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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서스킨드

Daniel Susskind

 

옥스퍼드 대학교 베일리얼 칼리지 경제학과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전에는 영국 정부에서 총리 전략팀 정책자문관, 총리실 정책팀 정책분석가, 국무조정실 선임 정책자문관으로 일했다.

리처드 서스킨드와 함께 쓴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는 <파이낸셜 타임즈>, <뉴 사이언티스트>, <타임스 문학 부록>이 2015년에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셀러로 꼽혔다.

<뉴욕타임스>로부터 ‘대선 후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라고 평가받은 이 책에는 일의 미래를 둘러싼 놀라운 통찰이 담겨 있다. 앞으로 다가올 기술적 실업에 정부, 기업, 개인적 차원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이 책은 왜곡된 기존의 주장을 뒤엎으며 수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디자인 당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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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orld Without Work

 

Copyright ⓒ 2020 by Daniel Susskind

 

All rights reserved.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20 by Mirae N Co., Ltd.

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GEORGINA CAPEL ASSOCIATES LTD through EYA(Eric Yang Agency).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EYA(Eric Yang Agency)를 통한 GEORGINA CAPEL ASSOCIATES LTD 사와의 독점계약으로 ㈜미래엔(와이즈베리)이 소유합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들어가며

 

 

 

 

1890년대에 벌어진 ‘말똥 대위기Great Manure Crisis’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1 런던과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말은 꽤 오래전부터 가장 흔한 교통수단이었다. 수백 마리에서 수천 마리에 이르는 말이 크고 작은 수레부터 짐마차, 승객용 마차 등 온갖 운송 수단을 끌고 거리를 누볐다. 이동 수단으로서 말은 효율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몇 킬로미터마다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했고, 그런 탓에 무척 많은 말이 필요했다.2 예컨대 소박한 마차 한 대만 끌려고 해도 교대로 마차를 끌 두 마리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예비용 한 마리, 이렇게 적어도 세 마리의 말이 있어야 했다. 뉴욕 사람들이 이동 수단으로 선택했던 말 트램은 말 여덟 마리가 교대로 트램을 끌며 전용 궤도를 돌았다. 런던에서는 오늘날 런던을 누비는 빨간 2층 버스와 비슷한 크기의 2층 버스 수천 대를 말이 끌었는데, 버스마다 말 12마리가 있어야 했다.3

말이 있으니 당연히 말똥도 생겼다. 그것도 아주 많이. 건강한 말 한 마리가 하루에 싸는 똥은 무려 7~13킬로그램으로, 두 살배기 아이의 몸무게와 거의 맞먹는다.4 뉴욕주 로체스터시의 어느 열정적인 보건 공무원이 로체스터시를 달리는 말들이 한 해에 싸는 똥의 양을 계산해 봤더니, 축구장 반만 한 면적에 피사의 사탑보다도 높은 60미터짜리 탑을 쌓을 양이었다고 한다.5 당시 사람들은 이 수치를 근거로 미래에는 틀림없이 세상이 말똥으로 가득하리라는 불분명한 추론을 끌어냈다. 뉴욕의 어느 평론가는 말똥 더미가 머잖아 3층 건물 높이로 쌓이리라고 내다봤고, 런던의 어느 기자는 20세기 중반 무렵이면 말똥이 거리를 2.7미터 높이로 뒤덮으리라고 봤다.6 위기는 말똥만이 아니었다. 죽은 말 수천 마리가 길거리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썩어 갔다. 대개는 사체가 썩어 처리하기 쉬운 크기가 되도록 일부러 내버려 둔 것이었다. 1880년 한 해만 해도 뉴욕시에서 처리한 말 사체가 약 1만 5,000구였다.7

정책 입안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랐다.8 거리에 말이 돌아다니지 못하게 금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말이 운송에 워낙 중요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1872년에 역사상 손꼽히는 지독한 말 독감이 미국을 휩쓰는 바람에 말들이 죽어 나갔을 때, 미국 경제 상당 부분이 멈춰 섰다.9 어떤 사람들은 그해 일어난 보스턴 대화재를 말 독감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는데, 건물 700채가 잿더미가 된 원인이 말이 부족한 탓에 현장까지 소방 장비를 끌고 가지 못해서라는 이유였다.10

그런데 말똥 이야기의 반전은, 알고 보니 정책 입안자들이 이 문제를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1870년대에 처음으로 현대적인 내연기관이 만들어졌다. 1880년대에는 이 내연기관이 첫 자동차에 장착되었다. 그 뒤로 채 30년도 지나지 않아 헨리 포드Henry Ford가 시장에 그 유명한 ‘모델 T’를 내놓았다. 1912년이 되자 뉴욕에는 말보다 차가 더 많아졌다. 그리고 5년 뒤, 뉴욕의 마지막 말 트램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11 ‘말똥 대위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언론인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가 〈뉴요커〉에서 ‘말똥 우화’라 부른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여러 차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12 대개는 말의 감소를 낙관적으로 바라봐 첨단 기술이 승리한 이야기, 해결 방법이 도저히 없어 보이는 진저리나는 문제에 빠졌을지라도 열린 사고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금 안심시키는 이야기로 그려진다.

하지만 1973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러시아계 미국인 경제학자 바실리 레온티예프Wassily Leontief는 같은 사건에서 더 암울한 결론을 내렸다. 그는 말똥 이야기에서 수천 년 동안 도시뿐 아니라 농장과 들판에서 경제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동물을 내연기관이라는 신기술이 겨우 몇십 년 만에 변방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읽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에 잇달아 내놓은 논문 몇 편에서 현대 경제사상에 몹시 달갑잖은 이론을 하나 내놓았다. 기술 진보로 말에게 일어난 일이 끝내는 인간에게도 일어난다는 주장이었다. 즉, 기술이 우리를 기존의 일자리에서 몰아낸다는 뜻이다. 레온티예프에 따르면, 말이 자동차와 트랙터에 밀려났듯이 우리는 컴퓨터와 로봇에 밀려난다.13

오늘날 세계는 레온티예프가 느꼈던 두려움에 또다시 사로잡혔다. 이제 미국 노동자 가운데 30퍼센트가 언젠가는 자신의 일자리를 로봇과 컴퓨터가 차지하리라고 믿는다. 영국 노동자의 30퍼센트도 20년 안에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믿는다.14 이 책에서 나는 왜 이런 두려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설명하려 한다. 앞으로의 내용에서 보듯이, 두려움의 실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그 안에 숨은 참뜻은 반드시 살피려 한다.

우리 시대를 꿰뚫는 중요한 물음이 있다. ‘21세기에 모든 사람이 일할 만큼 일자리가 충분할까?’ 내 답은 ‘아니다’이다. 앞으로 나는 이 주장과 함께, 왜 이제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의 위협이 현실이 되는지, 기술적 실업이 현재와 미래에 어떤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지 설명하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게도, 우리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명확히 전달하려 한다.

레온티예프가 자신의 우려를 글로 적기 훨씬 전인 1930년에 영국의 위대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기술적 실업’이라는 용어를 널리 퍼뜨렸다. 케인스는 신기술이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밀어낸다는 개념의 핵심을 딱 두 단어 ‘기술적 실업’에 정확히 담아냈다. 앞으로 나는 케인스 이후 경제학에서 전개한 여러 주장을 활용해, 지난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더 깊이 되돌아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더 명확하게 알아보려 한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일하는 경제학자 대다수가 머무는 협소한 지적 영역을 훌쩍 넘어서 보려고도 한다. 일의 미래는 경제학과 대체로 거의 관련이 없는 흥미롭고도 까다로운 물음을 던진다. 지능의 본질은 무엇인가? 불평등이 왜 문제가 되는가? 기술 대기업의 정치적 힘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가 여태까지 경험한 세상과 사뭇 달라 보이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가? 이런 물음을 다루지 않는다면, 일의 미래를 말하는 어떤 이야기도 미완성으로 끝날 뿐이다.

 

일은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씩 줄어들 뿐

 

일의 미래를 생각할 때 중요한 시작점은 과거에도 많은 사람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비슷하게 걱정했고, 또 그 걱정이 기우였다는 사실이다. 자동화에 불안을 느끼는 현상은 오늘날에 처음 퍼진 것도 아니고, 1930년대에 케인스 때문에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다. 사실 300~400년 전 근대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한 뒤로, 사람들은 기계에 밀려날지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에 시시때때로 시달렸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은 여러 차례 예상을 벗어났다. 여러 해 동안 갖가지 기술이 쉼 없이 발전했지만, 언제나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가 넉넉했으므로 수많은 사람이 영원히 기계에 밀려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1부에서는 이 이야기를 하려 한다. 기계에 밀려날까 걱정했던 사람들의 걱정이 왜 번번이 예상을 벗어났는지를 살펴보고, 기술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바라보는 경제학자들의 견해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분석해 보겠다. 그다음에는 지난 몇 년 동안 우리의 집단 상상력을 사로잡은 기술이자, 오늘날 많은 사람이 미래를 다시금 불안하게 여기는 주요 요인인 인공지능AI의 역사로 넘어가겠다. 사실 인공지능 연구는 수십 년 전에 시작됐다. 초기에는 열광과 흥분이 넘쳤지만 연구에 거의 진전이 없자 한겨울로 접어들어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경제학자와 컴퓨터 과학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이러이러한 활동은 기계가 절대 할 수 없으리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이들이 깜짝 놀라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AI가 되살아나 기계의 지능과 활용에 혁명이 일어났다.

