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주에 대하여 경외감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생각만큼 기묘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기묘하기 때문이다.

— 존 버든 샌더슨 홀데인(John Burdon Sanderson Haldane, 1892~1964년)의 『가능한 세계(Possible Worlds)(1927년)에서


책을 시작하며

이 우주는 사물이나 현상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각본에 따라 수많은 배우가 연극을 공연하고 있는 방대한 무대인 것 같다. 그래서 우주에 관한 책을 집필할 때에는 독자들을 무대 뒤편으로 안내하여 세트의 디자인과 각본 등을 미리 보여 주면서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를 스스로 알 수 있게끔 안내하는 기분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는 우주의 운영 원리를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시간’도 한 배역으로 출연해 우주의 연출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우리에게 보여 줄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우주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바람직한 입문서가 되기를 기대한다.

각 장의 순서는 내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자연사(Natural History)》라는 잡지에 「우주(Universe)」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던 원고의 순서와 거의 비슷하며, 그 외에 내가 간간이 썼던 글도 최신 과학의 동향을 고려한 약간의 편집을 거쳐 함께 수록되었다.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광활한 우주로 뛰어들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06년 10월 뉴욕 시에서

닐 디그래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on)


감사의 글

나의 공식적인 전문 분야는 별의 특성과 진화 그리고 은하의 구조이다.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의 상당 부분은 내 동료의 예리한 검증을 거쳐야 했다. 나는 매달 한 번씩 원고를 집필할 때마다 동료에게서 다양한 조언을 들었는데, 특히 우주 탐사와 관련된 부분은 그들 덕분에 많이 개선되었다. 그리고 태양계에 관한 내용은 대학원 시절 나의 룸메이트이자 현 MIT의 행성 과학 교수인 리처드 빈젤(Richard P. Binzel, 1958년~)의 조언 덕분에 완성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 나는 태양계와 관련된 글을 쓸 때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는 바쁜 와중에도 나의 자문에 친절히 응해 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그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는 바이다.

우주 화학은 은하 그리고 우주론에 정통한 프린스턴 대학교의 천체 물리학 교수 브루스 드레인(Bruce T. Draine, 1947년~), 마이클 스트라우스(Michael G. Strauss, 1958년~), 데이비드 너새니얼 스퍼걸(David Nathaniel Spergel, 1961년~)의 아낌없는 도움 덕분에 나의 지식을 넘어선 내용까지 다룰 수 있었다. 또한 나의 연구 동료이자 영국에서 정통 교육을 받은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 로버트 럽튼(Robert Lupton)은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박사로서 이 책에 수록된 거의 모든 내용에 값진 조언을 해 주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만물박사인 스티븐 소터(Steven Soter, 1943년~)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나의 원고를 그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면 대중 앞에 자신 있게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1995년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National Public Radio, NPR)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자연사》의 편집자인 엘런 골든슨(Ellen Goldensohn)이 그 방송을 듣고 내게 처음으로 집필을 부탁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흔쾌히 수락했다. 그 후로 매달 한 번씩 원고를 쓰면서 몸은 완전히 녹초가 되었지만 덕분에 삶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현재 이 책의 편집을 맡고 있는 애비스 랭(Avis Lang)은 엘런이 하던 일을 이어받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글 속에 그대로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엘런과 애비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결코 지금과 같은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외에 필립 브랜포드(Phillip Branford), 바비 포겔(Bobby Fogel), 에드 젱킨스(Ed Jenkins), 앤 래 조너스(Ann Rae Jonas), 베스티 러너(Besty Lerner), 모데카이 마크 맥로(Mordecai Mark Mac-Low), 스티브 네이피어(Steve Napear), 마이클 리치몬드(Michael Richmond), 브루스 스투츠(Bruce Stutz), 프랭크 서머스(Frank Summers), 라이언 와이엇(Ryan Wyatt) 등도 원고를 수정하거나 내용을 보충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자연사》의 편집장 피터 브라운(Peter Brown)은 이미 발표된 나의 원고를 재사용하는 데 따르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책을 탈고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이 페이지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년)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자연사》에 「이러한 생명관(This View of Life)」라는 제목으로 무려 300여 회에 걸쳐 칼럼을 개제했던 굴드는 잡지를 통해 1995년부터 2001년까지 근 7년 동안 나와 왕래하면서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현대 수필의 새로운 형식을 창안한 사람으로, 나의 글이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특히 과학의 깊은 역사를 파헤칠 때는 굴드의 방식대로 수백 년 된 고서(古書)를 뒤지면서, 당시 과학자들의 자연관을 머릿속에 그려 보고는 했다. 그가 불과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칼 세이건도 62세에 사망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커다란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제 완성된 원고를 눈앞에 놓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서문과학의 태동

지난 세월 동안 우리는 주변 세계를 성공적으로 설명해 주는 물리학 법칙들을 단계적으로 확보해 오면서 인간의 지적 능력을 과신하는 태도도 함께 키워 왔다. 특히 사물이나 자연 현상에 대한 지식이 거의 완벽하다고 느낄 때 인간의 자만심은 하늘을 찌를 듯이 기고만장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학자들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1907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던 앨버트 에이브러햄 마이컬슨(Albert Abraham Michelson, 1852~1931년)은 1894년에 시카고 대학교의 라이어슨 물리학 연구소(Ryerson Physics Lab)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물리적 세계를 지배하는 중요한 법칙들은 이제 거의 확립되었다. 이들은 이미 철저한 검증을 거쳤으므로 훗날 새로운 법칙이 등장하여 이들을 대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 앞으로 과학이 할 일은 현재 알려진 물리량들의 소수점 이하 자릿수를 늘려 가는 것뿐이다.1)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이자 미국 천문학회의 공동 창립자였던 사이먼 뉴컴(Simon Newcomb, 1835~1909년)도 현대 과학에 대하여 마이컬슨과 비슷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는 1888년에 발표한 저서 『별의 메신저(Sidereal Messenger)』에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천문학에 관한 한, 지금 우리는 지식의 한계점에 거의 도달했다.”2) 역시 위대한 물리학자이자 절대 온도의 단위 ‘켈빈(K, 절대 온도의 단위이다.)’의 주인공인 켈빈 경(Lord Kelvin, 1824~1907년)은 1901년에 “지금 물리학에서 새로운 것이 발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측정값을 더욱 정확하게 개선하는 것뿐이다.”3)라고 선언함으로써, 후대 물리학자들에 의해 ‘섣부른 자만심’의 표상으로 줄곧 인용되는 수모를 당했다. 사실 과학자들이 한창 자신감에 넘치던 시절에도 빛을 매개한다는 에테르(ether)는 여전히 가설상의 존재로 남아 있었고, 수성의 근일점이 조금씩 이동하는 현상도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감에 넘치던 당시의 과학자들은 이런 것들을 ‘기존의 법칙을 조금만 수정하면 해결되는 사소한 문제’로 치부했다.

