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


처음에 필자가 영어 강의를 할 때 주 대상은 성인이었다. 그런데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장에 유독 점점 많이 찾아오는 무리가 있었다. 바로 초등학생, 중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의 배경도 다양했다. 영어를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아이부터 외국서 산 적이 있는 아이까지 왔다. 영어를 좀 하는 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부모님이 데리고 와서 왜 여기에 왔는지 물어보니 부모가 답하길, 이곳에서 영어를 정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주에 특강을 하러 갔더니, 특강 후 한 아버지가 앞으로 나와 말씀하시기를 아이를 애로우 잉글리시 방식으로 영어를 시켰더니 이젠 아이가 말도 하고, 책도 다 읽고 한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이러한 현상을 접하면서 언젠가 초등학생을 위한 학습법 책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 책을 집필한 계기이다.

아래는 특강 참석 후 받게 된 후기이다.

 

오늘 6월 11일 강남 본원 특강을 들은 김건희 엄마입니다. 초등 6학년인 큰아들이 담임선생님께서 권해주는 특강이 있다며 강남에 가고 싶다 하여 네 식구가 총출동해서 특강을 들으러 가게 되었죠. 처음에는 학교 선생님이 무슨 사교육을 권유하나 하나 싶은 마음이었는데, 아이가 가고 싶다고 하니 아이 뜻에 가족들이 딸려간 거였는데…. 강의 듣는 2시간이 좀 넘는 시간 내내 그간 접하던 영어교육 방식의 파괴…. 가슴에 뜨거운 것이 마구마구 솟아오르네요. 그동안 이런 교육을 접히지 못했던 무지함에 반성도 해보고요.

 

자신이 공부하고 나서 아이들을 특강이나 학원 강의에 보내시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권유도 이 책을 쓰는 데 큰 동기 부여가 되었다.

필자의 이러한 신념에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전국에 계신 초등학교 현직 선생님들이다. 이득과 관계없이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로 뭉친 그분들이 헌신한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지방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말이 진리처럼 여겨져, 다들 삼겹살을 먹을 때도 비계를 잘라내고 먹는 호들갑을 떨었는데, 알고 보니 지방을 안 먹으면 살이 더 찐다고 한다. 지방을 먹으면 도리어 포만감을 빨리 느껴 고기나 음식을 더 많이 먹지 않게 되어 살이 덜 찐다는 실험 결과를 TV 건강 프로그램에서 접했다. 참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처럼 잘못된 사실을 진리인 줄 아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러한 것이 단순히 생활의 상식에 국한된다면 그뿐이겠지만, 그것이 자녀교육에 관련된 일이라면 상당히 큰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하에 교육이 몇 년 동안 진행되다 보니, 결국 시간적, 물질적으로 큰 손해를 입게 된다. 특히 이러한 잘못된 정보가 진리인 양 난무하는 곳이 바로 영어교육 영역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덕분에 우리는 엄청난 자료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정보는 쏟아져 나오는데 반해, 영어학습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드물다. 거기에 더 한몫하는 것이 바로 주변의 의견과 생각에 흔들리는 엄마이다. 그래서 자녀의 영어 공부를 바로 잡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가 아니라 엄마이다. 아이들 교육은 아이들 자신이 아니라 부모, 특히 엄마의 결정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이 맞든 틀리든 간에, 아이가 그 방법을 좋아하건 말건 간에 어디선가 누군가에게서 들은 광고나 내용에 엄마가 흔들리면, 아이는 다음날 바로 다른 학원에 가 앉아 있게 된다. 그래서 최소한 부모가 특히 엄마가 속지 않고, 정확히 알았으면 한다. 나는 그런 마음에 이 책을 썼다.