2부에서는 이 역사를 바탕으로, 다른 지식인들이 앞서 저질렀던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애쓰면서 21세기에 기술적 실업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를 설명하려 한다. 최근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주요 컴퓨터 과학자들은 45년 안에 ‘모든 업무’에서 기계가 인간을 앞설 확률이 50퍼센트라고 내다봤다.15 하지만 내 주장의 근거는 점점 현실이 되어 가는 이런 극적인 예견이 아니다. 사실 나는 기계가 모든 작업에서 인간을 앞서리라는 주장이 믿기지 않는다. 21세기가 끝날 무렵에도 자동화하기 어렵거나, 자동화한들 이윤이 남지 않거나, 이윤이 남더라도 여전히 사람에게 맡기기를 선호하는 업무가 있을 것이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의 노동자들이 자동화로 일자리가 사라질까 봐 두려워한다지만, 나는 오늘날 존재하는 일자리 대다수가 앞으로 몇 년 안에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새로운 일자리가 우리를 기다리는 모습은 말할 것도 없다). 사라지지 않는 일자리는 대부분 성능이 가장 뛰어난 기계조차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업무를 포함할 것이다.

나는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앞으로 기계가 ‘모든 업무’를 도맡지는 않겠지만 ‘더 많은 업무’를 맡을 것이다. 기계가 서서히 하지만 사정없이 끈질기게, 갈수록 더 많은 업무를 맡으면 인간은 점점 줄어드는 활동 영역으로 속절없이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나마 인간에게 남겨진 업무를 해낼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정말로 그 업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모두 고용할 만큼 수요가 많으리라고 볼 이유도 없다.

달리 말해, 당신이 이 책을 집어 든 이유가 몇십 년 안에 입이 떡 벌어지는 기술의 빅뱅이 일어나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일거리를 잃는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라면, 당신은 실망할지 모른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 거의 틀림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일도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손에서 벗어날 것이다. 21세기가 깊어 갈수록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는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마침내 남은 일자리는 전통적으로 두둑한 임금을 받았던 직장을 바라는 사람을 모두 고용할 만큼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보기에 유용한 방법은 자동화가 세계 여러 지역의 농업과 제조업에 이미 어떤 파장을 미쳤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농부와 공장 노동자는 지금도 필요하다. 그런 일자리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요한 노동자의 수는 농업과 제조업에서 모두 줄어들었고, 때로는 아주 가파르게 줄어들기도 했다. 두 분야 모두 어느 때보다 생산량이 늘었는데도 말이다. 즉, 이제 이 경제 영역에서는 예전과 같은 노동자 수를 유지할 만큼 인간의 노동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앞으로 보듯이 이런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미래와 관련해 무엇을 걱정해야 하는지 강조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미래는 어떤 사람들이 예측하듯이 일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일하기에는 일거리가 부족한 세상이다.

기술적 실업을 오늘날의 경제생활과 완전히 동떨어진 현상으로 다루려는, 달리 말해 지나치게 신경이 곤두선 경제학자가 느닷없이 떠올린 근거 없는 생각으로 묵살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는 기술적 실업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날지를 살펴봄으로써, 그런 태도가 왜 잘못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경제적 불평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오늘날 늘어나는 자동화를 불안하게 여기는 목소리와 정확히 때를 맞춰 커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불평등과 기술적 실업이라는 두 문제는 관련성이 아주 깊다. 오늘날 노동시장은 사회의 경제적 번영을 분배하는 주요 통로다. 우리 대다수에게 일자리는 유일한 소득원까지는 아닐지라도 주요 소득원이다. 노동시장에서 우리가 이미 마주한 어마어마한 불평등 즉, 다른 노동자에 견줘 노력에 훨씬 못 미치는 푼돈을 받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현실은 이런 부의 분배 방식이 이미 삐걱거리고 있다는 증거다. 기술적 실업은 이를 더 극심하게 보여 주는, 그래서 어떤 노동자들이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결말로 끝이 나는 이야기일 뿐이다.

3부에서는 일거리가 줄어든 세상 때문에 생기는 다양한 문제를 풀어 나가고 이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설명하려 한다. 첫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경제 문제다. 대대로 사회의 경제적 번영을 나누었던 방식 즉, 사람들에게 일한 대가를 지급하던 방식이 과거와 달리 효과가 없을 때 이를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를 다룬다.

다음으로는 경제학과 거의 관련이 없는 두 가지 사안을 다룬다. 하나는 기술 대기업의 부상이다. 앞으로는 우리 삶을 몇 안 되는 기술 대기업이 지배할 터이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우리는 기업이 쥔 경제적 힘을 주로 걱정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이들이 거머쥘 정치적 힘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난관이다. 흔히들 일이 임금을 받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을 알려 주는 정보원이라고 말한다. 이 말이 맞다면 일거리가 줄어든 세상은 삶의 목적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 된다. 우리는 앞으로 이런 문제들을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와 주장은 어느 정도 내 개인사와 관련 있다. 기술과 일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때는 약 10년 전이다. 그전까지 이 문제는 어쩌다 가끔 곰곰이 생각해 보는 가벼운 관심사였다. 내 아버지 리처드 서스킨드Richard Susskind는 1980년대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인공지능과 법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 시절에 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고 컴퓨터실에 틀어박혀 법률 문제를 해결할 컴퓨터를 만들고자 애썼다. 1988년에는 세계 최초로 상용 AI 법률 시스템을 공동 개발했다. 아버지가 그 뒤로 몇십 년 동안 이 연구를 기반으로 경력을 쌓았으므로, 나는 밥상머리에서 기술 난제들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집안에서 자랐다.

집을 떠난 뒤에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바로 그곳에서 처음으로, 경제학자들이 기술과 일을 생각하는 방식을 접했다. 황홀한 경험이었다. 이들이 제시하는 견고한 글, 정밀한 모델, 확신에 찬 주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 눈에는 이들이 실생활에서 갈피를 잃게 하는 혼란을 없애고 문제의 핵심을 드러낼 방법을 찾은 듯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처음에 느꼈던 황홀함이 희미해졌고 그러다 마침내 사라졌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영국 정부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총리의 전략실에서 일했고, 다음에는 총리 관저에 있는 정책실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기술의 힘을 믿는 동료들에게 격려를 받은 나는 일의 미래 그리고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더 신중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생 때 배웠던 경제학의 도움을 받으려고 보니, 경제학의 통찰이 내 기대를 훨씬 밑돌았다. 많은 경제학자가 지난날의 증거만을 근거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누구나 과학 소설을 즐기지만, 미래를 더 안전하게 안내할 길잡이는 역사책이다.”라는 어느 저명한 경제학자의 말대로다.16 하지만 나는 이런 관점을 믿지 않았다. 눈앞에서 경제에 벌어지는 일들은 예전에 겪었던 일들과 철저히 달라 보였다. 매우 당황스러운 노릇이었다.

그래서 영국 정부를 떠나 미국에서 공부한 뒤, 다시 학계로 돌아와 일의 미래와 관련한 다양한 물음을 탐구했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기술과 일을 생각하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경제학 박사학위를 마쳤고, 노동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바라볼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애썼다. 아울러 아버지와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The Future of the Professions》라는 책을 썼다. 책에서 우리는 기술이 법률가, 의사, 회계사, 교사 같은 화이트칼라 노동자에 미칠 영향을 살폈다. 10년 전 우리가 이 연구와 관련한 조사를 시작했을 때는 자동화가 블루칼라 노동자에게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어찌 되었든 전문직은 변화에 영향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 생각에 이의를 제기했고, 신기술 덕분에 과거와 달리 전통적인 전문직에 의존하지 않고도 아주 중요한 사회 문제, 이를테면 법률 활용, 건강 유지,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설명했다.17

이제 이 책에서 나는 학술 활동과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에서도 언급했지만 뒤이은 경험과 사고로 더 가다듬어진 통찰을 다시 말하려 한다. 간단히 말해 이 책은 내가 지난 10년 동안 특별한 주제 하나를 놓고 몰두하다시피 한 연구 과정을 담는다. 그 주제는 바로 ‘일의 미래’다.

 

운이 좋아서 생기는 문제

 

지금까지 말한 내용이 암울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이 책은 미래를 밝게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껏 인류를 지배한 경제적 문제가 기술 진보 덕분에 앞으로 몇십 년 안에 해결될 터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즐겨 쓰는 비유대로 경제를 파이 한 판으로 본다면, 지금까지는 모든 사람이 먹고살 만큼 파이를 키우는 것이 우리의 도전 과제였다. 1세기가 막 시작했을 때 국제 경제라는 파이를 세상 사람에게 모두 똑같이 나눠줬다면, 한 사람이 1년에 받은 양은 오늘날 가치로 몇백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인류 대다수가 가난에 허덕이며 살았다. 그 뒤로 1,000년이 더 흘러도 상황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1800년에 평범한 사람이 누린 물질적 풍요가 기원전 10만 년보다 나을 바가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18

하지만 지난 몇백 년 동안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했고, 이 성장을 기술 진보가 이끌었다. 그 결과, 세계 곳곳에서 경제라는 파이가 더 커졌다. 오늘날 이 파이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눈 가치, 즉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은 이미 한 해 평균 1만 770달러를 넘어섰다(이 수치는 세계 GDP 80.9조 달러를 세계 인구 75.11억 명으로 나눈 값이다).19 경제가 해마다 2퍼센트씩 꾸준히 성장한다면 자녀 세대는 우리보다 두 배 더 부유해진다. 하다못해 달랑 1퍼센트씩만 성장하더라도, 손주 세대는 우리보다 두 배 더 잘 산다. 적어도 이론만 따진다면, 우리는 이제 지난날 우리 인류를 괴롭힌 문제를 해결하기 직전에 와 있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가 열정적으로 표현한 대로, “인류는 현재 오랫동안 우리 모두의 운명이었던 가난에서 벗어났다.”20

희한하게도 기술적 실업이 그런 성공이 일어날 징후가 될 것이다. 21세기에는 기술 진보가 한 가지 문제 즉, 파이를 모든 사람이 먹고살 만큼 크게 키우는 문제는 해결할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 앞에서 봤듯이 불평등, 기술 대기업의 정치적 힘, 삶의 목적이라는 세 가지 문제를 우리 앞에 던져 놓을 것이다. 이 세 가지 난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달리 말해 경제 번영을 서로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기술 대기업의 정치적 힘을 어떻게 제약해야 할지, 일거리가 줄어든 세상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제공할지는 저마다 의견이 다르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의 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몹시 곤란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우리가 인간으로서 인류에게 마땅히 져야 하는 의무의 본질은 무엇일까?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셋 모두 만만치 않은 난제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우리 조상들을 괴롭힌 한 가지 문제 즉, 어떻게 모든 사람이 먹고살 만큼 파이를 크게 키울 것인가에 견주면 붙잡고 씨름할 맛이 훨씬 더 나는 문제다.