다행히 양자 역학의 창시자인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년)는 좀 더 뛰어난 예지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1924년에 열린 한 강연석상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물리학 공부를 처음 시작하면서 훌륭한 스승 필립 폰 욜리(Philipp von Jolly, 1809~1884년)에게 수시로 조언을 구했다. …… 그는 물리학이 거의 완성된 학문임을 강조하면서 “지엽적인 분야로 가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발견되긴 하겠지만, 전체적인 체계는 거의 완전하게 확립되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론 물리학은 지난 수세기 동안 확고한 입지를 지켜 온 기하학처럼 완벽한 체계임을 강조했다.4)

 

젊은 플랑크는 스승의 자연관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물질의 에너지 복사 과정을 당시의 물리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닫고 1900년에 양자 가설을 발표함으로써 물리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 후로 30여 년 동안 물리학자들은 특수/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 그리고 팽창 우주론 등 새로운 발견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천재적인 물리학자이자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유명했던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1918~1988년)은 1965년에 발표한 저서 『물리 법칙의 특성(The Character of Physical Law)』에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우리가 아직도 ‘발견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 지금 우리는 자연의 근본적인 법칙들이 한창 발견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이런 시대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은 항상 흥분되고 경이로운 경험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5)

 

나는 과학의 끝이 어디이며 언제 찾아올지 그리고 그 끝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심지어는 그 끝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종이 우리가 가끔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리석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우주의 비밀을 아직 완전하게 풀지 못한 이유는 과학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지적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우주 탐사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일단은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생명체라고 가정해 보자. 만일 추상적인 수학을 다루는 능력을 똑똑함의 척도로 삼는다면, 인간은 지구 상에서 가장 똑똑할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똑똑한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지구 역사상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똑똑한 존재로 태어난 인간은 과연 우주의 운영 법칙을 완전하게 알아낼 수 있을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침팬지와 인간은 거의 종이 한 장 차이지만, 침팬지를 교육시켜서 삼각 함수 문제를 풀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런데 인간을 침팬지 보듯 바라보는 더욱 뛰어난 종족이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그들은 과연 우주의 베일을 완전히 벗길 수 있을 것인가?

틱택토 게임(tic-tac-toe, 9개의 정사각형 안에 O나 X를 그려 넣어 같은 모양 3개로 일직선을 먼저 만드는 쪽이 이기는 게임. — 옮긴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기거나 비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O나 X를 처음 그려 넣을 위치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에게 이 게임을 시켜 보면 앞으로 닥칠 상황을 전혀 모르는 채 빈칸을 채우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체스도 규칙은 매우 단순하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상대방이 말을 움직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래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조차 체스 게임의 끝을 머릿속에 그리지 못한 채, 눈앞에 닥친 위기 상황을 모면하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했던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년)을 떠올려 보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트리니티 대학에 있는 뉴턴 흉상의 밑에 “Qui genus humanum ingenio supervit.”라는 라틴 어가 새겨져 있는데, 이 말은 “모든 인류 중 그보다 똑똑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뉴턴 본인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내가 이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바닷가에서 둥그런 자갈이나 예쁜 조개를 줍고 다니는 어린 소년쯤으로 보일 것 같다. 그러나 소년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진리는 광활한 바다 속에 조용히 숨어 있다.6)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은 지금까지 일부만 알려졌을 뿐, 아직도 상당 부분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인간은 우주에서 벌어지는 체스 게임의 규칙도 모르는 채 말의 움직임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구경꾼인 셈이다. 지금까지 자연을 관찰하면서 나름대로 ‘체스 게임 규칙 설명서’를 만들어 놓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도저히 게임에 참여할 수 없다.

이미 알려진 물리 법칙대로 작동하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지식과 물리 법칙 자체에 대한 지식의 차이는 과학의 끝을 짐작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앞으로 누군가가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Europa)의 얼음층이나 화성의 표면에서 생명체를 발견한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획기적인 발견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원자들은 지구의 원자들과 동일한 물리 법칙과 화학 법칙을 따른다. 따라서 외계 생명체를 추적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기존의 법칙만으로 수행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천문학이 아직 알아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서 새로운 현상이 발견된다면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물리학 분야가 탄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주의 기원으로 알려진 대폭발(big bang, ‘빅뱅’이라고 하기도 한다. — 옮긴이)을 매우 신뢰할 만한 이론으로 여기고 있지만, 우리로부터 137억 광년 거리에 있는 우주 지평선 너머에 과연 어떤 것들이 존재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대폭발이 일어나기 전의 우주와 대폭발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는 그저 어설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양자 역학에 따르면 우주가 팽창하는 것은 초창기의 시공간 거품이 단 한 차례 요동친 결과라고 한다. 만일 당시에 거품이 조금이라도 다르게 요동쳤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우주로 진화했을 것이다.

대폭발이 일어난 직후에 수천억 개의 은하가 생성된 과정을 컴퓨터로 재현해 보면 현재 망원경으로 관측된 결과와 잘 일치하지 않는다. 거시적 규모에서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은 여전히 우리의 시야를 벗어난 곳에 감춰져 있다는 뜻이다. 우주론 퍼즐의 중요한 조각들이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이다.

뉴턴의 운동 법칙과 중력 법칙은 수백 년 동안 최상의 이론으로 물리학의 권좌를 지켜 오다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년)의 상대성 이론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이제 중력 현상을 설명하는 최상의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다. 그리고 원자 규모의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양자 역학을 통해 가장 정확하게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과 양자 역학을 동일한 대상에 적용하면 커다란 모순이 야기된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역학에 무언가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다.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을 모두 포함하는 더욱 방대한 이론이 존재한다면, 여기에 희망을 걸어 볼 수도 있다. 이런 목적으로 탄생한 이론이 바로 끈 이론(string theory)이다. 끈 이론은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근본적인 단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호 작용을 진동하는 고차원 끈의 에너지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끈들이 다양한 모드로 진동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4차원 시공간에 다양한 입자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끈 이론은 물리학에 등장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실험을 통한 검증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래서 일부 물리학자들은 끈 이론에 대하여 회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다. 그러나 뚜렷한 대안이 나타나지 않는 한 끈 이론은 우리를 물리학의 끝으로 안내해 줄 유일한 후보로 남을 것이다.

무생물에서 생명체가 탄생한 과정도 아직 미지로 남아 있다. 생명체의 탄생에 관여한 힘은 무엇이며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어떤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가? 지구의 생명체와 비교할 만한 외계 생명체가 없어서 해답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920년대 에드윈 파월 허블(Edwin Powell Hubble, 1889~1953년)의 선구적 연구 덕분에 지금 우리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반중력을 행사하면서 우주의 팽창을 가속시키는 ‘암흑 에너지(dark energy)’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동안 얻은 관측 결과와 실험 자료, 이론 등을 아무리 신뢰한다 해도 결국 우주에 작용하고 있는 중력의 85퍼센트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기원한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관측 장비를 총동원해도 이 방대한 근원은 여전히 우리의 시야를 벗어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근원이 전자나 양성자, 중성자 또는 이들과 상호 작용하는 물질이나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흔히 ‘암흑 물질(dark matter)’이라 불리는 이 신비의 물질은 현대 천문학이 해결해야 할 최대의 난제임이 분명하다.

양자 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의 충돌이 무마되고 암흑 물질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과학은 과연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우주 정복 기념일’을 자축하게 될 것인가? 내가 보기에 이것은 침팬지가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해하고 기뻐 날뛰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인간을 침팬지에 비유한 것은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과학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의 개인적 능력이 아니라 종 전체가 발휘할 수 있는 집단적 능력일 것이다. 오늘날 인류는 각종 회의와 서적, 대중 매체, 인터넷 등을 통해 새로운 발견을 공유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 선택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인간의 문화는 부모의 획득 형질이 후대에 유전된다는 라마르크의 설을 따르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식으로 지식이 전수된다면 우주에 대한 지식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무한히 축적될 것이다.

하나의 발견이 이루어질 때마다 지식의 사다리는 한 칸씩 높아지고 있지만 그 끝은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 이 사다리가 완성되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칸이 추가되어야 할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우주의 비밀을 벗기는 작업은 어느 하나의 발견으로 끝나지 않고 단계적으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때마다

우주는 한층 더 복잡하고 장엄한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내고

우리는 점차 초감각을 지닌 존재로 진화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발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주의 모든 신비를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1장상식의 진화

인간은 오감을 도구 삼아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우주를 탐사하면서, 그 행위를 ‘모험의 과학’이라 불러 왔다.

