 만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 사실 좀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이용을 위해서는 도서관 사용법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 필요를 느낄 때, 이 책은 꽤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저자들이 발견한 여러 도서관의 운영 방식과 활용 방식을 읽어낸 뒤, 내가 다니는 도서관과 찬찬히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이 책이 단순히 유명하다고 하는 도서관만 유람한 것이 아니기에 독자들은 도서관이라는 세상을 좀 더 흥미롭게 항해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몇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답을 찾고자 애썼으나 찾기가 쉽지 않았던 질문들이다. 어떤 도서관이 좋은 도서관일까? 우리 각자는 어떤 도서관을 바라고 있을까? 마을에 도서관은 왜 필요한 것일까? 도서관은 정말 유용한 사회 장치일까? 어떤 이유가 있었기에 도서관은 지금까지 꾸준히 발전해왔을까? 요즘같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또 디지털화하는 세상에서 도서관은 정말 필요하기는 한 것일까?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하나의 질문을 매듭 짓지도 못했는데 계속 다른 질문이 튀어나와서, 답도 찾지 못한 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나 혼자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런 질문들에 우리 사회가 다 같이 공유하고 인정하는 답이 있으면 좋겠다. 그 답을 함께 찾으려면 차분하게 사색하고 대화하고 토론할 시간이 필요하다. 한 도서관에서 다른 도서관으로 저자들이 발을 옮기듯 한 질문에서 다른 질문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차근차근 발을 옮기며 각자의 이해를 섞어 하나의 공통된 이해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내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도서관은 질문하는 사람을 위해, 즉 끊임없이 현재를 회의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존립 근거이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이 궁금한 것이 있어야 도서관은 존립할 수 있다. 이것은 사실 꽤 어려운 일이다. 바쁜 일상에서 스스로 삶의 질문을 찾아내고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민주주의 시대에 삶의 진짜 주인이 되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알아야 주인 노릇도 할 수 있다. 누군가 답을 척척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의 많은 질문들은 대부분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누군가 답을 말해준다고 해도 그것이 정말 맞는 답인지에 대해서는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우리는 세금으로 도서관이라는 공공기관을 만들었다.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미리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해두고 누구나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아무런 제약 없이 이용해서 주체적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어쩌면 가장 개혁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공공기관이다. 도서관은 과거에서 얻은 재료를 녹여내 미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이어야 한다. 도서관은 숱한 지식과 정보, 문화와 교육 활동을 통해 자신과 사회를 바꾸어내는 사람들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우리 도서관 풍경이 그러한가? 아쉽게도 우리 현실은 그런 모습과 조금 거리가 있다.

도서관의 두 번째 존립 근거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누구도 자동으로 책 속 지식과 정보를 머릿속에 넣을 수는 없다. 스스로 읽고 해석하는 노력을 해야만 지식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자면 각자에게는 책을 찾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들에게 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으면 다수가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답한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 책이고 도서관인가 하고 반문한다. 사실 도서관은 어떤 공공 시설보다도 오랫동안 문을 열어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도서관에 갈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도서관을 24시간 편의점처럼 운영한다고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결국 개인들이 스스로를 위해 쓸 시간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과제다.

평생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면서도 배우는 데에 쓸 시간을 주지 않는 사회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이 민주주의 확대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사회의 주인으로서 해답을 찾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라면 정말 민주주의를 원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천천히 사는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도서관이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이기도 하다. 천천히 가야 자신과 이웃을, 우리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도서관에서 그런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데 그 도서관을 이용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서관은 공유 시설 중에서 우리 일상에 가장 가까이 있다. 지식이 중요한 시대에, 책을 통해 인류가 쌓아놓은 지식과 지혜를 이토록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도서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은 모두 시민이 마련한다. 도서관은 세금으로 설립하고 운영한다. 내가 이용하든 안 하든 도서관 설립과 운영에 이미 일정 세금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도서관은 ‘선불제’ 시설이다. 그럼 도서관에 투입되는 세금은 어느 부분에 얼마나 쓰일까?

