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는 지난 몇 년 동안 인문학적 성찰을 주제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져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죽을 것인가? 다가오는 문명의 전환기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인문학적 성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인간을 아는 것, 사람을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추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것도, 문명의 길을 만드는 것도 결국은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대와 문명의 변화를 논하기 전에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

인문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인간을 가장 체계적이고 치열하게 연구하는 분야를 꼽으라면 심리학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는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사단법인 한국심리학회와 함께 심리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 인간에 대해 묻고 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에 발간하는 『심리학 프리즘』은 2017년 서울대학교 중강당에서 개최된 공개강좌, ‘심리학, 인간을 말하다’의 강연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 최고의 심리학자는 물론 세계적인 석학이 한자리에 모여 나눈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세포나 호르몬, 뇌와 같은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부터 문화와 진화에 이르는 좀 더 높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수준에서 인간을 분석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의 김민식 교수, 샌타바버라 소재 캘리포니아대학교의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를 통해 인간의 뇌 수준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문화 수준에서 우리 의식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최고의 문화심리학자인 스탠퍼드대학교의 헤이즐 로즈 마커스 교수의 목소리를 담았다.

한편 심리학은 사람이 어떠한지를 중립적으로 기술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놓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창의성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 도덕적인 삶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 또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창의성, 도덕, 행복에 대한 주제도 함께 다루고 있다. 창의적인 삶에 대해서는 성균관대학교의 최인수 교수께서, 행복에 대해서는 서울대학교 최인철 교수께서, 도덕적인 삶에 대해서는 예일대학교 폴 블룸 교수께서 흥미진진하고 열띤 강연을 했고, 그 내용을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이처럼 국내외 최고의 심리학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심리학의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것에 기초해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 자리를 빌려 시간과 지혜를 나누어주신 여섯 분의 강연자들께 찬사와 감사를 드린다. 또한 강연 때마다 입추의 여지없이 힘찬 박수로 성원해주신 많은 시민 청중께도 감사를 드린다.

기획에 함께 동참하고 장소를 제공해준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와 사단법인 한국심리학회 측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국내 최고의 심리학 전문가 집단이 함께해주셨기에 양질의 내용을 담아낼 수 있었다.

방송을 통해 강연자들의 지혜를 온 국민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신 SBS CNBC 임직원께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좋지 않은 출판 사정 가운데서도 꾸준히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를 발간해주시고, 이번 총서 또한 멋지게 편집해주신 21세기북스 임직원께도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겠다.

해마다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 인간 삶에 대한 성찰이자 결과인 인문학이 사라진다면 삶에 대한 성찰도 사라지고, 이는 결국 우리 삶의 위기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론이 팽배하고 모든 정신적 가치가 퇴색되어 가는 이 시대에도 결코 잊지 않아야 할 인간 삶에 대한 궁극적 물음들을 위해 우리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수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었던 감동과 깨달음의 이 위대한 여정이, 이 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에서 이어지기를 바란다.

 

2018년 12월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편집국


1부 PRISM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01
내 삶을 망치는 심리학의 조언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동대학교 행복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및 국제 학술지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부편집장을 역임했다. 2010년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를 설립해 행복과 좋은 삶에 관한 연구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에 행복 교육을 전파하고, 전 생애 행복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행복의 심화와 확산에 매진하고 있다. 2003년에 한국심리학회 소장학자상을, 2017년에 홍진기 창조인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굿 라이프』 『프레임』 『어떻게 살 것인가』(공저) 등이 있고, 『생각의 지도』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등을 번역했다.


 

 

 

 

 

‘굿 라이프good life’라는 어려운 주제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선 미시간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심리학을 공부하던 때의 이야기다.

1993년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당시,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좋은 삶에 관한 훌륭한 연구를 많이 해서 세계적인 저널에 발표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첫 학기가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곧 내 뜻대로 그렇게 쉽사리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훌륭한 연구를 해내기 위해서는 1차 관문이자 최종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지도교수가 인정하는 연구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재미있고 가치 있는 아이디어라고 주장해도 지도교수가 허락하지 않으면 실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나의 지도교수는 『생각의 지도』 등의 저자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Richard E. Nisbett이었다. 연구 아이디어를 고심하던 중 그가 쓴 「반창의성 편지The Anticreativity Letters」라는 제목의 편지 형식의 에세이를 접하게 됐다.