레온티예프는 자신의 진지한 주장을 “말이 민주당에 입당해 투표할 수 있었더라면 농장에서는 지금과 사뭇 다른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는 말로 재치 있게 드러냈다.21 말은 자신들의 운명을 통제할 힘이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다르다. 나는 기술 결정론자가 아니라서, 미래는 틀림없이 이러이러하게 펼쳐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미래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렸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의 필연성에 좌우되지 않는다.”22고 말한 탓에, 운명이라는 철길이 이미 깔려 있고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서서히 움직일 뿐이라고 믿던 사람들의 적이 되었다. 나는 포퍼의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기술 현실론자이기도 한 나는 우리가 아직 기술을 능력껏 구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21세기에 우리는 오늘날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난 시스템과 기계를 만들 것이다.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렇게 생겨난 신기술들이 언제까지나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업무들을 잇달아 차지할 것이다. 이 또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내가 보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벗어날 수 없는 미래의 모습을 받아들이면서도, 우리가 모두 함께 번영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내용을 다룬다.


 

 

차례

 

 

들어가며

 

 

PART 1 기술과 일의 역사

 

chapter 1 섣부른 불안

러다이트와 자동화 불안┃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다

인간을 보완하는 유익한 힘┃큰 그림을 보라

 

chapter 2 노동의 시대

20세기와 그 이전┃21세기가 쓰는 새로운 이야기

ALM 가설에서 얻은 통찰┃낙관적 사고방식, 인간의 일은 언제나 존재한다?

 

chapter 3 실용주의 혁명

1차 AI 물결: 인간을 모방하려는 시도┃2차 AI 물결: 과제를 수행하는 로봇

우선순위의 변화: 인간에서 기계로┃지적 설계가 아닌 자연선택

 

chapter 4 기계 경시

순수주의자들의 실망┃‘범용 인공지능’에 사로잡혀 우리가 놓쳐 버린 것

실용주의 혁명이 경제학자에게 미친 영향┃인공지능은 인간을 모방할 필요가 없다┃인간 지능의 추락

 

 

PART 2 위협

 

chapter 5 업무 잠식

신체 능력: 무인화가 가져올 파장┃인지 능력: 알고리즘이 인간을 대체한다

감성 능력: 인간의 감정에 반응하는 로봇┃업무 잠식은 예측이 아닌 현실이다┃지역에 따라 다른 속도

 

chapter 6 마찰적 기술 실업

일거리는 있다, 다만 손에 닿지 않을 뿐┃숙련 기술의 불일치

정체성의 불일치┃장소의 불일치┃실업만이 문제가 아니다

 

chapter 7 구조적 기술 실업

보완하는 힘의 약화┃우월성 추정은 틀렸다┃우리에게 남는 업무는 얼마나 많은가

‘노동 총량 불변의 오류’의 오류┃‘노동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일이 줄어드는 시기는 언제인가┃기술적 실업이 드러낼 우리의 본모습

 

chapter 8 기술과 불평등

두 가지 자본┃기술적 실업이라는 난관

소득 불평등의 전반적인 증가┃부익부 빈익빈 현상

노동 소득 분배율의 감소┃0.1퍼센트 대 90퍼센트

불평등이 가져올 앞날 내다보기┃분배 문제가 핵심이다

 

 

PART 3 대응

 

chapter 9 교육과 한계

‘더 많은 교육’에 대한 다양한 해석┃무엇을 가르칠까: 혹은 가르치지 않을 것인가

어떻게 가르칠까: 적응형 및 개별화 학습┃언제 가르칠까: 평생 학습 받아들이기

교육 기관에 대한 비판┃교육의 한계와 인간의 한계┃경제적 번영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chapter 10 큰 정부

복지 국가란 무엇일까┃소득이 쌓이는 곳에 세금이 있다

소득을 분배하는 정부┃조건적 기본 소득이란 무엇인가

자본을 분배하는 정부┃노동을 지원하는 정부

 

chapter 11 기술 대기업

왜 기술 기업인가?┃왜 대기업인가?

기술 대기업을 우려하는 경제적 논거┃기술 대기업을 우려하는 정치적 논거

정치적 힘을 감독할 수 있는 기관

 

chapter 12 삶의 의미와 목적

인간은 왜 그토록 일에 의미를 부여할까┃삶의 의미와 일의 관계는 절대적인가

일은 새로운 인민의 아편이다┃여가가 끔찍한 선물이 되지 않기 위한 정책

다시 ‘일’을 생각하기┃조건적 기본 소득의 역할┃삶의 의미를 만드는 정부

 

 

마치며

참고문헌



 

 

chapter 1

 

 

섣부른 불안

 

 

 

 

경제 성장은 아주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다. 사실 30만 년 전 현생인류가 출현한 뒤로 대부분 동안, 경제생활은 계속 제자리걸음에 가까웠다. 먼 조상들은 딱 먹고살 만큼만 동물을 사냥하고 식물을 채취했다. 경제생활이라고는 그것이 전부였다.1 하지만 그토록 오래 움직임이 없던 경제는 마침내 지난 몇백 년 동안 폭발을 일으켰다. 1인당 생산량이 13배 늘어났고, 세계 총생산이 거의 300배나 솟구쳤다.2 인간이 존재한 전체 기간을 하루로 치면 이런 활동이 마지막 한순간에,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셈이다.

 

그림 1.1 서기 1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 총생산 (단위: 조 달러)3

 

경제학자들은 꾸준한 기술 진보가 이런 성장을 이끌었다고 입을 모은다. 또 이 성장이 일어난 시기와 장소가 18세기가 끝나 갈 무렵 서유럽이라는 데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경제 성장이 일어난 이유에서는 의견이 갈린다.4 한 가지 이유는 지리일 듯하다. 어떤 나라들은 풍부한 자원, 사람이 살기에 쾌적한 날씨, 무역에 용이한 해안과 강이 있었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는 문화일 것이다. 다양한 공동체에서 천차만별인 지식과 종교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과학적 방법, 금융, 성실한 노동, 다른 사람(이와 관련해서는 사회의 ‘신뢰 수준’이 중요하다고들 말한다)에 저마다 다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가장 공통된 이유는 ‘제도’다. 어떤 국가들은 재산권을 보호했고, 위험 부담, 활발한 경제활동, 혁신을 북돋는 법률을 시행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1760년대에 다른 나라보다 먼저 쏜살같이 경제 성장을 치고 나간 나라는 영국이었다.5 영국은 이어지는 수십 년 동안 새로운 기계를 발명해 사용함으로써, 상품 생산 방식을 엄청나게 개선했다. 증기기관 같은 기계는 경제 발전과 독창적인 기술의 상징이 되었다. ‘혁명’이라는 말이 지금은 과장으로 들릴지 몰라도, 이는 실제 일어난 일에는 미치지 못하는 표현이다. 산업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그만큼이나 손꼽히게 중요한 사건이다. 그전까지는 어떤 경제 성장도 한계가 있었고, 들쑥날쑥했고, 빠르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산업혁명 뒤로는 경제가 꽤 풍부하고 꾸준하게 물 흐르듯 성장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경제 상태에 완전히 기댄 채 살아간다. 경제 성장이 멈추거나, 하다못해 느려지기만 해도 그때마다 분노와 불안, 좌절과 낙담이 터져 나와 사회를 휩쓰는 현실을 떠올려 보라. 이제는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가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듯 보일 정도다.

산업혁명이 선사한 신기술 덕분에 제조업자들은 공장의 생산성을 어느 때보다도 높일 수 있었다. 쉽게 말해 훨씬 적은 비용으로 훨씬 많은 상품을 만들 수 있었다.6 그리고 바로 여기, 근대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한 시기에 ‘자동화 불안automation anxiety’의 발단을 목격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기계를 사용해 더 많은 물건을 만들면 자신들을 찾는 노동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경제 성장과 자동화 불안이 시작부터 서로 얽혀 있었던 셈이다.

물론 사람들이 자동화를 걱정하기 시작한 때는 틀림없이 그전부터다. 어떤 발명품에서든, 그 발명품에 두려움을 느꼈을 불운한 집단을 어렵지 않게 떠올리거나 찾아볼 수 있다. 인쇄기를 예로 들어 보자. 산업혁명보다 앞서 나타난 모든 기술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 할 인쇄술이 처음 세상에 나오자, 대대로 이어온 수공예를 지키고 싶었던 필경사들이 인쇄술에 저항했다. 인쇄된 성경을 가리키며 그토록 많은 복사본을 그토록 빨리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악마뿐이라고 주장했다.7 하지만 산업혁명 동안 일어난 변화에는 이전과 다른 특징이 있었다. 익숙한 불안에 더해 변화의 강도와 폭, 지속성이 새로운 쓰라림을 보탰다.