최재봉

 

학창시절 나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 중 하나였다. 초등교사가 되고 나서도 영어 연수를 듣기도 했지만, 영어 수업에는 자신이 없었다. 영어를 잘하는 동료 교사를 보면, 영어를 인생의 중심에 두고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영어 말고도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학창 시절이야 수업이나 학점 때문에라도 영어를 공부했지만, 졸업하고 교사가 되어서는 딱 필요한 만큼만 하면서 살았다. 초등교사는 도덕,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체육, 음악, 미술, 실과, 영어, 창의적 체험활동 등 다양한 교과목을 1~6학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영어는 수많은 과목 중 하나일 뿐이고 영어 전담 교사가 가르치는 경우가 많아서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삶을 좀 더 들여다보니 영어와 영어 학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매우 컸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도 어려운 영어였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쉽게 가르쳐주는 것은 어려웠다. 영어 전담 선생님에게 배워서 오는 아이들을 확인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영어는 너무나 어려운 과목이었다.

교사로서 경력이 쌓이면서 아이들의 삶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고, 치유가 필요한 아이를 많이 만나게 되었다. 이 아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심리치료에 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에너지 심리학(Energy Psychology)을 접하면서 영어 원서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서 한 권을 읽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이해도 힘들었다. 영어는 내가 너무나 배우고 싶은 새로운 지식이자,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다시 영어를 시작하기 위해 찾은 보물이 〈애로우 잉글리시〉다. 덕분에 다양한 원서를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고 빠르게 읽으면서 실력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두 권의 책을 번역 출간하기도 했으니 나에겐 엄청난 보물이 아니겠는가?(게다가 두 책은 잘 팔리기도 한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 하나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가 응축된 핵심을 배우는 것이다. 특히 생각하는 방식은 언어를 배우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한국어로 생각하는 방식과 영어로 생각하는 방식이 정반대라는 것이 바로 영어학습의 재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던 것이다. 반대로, 제대로 하면 지금까지 해온 노력의 절반으로도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 애로우 잉글리시로 다시 시작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영어로 평생 고통을 받다가 성인이 되어서야 애로우 잉글리시를 만나서 영어를 바로잡게 된다. 아예 처음부터 애로우 잉글리시로 시작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토록 고생을 하고도 실력이 늘지 않아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고, 영어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아도 잘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많이 놀 수 있고 원하는 것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 반 학생들과 애로우 잉글리시 방식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너무 쉬워서! 그저 주어에서부터 순서대로 그림을 그려 나가기만 하면 되니 이전에 비해 얼마나 쉽게 느껴졌겠는가? 게다가 영어 단어를 어감에 따라 익히니 단어 외우기도 매우 쉬워졌고, 잘 모르는 단어도 유추할 수 있는 사고력도 길러졌다. 나와 함께 아이들은 영어를 즐겁게 공부했다. 재미있는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어민의 방식을 바탕으로 말하고 쓰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애로우 잉글리시 『초등필수영문법』를 만드는 데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아예 처음부터 애로우 잉글리시로 배우기를 바라는 선생님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온라인을 통해 김지연 선생님을 만나 교류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엄청난 연구와 실천으로 상당한 노하우와 자료를 갖고 있었다. 우리가 실천하며 기록한 자료들을 아이들이 처음부터 애로우 잉글리시로 배우기를 바라는 교사들과 나누기 위해 초등애로우잉글리시연구회를 만들고 연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벌써 4회 연수까지 진행되었으며, 그동안 애로우 잉글리시를 게임에 접목하여 더욱 재미있게 익히는 방법을 비롯한 다양한 교수법을 연구해왔다.

