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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식당에서 수프를 한 술 살짝 떠 입에 흘려 넣으시던 어머니가,

“아!”

낮게 소리쳤다.

“머리카락?”

수프에 뭔가 이상한 거라도 들어 있나 싶었다.

“아니.”

어머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하느적, 수프 한 술을 입에 흘려 넣으시고는 태연히 얼굴을 돌려 부엌 유리창 너머 흐드러진 산벚꽃에 눈길을 보냈다. 그러고는 얼굴을 돌린 채 다시 하느적, 수프 한 술을 자그만 입술 사이로 미끄러지듯 떠 넣었다. ‘하느적’이라는 표현은 어머니의 경우,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여성 잡지 같은 데에 나오는 식사 예법과는 영 딴판이다. 남동생 나오지(直治)가 언젠가 술을 마시며 누나인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위1)가 있다고 해서 귀족이라 할 수는 없어. 작위가 없어도 천작2)이라는 걸 가진 훌륭한 귀족도 있고, 우리처럼 작위는 가졌어도 귀족은커녕 천민에 가까운 치도 있지. (자신의 친구인 백작의 이름을 대며) 이와시마(岩島) 같은 녀석들은 도무지 신주쿠의 유곽 호객꾼들보다 훨씬 천박해 보인다니까. (역시 동생의 친구인 자작의 차남 이름을 대며) 요전에도 야나이(柳井)의 형 결혼식에 그 녀석이 턱시도를 입고 왔는데, 대체 뭐 때문에 턱시도를 입고 오냐고.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탁상연설을 할 때 그 녀석이 ‘어쩌고저쩌고이옵니다.’ 해 가며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데는 역겹더군. 거드름 피우는 건 품위가 있다는 것과 전혀 무관한 얄팍한 허세야. ‘고급 하숙’이라고 써 놓은 간판이 혼고(本鄕) 부근에 더러 있었는데, 사실 화족3) 따위 대부분은 ‘고급 거지 나리’라고 부를 만한 치들이지. 진짜 귀족은 이와시마처럼 서툰 거드름을 피우지 않아. 우리 친족 중에서도 진정한 귀족은 아마 어머니 정도겠지. 어머닌 진짜야. 아무도 못 당해.”

수프를 드시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접시 위로 약간 몸을 숙인 다음 스푼을 옆으로 쥐고 수프를 떠서 스푼을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 가져가 먹지만, 어머니는 왼 손가락을 가볍게 테이블 가장자리에 대고는 상체를 숙이지도 않고 얼굴을 똑바로 들어 접시를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스푼을 옆으로 들고 살짝 떠서 그 다음엔 ‘제비처럼’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만큼 가뿐하고 깔끔하게 스푼을 입과 직각이 되게 들어 올려 스푼 끝에서 수프를 입술 사이로 흘려 넣는다. 그러고는 무심히 여기저기 곁눈질해 가며 하느적 하느적, 마치 작게 날갯짓하듯 스푼을 움직이는데 한 방울의 수프도 흘리지 않고, 후루룩 하는 소리도 접시 긁는 소리도 전혀 내지 않는다. 이런 게 흔히 말하는 정식 예법에 어긋나는 식사법인지는 몰라도, 내 눈에는 무척 귀여운 데가 있고 그야말로 진짜처럼 보인다. 또 사실 수프 같은 음식은 고개를 숙여 스푼으로 입을 갖다 대기보다는 느긋하게 상반신을 세우고 스푼 끝에서 입으로 흘려 넣듯이 먹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맛있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나오지가 말한 ‘고급 거지 나리’인 터라, 어머니처럼 그토록 가볍고 능청스럽게 스푼을 다루지 못하니 도리 없이 단념하고 접시 위로 고개를 숙인 채 소위 정식 예법대로 우울한 식사를 한다.

수프 말고도 어머니의 식사법은 이만저만 예법에 어긋난 게 아니다. 고기가 나오면 단박에 나이프와 포크로 죄다 잘게 썰어 놓은 다음, 나이프는 내 버리고 포크를 오른손으로 바꿔 쥐고는 한 조각 한 조각 포크로 찔러 천천히 기분 좋게 드신다. 또 뼈 있는 닭고기를 먹을 땐 우리가 접시 소리를 내지 않고 뼈에 붙은 살을 떼어 내느라 안간힘을 쓰는 사이,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덥석 손으로 뼈를 집어 들고 입으로 살을 발라내고는 시치미를 떼신다. 그런 야만스러운 동작도 어머니가 하면 귀여울 뿐더러 묘하게 에로틱한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니, 역시 진짜는 다른 법이다. 뼈 있는 닭고기뿐만 아니라 가끔 점심 반찬인 햄이나 소시지 같은 것도 어머니는 덥석 손으로 집어 드시곤 한다.