 

러다이트와 자동화 불안

 

사람들은 자동화가 일자리를 없애리라는 불안 때문에 항의와 반대를 쏟아 냈다. 제니 방적기spinning jenny를 발명한 평범한 인물 제임스 하그리브스James Hargreaves가 겪었던 일을 생각해 보자. 학교 문턱도 밟아 본 적 없는 면직물 직조공이던 그는 랭커셔의 외진 어느 마을에서 한 사람이 방추 여러 개를 한꺼번에 다룰 수 있는 이 장치를 만들었다. 이 기계를 이용하면 사람 손만 쓸 때보다 훨씬 빠르게 목화에서 실을 뽑아냈으므로, 목화를 쓸 만한 실로 바꾸는 사업이 성장하던 당시에는 값진 혁신이었다(실제로 19세기 중반 무렵에는 영국이 세계 직물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한다).8 그런데 하그리브스가 열심히 만드는 물건이 무엇인지 소문나자 이웃들이 쳐들어와 기계를 산산조각 냈을뿐더러, 엉뚱하게도 세간살이까지 부숴 버렸다. 하그리브스가 다른 곳에서 공장을 세우려 했을 때는 난동을 부린 어느 무리가 그와 동업자를 습격하기도 했다.9

하그리브스와 같은 시대를 산 존 케이John Kay도 1730년대에 직조기의 북을 반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플라잉 셔틀flying shuttle이라는 장치를 발명했다가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분노에 싸인 직조공들이 그의 집을 뒤집어엎은 바람에 “만약 두 친구가 케이를 양모로 감싸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지 않았다면 직조공들 손에 죽음을 맞을 뻔했다.”10 그가 몰래 빠져나가는 모습은 19세기 맨체스터 시청 벽에 그려진 벽화에서 볼 수 있다.11

두 사건은 서로 동떨어진 일이 아니다. 산업혁명 동안 신기술에 맞서 이렇게 기물을 파손하는 행위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잘 알다시피 이런 파괴자들을 ‘러다이트Luddite’라 부른다. 러다이트는 영국 이스트미들랜즈 출신의 직조공 네드 러드Ned Ludd에서 따온 말로, 진위가 의심스러운 이 인물이 산업혁명 초창기에 직조기를 때려 부쉈다고 한다. 네드는 아마 실존 인물이 아닐 테지만 러다이트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이 일으킨 소동은 실재였다. 1812년에 영국 의회는 어쩔 수 없이 ‘편직기 등의 파괴에 대한 법Destruction of Stocking Frames, etc. Act’을 통과시켜야 했다. 이 법률에 따라 기계를 파괴하는 행위는 사형을 받는 범죄가 되었고 머잖아 몇 사람이 기소되어 처형되었다. 이듬해에는 사형 대신 호주로 영구 추방하는 쪽으로 형벌을 완화했지만, 형벌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드러나자 1817년에 다시 사형으로 되돌아갔다.12 오늘날에도 우리는 기술을 마뜩잖게 여기는 사람들을 ‘러다이트’라 부른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국가가 발명자 편을 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실제로 불만에 찬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워낙 시달린 나머지, 문제가 된 혁신이 퍼지지 못하도록 국가가 개입해 막은 적도 있었다. 1580년대에 일어난 두 사건을 예로 들어 보자. 첫 사례는 손뜨개질에서 벗어나게 해줄 기계를 발명했던 영국 성직자 윌리엄 리William Lee의 이야기다. 1589년에 리는 엘리자베스 1세에게 자신의 발명품을 선보이고 특허권을 얻겠다는 꿈을 품고 런던으로 갔다. 하지만 기계를 본 여왕은 특허를 딱 잘라 거절했다. “리 목사, 그대의 뜻은 높이 사겠소. 하지만 당신의 발명 때문에 내 불쌍한 백성들이 겪을 일을 생각해 보시오. 그 기계는 틀림없이 백성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거지로 만들어 그들을 파멸시키고 말 거요.”13 그다음 사례는 폴란드인 안톤 묄러Anton Möller가 겪은 비극이다. 묄러는 1586년에 운수 사납게도 리본 직조기를 발명했다. 왜 운수가 사나웠냐면, 고향인 그다인스크 시의회가 그의 업적에 대해 특허를 거절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의회는 오늘날 우리가 기업인에게 보내는 따뜻한 환영은커녕, 교수형을 명령했다.14

하지만 불안을 느낀 사람은 노동자와 정부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자 경제학자들도 자동화의 위협을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이 1930년에 ‘기술적 실업’이라는 말을 널리 퍼뜨린 사람도 경제학자 케인스였다. 하지만 케인스보다 100년도 더 앞서 경제학의 체계를 세운 사람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가 이 문제와 씨름했다. 리카도는 1817년에 위대한 저서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를 펴냈다. 그런데 책을 펴낸 지 4년도 안 된 1821년에 3판을 펴내면서 ‘기계 장치에 대하여’라는 장을 새로 추가했다. 이 장에서 리카도는 지식인으로서 중대한 사실을 시인한다. 그는 기술 진보가 노동자에게 이롭냐는 물음과 관련하여 견해를 바꾸었다고 선언하며 기계가 노동자에게 ‘전반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평생 내세웠던 주장이 ‘잘못’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런 기계들이 사실은 “걸핏하면 심각한 해를 일으킨다.”라고 결론지었다.15 아마 그때 산업혁명이 조국인 영국에 고통스러운 경제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나온 반응이었을 것이다.

기계가 미치는 악영향을 걱정하는 불안은 20세기 내내 이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자동화의 위협을 요란스럽게 떠드는 책과 논문과 보고서를 여럿 보았다. 그런데 이미 1940년에도 기술적 실업을 둘러싼 논란이 워낙 흔해서 <뉴욕타임스>는 이를 가리켜 거리낌없이 “케케묵은 논쟁”이라 불렀다.16 실제로 이 논쟁들은 계속 되풀이된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2016년 퇴임 연설에서 자동화를 “다음 경제 혼란을 일으킬 파도”로 묘사했다. 하지만 약 60년 전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도 거의 똑같은 말을 이용해 자동화가 “산업 혼란이라는 암울한 위협”을 수반한다고 말했다.17 2016년에는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도 자동화가 블루칼라 노동자를 얼마나 “사정없이 무너뜨릴지” 설명하면서, 이런 파장이 머잖아 “중산층에게도 깊이 밀어닥칠 것”이라고 내다봤다.18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도 1931년에 비슷한 위험을 알리며, 힘겹고 고된 일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는커녕 “자신의 창조자를 압도할 태세”라고 경고했다.19 사실 <뉴욕타임스>를 살펴보면 1920년부터 10년마다 어떤 식으로든 기술적 실업의 위협을 다룬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20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다

 

신기술이 경제적 피해를 미칠까 걱정했던 불안은 대부분 섣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몇백 년을 되돌아보면, 기술 진보로 많은 노동자가 영원히 실업자 신세가 될 것이라는 가장 큰 두려움을 뒷받침할 증거가 거의 없다. 노동자들이 신기술에 밀려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다수가 마침내 새로운 일을 찾은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번은 다르다’고, 최신 기술 때문에 대량 해고가 정말로 코앞에 닥쳤다고 걱정하기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때마다 거의 마찬가지로, 대량 해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바로 이런 이유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미래를 낙관한다. 지난날 일의 미래를 걱정했던 것이 기우였다면, 오늘날 같은 걱정을 하는 것도 분명히 기우이지 않겠냐는 논리다.

앞으로 보듯이 이는 그리 단순한 쟁점이 아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걱정이 전에는 빗나갔더라도, 오늘날에는 맞을 수도 있다. 역사는 반복하는 법이라지만 과거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기술에 밀려난 뒤에도 사람들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평온하지도 원활하지도 않았다. 기술 진보의 교과서 같은 시기라 할 산업혁명을 다시 예로 들어보자. 러다이트들이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그림 1.2에서 보듯 영국의 실업률은 비교적 낮았다. 하지만 이 시기에 산업 전반이 폭격을 맞기도 했다. 길쌈이나 양초 만들기처럼 수익성이 좋았던 수공예가 이익이 남지 않는 소일거리로 전락했다. 공동체가 무너졌고 모든 도시가 내리막에 들어섰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사실이 있다.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영국의 실질 임금 인상률은 달랑 4퍼센트로, 거의 오르지 않았다. 그사이 먹거리는 더 비싸졌고, 음식의 질은 떨어졌고, 유아 사망률은 높아졌고, 기대 수명은 줄어들었다.21 사람들은 정말 말 그대로 줄어들었다. 어느 역사학자에 따르면, 이런 시련 때문에 당시 영국 사람들의 평균 키는 역사상 가장 작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고 한다.22

 

그림 1.2 1760~1900년 영국의 실업률23

 

오늘날에는 러다이트들을 기술에 무지한 바보라고 업신여기기 일쑤지만, 증거로 보건대 이들이 불만을 터뜨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20세기가 낳은 가장 과감한 발명이라 할 복지 국가의 탄생 원인이 바로 이 기술 변화가 불러일으킨 격변과 고통이었다. 마침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은 실직자를 다룬 어떤 이야기에서도 축하할 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의 말을 바꿔 말하자면, 미래는 아마 과거와 비슷할 것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일의 미래를 낙관해서는 안 된다.24

얼핏 봐도 미래에는 정말로 일거리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걱정한 사람들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 케인스를 예로 들자면, 1930년에 그는 기술 진보 때문에 100년 안에 ‘1교대당 3시간’ 또는 ‘주당 15시간’ 일하는 세상이 오리라고 생각했다.25 오늘날 케인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말한 ‘여가의 시대’가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데 10년 남짓만 지나면 그가 예견한 100년이 끝난다고 기뻐한다. 꽤 설득력 있는 비판이다. 하지만 크게 내걸린 수치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상황이 깔려 있다. 부유한 나라 몇십 곳이 가입한 국제기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에서는 지난 50년 동안 연평균 노동 시간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감소 속도는 10년마다 45시간으로 느리지만, 감소 추세는 꾸준하다.