 

 

어떻게 나쁜 삶을 살 것인가

리처드 니스벳 교수는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학자였기에 많은 대학원생과 이제 막 교수직을 시작한 젊은 교수들이 그에게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해왔다. 그는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반창의성 편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런데 왜 글의 제목이 ‘창의성 편지’가 아니고 ‘반창의성 편지’였을까? 글의 내용이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뻔한 연구 방법’을 알려주는 편지였기 때문이다.

글을 읽어보니 무릎을 칠 만한 내용이 아주 많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그저 그런 평범한 학자가 되고 싶다면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말고 같은 분야의 사람들하고만 시간을 보내면 되고, 또 전공 논문 읽기도 바쁘니 소설이나 시 따위는 읽지도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당신의 연구는 분명 망할 것이라는 뼈 있는 조언이었다.

만약 리처드 니스벳 교수가 ‘창의성 편지’라는 제목으로 창의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을 조언했다면 아마 글을 읽는 내내 비장함과 무거움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반대로 조언을 해주니 매우 흥미롭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었다. 이 글은 바로 창의적인 연구에 대한 그의 힌트였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리처드 니스벳 교수의 이 글은 소설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C. S. 루이스의 작품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그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었다. 기독교 사상가이기도 했던 루이스는 ‘어떻게 하면 좋은 신자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기로 했는데 곧이곧대로 쓰면 진부한 조언에 그칠 것 같아 생각을 조금 비틀어서 써보기로 한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경험 많고 노회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이자 풋내기 악마인 웜우드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에 관해 쓴 31통의 편지를 담은 책이다. C. S. 루이스는 어떻게 하면 타락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반대적 사고를 흔히 역발상이라고 한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시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굿 라이프’라는,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 어려운 주제를 바로 이 역발상의 방식을 빌려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래서 무엇이 좋은 삶인가, 어떻게 하면 좋은 삶을 살 것인가가 아닌 무엇이 나쁜 삶인가, 어떻게 하면 내 삶을 망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좋은 삶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일 것이다.

역발상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하나의 모티브를 더 가져와야 한다.

스크루테이프는 풋내기 악마인 웜우드가 범하고 있는 큰 실수에 대해 조언한다. 웜우드는 경험이 없다 보니 인간을 타락시키는 방법은 살인이나 사기 등의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험이 많은 스크루테이프는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은 그런 흉악한 범죄가 아니라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일상의 작은 습관이라고 조언한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가운데 열두 번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 가장 안전한 지옥행 길은 한 걸음 한 걸음 가게 되어 있다. 그것도 경사도 완만하고 걷기도 쉬운데다가 갈래길도 이정표도 표지판도 없는 길이지.

 

다시 말해 우리가 이야기하는 나쁜 삶이란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작은 습관이나 어떤 생각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삶을 서서히 나쁜 쪽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좋은 삶도 엄청나게 훌륭한 일을 이루어서가 아니라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의 작은 습관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삶 쪽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그 일상의 중요한 습관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그에 앞서 우리를 좋은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들에 대해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다음은 ‘나쁜 삶을 위한 십계명’이다.

 

1. 돈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2. 아무도 믿지 마라. 사방이 적이다.

3. 오늘 할 일을 반드시 내일로 미루어라.

4. 가족은 원수다.

5. 친구는 기생충이다. 없을수록 좋다.

6. 악한 사람들과 사귀어라.

7. 하고 싶은 일은 절대 하지 마라. 하기 싫은 일을 하라.

8. 아무거나 먹고 운동은 절대 하지 마라.

9. 늘 소음 속에서 살아라.

10. 결국 난 안 된다는 생각을 잠시도 잊지 마라.

 

여러 가지 심리학적 연구에 기초한 것이니 만큼 여러분도 이렇게 삶을 망치는 탁월한 비결을 한번 작성해보기 바란다. 동시에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인 ‘좋은 삶’에 대해 조금은 재미있게 접근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이런 분명한 이야기들이 아닌 모호하고 은밀한 습관이나 생각들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워라밸을 기계적 균형으로 착각한다

좋은 삶이란 첫째, 균형이 잘 잡힌 삶이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좋은 삶의 척도 중 하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즉 일과 라이프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일과 라이프의 균형을 찾는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금까지 너무 많은 시간 일을 해왔으니 이제는 일보다 가족을 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일과 가족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까?