“주먹밥이 어째서 맛있는지 아니? 그건 말이야, 사람 손으로 꼬옥 쥐어서 만들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말씀하신 적도 있다.

정말로 손으로 먹으면 맛있겠는데, 하고 나도 생각해 보지만 나 같은 ‘고급 거지 나리’가 섣불리 흉내 내다가는 그야말로 진짜 거지꼴이 되고 말 것 같기에 나서지는 않는다.

동생 나오지조차 어머닌 못 당해, 하고 말하지만 나 또한 도저히 어머니 흉내는 엄두도 못 낼 일이고 심지어 절망에 가까운 기분을 맛보기도 한다. 언젠가 초가을 날 달빛 그윽한 밤, 니시카타초(西片町)에 있는 집 안뜰에서 어머니와 둘이서 연못가 정자에서 달구경을 하다가, 여우가 시집갈 때와 쥐가 시집갈 때 신부의 치장은 어떻게 다를까 하는 얘기를 웃으며 주고받는데 어머니가 불쑥 일어나더니 정자 옆 싸리 덤불 속으로 들어가 하얀 싸리꽃 사이로 한층 뽀얗게 도드라진 얼굴을 내밀고 웃으며,

“가즈코, 엄마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맞혀 보렴.”

“꽃을 꺾고 계세요.”

내가 대답하자 나직이 소리 내어 웃고는,

“쉬 했어.”

전혀 쪼그리고 앉은 품새가 아니어서 놀라웠지만,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흉내 내기 힘든 참으로 사랑스러운 느낌이었다.

오늘 아침의 수프 이야기에서 꽤나 빗나가고 말았지만, 요전에 어떤 책을 읽다가 루이 왕조 시절의 귀부인들은 궁전 뜰이나 복도의 구석진 데서 아무렇지 않게 소변을 봤다는 사실을 알고 그 순수함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는데, 우리 어머니도 그런 진짜 귀부인의 마지막 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수프를 한 술 뜨시다가 아, 하고 나직이 외치는 소리에 머리카락? 하고 여쭈었더니, 아니, 하고 대답하신다.

“조금 짠가요?”

오늘 아침 수프는 요전에 미국이 배급한 그린피스4) 통조림을 내가 체로 곱게 내려 포타주5)처럼 만든 것이다. 원래 요리에 자신이 없는 터라 어머니가 아니, 하고 대답했지만 여전히 안절부절못해 물어보았다.

“아주 잘 되었어.”

어머니는 진지하게 말하고 수프를 다 드신 다음에는 김으로 싼 주먹밥을 손으로 집어 드셨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침밥이 맛없고 10시경이 되어야 시장해지는 탓에 그때도 수프는 그럭저럭 끝냈지만 먹는 게 성가셔서 접시에 놓인 주먹밥을 젓가락으로 뒤적여 망가뜨리고 나서 찔끔 집어 들고 어머니가 스푼으로 수프를 드실 때처럼 젓가락을 입과 직각이 되도록 올려 마치 새끼 새에게 먹이를 주듯 입으로 밀어 넣고 느릿느릿 먹는 사이, 어머니는 이미 식사를 다 마치고는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아침 햇살이 비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잠시 내가 식사하는 걸 잠자코 지켜보다가,

“가즈코는 아직 힘든가 보구나. 아침밥을 가장 맛있게 먹어야 할 텐데.”

“어머니는요? 맛있어요?”

“그럼, 난 이제 환자가 아니니까.”

“가즈코도 환자가 아닌걸요.”

“아냐, 아냐.”

어머니는 쓸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5년 전, 폐병을 빌미로 몸져누운 적이 있는데 그건 사실 제멋대로 지어낸 병이었다. 하지만 요 근래 어머니의 병세야말로 심각하여 정말이지 걱정스럽고 안타까웠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내 걱정만 하신다.

“아!”

내가 말했다.

“응?”

이번엔 어머니가 묻는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뭔가 완전히 통했다는 걸 느끼고 후후훗 내가 웃자, 어머니도 빙그레 웃으셨다.

무언가 몹시 부끄러운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 아! 하고 기묘한 외침이 희미하게 터져 나온다. 방금 내 가슴에 느닷없이 6년 전 이혼하던 때가 또렷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그만 아! 소리를 내고 말았는데 어머니는 어떠실까. 설마 어머니에게 나처럼 부끄러운 과거가 있을 리는 없고, 아니지, 어쩌면 뭔가가.

“어머니도 아까 뭔가 떠올리셨죠? 무슨 일이에요?”

“잊어버렸어.”

“나?”

“아니.”

“나오지?”

“그래.”

하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럴지도 모르지.”