 

그림 1.3 OECD 회원국의 1인당 연평균 노동 시간26

 

여기에서 중요한 대목이 있다. 노동 시간 감소가 대부분 기술 진보 그리고 기술 진보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관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독일은 유럽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나라이자, 연평균 노동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다. 그런데 그리스는 생산성이 가장 낮은 나라이자, 많은 사람의 생각과 달리 연평균 노동 시간이 가장 긴 나라다. 그림 1.4에서 보듯이, 이는 일반적인 흐름이다. 즉, 생산성이 높은 나라일수록 사람들이 더 적게 일한다. 케인스가 예상한 바와 달리 주당 15시간 근무는 아직 먼 이야기이지만, 꾸준한 기술 진보 덕분에 우리는 서서히 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27

 

그림 1.4 생산성 대 연평균 노동 시간 (2014년 기준)28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할 때 이 모든 사실을 기억한다면 유용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미래에 ‘일자리’가 얼마나 있을지를 헤아리느라 많은 시간을 쏟는다. 예를 들어 비관론자들은 ‘로봇’이 모든 일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딱히 생산적인 일거리가 없어 빈둥거리는 세상을 떠올린다. 여기에 맞선 낙관론자들은 오늘날 많은 곳에서 실업률이 낮다는 사실을 가리키며, 일자리가 모조리 사라진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양쪽 모두 이 논쟁에서 고용되느냐 마느냐가 전부라는 듯이 일의 미래를 아주 좁게만 생각한다. 역사로 보건대, ‘일자리’만을 따지는 이런 사고방식은 전체 상황을 담아내지 못한다. 기술 변화는 일의 양뿐 아니라 일의 본질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얼마나 많은 보수를 주는가? 얼마나 안정되었는가? 하루 또는 주당 근무 시간은 얼마인가? 어떤 업무를 포함하는가? 아침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게 할 만한 활동을 하는 일인가, 아니면 이불 속으로 파고들게 할 만한 활동을 하는 일인가? 일자리에만 초점을 맞추면, 속담대로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할 위험은 그리 높지 않지만 숲에 갖가지 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놓칠 위험이 있다.

이 장에서는 ‘일자리’를 계속 다루겠지만, 일의 세계에서는 기술 진보가 사람이 맡을 일자리의 수뿐 아니라 다른 여러 요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2장부터는 이런 내용을 다시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다.

 

인간을 보완하는 유익한 힘

 

이런 주의 사항을 마음에 새긴다면, 이제 우리는 더 폭넓은 물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두려움에 떨었는데, 왜 지난날 기술 진보가 대량 실업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답은 이렇다. 지난 몇백 년 동안 실제로 일어난 일을 되돌아볼 때, 기술 변화가 일거리에 미친 악영향 즉, 우리 선조들을 불안에 사로잡히게 했던 폐해는 전체 이야기의 절반일 뿐이다. 물론 어떤 업무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밀어냈다. 하지만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자동화되지 않은 다른 업무에서는 인간을 보완했으므로, 그런 일을 맡을 인력의 수요를 늘렸다. 기술과 일의 역사를 통틀어 보면 언제나 서로 다른 두 힘이 작용했다. 노동자를 대체하는 해로운 힘과 정반대로 노동자를 보완하는 유익한 힘. 우리가 잊어버리기 일쑤지만, 이 유익한 힘은 세 가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생산성 효과

보완하는 힘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가장 뚜렷한 방식은 비록 신기술이 일부 노동자를 밀어내기는 해도 다른 노동자의 업무 생산성을 숱하게 높인다는 점이다. 1730년대에 운 좋게도 존 케이의 플라잉 셔틀을 사용했던 영국의 직조공들을 생각해 보라. 또 1760년대에 제임스 하그리브스의 제니 방적기를 이용했던 방적공들은 어떤가. 이들은 손으로만 실을 잣던 동시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면실을 뽑아냈을 것이다. 이것이 생산성 효과다.29

이 생산성 효과가 오늘날에도 작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택시 기사는 GPS(위성 항법 장치)를 이용해 낯선 길을 찾아간다. 건축가는 CAD(컴퓨터 지원 설계)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더 복잡한 건물을 만든다. 또 회계사는 세금 계산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더 어렵고 까다로운 계산을 처리한다. 그 결과 이들은 자신의 업무를 더 훌륭히 처리한다. 의사는 또 어떤가. 2016년에 MIT 대학교의 한 연구진이 개발한 시스템은 생체 조직 검사에서 유방암을 92.5퍼센트 정확도로 찾아냈다. 이에 견줘 병리학자들의 진단 정확도는 96.6퍼센트였다. 그런데 병리학자들이 MIT가 개발한 시스템을 병용해 진단했더니, 정확도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99.5퍼센트로 쑥 올라갔다. 신기술은 의사들이 암을 더 정확히 진단하도록 도왔다.30

다른 분야에서는 신기술이 어떤 업무를 자동화해 노동자에게서 빼앗으면서도, 바로 그 노동자들이 맡은 다른 업무에서는 생산성을 높일 것이다. 이를테면 서류 자동 검토 시스템 때문에 서류 더미를 들여다보는 업무에서 밀려난 변호사를 생각해 보라. 이런 소프트웨어 하나면 법률 자료를 훨씬 빨리, 게다가 대개는 더 정확하게 검토할 수 있다.31 그러니 이제 이 변호사는 다른 업무, 예컨대 법률 상담을 하거나, 고객과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주고받거나, 자신의 문제 해결 능력을 이용해 까다롭기 짝이 없는 법률 사건을 맡는 데 관심을 쏟을 수 있다.

이 모든 사례에서 생산성 향상이 고객에게 더 낮은 가격이나 더 나은 품질을 전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 상품과 서비스가 무엇이든 수요가 늘어날 테고, 따라서 인간 노동자를 찾는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기술 진보가 생산성 효과로 인간의 업무 처리 성과를 높여 노동 수요를 늘리므로 인간을 매우 직접적으로 보완한다.

 

파이 확대 효과

경제사를 살펴보면, 보완하는 힘이 인간 노동자를 덜 직접적으로 도운 또 다른 방식이 나온다. 다시 한 번 경제를 파이에 빗대면, 기술이 진보할수록 파이가 훨씬 더 커졌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난 몇백 년 동안 경제 성과가 치솟았다. 예를 들어 영국은 1700년에서 2000년 사이에 경제가 113배나 성장했다. 게다가 이 수치는 같은 시기에 저개발 국가였던 곳들에 견주면 시시할 정도다. 같은 기간에 일본은 171배, 브라질은 1,699배, 오스트레일리아는 2,300배, 캐나다는 8,132배, 미국은 1만 5,241배나 성장했다.32

언뜻 듣기만 해도, 이런 경제 성장이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경제가 성장하면, 그래서 사람들이 소비할 소득이 늘어나 더 부유해지면, 일거리를 얻을 기회도 늘어난다. 물론 어떤 업무는 자동화되어 기계의 몫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확장하면 상품과 서비스 수요도 함께 늘어나므로 그런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모든 업무의 수요도 같이 늘어나게 된다. 이런 업무들은 아직 자동화되지 않은 노동 활동을 포함하므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그런 업무에서 일거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때 미국 대통령 직속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이었던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는 젊은 시절에 이 견해를 형성했다고 한다. 1970년대에 MIT 대학교의 풋내기 경제학도였던 그는 뜻하지 않게 자동화를 둘러싼 논쟁에 휘말렸다. 그에 따르면, 당시 대학에서 “멍청한 사람들은 자동화가 일자리를 모조리 없애리라고 생각”했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생산성이 올라가면 소득이 올라가고, 따라서 노동 수요가 늘어날 것을 이해했다.”33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노동시장 경제학자라 할 데이비드 오터David Autor도 비슷한 견해를 밝히며 “사람들이 일자리 소멸을 지나치게 비관한다. … 하지만 사람은 부유해질수록 더 많이 소비하므로, 일자리 수요도 창출한다.”라고 주장했다.34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Kenneth Arrow도 역사를 볼 때 기계가 인간을 대체해도 실업이 늘지 않았다고, 같은 주장을 펼쳤다. “실제로 경제는 노동자에게 돌아갈 일자리를 마련한다. 사람이란 재산이 생기면 무엇인가에 돈을 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35

 

파이 탈바꿈 효과

마지막으로, 지난 몇백 년을 돌아보면 보완하는 힘이 작동하는 또 다른 방식이 보인다. 경제는 기술 진보에 힘입어 성장했을뿐더러 탈바꿈까지 했다. 그리하여 역사의 여러 순간마다 이전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사뭇 다른 생산물을 내놓았다. 경제를 또다시 파이에 빗댄다면, 신기술은 파이를 키웠을뿐만 아니라 파이를 바꾸기도 했다. 영국 경제를 예로 들어 보자. 앞에서 봤듯이 이제 영국 경제의 생산량은 300년 전에 견줘 100배가 넘는다. 하지만 생산물과 생산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500년 전에는 주로 농장이 경제를 구성했지만, 300년 전에는 공장이 중심이었고, 오늘날에는 사무실이 중심을 차지한다.36