도서관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사람(직원)과 책(장서), 그리고 시설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다. 꼼꼼한 사람 손길이 없는 도서관은 빈집과 같다. 내가 도서관을 찾았을 때 문을 열어 맞아주고 필요한 책을 찾아주고 질문에 답해주는 사람이 없는 도서관은 영혼이 없는 집과 같다.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이 요소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책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도서관을 독서실로 이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책과 책상만 있다고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사람들은 도서관에는 어떤 책이든 모아만 두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건 내 집 서재를 아무 책으로 채우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도서관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용하는 공동 서재이다. 서재답게 꼼꼼하게 책을 고르고 모아야 한다. 그러자면 그 일을 잘 챙길 사람이 있어야 한다. 도서관이라는 무한한 지식과 지혜의 저수지를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도서관 안의 ‘사람’에 대해 좀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도서관에 필요한 여러 가지 사회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만났거나 좋아하거나 혹은 바라는 도서관의 모습과 비교해보기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가 어떤 도서관을 가지면 좋을지에 대한 사회적인 대화를 만들어가면 좋겠다.

저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도서관을 찾아 나설 것이다. 가끔은 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거닐고 싶다. 이들과 도서관의 본질이나 가치, 혹은 세세한 운영 방식에 대해 서로 생각을 나누며 도서관을 산책해도 좋겠다. 서로 다른 생각과 시각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리고 우리의 생각이 모이는 부분이 어디인지도 확인하면서 도서관을 걷고 싶다.

이렇게 좋은 필자를 발굴해낸 반비도 행복하겠지만,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이 책을 읽는 나, 그리고 나와 같은 독자들일 것이다. 도서관에 대한, 예쁘고 단단한 책을 써낸 강예린 씨와 이치훈 씨에게 다시 한번 축하와 감사 인사를 보낸다. 두 번째 책을 기대한다는 부담감도 함께 보낸다.

 

이용훈(도서관문화비평가, 메타사서)


프롤로그

국내 여러 도서관을 여행하듯 다녀보고 그 기록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우리는 큰 고민 없이 하겠다고 답했다. 둘 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국내 인터넷 서점 우수 회원이며,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위시 리스트’를 채우는 것이 취미인 데다, 마음이 심란할 때면 서가를 정리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책을 좋아하는 우리가 한번쯤 깊이 탐구해보아도 좋을 대상 같았다. 우리를 출판사에 추천한 친구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유머와 시간’밖에 없으니, 그 점만 보충하면 좋은 필자가 될 수 있다며 글 쓰는 것을 독려해 주었다. 친구의 격려에 힘입은 우리는 시간을 들여 도서관을 깊이 들여다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우리는 맞춤옷같이 편하게 도서관을 입었다 벗었다 하며, 이 공간을 안팎으로 소개하고 논할 수 있으리라 기대에 차 있었다.

책을 쓰기로 결심한 뒤, 우리는 근처 도서관을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서관을 갈 때마다 우리는 가장 먼저 건축으로서의 도서관의 면모를 살펴보게 되었다.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 건축가인 우리 눈에는 건축이 제일 먼저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축 계획과 디자인의 관점에서, 그러니까 ‘개별 열람실보다는 공용 공간에 신경을 썼구나, 서가가 전면에 나와 있으니 사람들이 책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겠구나, 저 자리는 빛을 끌어들이려고 했구나’ 하는 식으로 도서관 건축을 먼저 읽어냈다.

그런데 그렇게 도서관 탐방을 하다 보니, 탐방 횟수가 더해질수록 점점 막막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건축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도서관의 장점보다는 허물을 드러내는 데에 치중하게 될 것 같았다. 한국의 다른 건축물처럼, 많은 도서관이 예산과 기한에 맞추어 임기응변처럼 지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비판적인 글을 잘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는 차치하더라도, 그런 글을 담은 책이 독자에게 어떤 쓸모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애초 우리에게 글을 청탁했던 출판사의 기획 의도는 개별 도서관이 갖고 있는 숨은 매력을 드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 도서관에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었다. 우리 역시 책을 읽은 사람들이 동네 도서관을 한번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도서관 건축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 내용이 아무리 일리 있더라도 건축가가 아닌 다음에야 도서관에 가보고 싶은 마음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였다. 방향을 잡기 힘들었다. 건축으로서의 도서관에 대한 비평적 관점은 유지하되, 각 도서관들이 가진 역사나 특징을 잘 드러내고, 그것을 모아 한국에서 도서관이 정착해온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방법을 찾으려면 도서관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도서관과 책, 독서에 관련된 책들을 모아서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의 역사에 관한 책, 다른 나라 도서관을 소개하는 책, 서점을 소개하는 책, 책 마을을 소개하는 책, 독서에 관한 책, 출판에 관한 책, 책의 미래에 관한 책, 도서관학과 도서관 친구들에 관한 책, 도서관 건축에 관한 책……. 그 덕분에 이 책을 쓰는 동안, 책꽂이는 온통 책에 관한 책들로 넘쳐났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책의 집인 도서관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조금씩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수많은 도서관 중에서 어떤 도서관을 소개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처음 두 도서관은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선택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이진아기념도서관은 도서관이 태어나는 과정을 계속 살펴보았던 경험과, 도서관이 갖고 있는 독특한 사연 때문에 제일 먼저 소개하기로 진작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광진정보도서관은 내가 13년 동안 살던 동네에 있던 터라 개관 당시 한강 풍경을 즐기며 독서하던 행복한 기억이 남아 있어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광진정보도서관 방문은 우연히도 여러 좋은 만남으로 이어졌다. 오지은 관장님은 도서관의 공익성에 대해 많은 조언을 주셨고 ‘도서관 친구들’의 여희숙 대표님은 한국에서 도서관 문화가 어떤 식으로 자생하고 있는지 알려주셨다.