— 에드윈 허블, 『과학의 특성(The Nature of Science)

 

인간의 오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시각을 꼽을 것이다. 우리의 눈은 집안 거실 건너편의 정보뿐 아니라 우주 저편의 정보까지 수용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만일 인간에게 시각적 능력이 없었다면 천문학은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우주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규명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만일 박쥐들이 그들만의 은밀한 비밀을 각 세대에 걸쳐 전수해 왔다고 해도 그것은 밤하늘의 모습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초음파로 사물을 인지하는 박쥐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우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오감은 매우 효율적인 실험 도구로서, 놀라울 정도로 예민하고 정확하다. 우리의 귀는 우주 왕복선이 출발할 때 발생하는 굉음부터 수십 센티미터 밖의 모기가 날아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며 우리의 촉각은 발등에 떨어진 볼링공의 무게부터 팔뚝 위를 기어가는 수천분의 1그램짜리 벌레의 움직임까지 느낄 수 있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음식물에 가미된 미량의 후추를 귀신같이 감지해 내는 미각을 갖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눈은 햇볕이 내리쬐는 광활한 사막에서부터 어둠 속 수백 미터 거리에서 켜지는 성냥불까지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오감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바깥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자극을 선형 함수가 아닌 로그 함수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소리의 에너지(볼륨)를 10배로 키웠을 때 우리의 귀는 그것을 ‘10배 더 강한 소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조금 더 큰 소리’로 인식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귀는 외부 자극의 증가량을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빛을 인식하는 기능도 이와 비슷하다. 만일 당신이 개기 일식 때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면 달의 그림자가 태양의 90퍼센트를 가려도 하늘이 밤처럼 어두워졌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밖에도 별의 밝기를 나타내는 단위나 지진의 세기를 나타내는 진도(震度) 역시 선형적 스케일이 아닌 로그 스케일로 정의되어 있다. 인간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물리량이 로그 스케일로 정의되어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인간의 오감이 외부의 자극을 로그 함수로 받아들인다는 사실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오감을 넘어선 영역에도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을까? 만일 존재한다면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은 자신과 가까운 주변 환경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낮과 밤을 구별하거나 식사 시간을 인지하는 능력 등) 과학 도구 없이 자연을 이해하는 능력은 형편없이 떨어진다. 바깥 세계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타고난 감각 기관 이외에 과학적인 탐사 장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과학 도구는 인간의 오감보다 훨씬 예민하고 정확하게 설계되어 있다.

개중에는 일반인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사실을 알아채거나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능력을 흔히 ‘육감’이라고 한다. 점쟁이나 독심술사는 신비한 능력을 소유한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면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데, 특히 출판인들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주 대상이다.

초심리학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지만 ‘그런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라는 전제 아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만일 점쟁이들이 월가(Wall Street)에 진출하여 주식 시장에서 자신의 예지력을 발휘한다면 천문학적인 부(富)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인터뷰에 간간히 응하는 등 소소한 일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점쟁이가 복권이 당첨됐다는 뉴스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 이유가 정말로 궁금하다.

신비적 현상과는 무관하지만 이중 맹검(double-blind, 피실험자나 연구자에게 투약이나 치료 대상을 알리지 않은 채 의료 효과를 조사하는 방법. — 옮긴이)이 계속해서 실패하는 것을 보면 초심리학은 육감이라기보다 난센스에 가까운 것 같다.

현대 과학은 수십 종의 감각 장치를 사용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그것을 ‘특별한 능력’이 아닌 ‘특별한 하드웨어’로 간주하고 있다.

하드웨어란 인간의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정보들을 수집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차트나 다이어그램 또는 영상으로 바꿔 주는 장치이다. SF 텔레비전 드라마로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 트렉(Star Trek)」을 보면 승무원들이 우주선에서 미지의 행성으로 순간 이동할 때 트리코더(tricorder)라는 장비를 항상 휴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트리코더는 행성에서 마주치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기본적 특성을 스캔하고 분석하여 지구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변환해 주는 환상적인 장치이다.

예를 들어 밝은 빛을 내는 미지의 둥근 물체가 우리 눈앞에 놓여 있다고 가정해 보자. 트리코더 같은 장비가 없다면 이 물체의 화학 성분이나 핵 구성 성분 등을 무슨 수로 알 수 있겠는가? 이 물체가 주변에 전자기장을 형성하고 있는지 또는 강력한 감마선이나 엑스선, 자외선, 마이크로파, 전파 등을 방출하고 있는지, 인간의 오감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 물체의 세포 조직이나 결정 구조도 확인할 수 없다. 우주 공간에서 이런 물체를 발견한다 해도 과학 도구 없이는 거리와 이동 속도, 회전 속도 등을 알 길이 없다. 물론 여기서 방출되는 빛의 스펙트럼이나 편광 여부도 알 수 없다. 과학 관측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오감은 거의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물체를 분석할 만한 하드웨어도 없고 직접 만지거나 핥아 볼 용기도 없다면 승무원은 우주선을 향해 이런 보고를 하는 수밖에 없다. “선장님, 방금 둥그런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에드윈 허블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이 장의 서두에 인용된 그의 글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인간은 오감과 함께 망원경, 현미경, 질량 분석기, 지진계, 자기계, 입자 가속기, 전자기 스펙트럼 감지기 등을 도구 삼아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우주를 탐사하면서, 그 행위를 ‘모험의 과학’이라 불러 왔다.

 

만일 인간이 가시광선 대역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눈의 분해능도 지금보다 훨씬 뛰어나다면 우리에게 보이는 세상은 한마디로 환상 그 자체였을 것이다. 가시광선 대역을 전파의 주파수에 맞추면 하늘은 대낮에도 밤처럼 어두울 것이고, 우리 은하(Milky Way, 밤하늘 은하수이자 우리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 — 옮긴이)의 중심부와 같이 전파를 방출하는 천체들이 궁수자리의 뒤쪽에서 밝은 빛을 발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가시광선 대역을 마이크로파로 이동하면 우주 전체가 밝게 빛나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대폭발이 일어나고 약 38만 년이 지난 후 대량으로 방출된 마이크로파의 잔해가 지금도 우주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가시광선 대역을 엑스선으로 이동하면 블랙홀을 볼 수 있고, 감마선 쪽으로 이동하면 우주 전역에 걸쳐 거의 하루에 한 번꼴로 일어나는 초대형 폭발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자기계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 있다면 나침반은 결코 발명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기관으로 지자기의 방향과 세기를 감지하면 북극의 방향이 마치 지평선 너머 마법사 오즈(Oz)의 성처럼 선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망막에 스펙트럼 분석기가 달려 있다면 우리가 마시는 공기의 성분을 애써 분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냥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공기의 대부분이 산소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은하에 속해 있는 별과 성운도 지구에 있는 것과 동일한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미 수천 년 전에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지금보다 훨씬 크면서 도플러 효과까지 감지할 수 있다면 모든 은하가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는 모습을 줄곧 보아 왔을 것이므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인원 시대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인간의 눈이 고성능 현미경과 비슷한 분해능을 갖고 있었다면 몸에 난 상처나 음식물 근처에서 인간에게 병을 옮기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꾸물거리며 기어가는 모습을 매일같이 보면서 살았을 것이므로 전염병을 비롯한 모든 질병을 신의 분노로 해석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약간의 실험만 거치면 인간에게 좋고 나쁜 세균을 구별할 수 있었을 것이며, 수술 후에 일어날 수 있는 감염 문제도 이미 수백 년 전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눈이 고에너지 입자를 감지할 수 있다면 먼 거리에 있는 방사능 물질을 판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비싼 돈을 주고 가이거 계수기(방사선 검출 장비. — 옮긴이)를 살 필요가 없다. 마룻바닥에 서서히 스며드는 라돈 기체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방사능 오염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전문가를 부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타고난 감각은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외부 정보를 수용하고 분석하면서 일련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 정상적인 성인들은 이 자료에 근거하여 무엇이 상식적이고 무엇이 비상식적인지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세기에 이루어진 과학적 발견들은 대부분 인간의 오감을 벗어난 수학 및 하드웨어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상대성 이론과 입자 물리학 그리고 10차원 또는 11차원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끈 이론 등이 일반인에게 난센스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블랙홀이나 웜홀, 대폭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실 이런 개념들은 과학자의 입장에서도 그다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로 돌아가서 당시의 과학자들에게 상대성 이론이나 끈 이론을 설명한다면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혀를 찰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때마다 ‘상식’의 단계를 조금씩 높여 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세계나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10차원 공간에 대한 창조적인 사고를 펼쳐 왔다.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20세기 초에 양자 역학을 창시하면서 이와 비슷한 사실을 간파했다.