기계에 밀려난 노동자에게 이런 변화가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를 여기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느 시점에 어떤 업무가 자동화되어 기계에 넘어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의 모습이 계속 바뀌므로 다른 분야에서 다른 업무의 수요가 늘어난다. 이때도 새로 요구되는 생산 활동 가운데 일부는 자동화되지 않았으므로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이 필요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이런 파이 탈바꿈 효과를 알고 싶다면, 미국을 떠올려 보면 된다. 미국에서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거듭 변화하는 경제 속에서 다른 산업으로, 다른 업무로 흘러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미국 경제의 중심은 농업이었다. 1900년으로 거슬러 가면 농업이 노동자 100명당 41명을 고용했다. 하지만 그 뒤로 농업의 중요성이 무너진 탓에, 오늘날 농업이 고용하는 노동자는 100명당 두 명이 채 안 된다.37 그렇다면 나머지 39명은 어디로 갔을까? 바로 제조업이다. 제조업은 50년 전에 농업을 대체했다. 실제로 1970년에는 제조업이 미국 노동자의 26.4퍼센트를 고용했다. 하지만 제조업도 하락세로 접어들어 오늘날에는 미국 노동자의 9퍼센트만을 고용한다.38 그렇다면 일자리를 잃은 공장 노동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답은 서비스 분야다. 현재 서비스업은 노동자 열 명당 여덟 명 넘는 인력을 고용한다.39 경제가 이렇게 탈바꿈하는 현상은 결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가 발전한 나라는 거의 모두 비슷한 길을 밟았고, 많은 저개발 국가도 그 길을 뒤따르고 있다.40 중국의 경우 1962년에는 농업이 노동자의 82퍼센트를 고용했지만, 오늘날에는 그 수치가 31퍼센트로 떨어졌으며 농업 고용률이 미국보다 더 크고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41

‘파이 확대’ 효과에서는 불안에 떨었던 우리 선조들이 앞으로 경제가 성장할 것을 멀리 내다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면, ‘파이 탈바꿈’ 효과에서는 선조들이 상상력 부족으로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경제의 생산물과 생산 방식이 앞으로 몰라보게 탈바꿈할 것을 내다보지 못했다. 어느 정도는 이해할 만한 일이다. 이를테면 1900년에 영국인 대다수는 농장 아니면 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니 앞으로 국가 의료 제도NHS라는 ‘의료 기관’ 한 곳이 당시 영국의 모든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를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리라고 예측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42 당시에는 의료 산업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의료 산업의 거대한 고용주가 된다는 생각도 허튼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시에는 의료가 민간 의료와 무료 의료 형태로만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나타난 여러 직종도 마찬가지다. 20~30년 전만 해도 검색 엔진 최적화 엔지니어, 클라우드 컴퓨팅 전문가, 디지털 마케팅 컨설턴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같은 직종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43

 

큰 그림을 보라

 

기술이 일에 미치는 영향이 서로 경쟁하는 이 두 힘, 인간을 대체하는 해로운 힘과 인간을 보완하는 유익한 힘의 상호작용에 달렸다는 생각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두 힘을 속속들이 명료하게 설명한 글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동화를 다룬 책, 논문, 보고서는 두 힘의 영향을 넌지시 말하지만 툭하면 용어를 마구잡이로 섞어 써서 헷갈리기 일쑤다. 이런 자료에 따르면, 기술은 인간을 쫓아내면서도 늘리고, 대체하면서도 강화하고, 가치를 깎아내리면서도 권한을 주고, 방해하면서도 유지하고, 파괴하면서도 창조한다. 우리가 마주한 난제는 컴퓨터와 경쟁하면서도 협력하고, 기계와 경주하면서도 함께 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계의 부상과 인간의 진전, 인간을 위협하는 로봇과 인간을 도와 협동하는 코봇co-bot, 기계의 인공지능과 인간의 증강 지능을 이야기한다. 이 자료들은 미래에는 인간이 쇠퇴하면서도 기계와 인간의 관련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다고, 그러므로 기술은 위협이자 기회이고, 경쟁자이자 동반자이고, 적이자 친구가 된다고 말한다.

짧기는 하지만, 이 장에서 언급하는 경제사는 이 두 힘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명확히 밝히려 한다. 기계가 특정 업무에서 인간을 밀어낼 때는 인간을 ‘대체’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는 꽤 쉽게 눈에 띈다. 이와 달리 기계가 다른 업무에서 인간 노동의 수요를 늘릴 때는 인간을 ‘보완’한다. 앞에서 봤듯이 이 현상은 세 가지 방식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인간을 밀어내 버리는 기계에 비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기술의 대체 효과와 보완 효과를 명확히 구별하면, 왜 지난날 기술적 실업을 걱정했던 불안이 거듭 빗나갔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두 근본적인 힘이 부딪힐 때, 우리 조상들은 엉뚱한 쪽을 승자로 골랐다. 언제나 보완하는 힘을 깡그리 무시하거나 보완하는 힘이 대체하는 힘에 압도되리라고 잘못 상상했다. 데이비드 오터의 말대로, 사람들은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수준은 과장하고, 자동화와 인간 노동의 강력한 상호 보완성은 무시”하곤 했다.44 그 결과, 계속 남아 있을 노동 수요를 거듭 과소평가했다. 크게 볼 때 인간을 고용할 수요는 언제나 충분했다.

개별 기술에서도 이런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자동현금인출기ATM를 생각해 보라. ATM은 은행 창구 직원의 현금 출납 업무를 없앨 셈으로 발명한 기계였다. 20세기 중반에는 셀프 주유소, 셀프 계산대, 사탕 자판기 같은 셀프서비스 문화가 경제생활 곳곳에 퍼졌고, ATM도 그 일부였다.45 첫 ATM은 1960년대 중반에 일본에서 처음 설치되었다고 한다.46 몇 년 지나지 않아 유럽에도 널리 퍼졌는데, 갈수록 힘이 세지는 노조가 주중에 일하는 고객들이 은행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인 토요일에 은행 문을 닫기를 요구하는 데 맞선 해결책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서 2010년 사이에 ATM 대수가 네 배 넘게 늘어서, 2010년에는 40만 대가 넘는 ATM이 작동했다. 이런 증가세를 들으면, 미국 은행이 고용한 창구 직원의 수가 뚝 떨어졌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반대 상황이 펼쳐졌다. 이 시기에 창구 직원 수는 20퍼센트가 늘었다.47 이 수수께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앞에서 다룬 두 힘을 이용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엿볼 수 있다. 답은 ATM이 단순히 창구 직원을 대체만 하지 않고 보완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때로는 ATM이 창구 직원을 직접 보완하기도 했다. 창구 직원의 현금 출납 업무 생산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직원들이 고객과 얼굴을 맞대고 업무를 지원하거나 금융 지식을 전달하는 것 같은 다른 활동에 힘을 쏟을 여유를 줬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은행 지점을 방문한 고객에게 더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더 많은 고객을 사로잡았다는 뜻이다. ATM 덕분에 지점 운영비도 줄었으므로, 은행은 가격 경쟁력이 더 높은 상품을 내놓아 방문 고객을 더 끌어들일 수 있었다.

동시에 ATM은 창구 직원을 간접 보완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파이 확대 효과가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무슨 뜻이냐면, 당시에 ATM과 무수한 다른 혁신이 경제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소득이 올랐고, 따라서 은행과 창구 직원을 찾는 수요가 커졌다. 파이 탈바꿈 효과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더 부유해졌으므로 고객의 요구가 그저 은행 계좌에 돈을 넣고 찾아 쓰는 쪽에서 요즘 창구 직원들이 제공하는 ‘관계형 금융relationship-banking’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것이다.

이 모든 유용한 효과가 함께 작용한 결과, 일반 지점에 필요한 창구 직원의 수가 1988년 기준 20명에서 2004년 기준 13명으로 떨어졌지만 이 시기에 지점 수는 은행 서비스 수요 증가에 맞춰 늘어났고, 도시 지역에서는 무려 43퍼센트까지 늘었다. 따라서 창구 직원의 일거리가 전체적으로 늘어났고, 이들의 수도 떨어지기는커녕 늘어났다.48

물론 기술과 일의 전체 역사는 이 장에서 정리한 것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이야기가 불분명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개요는 여기서 다룬 내용과 같다. 지금껏 봤듯이 기술 진보는 여러모로 붕괴와 혼란을 낳았다. 하지만 증명된 바에 따르면, 산업혁명에서부터 오늘날까지 기계 때문에 자신들이 영원히 실직자로 밀려나리라고 걱정했던 노동자들은 틀렸다. 인간을 대체하는 해로운 힘과 보완하는 유익한 힘의 싸움에서 지금껏 후자가 이겼다. 그리고 언제나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가 충분히 컸다. 그러니 이를 ‘노동의 시대’라 부를 수 있다.


 

 

chapter 2

 

 

노동의 시대

 

 

 

 

노동의 시대란 잇따른 기술 진보의 물결이 노동자에게 해를 끼치기보다 폭넓게 도움이 된 시기라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진보가 대체로 노동자에게 이로웠을지라도, 언제나 모든 노동자에게 이롭지는 않았다. 이로움이 한결같이 이어지지도 않았다. 알고 보니 기술 진보란 변덕스러운 친구라서, 시기에 따라 서로 다른 노동자 집단이 더 많은 이익을 누렸다. 이런 전개를 이해하느라, 지난 10~20년 동안 여러 경제학자가 기술과 기술이 일에 미치는 파장을 놓고 자신들이 주장한 이야기를 완전히 뒤바꿔야 했다.