그 과정과 노하우를 이 책에 담았다. 애로우 잉글리시가 새로운 방식의 영어교육, 아니 처음부터 그랬어야 하는 영어교육으로 바로 서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영어를 쉽고 재미있게 배우면서 실력을 키우고, 이전이라면 영어를 공부했을 시간에 자기가 원하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영어를 배우고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들도 영어로 인해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깊어지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정유진


 

1장

당신의 영어 실력, 현 주소는 어디입니까

- 매직펜 하나로 점검하는 영어 실력

 

당신의 영어 실력, 그 현주소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요즘 당신이 읽고 있는 영어책을 하나 펼쳐라. 굵은 매직펜을 하나 들고 문장이 시작되는 곳부터, 단어를 읽자마자 바로 매직펜으로 지워 나가보라. 당신의 영어 실력이 어떤지 바로 드러날 것이다.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영어 실력을 보여주는 방법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순서대로 단어를 읽어 나가는 동시에, 매직펜으로 단어들을 지워 나가면서 바로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영어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해외 영업을 다니던 시절, 원어민과 만나서 대화를 오래 하면 너무나 피곤했다. 심각한 미팅의 경우, 회의와 서류 검토까지 하면서 거의 하루를 같이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호텔로 돌아오면, 거의 파김치가 되었다. 그렇게 지친 채로 호텔에 돌아오던 어느 날, TV를 켜서 CNN을 보는데 CNN에서 들려오는 영어조차 듣기가 싫어 소리를 거의 죽이고 화면만 바라보았다.

화면 아래에 영어 자막이 흘러가고 있었다. 영어 문장이 눈에 보이면 나도 모르게 해석을 하려고 든다. 그런데 자막은 해석을 좀 하려고 하면 계속해서 왼쪽으로 흘러가 사라지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이게 뭔가 하고 짜증이 슬슬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원어민들은 어떻게 곧바로 사라지는 자막을 바로바로 읽고 이해한단 말인가?’

내 의문의 시작이었다. 단어가 사라지기 전에, 눈에 보이는 순서대로 바로바로 이해하지 않으면 자막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순간이 바로 내 영어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순간이다. 영어 듣기에서도, 나는 평소 영어를 읽을 때 하던 대로 들은 단어를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해석하려고 했다. 들으면서 바로바로 사라지는 소리는 내가 이해를 해낼 만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읽기도 단어가 내 눈에 들어오는 순서대로 바로바로 이해를 해야 하고, 듣기도 귀에 들렸다 사라지는 단어를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그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듣기는 제쳐두고, 읽기에서 눈에 들어온 단어가 바로바로 사라지는 상황을 만들어 연습하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나는 호텔에서 제공된 영어신문을 바로 꺼내 들고 굵은 매직펜으로 문장을 읽어가면서, 앞에서부터 단어를 읽는 순간 곧바로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CNN 자막이 화면 오른쪽에서 나타나 왼쪽으로 한 단어 한 단어 사라지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기로 한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바로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이했다. 어떤 단어는 상관이 없는데 어떤 단어는 보자마자 바로바로 이해가 되지 않고, 뒤에 이어오는 단어나 문장을 이해한 뒤에 거꾸로 돌아와야만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한 단어, 한 단어 이해해 나가는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눈에 보이는 순서대로 단어를 앞에서부터 지워가기만 했던 것이 문제였다.