동생 나오지는 대학에 다니다 징집되어 남방의 섬으로 갔는데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행방불명이라 어머니는 다시 나오지를 만날 수 없으리라는 걸 각오하고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그런 ‘각오’ 따윈 한 번도 한 적 없고 꼭 만날 수 있다는 생각뿐이다.

“단념하긴 했어도 맛있는 수프를 먹으니 나오지 생각이 간절하더구나. 좀 더 나오지에게 잘해 줄걸 그랬어.”

나오지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무렵부터 문학에 푹 빠져 거의 불량소년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통에 어머니 속을 얼마나 끓였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수프를 한 술 드시고는 나오지 생각에 아! 하셨다. 나는 입안에 밥을 문 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괜찮아요. 나오지는 괜찮아요. 나오지 같은 악당은 웬만해선 안 죽어요. 죽는 사람은 으레 얌전하고 예쁘고 착한 사람이죠. 나오지는 몽둥이로 패도 안 죽어요.”

어머니는 웃으며,

“그럼 가즈코는 일찍 죽으려나?” 하고 나를 놀린다.

“어머, 어째서요? 난 악당보다 한 수 위니까 여든까지는 거뜬해요.”

“그래? 그럼 엄마는 아흔까지는 거뜬하겠어.”

“네.” 하다 말고 조금 난처해졌다. 악당은 오래 산다. 아름다운 사람은 일찍 죽는다. 어머니는 고우시다. 하지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짓궂어요!”

아랫입술이 부르르 떨리고 눈물이 넘쳐흘렀다.

 

뱀 이야기를 할까. 네댓새쯤 전 오후에 근처 아이들이 마당 울타리 대숲에서 뱀 알을 열 개 남짓 발견했다.

아이들은,

“살무사 알이야.” 하고 주장했다. 나는 그 대숲에 살무사가 열 마리나 태어나면 섣불리 마당에도 못 나가겠다 싶어,

“태워 버리자.”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내 뒤를 따라왔다.

대숲 가까이서 나뭇잎이며 마른 가지를 쌓아 올려 불을 피우고 그 불길에 알을 하나씩 던져 넣었다. 알은 좀처럼 타지 않았다. 아이들이 나뭇잎이며 잔가지를 좀 더 불 위에 끼얹어 불길을 세게 해 봐도 알은 도무지 타지 않았다.

아랫마을 농가의 처녀가 울타리 밖에서,

“뭘 하시는 거예요?” 웃으며 물었다.

“살무사 알을 태우고 있어요. 살무사가 나오면 무섭잖아요.”

“알 크기는 어느 정도예요?”

“메추라기 알만하고 새하얗더군요.”

“그럼 그냥 뱀 알이에요. 살무사 알은 아니겠죠. 생 알은 좀체 타지 않아요.”

처녀는 자못 우습다는 듯 웃고 가 버렸다.

30분쯤 불을 피워도 도통 알이 타지 않기에 아이들에게 알을 불 속에서 꺼내 매화나무 아래 파묻게 하고, 나는 돌멩이를 모아 묘표를 만들었다.

“자아, 모두 기도해요.”

내가 몸을 웅크려 합장하자, 아이들도 얌전히 내 뒤에 웅크리고 합장을 하는 기색이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과 헤어져 나 혼자 돌계단을 천천히 올라오니, 돌계단 위 등나무 덩굴 아래 어머니가 서 계셨다.

“가여운 일을 저질렀구나.”

“살무사인줄 알았는데 그냥 뱀이었어요. 하지만 제대로 묻어 주었으니 괜찮아요.”

말하면서도 어머니에게 들킨 건 실수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결코 미신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10년 전 아버지가 니시카타초의 집에서 돌아가신 후부터 뱀을 아주 무서워하신다. 아버지의 임종 직전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머리맡에 가느다란 검정 끈이 떨어져 있는 걸 보고 무심코 주우려고 했는데, 그게 뱀이었다. 스르르 복도로 도망쳐 버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그걸 본 사람은 어머니와 와다(和田) 외삼촌뿐이다. 그래도 임종을 지키는 방에서 소란을 피울 수 없어 두 분은 얼굴을 마주한 채 꾹 참고 가만히 계셨다고 한다. 그런 탓에 우리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지만 그 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 저녁 무렵, 정원 연못가의 나무란 나무에 전부 뱀이 올라앉아 있던 모습은 나도 직접 봐서 알고 있다. 나는 스물아홉이나 먹은 할머니라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이미 열아홉 살이었다. 이미 어린애가 아니었으니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또렷해서 틀림없으리라. 내가 영전에 바칠 꽃을 준비하기 위해 정원 연못 쪽으로 걸어가다 연못가 철쭉나무 자리에 멈춰 서서 언뜻 보니, 바로 철쭉가지 끝에 작은 뱀이 휘감겨 있었다. 흠칫 놀라 그 옆의 황매화 꽃가지를 꺾으려는데 그 가지에도 휘감겨 있었다. 그 옆의 물푸레나무에도, 어린 단풍나무에도, 금작화에도, 등나무에도, 벚나무에도 어느 나무 할 것 없이 뱀이 휘감겨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무섭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뱀도 나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여 구멍에서 기어 나와 아버지의 영혼을 위해 빌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나는 정원에서 본 뱀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살짝 알렸는데, 어머니는 차분히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뭔가 생각하는 기색일 뿐 별 말씀은 없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뱀 사건 이후로 어머니가 뱀을 끔찍이 싫어하게 된 건 사실이다. 뱀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뱀을 숭배하고 두려워하는, 이를테면 경외심을 품게 된 듯하다.