경제학자를 이야기꾼으로 여기지는 않겠지만, 실제로 경제학자는 이야기꾼이다. 다만 경제에 능숙한 독자에게 이야기를 정확히 전달하려다 보니, 낯선 말과 수학을 이용해 글을 쓸 뿐이다(하지만 그래서 경제를 잘 모르는 독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큼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어렵다). 경제 이야기는 줄거리가 되도록 현실과 가깝게 일치하는 사실에 근거한 논픽션이어야 한다. 어떤 이야기는 한 번의 용감무쌍한 승리에 인간의 대단한 활약을 정확히 담아내려 하는 서사시다. 어떤 이야기는 범위를 훨씬 줄여, 오롯이 특정 행동 양식을 설명하는 데만 집중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이야기보다 ‘모델’이라 부르고 싶어 한다. 모델이라는 말이 확실히 더 무게 있는 칭호로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모델이든 결국에는 실제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려줄 통찰을 담아내고자 공식과 그래프로 전달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20세기와 그 이전

 

20세기 후반 대부분 동안, 기술 변화로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노동자는 정식 교육을 더 많이 받은 사람들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를 설명할 이야기를 전개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1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다. 20세기 중반 무렵 발명된 이 기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성능과 유용성이 폭발하듯 늘어났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 들어 기업들이 대형 컴퓨터를 광범위하게 이용하기 시작했다.2 그다음에는 개인용 컴퓨터 즉, PC가 개발되어 널리 퍼졌다. 1980년 후반만 해도 미국의 PC 보유율은 인구 100명당 한 명이 채 안 되었지만, 2000년 무렵에는 수치가 60명 이상으로 치솟았다.3 게다가 이런 기계들의 성능이 갈수록 크게 향상했다. 20세기 후반 들어 정해진 시간당 기계 한 대가 수행할 수 있는 계산량이 크게 솟구쳤다.4 그림 2.1이 이를 보여 준다. 그래프는 1850년에 계산을 손으로 할 때부터 시작해 여러 기계를 거친 끝에 2000년에 델Dell사의 프리시전 워크스테이션 420 데스크톱 컴퓨터로 끝이 난다.

 

그림 2.1 1850~2000년 초당 계산량 (수작업 계산을 1로 봤을 때)5

 

초당 계산량이 얼마나 빠르게 늘었는지를 파악하기 쉽게 한 그래프 안에 담고자, y축은 로그 눈금을 적용했다. 달리 말해 y축에서 눈금 한 칸이 올라갈 때마다 초당 계산량은 10배씩 늘어난다(따라서 두 칸을 올라가면 100배, 세 칸을 올라가면 1,000배로 는다). 그래프에서 보듯이, 1950년부터 2000년 사이에 컴퓨터의 계산 능력은 얼추 100억 배가 늘었다.

하지만 이 강력한 새 기계가 복잡한 수치를 계산하거나 글을 보기 좋게 조판하는 것 같은 특정 사무 작업에서는 쓸모 있었을지 몰라도, 인간의 필요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사실 이런 컴퓨터들은 컴퓨터를 다루고 생산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전문 인력의 수요를 훨씬 크게 늘렸다. 당시 나타난 다른 기술들도 같은 효과를 내, 해당 기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전문 인력의 수요를 창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기술 변화가 모든 노동자에게 똑같이 이롭지는 않아서, 혜택이 누군가에게 치우쳤다. 어느 경제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기술 변화는 ‘숙련에 편향skill-biased’한다.(‘숙련 편향’과 관련하여 언급할 내용이 있다. 경제학자들은 ‘숙련’의 의미를 아주 특별하게 정의한다. 이들이 말하는 숙련이란 어떤 사람이 받은 정규 교육의 양이다.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이 정의에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미용 전문가나 손재주가 뛰어난 정원사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숙련자’들을, 경제학자들의 정의에 따르면 그저 대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숙련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숙련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일반인과 경제학자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어느 쪽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혼란과 불쾌함을 일으키지 않도록, 경제학자들이 ‘숙련 편향’이라는 용어를 정확히 어떤 뜻으로 쓰는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기술 진보가 숙련에 편향했다는 이야기를 탄탄히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었다. 그리고 이 증거는 그 시기가 경험한 수수께끼를 깔끔하게 설명했다. 경제학의 기본 원리 중 하나는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의 공급이 늘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20세기가 겪은 수수께끼는 노동시장에서 이와 정반대인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점이었다. 어떤 나라에서는 대학교가 쏟아 내는 고숙련 인력의 수가 엄청나게 늘었는데도, 이들의 임금이 이런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 견줘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올랐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숙련 편향 이야기가 답을 제시했다. 고숙련 노동자의 공급이 늘자 임금이 떨어졌지만, 신기술이 숙련 편향이었으므로 고숙련 노동자를 찾는 수요가 치솟았다. 숙련 편향 효과가 워낙 컸으므로 임금 하락 효과를 압도했고, 일거리를 찾는 고등교육 인력이 더 늘어났는데도 이들을 찾는 수요가 워낙 커서 임금이 계속 올랐다.

경제학자들이 ‘숙련 프리미엄skill premium’이라 부르는 이 현상을 측정하는 흔한 방법은 대졸자 임금과 고졸자 임금을 비교하는 것이다. 그림 2.2에서 보듯이 2008년에 미국의 고졸자 평균 임금 대비 대졸자 평균 임금의 비율은 지난 몇십 년을 통틀어 가장 크게 벌어졌다.(여기에서 비교 결과는 두 집단이 받은 평균 임금의 비율을 로그값으로 바꾼 ‘로그 임금 격차’로 표시했다. 2008년 로그 임금 격차는 0.68로, 일반 대졸자의 평균 소득이 일반 고졸자의 평균 소득보다 거의 두 배 많았다는 뜻이다.)6 같은 시기에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7

노동 환경에서 숙련 편향 이야기를 살펴보는 또 다른 방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교육 수준에 따라 임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림 2.3이 이를 보여 준다. 그래프에서 보듯이 지난 50년 동안 학교 교육을 더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언제나 소득이 더 높았을 뿐만 아니라, 고학력자와 저학력자의 임금 격차가 갈수록 더 커졌다(여성의 경우에는 이런 현상이 1980년대부터 뚜렷이 나타난다).

 

그림 2.2 1963~2008년 미국의 숙련 프리미엄8

 

그림 2.3 1963~2008년 미국 정규 노동자의 실질 임금 (1963년 임금을 100으로 잡았을 때)9

 

그림 2.4 1220~2000년 영국의 숙련 프리미엄10

 

20세기 후반에 노동 세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기술 편향 이야기가 뛰어나게 설명하지만, 그전에는 상황이 사뭇 달랐다. 그림 2.4를 살펴보자. 이 그래프는 영국의 숙련 프리미엄을 무려 1220년부터 보여준다.(운 좋게도 실제로 그 시절까지 아우르는 데이터가 있다. 알고 보니 영국 기관 들이 지난 1,000년 동안 놀랍도록 착실하고도 꾸준하게 기록을 보관해 왔다.) 1220년에는 대학 학위가 드물었으므로, 이때 숙련 프리미엄은 장인의 임금과 단순 육체노동자의 임금을 비교하여 측정했다. 그림 2.4에서 보듯이 길게 놓고 보면 숙련 프리미엄이 그림 2.3에서처럼 치솟는 양상을 보이지 않는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이 장기 그래프로 보건대, 기술 변화가 실제로는 특정 시기에 숙련자로 여겼던 노동자에게 언제나 이로웠던 것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다른 직종의 노동자를 선호한 듯싶다. 19세기를 예로 들어 보자. 1장에서 봤듯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을 때 일터에 새로운 기계와 새로운 생산 과정이 도입되었으므로, 노동자가 맡을 업무도 새로워졌다. 그런데 이런 업무를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알고 보니 당시 숙련 기술이라고 여겼던 능력이 없던 사람들일 때가 많았다. 따라서 이때 기술은 숙련에 편향하기는커녕 ‘비숙련에 편향’했다.11

산업혁명을 보여 주는 어느 유명한 그림은 밀물처럼 밀려드는 기계들이 수많은 저숙련 노동자를 업무에서 밀어내는 모습을 그린다. 두 손과 간단한 연장만으로 실을 잣고 옷감을 짜서 생계를 꾸리던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거리를 잃는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은 이와 달랐다. 기계에 일자리를 위협받은 대상은 그때 숙련 노동자로 간주되던 사람들이었다. 자동화에 맞서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을 이끌었다는 네드 러드도 당시 미숙련공이 아닌 숙련 노동자였다. 만약 그가 실존 인물이라면, 네드는 전문가였을 것이다. 어쩌면 직물 업계 종사자들의 유명한 사교 클럽이던 직물직공 명예협회의 정식 회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직조기가 네드와 동료들을 밀어냈다는 것은 네드와 달리 숙련 기술이 없던 미숙련자가 네드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새 기계들은 과거에는 숙련 노동자들이 필요했던 고품질 제품을 미숙련자들도 생산하기 쉽게 만들어, 노동을 탈숙련화deskilling한다.

영국에서는 150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 초반 사이에 미숙련 노동자의 비율이 두 배로 뛰었다.12 이런 변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제조업자들에게 경영 자문을 했던 영향력 있는 인물 앤드류 유어Andrew Ure는 “약아빠진 노동자”에게서 업무를 빼앗아 “아이도 관리”할 만큼 사용이 간단한 기계로 대체하라고 부르짖었다.13(그냥 비유로 한 말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아동 노동이 용인되는 관행이었다.)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어Joel Mokyr의 말대로, 이런 흐름은 면화와 직물 업계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소화기, 다음에는 시계, 펌프, 자물쇠, 수확기, 타자기, 재봉틀 그리고 마침내는 엔진과 자전거, 부품 호환 기술이 끌과 줄을 들고 일하던 숙련공들보다 뛰어난 것으로 드러났고, 마침내 이들을 대체했다.”14

21세기로 들어설 무렵, 경제학자들의 통념은 때로 숙련에 편향하기도 하고 때로 비숙련에 편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쪽에 서든 경제학자들은 기술 진보가 언제나 노동자에게 대체로 이롭다고 생각하곤 했다. 사실 경제학에서 주로 사용한 모델에서는 신기술이 숙련 노동자든 비숙련 노동자든 어떤 노동자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일이 불가능했다. 이 모델에 따르면 기술 진보가 때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 더 이득일지언정 언제나 모든 사람의 임금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워낙 널리 퍼져서, 주요 경제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표준 모델canonical model이라 부른다.15

 

21세기가 쓰는 새로운 이야기

 

표준 모델은 수십 년 동안 경제학자들의 논의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최근에 아주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1980년대부터 신기술이 저숙련 노동자와 고숙련 노동자에게는 모두 도움이 되었지만, 중간 숙련 노동자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현상이다. 여러 국가에서 직업군을 빠짐없이 모아 숙련도가 가장 낮은 것부터 높은 것까지 길게 한 줄로 세우면, 지난 몇십 년 동안 양쪽 끝단에 있는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률은 늘었지만, 중간에 있는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률은 줄어든 현상이 자주 눈에 띈다. 그림 2.5가 이런 흐름을 뚜렷이 보여 준다.