최근 우리 학교의 한 대학원생이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에서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묻고, 그 정도를 1~7점 사이로 답해달라고 했다. 그다음은 똑같은 방식으로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물었다. 분석 결과 일과 가족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의 행복감이, 가족보다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행복감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요즘 사람들 사이의 또 하나의 고민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즐겁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힘이 들더라도 무언가를 성취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행복 또한 즐거움과 의미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즐거움과 의미를 어떻게 추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우리 연구팀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통해 즐거움과 의미를 경험하는지를 측정하기로 했다. 연구팀은 하루 세 번씩 2~4주간 반복적으로 참여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의미 있고 즐거운지도 물었다. 우리는 이 조사를 통해 두 가지 데이터를 얻었다. 하나는 개인에게 있어서의 즐거움과 의미의 상관관계이며, 또 하나는 참여자들이 해당 기간 동안 경험한 즐거움과 의미의 총합이다.

먼저 즐거움과 의미의 상관관계 계수를 구하자 그 상관관계가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다시 말해 일정 기간 동안 즐거움을 많이 경험한 사람은 그 기간 동안 의미도 제법 많이 경험했고,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의미도 별로 경험하지 못한 패턴을 보였다. 이 데이터만 놓고 본다면 즐거움과 의미의 균형을 찾는 것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개인이 즐거움과 의미를 어떻게 경험하는지 그 패턴을 분석하자 놀랍게도 크게 상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내가 밥을 먹을 때 즐거움이 높게 나타났다고 해서 의미까지 높게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 아주 의미 있는 강의를 듣는다고 해서 반드시 즐거움도 높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정리하면 한 개인에게 있어서 즐거움과 의미의 상관관계가 크지는 않지만 일정 기간 개인의 즐거움과 의미의 총합에서는 상관관계가 크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그리고 이 실험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 김치찌개도 좋아하고 파스타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두 음식을 적절히 섭취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보통 식사를 할 때 김치찌개와 파스타를 동시에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두 음식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 사람은 일정 기간 동안 김치찌개도 많이 먹었을 테고, 김치찌개를 먹지 않을 때는 파스타도 많이 먹었을 것이다. 그 결과 두 음식의 관계가 높게 나타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즐거움과 의미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게 반드시 즐거움과 의미가 동시에 높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에는 즐거움이 가득한 일을 할 수도 있고, 또 어느 순간에는 의미가 가득한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균형이 잡힌다.

그런데 즐거움과 의미를 동시에 느끼는 게 균형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다. 그런 오해는 우리의 많은 경험을 힘들고 즐겁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김치찌개와 파스타를 동시에 먹을 수는 없지만 일정 기간 동안 다 자주 먹을 수는 있다는 이 원리는 일과 가족 사이의 균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균형은, 예를 들어 한창 일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워라밸이 중요하니까 퇴근해야지’라며 하던 일을 접고 그냥 퇴근해버리는, 그런 기계적인 의미가 아니다. 중요한 일을 할 때는 그 일에 몰두할 필요도 있다. 반대로 일이 끝나면 온전히 가족에게 몰두하는 시간을 갖는 게 일과 가족 간의 균형을 찾는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다.

매일, 매순간 워라밸을 염두에 두고 생활한다면 오히려 죄책감으로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좋은 삶을 위한 균형은 기계적인 균형이 아니다. 그보다 일정 기간 동안은 어느 하나를 경험하고, 일정 기간 동안은 또 다른 것을 경험하는 식의 유동적인 균형을 찾아가다 보면 이 둘 사이의 갈등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없다고 믿는다

현대인들은 종종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익숙하고 능숙하게 잘하는 일이지만 가슴이 뛰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잘하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다 보면 잘하게 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둘이 극단적으로 불일치하는 경우가 문제다.

좋아하는 일을 했을 때 잘하게 될 확률과, 잘하는 일을 했을 때 좋아하게 될 확률 중 어느 쪽이 더 높을까? 시간으로 이야기하면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잘하는 일을 좋아하게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 중 어느 쪽이 더 짧을까? 그리고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시간이 흘러서 정말 잘하게 되면 호감이 생길 가능성이 있을까? 만약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 그 일에 충분히 시간을 할애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대략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면 그것이 가능할까?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금 연구 중이다. 연구가 조금 더 진행되다 보면 잘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 되기까지 걸리는 대략적인 시간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굉장히 일을 열심히 하고, 또 규범이 강한 사회다. 말하자면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아주 많은 규범이 존재하고, 그 규범들을 어겼을 때는 강한 처벌이 뒤따르는 매우 엄격한 사회다.