 

현대 물리학은 인간의 오감을 초월한 곳에도 진리가 존재하며, 경험적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보물보다 더욱 값진 진리들이 그곳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오래된 가르침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7)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나무가 쓰러진다면 과연 소리가 날 것인가?”라는 쓸데없는 형이상학적 질문에 상식적인 답을 내놓아도 인간의 오감은 그것을 수용하지 못한다. 내가 제시하는 답은 다음과 같다. “아무도 없다면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답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과 비슷한 질문을 또 하나 던져 보자. “일산화탄소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면 그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답은 이렇다. “그 냄새를 맡았다면 당신은 이미 죽었다.” 현대 사회에서 오직 오감만으로 바깥세상을 감지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당장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알아내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되었다는 것은, 바깥세상을 인지하는 ‘비생물학적’ 감각 기관이 새로 개설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발견이 이루어질 때마다 우주는 한층 더 복잡하고 장엄한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내고 우리는 점차 초감각을 지닌 존재로 진화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발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주의 모든 신비를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2장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구에서 성립하는 법칙은 우주 전역에 걸쳐 통용된다.”라는 가정을 내세울 만한 근거가 별로 없었다. “지구에는 지구에 어울리는 물체들이 지구의 법칙을 따라 존재하고 있으며, 하늘에는 하늘에 어울리는 만물들이 하늘의 법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라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 시대에 활동했던 학자들은 인간의 나약한 능력으로 하늘의 섭리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뒤에 7부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뉴턴이 모든 운동을 ‘이해 가능하고 예견 가능한 현상’으로 적나라하게 펼쳐 보였을 때 일부 신학자들은 “신이 할 일을 남겨두지 않았다.”라며 뉴턴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뉴턴은 사과를 나뭇가지에서 떨어지게 하는 중력이 날아가는 포사체(抛射體)의 궤적을 결정하며, 달을 지구 주변에 붙잡아 두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뉴턴의 중력 이론은 태양계의 소행성과 혜성의 운동을 정확하게 예견했고, 우리 은하 안에 있는 수천억 개의 별 사이에도 태양계와 동일한 방식으로 중력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물리 법칙의 범용성은 과학적 발견의 가치를 한층 더 높여 준다. 중력 이론은 그 서막에 불과했다. 19세기 천문학자들이 프리즘을 이용하여 빛의 스펙트럼 분석법을 알아낸 후 태양 광선의 스펙트럼을 처음으로 관측했을 때 그들이 느꼈을 희열을 상상해 보라. 스펙트럼은 보기에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광원의 온도와 구성 성분 등 방대한 양의 정보를 담고 있다. 모든 종류의 화학 원소는 스펙트럼 상의 특정 위치에 밝은 선과 검은 선을 번갈아 그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즉 스펙트럼은 화학 원소를 식별하는 ‘지문’인 셈이다. 그런데 더욱 반가운 것은 태양빛으로부터 얻은 스펙트럼이 실험실에서 얻은 스펙트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프리즘은 화학자들에게 필요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천체의 구성 성분을 알아내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태양은 크기와 질량, 온도, 위치, 외형 등이 지구와 전혀 딴판이지만 수소, 탄소, 산소, 질소, 칼슘, 철 등 지구에서 발견되는 것과 동일한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태양의 스펙트럼 배열을 설명해 주는 물리 법칙이 어떻게 생겼건 간에 이와 동일한 법칙이 무려 1억 5000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지구에서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물리 법칙의 범용성은 우리에게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뿐만 아니라 이것을 역으로 적용하면 전혀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아낼 수도 있다. 과거의 과학자들은 태양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던 중 지구에서 전혀 발견된 적이 없는 새로운 스펙트럼선을 찾아내고 몹시 흥분했다. 그들은 새로운 원소에 어떤 이름을 붙일까 고민하다가, 그리스 어로 태양을 뜻하는 헬리오스(Helios)에 ‘-um’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헬륨(helium)이라고 명명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에서도 헬륨이 발견되었지만 그때 붙여진 이름은 지금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이리하여 헬륨은 주기율표에 등록된 원소 중 지구가 아닌 외계에서 발견된 처음이자 유일한 원소로 남게 되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물리학의 법칙은 태양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렇다면 은하 건너편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까? 우주 반대편으로 가면 어떻게 될까? 아득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같은 법칙이 적용되고 있을까? 지금부터 그 해답을 단계적으로 알아보자. 일단 지구와 가까운 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원소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멀리 있는 쌍성(binary stars, 두 별의 질량 중심에 대해 각각 공전하는 2개의 별. ‘연성’이라고도 한다. — 옮긴이)은 뉴턴의 중력 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따라서 이중 은하(binary galaxy)도 같은 법칙을 따를 것이다.

깊은 지층일수록 나이가 많은 것처럼, 우주 공간도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빛의 속도가 유한하여 지구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별일수록 우리는 더 오랜 과거의 모습을 보고 있는 셈이다.) 관측 가능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별의 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 이들도 우리가 알고 있는 원소로 이루어져 있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무거운 원소가 가벼운 원소보다 양이 적은 것을 보면 이들이 별의 내부에서 생성된 후 별의 폭발과 함께 우주 전역으로 흩어졌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원자와 분자의 특성을 설명하는 법칙만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에는 지구에서 겪을 수 없는 것도 있다. 독자들은 수백만 도의 온도에서 밝게 빛나는 플라스마 구름 속을 걸어 본 적도 없고 길을 걷다가 블랙홀을 밟고 비틀거린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연 현상의 편재성(遍在性)이 아니라 자연 현상을 서술하는 법칙이 우주 어디서나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우주 공간의 성운에서 날아온 빛의 스펙트럼을 처음으로 분석했을 때 과학자들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원소를 발견했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원소의 주기율표에는 중간에 빠진 부분이 단 하나도 없었으므로(헬륨은 주기율표가 완성되기 전에 발견되었다.), 천문학자들은 새로 발견된 원소에 임시로 ‘네불륨(nebulium)’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내부 구조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 기체 성운의 내부는 밀도가 아주 낮기 때문에 각 원자들은 다른 원자와 충돌하지 않고 꽤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원자 내부의 전자는 지구에서 볼 수 없는 희한한 움직임을 보이는데, 새로운 스펙트럼이 얻어진 것은 바로 이런 현상 때문이었다. 결국 그들이 얻은 스펙트럼은 전자가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산소 원자로 밝혀졌고 네불륨이라는 이름은 곧 폐기되었다.