 

그림 2.5 1995~2015년 노동 숙련도별 고용률 변화16

 

이 현상을 ‘양극화’ 또는 ‘공동화hollowing out’라 부른다. 과거에 여러 나라에서 중산층에게 흔히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제공했던 볼록한 중간 부분이 이제 사라지고 있다. 전체 고용률로 볼 때, 많은 나라에서 저임금을 받는 간병인과 청소부, 보조 교사와 간호조무사, 관리인과 정원사, 웨이터와 미용사가 더 늘어난 만큼 이제는 고임금을 받는 전문직과 관리직도 더 늘어났다.17 하지만 중간 임금을 받는 비서와 행정 사무원, 생산직 노동자와 판매원은 더 줄어들었다.18 노동시장은 갈수록 두 층으로 나뉘고 있다. 게다가 한 층이 다른 층보다 훨씬 많은 이득을 누리고 있다. 임금을 많이 받는 순으로 노동자를 한 줄로 세울 때, 맨 앞에 선 0.01퍼센트(미국의 경우 연 소득이 1,130만 달러 이상인 1만 6,599가구)가 받는 임금이 지난 몇십 년 동안 가파르게 올랐다.19(여기에서도 용어와 관련해 할 말이 있다. 이런 자료 제시는 ‘임금’과 ‘숙련’이 마치 같은 것인 양, 노동자를 최저임금부터 최고임금까지 한 줄로 세우는 것이 저숙련부터 고숙련까지 한 줄로 세우는 것과 같은 것인 양 다루는 듯 보인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사안도 경제학자들이 숙련이라는 말을 특이하게 정의한 것과 관련한다. 임금을 적게 주지만 흔히 말하는 특별한 숙련 기술이 필요한 일자리가 분명히 존재한다. 예컨대 응급 구조사를 생각해 보라. 또 많은 임금을 주지만 숙련 기술이 거의 필요 없는 일자리도 있다. 이를테면 2007~2008년 금융위기 뒤에 금융업 종사자에게 쏟아졌던 비난과 혹평을 떠올려 보라.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경제학자가 ‘숙련’을 이야기할 때는 사실 ‘정규 교육의 수준’을 뜻한다. 그리고 특정하게 정의한 숙련의 대리 지표로 임금을 이용하는 것이 실제로 타당하다고 드러났다. 무슨 뜻이냐면, 지금껏 봤듯이 학교 교육을 더 많이 받은 사람들이 임금도 더 많이 받았다. 따라서 일자리를 임금 수준에 따라 한 줄로 세우느냐, 그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정규 교육 기간에 따라 한 줄로 세우느냐는 실제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쪽에서든 공동화 양상은 얼추 비슷하게 나타난다.)20

노동시장의 공동화는 새로운 수수께끼다. 20세기 후반에 경제학의 사고방식을 지배한 표준 모델은 이 수수께끼를 풀 능력이 없었다. 저숙련 노동자와 고숙련 노동자라는 두 집단에만 좁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왜 중간 숙련 노동자가 저숙련이나 고숙련 노동자와 사뭇 다른 운명을 마주했는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러므로 새로운 설명이 필요했다.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처음부터 다시 세웠다. 그리고 지난 몇십 년 동안 기술과 일의 관계를 완전히 다르게 보는 사고방식을 뒷받침하는 이론이 나타났다. MIT 대학교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 프랭크 레비Frank Levy, 리처드 머네인Richard Murnane이 개척한 이 이론을 ‘오터-레비-머네인 가설Autor-Levy-Murnane hypothesis’, 줄여서 ‘ALM 가설’이라 부른다.21 10년 전 내가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 도움을 받았던 이야기도 바로 이것이었다.22

ALM 가설은 두 가지 깨달음을 토대로 세워졌다. 하나는 단순한 깨달음이었다. 흔히 그렇듯 ‘일자리’ 관점에서 노동시장을 보면 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일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언론인과 의사, 교사와 간호사, 농부와 회계사 관점에서 생각하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느날 아침 깨어 보니 기계에 밀려나는 날이 오겠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일자리의 업무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같은 특성을 보인다고, 이를테면 변호사는 ‘변호사 업무’만을, 의사는 ‘의료 업무’만을 맡는다고 생각하도록 조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일자리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사자들이 그 일을 하는 동안 갖가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함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기술과 일의 관계를 명확히 따지려면 하향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직업으로 나눠 살펴보기보다 상향식으로 세밀하게 그 직업의 특정 업무에 초점을 맞춰 살펴봐야 한다.

다른 깨달음은 알아채기가 더 어려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확해진 점 하나는, 인간이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교육 수준 즉, ‘숙련’ 수준이 기계가 그 업무를 수행하기 쉬울지 어려울지를 늘 의미 있게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교육 수준보다 중요한 잣대는 그 업무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틀에 박힌routine’ 업무인지 여부였다. 여기서 말하는 ‘틀에 박힌’이란 업무가 꼭 지루하고 지겹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경제학자들은 수행 방식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업무를 ‘틀에 박힌’ 업무로 보았다. 만약 어떤 업무가 ‘암묵적tactic’ 지식 즉, 설명하기 어려운 지식이 아니라 ‘명시적explicit’ 지식 즉, 설명하기 쉬운 지식에 의존한다면 이것이 곧 ‘틀에 박힌’ 업무였다.23

오터와 동료들은 이런 ‘틀에 박힌’ 업무들이 틀림없이 자동화하기가 더 쉽다고 믿었다. 왜 그랬을까? 기계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한 이 경제학자들은 어떤 업무를 자동화하려면 반드시 그 업무를 맡은 사람 옆에 앉아 평소에 어떻게 그 일을 수행하는지 설명을 들은 다음, 이를 바탕으로 기계가 따라야 할 명령을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24 오터는 기계가 어떤 업무를 완수하려면 “반드시 프로그래머가 먼저 그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절차를 완전하게 이해한 다음, 기계가 실제로 이 업무 절차를 정확히 따르도록 명령하는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달리 말해 업무가 ‘틀에 박히지 않은’ 것이라면, 그래서 그 업무를 어떻게 수행하는지를 우리가 쉽사리 설명하지 못한다면 프로그래머가 기계에 어떤 명령을 내려야 할지 명확히 기술하기 어렵다는 뜻이다.25

ALM 가설은 이 두 가지 생각을 하나로 묶어 기계는 ‘틀에 박힌’ 업무는 손쉽게 수행할 수 있지만,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는 힘겨워 한다고 주장한다. 이 영리한 주장을 적용하면 그림 2.5가 잡아낸 이상한 흐름을 설명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이 갖가지 일자리를 업무 단위로 쪼개었더니, 중간 임금 노동자가 수행한 일에는 ‘틀에 박힌’ 업무가 많았지만, 저임금 노동자와 고임금 노동자의 일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노동시장에 공동화가 일어나 모래시계 모양이 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기술 변화가 중간 부분에 몰려 있는 ‘틀에 박힌’ 업무는 먹어 치웠지만, 양 끝에 있는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는 소화하지 못했으므로, 인간이 맡을 영역으로 남았다.26

고임금 고숙련 일자리의 업무가 대체로 ‘틀에 박히지 않은’ 종류로 드러난 것은 놀랍지 않았다. 이런 일자리와 관련한 업무를 하려면 독창성과 판단력처럼 규칙으로 정리하기가 몹시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능력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창적으로 일하는 법’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지시서가 있다고 하면, 우리 대다수는 몹시 미심쩍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왜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도 ‘틀에 박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을까? 이런 일자리가 대개 서비스 분야에 속했으므로 서비스를 제공할 대인 관계 능력을 규칙에 담아내기 어렵다는 점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하지만 그보다는 저임금 일자리가 대개 손기술이 필요해 자동화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더 큰 이유였다. 컴퓨터 과학자는 우리가 손으로 간단히 처리하는 일 대다수가 기계에는 가장 어려운 과제라는 결과에 이미 익숙했다.(이를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라 부른다.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은 미래학자이자 발명가로, 이 개념을 처음으로 기록한 사람이다.)27 사람은 식사를 준비하거나 나무를 다듬는 작업을 할 때 찬찬히 생각하지 않고 직관에 따라 무심결에 움직인다. 그러니 이런 작업을 단순하게 여기겠지만 막상 그 일을 하는 방법을 설명할 때는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이런 업무도 고임금 고숙련 업무와 마찬가지로 쉽게 자동화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니 알고 보면 기술 진보는 흔히들 말했던 이야기와 달리 숙련에 편향하지도, 비숙련에 편향하지도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계가 어떤 업무는 수행할 수 있지만 어떤 업무는 수행하지 못했으므로, 기술 진보는 업무에 따라 편향했다. 달리 말해, 유리하게도 기계가 처리하지 못하는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만이 기술 변화에서 이익을 얻었다. 결국 이 때문에, 특정 중간 숙련 노동자들 즉, 어쩌다 보니 기계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틀에 박힌’ 업무가 주를 이루는 일자리에 발이 묶인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