개인적인 경험을 좇아 선택했지만, 도서관 탐방을 마치고 나니, 자연스레 각 도서관의 주요 테마가 떠올랐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은 옛 서대문형무소 옆이라는 위치와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건물 구조 때문에 ‘독서하는 개인’을 만드는 훈육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 주요 테마가 되었다. 광진정보도서관은 지역 속의 네트워크로 작동하는 공간으로서 도서관이 담당할 수 있는 역할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 도서관에 대한 글을 쓰고 나자, 자연스럽게 다른 도서관들도 의미 있는 테마를 중심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역사가 깊은 도서관, 도시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도서관, 자연 속 도서관, 여행자의 도서관, 종이 책의 미래를 준비하는 디지털도서관, 특정 장르만을 소장한 장르 도서관, 대학도서관, 어른들의 도서관 등등 다채로운 테마를 가진 도서관들이 우리 앞에 하나씩 나타났다. 테마를 중심으로 골랐지만, 고른 뒤에 보니 국립도서관, 시립도서관, 구립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 등 도서관의 유형별로 골고루 다룰 수 있었다.

계획에 있었지만 쓰지 못한 도서관도 있다. ‘도서관과 출판’을 테마로 하여, 여러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파주출판문화단지의 도서관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출판단지의 공식 도서관이 준비 중에 있어, 글을 완성할 수 없었다. 출판단지가 우리나라 출판 산업에서 갖고 있는 의미가 남다른 점을 생각하니 책에서 소개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국회도서관이나 기적의도서관 등 테마가 분명하지만 이미 대중에게 많이 소개된 도서관들은 일부러 배제했다. 독자들에게 새로운, 흥미로운 도서관을 발견하는 기쁨을 주고 싶었다.

모든 도서관을 우리 둘이 함께 찾아가 함께 걷고 둘러보았지만, 글은 나누어 썼다.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도서관을 담당해서 자료를 찾고, 정성껏 원고를 완성했다. 이진아기념도서관,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 숲속작은도서관을 비롯한 자연 속 도서관들, 제주 달리도서관, 사진책도서관을 비롯한 장르 도서관들과 로욜라도서관을 내가 썼고, 광진정보도서관, 부천예술정보도서관 다감, 국립디지털도서관, 정독도서관을 이치훈이 썼다. 사진은 도서관을 방문할 때마다 찍은 뒤, 좋은 사진들을 골라냈다. 날씨와 같은 여러 변수 때문에 보강 촬영을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이때는 치훈이 더 많이 애써주었다.

애초의 생각대로 도서관을 선정했다면 목차는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깃거리가 있는 테마를 중심으로 도서관을 선정한 덕분에, 도서관들이 가진 독특한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쓰면서 우리가 얻은 제일 큰 소득은 바로 사람이다. 여러 도서관을 다니는 동안 우리는 도서관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이용훈 도서관문화비평가, 우포늪지기 이인식 선생님, 동화작가 권오준 선생님, 도서관 친구들의 이소영 선생님과 양리리 선생님, 방송작가 이인경 선생님, 도서평론가 이권우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모든 도서관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분들이 가진 도서관에 대한 경험과 생각, 꿈을 들을 수 있어서 보람찼고 행복했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 개별 도서관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도서관을 둘러싼 여러 중요한 이슈들도 접하게 되었다. 도서관 공간의 일부를 독서실에 할애하는 문제라든가, 도서관이 도심에 있을 것인가, 아니면 자연에 더 가까워질 것인가 하는 입지와 관련된 문제, 끊임없이 늘어나는 장서를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 하는 문제, 도서관이 공동체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등이 그것이다.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온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에게 아낌없이 들려주신 소중한 이야기들을 이 책 곳곳에 담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책 한 권을 완성해내는 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빈터에 건물 하나를 세우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세상에 근사한 책을 튼튼하게 세울 수 있도록, 어리숙한 필자들을 믿어주고 조언해준 반비의 김희진 편집장과 김선아 편집자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부록에 있는 도서관 관련 다이어그램과 매핑을 도와준 이아름, 초기 리서치를 도와준 양예림, 김병철, 사진 찍는 데 동행해준 배주연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12년 10월 6일