우리가 우주 공간을 여행하다가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외계 행성에서 도달했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그들의 사회 체제나 종교는 우리와 완전 딴판일 것이다. 그들은 결코 영어나 프랑스 어 또는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악수를 하려고 내민 손을 적대감의 표현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물리 법칙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동일할 것이므로 과학적 언어를 이용하여 우리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1970년대에 우주로 발사된 파이오니어 10, 11호와 보이저 1, 2호에는 실제로 외계 생명체가 이해할 만한 메시지가 탑재되어 있다. (이들은 태양계를 벗어나 외계로 진출한 최초의 우주선이었다.) 파이오니어 호는 태양계의 구조와 은하수에서 지구의 위치 그리고 수소 원자의 구조가 새겨진 금판을 실은 채 지금도 우주 공간을 날아다니고 있으며, 보이저 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심장 박동 소리와 고래의 노랫소리 그리고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년)에서 척 베리(Chuck Berry, 1926~2017년)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을 싣고 있다. 이렇게 ‘인간적인’ 정보들은 지구인의 존재를 알리는데 효과적이긴 하지만, 정작 우주선을 발견한 외계인들이 귀라는 감각 기관을 갖고 있지 않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여기서 잠시 짤막한 농담 하나. 어느 날 보이저 호를 발견한 외계인이 간단한 회신을 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로 보내왔다. “지구인 들어라.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척 베리 노래나 더 보내 달라!”

 

 

3부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과학자들은 범우주적 법칙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물리 상수도 여러 개 발견했다. 뉴턴의 중력 방정식에 등장하는 중력 상수 G는 중력의 세기를 결정하는 범우주적 상수로서, 약간의 수학을 거치면 빛의 밝기가 중력 상수 G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일 과거에 G의 값이 지금과 조금 달랐다면 태양의 밝기가 지금과 크게 달라져서 지구에 생명체가 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질학적 기록과 과거의 기후 등을 조사해 보면 G의 값은 언제나 일정했음을 알 수 있다. G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중요한 상수들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언제나 일정한 값을 유지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우주가 운영되는 방식이다.

여러 가지 물리 상수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도 빛의 속도일 것이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운송 수단을 타고 아무리 빠르게 이동한다 해도 빛보다 빠를 수는 없다. 왜 그런가? 이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실험이 실행되었지만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는 단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확실하게 검증된 물리 법칙이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실 모든 물체(또는 모든 종류의 신호)가 빛보다 빠를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다소 보수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과거에도 발명가들과 공학자들의 능력을 과소 평가한 주장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인간은 결코 날 수 없다.” “비행은 상업성이 전혀 없다.” “음속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자는 더 이상 분할될 수 없다.” “인간은 절대로 달에 갈 수 없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물리 법칙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것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라는 주장은 앞에 열거한 주장과 그 성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물리학의 기본 원리로서 이미 충분한 실험을 통해 검증된 사실이다. 미래에 우주 고속 도로를 달리는 여행객들은 다음과 같은 안내판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달릴 수 없음: 이것은 권고 사항이 아니라 물리 법칙입니다.

 

언젠가 나는 “OBEY GRAVITY.”, 즉 “중력에 순응하세요.”라는 뜻이 적혀 있는 티셔츠를 입고 다녔던 적이 있다. 언뜻 들으면 순응하지 않는 사람을 계도하는 것 같지만 모두 알다시피 지구 위의 삼라만상은 중력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물리 법칙의 좋은 점은 그것을 시행하는 집행관이 없어도 잘 지켜진다는 점이다.

자연 현상을 물리적으로 설명할 때에는 여러 개의 물리 법칙을 동시에 적용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벌어진 상황을 분석하고 중요한 변수를 추적하려면 슈퍼 컴퓨터를 사용해야 한다. 1994년에 슈메이커레비 9(Shoemaker-Levy 9) 혜성이 목성의 대기층에서 폭발했을 때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예견하고 분석하기 위해 유체 역학과 열역학, 동역학, 중력 등 다방면의 법칙을 총동원했으며, 그 많은 법칙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슈퍼 컴퓨터를 사용했다. 날씨를 예보하는 것도 이것에 못지않게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복잡한 물리계라 해도 근본적인 법칙은 항상 적용할 수 있다. 목성의 대적반(Great Red Spot, 목성의 남반구에 있는 붉은색의 거대한 반점. — 옮긴이)에는 최소 350년 동안 엄청난 강풍이 몰아치고 있는데 이 현상을 설명하는 물리 법칙은 지구나 다른 행성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관측 가능한 물리량 중에는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양이 있는데, 이 사실을 보장해 주는 법칙이 바로 ‘보존 법칙(Conservation Law)’이다. 중요한 보존량으로는 에너지, 선운동량과 각운동량 그리고 전자기적 전하가 있다. 보존 법칙은 입자 물리학에서 우주 전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적용되는 법칙이므로 일상적인 규모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 만물이 이처럼 완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앞서 지적한 대로 우주 중력의 85퍼센트는 볼 수 없고 만지거나 맛볼 수도 없다. 그 원천으로 추정되는 암흑 물질은 우주 공간에서 중력만 행사하고 있을 뿐 그 존재가 직접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 만일 암흑 물질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지구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암흑 물질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는 천문학자도 있다. 뉴턴의 중력 법칙에 몇 가지 요소를 추가하면 새로운 물질을 도입하지 않고서도 망원경으로 관측된 중력 분포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뉴턴의 중력 법칙을 수정해야 하는 날이 찾아온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우리는 과거에 이와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1916년에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원리를 발표하면서 물체의 질량이 지나치게 큰 경우에는 뉴턴의 중력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주장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이 사례로부터 우리가 배운 교훈은 무엇인가? “물리 법칙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법칙이 검증된 영역 안에서만 통용된다.”라는 사실이다. 적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우주를 서술하는 물리 법칙은 더욱 강력해진다. 뉴턴의 중력 법칙은 일상적인 규모에서 매우 정확하게 들어맞지만, 블랙홀이나 거대한 천체로 가면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범위를 넘어가지만 않는다면 모든 물리 법칙은 우주 어디에서나 올바르게 적용될 수 있다.

 

 