이런 문화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때로는 우리에게 위안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크게는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일을 못 하게 하는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오용되거나 남용되는 경우는 아주 많다. 특히 직장 상사가 아랫사람에게 무리한 일을 시킬 때, 또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할 때 종종 남용되거나 오용된다. 또 이 생각은 새로운 도전 앞에 용기가 나지 않을 때도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도록 만들어버린다.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라는 말에 우리가 쉽게 굴복해서는 안 되는 이유,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다.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에서 한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루 중 언제 가장 행복을 많이 경험하는지를 조사했다. 역시나 일할 때 행복감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추가적으로 ‘당신은 지금 그 일을 얼마나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하자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억지로 하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율성이 높은 사람은 동시에 느끼는 스트레스 지수가 낮았고, 자율성이 낮은 사람은 동시에 느끼는 스트레스 지수가 높게 나타났다. 다시 말해 자율성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 비해 행복감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그리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있다. 자발적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 스트레스가 적고 행복감이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적당한 스트레스와 때때로 생겨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심리학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이 전혀 없는 상태가 행복이라고 생각할수록 오히려 행복감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히려 쉽게 좌절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문제는 이때 적당한 스트레스는 도움이 된다는 명제로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악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타인에게 “적당한 스트레스는 좋은 거야!”라며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좋은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생각을 점검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써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게 문제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때때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살아가면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자율성이며, 이 자율성과 더불어 중요한 또 하나가 ‘관계’다. 이 둘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요소에도 균형이 따라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상호 의존과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자칫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행위를 이기적인 행동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렇다 보니 독립성이나 자율성이 두드러지는 사람들은 이유 없이 죄책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을 이기적이거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기보다 아예 ‘독립성과 자율성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명명하면 그런 문제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경험 가운데 즐거움과 의미 모두 최고로 높게 나타난 것은 바로 여행이다. 사람들은 여행을 할 때 강한 즐거움과 의미를 경험하는 반면, 일을 할 때는 둘 다 현저하게 낮게 나타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을 때의 행복감은 여행을 할 때 경험하는 행복감과 동일한 수준을 보였다.

이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일을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할 때는 여행과 동일한 수준의 행복감을 느끼고, 여행을 하더라도 억지로 하면 일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행복한 삶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자율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한 연구 사례가 있다. 나와 대학원생들은 이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행복감이 아주 높은 사람들과 아주 낮은 사람들을 비교했다.

먼저 참가자인 대학생들에게 특정 과목의 수강 신청을 하는 상황을 상상하도록 했다. 이때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이기는 하지만 잘하는 과목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과목을 수강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잘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선택에 얼마나 중요한지 물었다. 이때 행복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이번에는 참가자들에게 반대의 상황을 제시하고 질문을 던졌다. 잘하는 과목이라는 확신은 분명하지만 좋아하는 과목인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라면, 내가 좋아하는지의 여부가 선택에 얼마나 중요한지 물었다. 그러자 행복감이 낮은 참가자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답한 반면, 행복감이 높은 참가자들은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과 달리 자신이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결정할 때 좋아하는 일에 조금 더 비중을 두었다.

따라서 누군가 억지로 일을 시킬 때, 그리고 내 삶이 그런 하고 싶지 않은 일들로 가득 차서 책임감만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을 바꾸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껏 ‘사람이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는가’라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면, 이제는 ‘사람이 어떻게 남이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는가’로 질문을 바꾸어보는 것이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통제self-control’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사이의 갈등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자기통제가 더 중요한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우선 즐거운 감정을 느끼는 쪽이 더 중요한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어도 성취하는 상황에서는 당장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보다 자기통제가 더 중요하게 나타났다. 물론 즐거운 감정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자기통제가 더 중요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즐거운 것을 강조함으로써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자기통제를 무조건 경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것부터 먼저 해치우는 게 좋다는 생각을 모든 상황에 적용시키는 것 또한 문제일 수 있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일부터 하고 놀 것인가, 놀기부터 하고 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