저자를 대표해서 강예린 씀


1장
참척의 슬픔으로 도서관을 짓다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

강예린


 

모형에서 실물로 나타난 도서관

7년 전 여름.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이하 이진아기념도서관)이 완공되던 해의 여름방학, 아직 학생이던 우리는 다른 건축학도 몇과 함께 이 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 한형우 선생님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은 당시 이 사무소의 주요 프로젝트였다. ‘페이퍼 건축(paper architecture)’만 하는 학생들에게, 도면에서 일어나 시나브로 현실의 옷을 껴입는 건축물이야말로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말 그대로 ‘시크릿 가든’이다. 하루하루 완성되어가는 이진아기념도서관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화제가 되었다. 다들 스스로 이 건축의 설계자라고 상상하며 건물을 둘러보기도 하고, 나아가 실제 그 건축물이라고 상상하며 제대로 기능하는지 떠올려보기도 했다.

치훈에게는 이 건축 현장이 더욱 의미가 있었다. 한형우 건축가가 이진아기념도서관 설계 공모전에 참여했을 때 스태프로 함께 일하며 모형 만드는 작업을 도왔기 때문이다. 한 선생님의 작품이 공모전에서 당선되었으니, 이진아기념도서관이 더욱 남다를 것이다. 내 손으로 나무판과 아크릴을 잘라서 만든, 1/50 축척의 건축 모형이 실물로 확대되어서 떡하니 등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건이다. 나무판 대신 콘크리트와 벽돌이 등장하고, 아크릴 대신 유리창이 끼워졌다. 우리는 50배 규모의 차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 어마어마한 차이에서 간과되기 쉬운 것들,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공간상의 선택들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다. 서투른 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건물이 다 지어질 무렵에는 너무 친근하게 느껴져, 개관식에 가서는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나무 루버(가느다란 널빤지로 빗댄 창살이나 창 가리개)의 줄눈이나 계단, 타일 같은 세부요소까지 빠짐없이 살펴보기도 했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소설 『불멸』에 따르면,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구축에 집착하는 것은 ‘불멸에의 의지’ 중 하나다. 건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괴테나 괴테의 친구들과 다른 점은 시대의 명작으로 시간에 남기보다는, 구체적인 땅을 딛고 공간 속에서 꿋꿋이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쿤데라는 불멸의 전제는 ‘죽음’이라고, 슬프게 지적한다.

이진아기념도서관도 한 사람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다.

요절한 딸을 위해 도서관을 짓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은 아버지가 요절한 딸을 기억하고자 만든 집이다. 그 불멸의 시작은 이러하다. 언제나처럼 사업에 바쁜 아버지는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 출장의 막바지에 마침 미국에 어학 연수차 와 있던 딸 진아를 잠깐 만나 뮤지컬 「라이온 킹」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딸의 부고를 듣는다. 그 시절의 여느 바쁜 아버지들처럼, 딸의 졸업식조차 챙기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타국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성장한 딸과 찍은 마지막 순간이란 사실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아버지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무언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뒤늦게라도 딸에게 성의를 보이고 싶다.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하던 아버지는 딸이 생전에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서대문구청에 도서관을 기증하기로 한다. 다른 조건은 없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 와서 딸처럼 책을 읽어주기를 바랐다. 매일 사람이 드나들며 책을 읽는 공간은 박제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공간은, 딸 진아를 기억해줄 매체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 도서관 이름의 유래가 궁금한 사람들이 때때로 진아를 떠올려줄 것이다. 은퇴 후에 도서관을 쓸고 닦을 것을 기약하는 아버지는 딸의 생일에 맞추어 도서관이 태어나주길 바랐다.

건축가는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세심하게 배려해 도서관을 설계했다. 예컨대, 도서관 옥상 정원에는 둥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