이와 같이 물리 법칙은 범우주적으로 통용되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눈에 비치는 우주는 매우 단순한 존재이다. 그러나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한 인간은 심리학적 측면에서 볼 때 엄청나게 복잡한 존재이다. 미국 교육 위원회에서는 학생들의 교과 과목을 설정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투표를 실시하는데 각 위원들은 사회적 또는 정치적 성향이나 종교에 따라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하곤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나 민족 사이에 종교와 관련해 야기된 분쟁은 항상 정치적 대립을 수반하기 때문에 평화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그러나 물리 법칙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건 안 믿건 간에 정해진 규칙을 따라 모든 곳에 적용된다. 물리 법칙을 제외한 모든 것은 개인적 의견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토록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명백한 사실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일반인들은 많은 시간을 이런 논쟁으로 소모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논쟁을 벌일 때 첨단 지식을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상적인 논쟁에 물리 법칙이 개입되면 모든 정황이 명백해지고 자칫 장황해지기 쉬운 토론을 간결하게 끝낼 수 있다. 누군가가 영구 기관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가? 턱도 없는 소리다. 영구 기관은 기본적으로 열역학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별 짓을 다해도 만들 수 없다. 타임머신을 만들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하는 이가 있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타임머신은 인과율에 위배된다. 또 누가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마음을 다스리면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가? 그것이 가능하려면 운동량 법칙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아래쪽으로 배기 가스를 강하게 분출하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줄에 매달려 있다면 물리 법칙에 따라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물리 법칙은 모든 것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물리 법칙을 알고 있으면 잘못된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당당하게 대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나는 패서디나의 한 카페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때마침 뜨거운 음료가 마시고 싶어서 크림을 얹은 코코아를 주문했는데 웨이터가 갖고 나온 코코아 잔에는 크림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크림을 왜 넣지 않았냐고 따졌더니 웨이터는 크림이 코코아 안으로 가라앉아서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사실 거품 크림은 밀도가 아주 작기 때문에 인간이 마실 수 있는 어떤 음료에 섞어도 위로 뜨기 마련이다. 나는 웨이터에게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이 깜빡 잊고 내 코코아에 크림을 넣지 않았거나, 물리학의 법칙이 이 카페에서만 다르게 적용되고 있거나 둘 중 하나가 분명합니다. 나는 전자에 걸 건데, 당신은 어느 쪽에 거시겠습니까?” 웨이터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주방에서 크림 한 스푼을 가져와 직접 실험해 보았고 곧 나는 크림을 얹은 코코아를 마실 수 있었다.

물리 법칙의 범용성을 증명할 때 이보다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3장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까지 얻은 관측 결과를 살펴보면 우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법칙을 잘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런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혹시 우주는 우리의 지식과 전혀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겉으로는 인간이 알고 있는 법칙을 따르는 척하면서 속으로 엄청난 음모가 진행되고 있지는 않을까?” 아닌 게 아니라 나의 걱정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확인해 보지 않은 채 지구가 구형 행성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천 년 사이에 지구에서 살다간 수많은 현자들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 당장 당신의 주변을 둘러보라. 위성에서 보내온 자료 이외에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겠는가?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의 표면이 평면이 아닌 곡면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지구의 표면에서 성립되는 기하학적 사실들은 매끄러운 비유클리드 기하학적 곡면 위에서도 똑같이 성립되어야 한다. 곡면 위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취해서 기하학적 특성을 살펴보면 평면의 경우와 거의 다를 것이 없다. 과거에 살던 사람들은 고향에서 멀리 떠나는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내가 사는 곳이 지구의 중심이고 지평선(세상의 끝)까지의 거리는 모든 방향으로 동일하다.”라는 자기 중심적 지구 평면설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세계 각국에서 출판된 세계 지도를 보면 거의 예외 없이 특정 국가(지도를 출판한 국가)가 지도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제 지구를 벗어나 하늘을 올려다보자. 망원경이 없었다면 별들이 지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짐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 별들은 마치 둥그런 그릇의 안쪽에 접착제로 붙어 있는 것처럼 동일한 궤적을 따라 뜨고 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별이 지구에서 동일한 거리에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지구에서 별까지의 거리는 별들마다 제각각이고 별들이 박혀 있는 둥그런 그릇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밤하늘의 별들은 모든 공간에 골고루 퍼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맨눈으로 보면 가장 밝은 별은 가장 희미한 별보다 100배 이상 밝다. 그렇다면 가장 희미한 별은 가장 밝은 별보다 100배 이상 먼 거리에 있는 것일까?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앞에서 설명한 것 같은 논리가 성립하려면 모든 별의 절대 밝기가 동일하다는 전제부터 내세워야 한다. 그러나 망원경으로 별의 밝기를 측정해 보면 가장 밝은 별과 가장 어두운 별의 광도 차이는 무려 1010배에 달한다. 따라서 가장 밝은 별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밝기가 모두 다르고 지구로부터 엄청나게 먼 거리에 있다.

은하를 구성하는 모든 별도 우리 눈에 보이는 별처럼 밝은 빛을 발하고 있을까?

아니다.

밝은 별은 그리 흔하지 않다. 평균적으로 볼 때 희미한 별과 밝은 별의 비율은 1,000 대 1이 넘는다. 밝은 별은 빛이 그 먼 거리를 가로질러 지구에 도달해도 여전히 밝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

2개의 별이 동일한 밝기로 빛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들 중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지구로부터) 100배 먼 거리에 있다. 그렇다면 가까운 별은 멀리 있는 별보다 100배 밝게 보일 것인가?

아니다.

빛의 밝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거리가 100배이면 밝기는 1002배 줄어든다. 여기에 ‘역제곱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순전히 기하학적 이유 때문이다. 하나의 광원에서 빛이 생성되면 빛의 최첨단은 구면파를 형성하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게 되는 구의 면적은 반지름, 즉 광원으로부터의 거리에 비례하고(구의 면적=4πr2이라는 공식을 떠올려 보라.) 원래의 밝기가 이 표면적 위에 골고루 퍼져야 하기 때문에 빛의 밝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별들은 지구로부터 각기 다른 거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으며 절대적인 밝기도 제각각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밝기만으로 별에서 방출되는 빛의 양을 추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별의 위치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선조들은 별이 하늘에 고정되어 있다고 굳게 믿어 왔다. 구약 성경의 「창세기」 1장 17절에는 “하나님이 …… 별들을 만드시고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穹蒼)에 두어 땅에 비추게 하시며……”라는 구절이 등장하고,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us, 100?~170?년)는 기원후 150년경에 출판된 그의 저서 『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하늘의 별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자신 있게 주장했다.

만일 별들의 위치가 변하고 있다면 지구로부터의 거리도 수시로 달라져야 하므로 별의 크기와 밝기 그리고 별들 사이의 거리도 매년마다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관측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별들이 정말로 하늘에 고정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다.

인간의 우주 관측 역사는 이런 주장을 자신 있게 펼칠 정도로 오래되지 않았다. 별이 움직인다는 주장을 최초로 펼친 사람은 핼리 혜성으로 유명한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 1656~1742년)이다. 그는 1718년에 별의 ‘현재’ 위치를 기원전 2세기에 그리스의 천문학자 히파르코스(Hipparchus, 기원전 190?~120?년)가 남긴 관측 기록과 비교했다. 핼리는 히파르코스의 기록을 굳게 신뢰하고 있었지만 무려 18세기가 지난 후대의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기록을 재검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현재와 과거의 기록을 일일이 비교한 끝에 대각성(大角星, Arcturus, 목동자리에서 가장 큰 별. — 옮긴이)의 위치가 변했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별의 항구성’이라는 오랜 믿음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이동 거리가 너무 짧아서 100년 이내에 일어나는 움직임은 망원경으로 관측해야 간신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늘에 떠 있는 모든 천체 중에서 움직임이 육안으로 관측되는 것은 단 7개뿐이다. 그중 5개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는 행성이며 나머지 2개는 태양과 달이다. (‘행성(planet)’이라는 이름은 그리스 어로 ‘방랑자’라는 뜻이다.) 5개의 행성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으로 달력에 사용되는 각 요일(曜日)의 명칭은 이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고대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행성이 다른 별들보다 지구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했던 행성의 공전 중심은 태양이 아닌 지구였다.

사모스(Samos, 에게 해 동부 그리스 섬. 피타고라스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 옮긴이)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 기원전 310?~230?년)는 기원전 3세기경에 태양을 중심으로 한 우주 모형을 제안했으나, 당시에는 행성을 비롯한 모든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만일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면 우리는 왜 그것을 느낄 수 없는가? 당시 사람들의 반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만일 지구가 스스로 회전하거나(자전) 통째로 움직이고 있다면(공전)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새들은 왜 뒤로 쳐지지 않는가?