문제가 된 단어들은 다름 아닌, 영어의 기능어에 해당하는 단어였다. 속칭 문법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전치사, 접속사, 관계사, to 부정사, 조동사 등이다. 이런 기능어에 해당하는 단어가 전체 문장에서 한 단어 건너 하나씩 등장한다. 그렇다 보니 이 단어들을 만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완전히 이해하고 다음 단어로 넘어가지 않으면, 영어 단어가 나오는 순서대로 매직펜으로 지워가면서 바로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예를 들자면, ‘He was dancing with his darling’과 같이 간단한 문장도,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매직펜으로 지워 나가보면, ‘He 그는 - was 였다 - dancing 춤을 추고 있는 중’까지는 별 문제 없이 지워나갈 수 있는데, 바로 with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 with에서는 with를 지우면서 동시에 바로 100%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득이 뒤에 오는 단어를 보고 나서 거꾸로 돌아와야만 해결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with는 ‘~와 함께’라고 앞에 꼭 물결 표시(~)를 넣어서 외워왔다. 그 물결 표시 자리는 with 다음에 나오는 단어의 몫이었다. with를 만나면 다음 단어인 ‘his darling 그의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금 with의 물결 표시(~)에 대입시켜야 ‘그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는 의미가 완성되는 영어를 배워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 with를 ‘~와 함께’가 아니라 ‘함께하는 이는~’이라고 바꿔보자. 그렇게 하여, with를 만나는 순간 이 단어의 기능을 온전히 이해하고 다음 단어를 기다리게끔 만들어보자. 그러면 이제, ‘그는 → 였다 → 춤을 추는 중 → 함께하는 이는 → 그의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자연스럽게 한 단어 한 단어 앞에서부터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우리말을 읽을 때 한 단어 한 단어 눈에 보이는 대로 바로바로 이해하듯이 영어 문장도 그렇게 차례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간 학교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배워왔던 익숙한 전치사, 접속사, 조동사 같은 기능어를 떠올려 보자.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위의 단어들 앞에 물결 표시(~)를 넣은 해석을 무조건 외워왔다. 그래서 읽기나 듣기나 상관없이 이런 단어들을 만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그 단어를 뒤에 나온 단어, 심지어 뒤에 나온 문장 전체를 다시 거꾸로 그 물결 표시(~)에 대입해야 이해되는 영어를 배워왔다. 이것을 속칭 ‘거꾸로 해석법’, ‘거꾸로 번역법’, ‘후치 수식’이라고 부른다. 한국 영어에서 거의 진리처럼 당연시되는 영어 문장의 이해 방식이다.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수능을 비롯해 모든 종류의 영어 시험에 대비하는 대한민국 사교육 유명 강사들의 강의를 들어보라. 전부 ‘후치 수식’이니 ‘거꾸로 해석’이니 하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뒤에서부터 앞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해석 방법을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가르친다. 거꾸로 해석법 외에도 ‘끊어 읽기’라고 해서 중간중간에 구문을 끊어서 해석하는 방식도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덩어리 단위로 끊어가면서 앞으로 가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끊은 덩어리 안에서 또 거꾸로 뒤집어 해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원어민은 본인이 숨 막히기 전에는 어디에서도 끊어서 말하지 않는다. 당장 영어 방송을 켜서 들어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거꾸로 해석법’이나 ‘끊어 읽기’ 방법을 당연하다는 식으로 배워왔다.

이렇게 매직펜 한 자루로 한국인이 영어가 안 되는 문제의 핵심을 찾게 됐다. 매직펜으로 영어 단어를 지워나간 그 순간부터, 수십 년간 고질병이던 내 영어 문제를 바로잡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프로젝트라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방식은 너무나 간단했다.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영어신문이나 책을 펴서, 매직펜으로 영어 문장을 지워 나가다가 단어를 지우는 순간 바로 이해가 안 가고, 뒤에 있는 단어나 문장을 가져와서 대입시켜야만 하는 단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문제가 되는 단어들은 어김없이, 기존 한국 영문법에서 너무나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것들이었다. 가장 성가신 것이 ‘전치사’였다. 그다음이 ‘접속사’, ‘관계사’였다.

하지만 그러한 단어를 만날 때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왜냐하면 그 단어가 수십 년 동안 나를 괴롭혀온 영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였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는 10분 만에, 어떤 단어는 몇 시간을, 어떤 단어는 며칠을 고민했다. 하지만 문장을 단어가 나열된 순서대로 읽어가면서, 그 단어들을 만나자마자 바로바로 100% 해석할 수 있게 되고 다음 단어로 연결되게 만드는 순간, 내 영어는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원어민과 대화할 때도 문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빠르게 뒤에서 앞으로 거꾸로 돌아오면서 해석해 이해했다. 그러다 보니 원어민의 말이 빨라지거나 문장이 길어지면 너무나 힘들고 당황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긴 말을 끊지도 않고 그냥 뱉어버리는 속사포 같은 원어민을 만나기라도 하면, ‘내가 배운 영어가 도대체 뭔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러나 매직펜 한 자루를 쥐고서 한국식 영어를 바로잡은 이후로는 달라졌다. 예전에는 늘 뒤에서부터 뒤집어서 단어나 뒤에 이어지는 문장을 앞으로 가져와 거꾸로 해석을 해야만 했는데, 전치사・접속사・관계사 등을 바로바로 이해하게 되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원어민이 아무리 길고 빠르게 말해도 순서대로 이해하며 바로 속도를 따라갈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 부담 없이 원어민과 대화하게 되었고 영어 방송 듣는 것도 즐거워졌다.