✸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면 한 지점에서 수직 방향으로 뛰어올랐을 때 이전과 다른 지점으로 내려앉아야 하지 않겠는가?

✸ 만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다면 지구에서 별을 바라보는 각도가 연속적으로 변하여 별자리의 형태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지구 공전 반대론자의 주장에도 설득력은 있다. 처음 두 반론을 해결한 사람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년)였다. 그는 사람이나 물체가 공중에 떠 있어도 대기를 비롯한 모든 만물이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지구의 자전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복도에 서서 위로 점프하면 비행기의 꼬리 쪽에 있는 화장실 문에 부딪히지 않고 처음 점프한 자리에 그대로 내려앉는다. 그리고 세 번째 반론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별들은 실제로 이동하고 있다. 다만 그 이동이 너무 미미하기 때문에 고성능 망원경이 있어야만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이 효과는 1838년에 독일의 천문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베셀(Friedrich Wilhelm Bessel, 1784~1846년)에 의해 처음으로 관측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 『알마게스트』는 지구 중심적인 우주관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여기에는 과학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화나 종교적 가치관도 커다란 요소로 작용했다. 그 후 1543년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년)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라는 저서를 통해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임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신교 신학자였던 안드레아스 오시안더(Andreas Osiander, 1498~1552년)가 코페르니쿠스의 원고를 사전에 읽어 보고 교단에 풍파가 불어 닥칠 것을 염려하여 다음과 같은 서문을 추가했다.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태양이 하늘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지구가 움직인다는 새로운 주장에 적잖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 그러나 이 주장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사실일 가능성도 거의 없다. 다만 관측된 사실을 계산으로 재현하기 위해 기존과 다른 가설을 내세운 것뿐이다.8)

 

그러나 정작 코페르니쿠스는 책이 출판된 후 불어 닥칠 풍파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책의 서두에 실린 「교황 바오로 3세에게 바치는 헌정사」에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이 책은 지구의 운동과 하늘의 구조에 대하여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나는 이 내용을 접한 사람들이 나에게 비난을 퍼부으며 주장을 즉각 철회하라고 강요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9)

 

그러나 1608년에 네덜란드 안경 제작자 한스 리페르세이(Hans Lippershey, 1570~1619년)가 망원경을 발명했고 이 도구를 사용하여 최초로 하늘을 관측한 갈릴레오는(망원경이 처음 상용화된 분야는 천문학계가 아니라 군대였다. — 옮긴이) 목성의 주변을 공전하고 있는 네 위성과 금성의 특이한 움직임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얻어진 관측 결과들은 한결같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적 우주관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에서 그다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여기에 기초한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은 공식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구가 여러 개의 행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그들의 운동을 관장하는 태양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태양이 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인가? 그럴 리 없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착각에서 헤어난 이상 비슷한 착각에 또 빠질 사람은 없다.

만일 태양계가 우주의 중심이라면 하늘의 어느 방향을 바라봐도 별의 개수가 거의 같아야 한다. 그러나 태양계가 우주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면 특정 방향에 별들이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우주의 중심은 바로 그 방향에 놓여 있다.

1785년에 영국의 천문학자 프레더릭 월리엄 허셜(Frederick William Herschel, 1738~1822년)은 눈에 보이는 모든 별의 위치와 지구로부터의 거리를 산출한 끝에 태양계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후 100여 년이 지나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야코뷔스 코르넬리위스 캅테인(Jacobus Cornelius Kapteyn, 1851~1922년)은 당시의 최첨단 거리 산출법을 이용하여 은하 안에서 태양계의 위치를 추적했다. 은하수, 즉 우리 은하는 맨눈으로 봤을 때 하늘에 걸친 가느다란 띠처럼 보이지만 망원경으로 보면 수많은 별의 집합임을 알 수 있다. 여기 분포되어 있는 별들을 일일이 분석해 보면 은하수의 띠를 따라서 별의 밀도가 거의 균일하게 나타나고 그 위와 아래쪽으로 갈수록 밀도가 대칭적으로 감소한다. 또한 하늘에서 임의의 방향과 그 반대 방향을 바라보면 별의 밀도가 거의 같다. 캅테인은 근 20년 동안 하늘의 지도를 제작하면서 우리 태양계가 우주 중심의 1퍼센트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완전한 중심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우주적 우월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우주는 지구인의 자만심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았다.

당시에는 캅테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이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은하수는 그 뒤에 있는 천체를 우리의 시야에서 가리고 있다. 은하수에는 거대한 기체 구름과 다량의 먼지가 섞여 있기 때문에 그 뒤에 있는 천체에서 지구 쪽으로 방출된 빛의 대부분을 흡수해 버린다. 지구에서 바라보았을 때, 우리의 가시 영역에 있는 별의 99퍼센트 이상이 은하수의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가 우주 중심의 근처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밀림 속에서 몇 걸음 걸어간 후 “나무의 수가 모든 방향에서 거의 같으므로 나는 숲의 중심에 도달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1920년대에(이때만 해도 빛의 흡수 문제는 물리적으로 규명되지 않고 있었다.) 하버드 대학교 천문대 대장을 지냈던 할로 섀플리(Harlow Shapley, 1885~1972년)는 은하수에서 구상 성단(globular cluster)의 분포를 집중적으로 관측했다. 구상 성단은 수백만 개의 별이 구형으로 밀집되어 있는 천체로서 빛의 흡수가 크게 일어나지 않는 은하수의 위나 아래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섀플리는 이러한 거대 성단의 위치로부터 우주의 중심을 추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질량의 밀도가 가장 높고 중력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 우주의 중심일 것이다. 섀플리가 얻은 관측 자료에 따르면 태양계는 구상 성단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즉 지구는 (관측 가능한) 우주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특별한 장소는 대체 어디쯤 있을까? 섀플리의 계산에 따르면 지구에서 궁수자리(Sagittarius) 방향으로 6만 광년 떨어진 곳에 은하수의 중심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섀플리의 예측은 실제보다 2배 큰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구상 성단의 중심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섀플리가 예측한 구상 성단의 중심은 나중에 발견된 초강력 전파의 방출원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전파의 강도는 기체와 먼지층을 지나면서 감소한다.) 결국 천문학자들은 관측 결과를 종합하여 분석한 끝에 전파의 방출원이 은하수, 즉 우리 은하의 중심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교훈을 한두 차례 더 곱씹어야 했다.

이로써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은 또 한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태양계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아득하게 떨어진 변방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간의 자존심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 좋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하지만 지구가 속해 있는 방대한 은하는 우주의 전부이므로 우리는 여전히 ‘사건의 중심부’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대부분의 은하는 우주의 ‘섬’에 불과하다. 이 사실은 18세기 여러 학자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스웨덴의 철학자 에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1772년)와 영국의 천문학자 토머스 라이트(Thomas Wright, 1711~1786년), 그리고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년)를 들 수 있다. 특히 라이트는 그의 저서 『우주의 원론(The Original Theory of the Universe)(1750년)에서 은하수처럼 별들이 밀집되어 있는 무한한 우주를 제안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우주 공간은 수많은 별과 행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머나먼 공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하늘에서 발견되는 희미한 점들(Cloudy Spots)이 이와 같은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망원경으로 봐도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없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경계 바깥에 존재하는 천체일 것으로 추정된다.10)

 

라이트가 말하는 ‘희미한 점들’이란 은하수의 위쪽과 아래쪽에서 볼 수 있는 아득히 먼 은하로서 보통 수천억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다. 나머지 성운들은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고 기체 구름으로 덮여 있으며 주로 은하수의 내부에서 발견된다.

우리 은하가 우주 공간을 표류하는 수많은 은하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은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정도로는 우주의 방대함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지만 18세기만 해도 이것은 폭탄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를 가장 비참하게 추락시킨 사람은 에드윈 허블이었다. (그의 이름은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허블 우주 망원경을 만든 사람은 허블이 아니다!) 1923년 10월 5일, 허블은 윌슨 산 천문대의 지름 100인치짜리 천체 망원경(당시만 해도 전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망원경이었다.)으로 가장 큰 성운 중 하나인 안드로메다 은하를 관측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엄청나게 밝은 빛을 발하는 별을 발견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별은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었고 지구로부터의 거리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일단 별의 종류가 결정되면 그 밝기는 오직 거리에 따라 좌우된다. 허블은 새로 발견된 별에 역제곱 법칙을 적용하여 지구로부터의 거리를 계산했고 그 결과 안드로메다 은하는 그 당시에 알려진 천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먼 거리에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안드로메다는 그 자체가 수십억 개의 별로 이루어진 하나의 은하로서 지구에서 약 2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로써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닐 뿐만 아니라 지구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조차도 유일한 은하가 아니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요즘 우리는 우리 은하가 우주 전역에 퍼져 있는 수십억 개의 은하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이것 때문에 크게 실망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전통적 사고에서 간신히 벗어난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큰 충격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우리 은하가 수없이 많은 은하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전 세계 인류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고 6년이 지난 후 허블은 또 하나의 충격적인 발견을 이루어 냈다. 은하의 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면밀히 분석해 보니 거의 모든 은하가 우리 은하로부터 일제히 멀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멀어져 가는 속도도 더욱 빠르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는 원하던 자리를 되찾았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으며 우리 은하가 있는 곳이 팽창의 중심이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우리는 또다시 바보가 되었다. 모든 것이 우리를 중심으로 멀어져 간다고 해서 우리가 중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주론은 1916년에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새로운 중력 이론)이 발표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의 우주에서 시간과 공간으로 짠 직물(fabric)은 질량의 존재 여부에 따라 특정한 곡률로 휘어진다. 그리고 시공간이 휘어지면 그에 대한 화답으로 질량(물체)이 움직인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중력 이론이 중력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우주에 적용하면 모든 은하는 팽창하는 우주 공간에 ‘무임 승차’하여 공간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렇다면 우주에는 팽창의 중심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은하에서 보더라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은하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자만심은 다시 한번 치명타를 맞은 셈이다. 그러나 다른 시공간에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었더라도 그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착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우주는 단 하나뿐이다. 바로 이 하나뿐인 우주에서 우리는 행복한 망상에 빠져 있다. 그런데 물리 법칙 몇 개를 극한까지(또는 그 이상으로) 확장시키면 시공간이 양자적 요동으로 극단적인 혼란을 겪으면서 작고, 무겁고, 뜨겁던 우주의 탄생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우주조차도 유일한 존재가 아니다. 우주의 중심에서 마지못해 밀려나면서 “그래도 우리 은하는 우주의 중심이다.”라고 믿었다가 그마저 포기하고,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팽창하는가 싶더니 그것도 아니라 하고, 이제는 믿었던 우주마저 유일하지 않다고 하니 인간의 입지는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을 정도로 좁아진 것 같다. 교황 바오로 3세가 살아 있다면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했을까?

 

 

천문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자존심은 구길 대로 구겨졌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는 확실히 넓어졌다. 에드윈 허블은 1936년에 출판된 저서 『성운의 왕국(Realm of the Nebulae)』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 글은 앞으로 우주에서 인간의 입지가 더욱 좁아져도 여전히 유용할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의 우주 탐험은 불확실성으로 끝맺게 된다. …… 우리는 가까운 주변에 대해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지식은 급속하게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 보면 결국 희미한 경계, 망원경으로 볼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림자를 관측하고 온갖 실수를 범하면서 비현실적인 경계선을 그려 나갈 것이다.11)

 

독자들은 지금까지 펼쳐진 마음의 여행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인간은 감정적으로 나약하고 현혹되기 쉬우며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하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4장정보의 덫

대부분의 사람은 정보가 많을수록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맞는 말이다. 방 건너편에서 이 책을 바라본다면 책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겠지만 내용을 읽을 수는 없다. 가까이 다가오면 글이 보이기 시작할 텐데 아주 가까이 다가와 종이 위에 코를 갖다 댄다고 해서 내용이 더 잘 이해될 리는 없다. 이 정도로 가까워지면 문자마다 잉크가 번진 상태를 볼 수는 있겠지만 단어와 문장, 구절 등 복합적인 정보는 포기해야 한다. 이 상황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우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다리를 만지면 기다란 호스 같고, 꼬리를 만지면 노끈처럼 느껴지지만 그 누구도 코끼리의 전체적인 형상은 그릴 수 없다.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가까이 접근해야 할 때와 뒤로 물러나서 전체를 조망해야 할 때를 잘 구별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근사적인 서술이 이해를 도울 수도 있지만,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면 정보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또한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은 문제 자체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전체적인 그림을 망쳐 버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다양한 온도와 압력에서 분자로 이루어진 집합체의 전체적인 형상을 알고자 할 때 개개의 분자를 분석하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3부에서 언급하겠지만 단일 입자에는 온도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온도란 계를 이루는 모든 분자의 평균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통계 물리학적 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화학에서는 각 분자 간의 상호 작용을 규명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관측과 측정은 어느 정도로 세밀하게 수행되어야 하는가?

 

 

현재 뉴욕 요크타운 하이트의 IBM 토머스 왓슨 연구소(Thomas J. Watson Research Center)와 예일 대학교에서 연구를 수행 중인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Benoit Mandelbrot, 1924~2010년)는 1967년에 과학 잡지 《사이언스(Science)》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했다. “영국 해안선의 길이는 얼마인가?” 여러분은 질문이 간단하므로 답도 간단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정확한 답을 추적하다 보면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미궁에 빠지게 된다.

영국의 해안선은 지난 수백 년 동안 탐험가들과 혼돈 이론학자들(cartographer)에 의해 여러 차례에 걸쳐 측정되었다. 초기에 제작된 지도는 마치 쥐가 먹다 남긴 빈대떡처럼 해안선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었지만 요즘은 위성 측량을 통해 정밀한 지도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망델브로의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위성을 호출할 필요는 없다. 그저 간단한 지도와 한 꾸러미의 실만 있으면 된다. 더넷 헤드(Dunnet Head)에서 리자드 포인트(Lizard Point)까지 해안선을 따라 실을 늘어뜨린 후 모든 해안선이 커버되면 실을 가위로 절단한다. 그다음 자른 실을 곧게 펴서 지도와 나와 있는 자(축척)와 비교하면 해안선의 길이가 곧바로 얻어진다. 숙제 끝! 이것으로 영국 해안선의 길이 측정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잠깐, 정말 그럴까? 결과가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1마일이 2.5인치로 표시된 군사용 지도를 사용해 보자. (축척은 약 25,000:1이다.) 이 정도 축척이면 일반 지도에 나와 있지 않는 굴곡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을 것이므로 아까보다 실이 훨씬 많이 소모된다. 각 굴곡의 크기는 작지만 그 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이 작업이 끝나고 나면 아마도 실의 길이는 아까보다 몇 배 이상 길어졌을 것이다. (물론 축척이 커졌으므로 실이 많이 소모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축척이 10배로 커지면 실은 20~30배 이상 소모된다.)

둘 중 어느 쪽이 정답에 가까울까? 자세한 지도를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