어떤가? 당신도 매직펜으로 영어 문장을 앞에서부터 읽자마자 바로 지워나가면서 영어를 이해하고 싶지 않은가?

그렇게 되는 순간, 원어민의 방식으로 영어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되는 순간, 영어를 듣자마자 바로 이해하는 수준이 된다.

그렇게 되는 순간, 편안하게 순서대로 영어 문장을 만들어가는 법에 익숙해진다.

그렇게 되는 순간, 당신의 영어는 자유로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 엄청난 일들을 해야 할 것처럼 큰 부담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또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 얼마인데, 이걸 또 바꿔야 하나’ 하고 걱정이 앞서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바꿔야 할 단어가 그리 많지 않다! 중간에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연결 고리 구실을 하는 단어들만 바꿔주면 된다. 100개 정도의 단어만 손보면 된다. 그 100개의 단어가 앞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전치사, 접속사, 관계사, to 부정사, 조동사와 같은 ‘기능어’들이다. 이런 단어를 보자마자, 듣자마자 순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바꾸기만 하면 당신의 영어가 바뀔 것이다.

당신도 당장 매직펜으로 당신 가까이에 있는 어떤 영어 문장이라도 한번 이렇게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눈에 보이자마자 지워보기 시작하라. 먼저 당신 스스로 당신 영어의 문제를 느껴보지 않고서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지 않는다.

매직펜 한 자루와 함께 당신 영어의 현 주소를 알고, 이제부터 영어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깨닫기 바란다. 이를 통해 영어가 평생의 고질병으로 남아 있는 수많은 한국인이 지극히 상식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첫 생각의 시작을 맞이하기 바란다.


 

2장

영어가 안 되는 건 조상님 탓

- 1905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길 때 영어도 빼앗겼다


이 질문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은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 대답하며 자괴감에 빠지거나 영어는 원어민과 해야 하는데 원어민과의 접촉이 없어서 그렇다든지, 아니면 영어 발음이 안 좋아 그렇다든지 등등 나름대로 너무나 많은 이유와 변명을 댄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학교에서만 공부한 것만 최소 6년이고, 초등학교부터 치면 최소 10년은 다들 넘을 것이다. 그리고 원어민과의 접촉 문제는 이미 과거 정부에서 몰입교육이란 이름으로 한 차례 다 실험해본 일이다. 물론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결론은, 이젠 할 것 안 할 것 다 해본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병으로 치면 이것저것 안 해본 것이 없는 말기 환자와 같다. 이렇게 된 여러분께, 필자는 다음과 같이 외치고 싶다.

“당신이 지금까지 영어가 안 되는 이유는 당신 탓이 아니라 조상 탓이다.”

그동안 영어에 지친 당신에게 진정으로 위로가 되는 한마디가 아닌가? 필자는 수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강의를 해왔다. 강의 대상자도 나이, 성별, 학벌, 직업과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때로는 저런 정도의 학벌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왜 영어를 못 할까? 내가 되레 이상하게 느낄 정도의 사람도 많이 만났다. 그 모든 분께 외쳐왔던 첫마디가 바로 “당신이 영어를 못 하는 이유는 당신 탓이 아니라 조상 탓이다”였다.

정말이다. 진실이다.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자, 이제 찬찬히 그 이유를 살펴보자.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병을 고칠 것 아닌가? 오늘 우리는 영어가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문제의 원인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가 영어가 잘 안되는 이유는 조상 탓이다. 우리 조상이 영어와 관련되어 무슨 욕먹을 짓을 했단 말인가? 그건 바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일이다. 1905년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긴 순간 우리는 올바른 영어교육 또한 일본에 빼앗기고 말았다.

을사늑약 이후, 외교권 박탈과 일제 통감부 설치, 일제에 의한 교육제도 개편으로 인해 이 땅에는 듣고 말하는 진정한 영어는 사라지고, 일본인 교사가 수업에서 단지 한국어나 일본어로 번역하는 영어만 남게 되었다.

원어민이 듣고 만들어내는 방식대로 영어를 배운 것이 아니라, 언어 배열순서 측면에서 정반대에 가까운 한국어나 일본어로 영어를 번역하는 독해 공부만 강요받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벙어리, 귀머거리 영어가 되었고 그로 인해 조선 학생들의 어학 능력은 빠르게 퇴보해 갔다.

 

 

그동안 왜 전 세계에서 한국, 일본 이 두 나라만 유독 영어를 못하는지 궁금하지 않았는가? 이제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1905년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두 나라는 동일한 벙어리, 귀머거리 영어를 공유하게 된 것이다.

왜 이렇게 일본의 영어는 말하기, 듣기, 쓰기를 등한시하고 번역식의 영어가 된 것일까? 그 시작은 19세기 메이지 유신 때부터이다. 서구의 문물을 빠르게 습득하고 싶었던 일본의 지배층은 다음과 같은 길을 선택한다.

“정부 기관 내에 ‘번역국’을 설치하고, 서양 근대 기술 문명의 모든 성과를 빠짐없이 번역하여 국민들에게 보급하라!”

 

 

1854년 메이지 유신 때부터 일본에서는 빠른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서양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이에 따라 서양 근대 기술의 모든 성과를 하나도 빠짐없이 빠르게 보급하는 번역은 강력한 근대화의 도구로 여겨졌다. 따라서 일본의 본격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번역은 단지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수단이 아닌, 국가 생존의 전략이요 프로젝트였다. 결국 일본에서 영어는 원어민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일본어로 번역을 하기 위한 대상이 되었고, 번역이 영어 공부의 핵심이 되었을 뿐이다.


일본식 영문법의 시작

일본식 영문법의 시작은 메이지 유신 때 출판되어 50쇄 이상을 기록한 『오노게이의 영문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노게이의 영문법』은 그냥 그때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이고 정식으로는 ‘오노게이지로’라는 일본 교사가 쓴 책인데, 그 책의 목차와 내용 구성이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양국(일본, 우리나라)의 영문법 책과 유사할 정도이니 메이지유신 시대에 번역을 위해 만든 영문법 책을 우리는 아직도 공부하고 있는 셈이다.

 

언젠가 일본 기자와 이야기하다가 기자가 배웠던 영문법 용어가 일본과 똑같다는 점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일본과는 심지어 영문법 참고서 목차까지도 닮았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라는 말도 사실 영미권에선 별로 알려지지 않은 말이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에서만 유독 유명한 영어 어구다. 19세기 삿포로대 농대 초대 부학장으로 있던 윌리엄 클라크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말이 일본 영문법 참고서를 거쳐 한국에 넘어온 것이라고 한다. 한국 영문법 참고서가 얼마나 일본 책을 베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 공종식, 『동아일보』 2009. 3. 26.

 

일제강점기 이후 - 잘못된 친일파 영어의 지속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이러한 일본 번역식 영어 문법은 지속되어 왔는데, 이는 일본 동경 대학, 와세다 대학 등에서 수학한 사람들이 주도했다. 그들은 당연히 일본식 영어를 가르쳤고, 그 폐단은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특히 학교 선생님의 대다수가 일본식 영문법 위주의 학습을 했고, 그 결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기에는 상당히 취약한 분이 많다. 그렇다 보니 학교에서는 이런 분들에게 강점이 있는 독해와 문법 위주의 교수법이 당연히 선호가 되어 왔고, 지금까지도 이러한 교육이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50년대 - 삼위일체 영어

1950~70년대 베스트셀러 영어교재의 저자인 안현필은 13세 때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홋카이도 삿포로 상고 교사를 역임했다. 그는 국내에 귀국하면서 자신이 일본에서 배웠던 번역식 영어를 기초로 하여 『영어 기초 확립』 등의 학습서를 써내고, 이 책들은 순식간에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 당시 명문 고등학교이던 경기고 및 서울고 영어과 주임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한국외대 교무과장,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강사를 역임했다. 안현필은 한국 입시 학원계에서는 잊혀질 수 없는 인물이다. 한국 최초의 입시학원 격인 ‘EMI’ 학원(서울 종로 소재)을 세워 전국의 수험생을 구름처럼 몰고다녔다. 이로써 그는 1960년대 큰 사회적 부를 얻게 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영어실력 기초』, 『삼위일체 영어』, 『영어 기초 오력 일체』 외 다수가 있다. 하지만 학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결국은 일본식 영어가 퍼진 것이니 해방 이후에도 이 땅에는 일제식 영어의 뿌리는 더욱더 공고해진 것이다.

 

 

 

1960년대 - 성문 종합 시리즈

여전히 안현필의 저서가 큰 인기를 끄는 가운데, 영어학습서의 전설로 자리 잡게 될 송성문의 『정통 종합 영어』가 1967년 등장한다. 1976년에는 이름이 『성문 종합 영어』로 바뀌고, 표지도 그 전통적인 파란색으로 바뀐다. 그리고 1977년에 『성문 기본 영어』가 발간되면서 ‘성문 종합, 핵심, 기본’의 트로이카 체제는 안현필의 책들과 함께 70년대를 장악한다. 성문영어는 1960~70년대의 일본 교재들의 구성이나 내용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 일단 번역이나 문법 내용이 일본 책에서 따온 듯한 것이 많으며, 한국어 번역을 보면 일본어를 중역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상당수 발견된다. 저자인 송성문 본인에 의하면 『메들리 삼위일체』라는 책을 참고하긴 했지만 베끼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2011.06.25, 조선일보 인터뷰)

 

 

 

1970년대 - 영문 해석 연습 1200제

70년대에 들어서 『영문 해석 연습 1200제』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일본 대학 본고사 문제 1,200개를 추린 것이었다. 일본 대학 입시에서 우수한 문제들을 도쿄대 교수가 해설해 놓은 것으로, 당시는 전국적인 고교 비평준화 시절로 당시 명문고,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일본 학습서를 구해다 보는 것이 인기였는데, 이에 발맞추어 인기를 끌었던 책이 지금도 나오는 『영문 해석 연습 1200제』이다.

 

1980년대 - 맨투맨

80년대에 들어서도 무소불위의 성문영어가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장재진 씨가 이 성문영어와 유사한 『맨투맨』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맨투맨은 성문영어와 함께 80년대 중고등학생 영어 참고서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다.

맨투맨과 성문을 다 같이 공부해본 사람은 느꼈겠지만, 맨투맨은 새로운 책이라기보다 성문의 본문에 학원 강의 스타일로 친절한 설명을 많이 담아 분량만 5권으로 불린 책 같았다. 즉, 성문을 통해 유지해온 일제식 영문법에 근거한 번역 영어는 여전히 맨투맨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다. 들리기로는 성문과 법적 분쟁을 유발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현재

영어 강사 중 과거 ‘1타’(최고 인기 강사)로 군림했던 대다수는 80년대 학번, SKY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80년대에는 대학에서 공부를 제대로 못 할 상황이었다.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수업 거부가 다반사이던 때였다. 그런 환경에서 학생운동 이력 때문에 취직을 못하게 된 사람들이 학원가로 많이 유입되었다. 그들이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 자신들이 대학입시 때 바이블처럼 여겼던 성문영어나 맨투맨을 꺼내 들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