뱀 알을 태우다 들키고 만 것이 어머니에겐 뭔가 굉장히 불길한 느낌을 주었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니, 나도 갑자기 뱀 알을 태운 게 섬뜩해지면서 어쩌면 이 일이 어머니에게 뒤탈을 끼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여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온통 그 생각뿐인데, 오늘 아침 식당에서 아름다운 사람은 일찍 죽는다느니 쓸데없는 말을 흘리는 바람에 뒤늦게 수습도 못한 채 울고 말았다. 아침 식사 후 설거지를 하면서 내 가슴속 깊숙이 어머니의 명을 앞당기는 께름칙한 새끼 뱀 한 마리가 들어앉은 것 같아 참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정원에서 뱀을 보았다. 무척 따사롭고 멋진 날씨여서 부엌일을 끝내고 정원 잔디밭에 등의자를 내놓고 뜨개질을 할 생각으로 의자를 들고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징검돌 옆 조릿대에 뱀이 있었다. 아이, 징그러워! 나는 그저 그렇게만 여기고 더 이상 깊이 생각지도 않고 등의자를 들고 되돌아 툇마루로 올라 거기에다 의자를 놓고 앉아 뜨개질을 했다. 오후에 나는 정원 귀퉁이의 불당에 보관해 둔 장서 가운데 로랑생6)의 화집을 꺼내 오려고 정원으로 내려갔다. 잔디밭 위에 뱀이 어슬렁어슬렁 기어가고 있었다. 아침에 본 뱀과 똑같다. 날씬하고 우아한 뱀이었다. 암컷이다,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잔디밭을 조용히 가로질러 찔레꽃 뒤로 가서 멈췄다가 고개를 쳐들고, 가느다란 불꽃 같은 혀를 날름거렸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는 듯하더니, 잠시 후 머리를 숙이고 무척 깨나른하게 몸을 웅크렸다. 나는 그때도 그저 아름다운 뱀이라는 생각만 강했고, 불당에 가서 화집을 꺼내 들고 돌아오는 길에 아까 뱀이 있던 곳을 힐끗 보았으나 이미 없었다.

해 질 녘 어머니와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며 마당 쪽을 내다보니, 돌계단의 세 번째 돌 위로 오늘 아침 그 뱀이 다시 스르르 나타났다.

어머니도 그걸 발견하고,

“저 뱀은?”

말씀하시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와서는 내 손을 잡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았다. 그 말을 들은 나도 퍼뜩 알아채고,

“알의 어미?”

입 밖에 내고 말았다.

“그래, 맞아.”

어머니의 목소리는 꺼칠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숨을 죽인 채 가만히 그 뱀을 지켜보았다. 돌 위에 깨나른하게 웅크리고 있던 뱀은 비틀거리듯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힘없이 돌계단을 가로질러 제비붓꽃 쪽으로 기어들었다.

“오늘 아침부터 정원을 돌아다녔어요.”

내가 나직이 말하자, 어머니는 한숨을 쉬고 털썩 의자에 주저앉으며,

“그렇지? 알을 찾는 거야. 가여워라.”

울적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어쩔 도리 없이 후후 웃었다.

저녁 해가 어머니의 얼굴을 비추어 어머니의 눈이 푸르스름하니 반짝였다. 얼핏 노여움을 띤 그 얼굴은, 대뜸 달려가 안기고 싶을 만치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아아, 어머니의 얼굴은 아까 본 그 슬픈 뱀과 어딘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 가슴속에 살무사처럼 흉측한 뱀이 굼실굼실 자리 잡고 있어, 깊은 슬픔으로 더없이 아름다운 어미 뱀을 언젠가 물어 죽이고 마는 게 아닐까, 어쩐지 자꾸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드럽고 가냘픈 어깨에 손을 얹고 까닭 모를 몸부림을 쳤다.

 

우리가 도쿄 니시카타초의 집을 버리고 이곳 이즈(伊豆)의 중국풍 산장으로 이사한 것은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그해 12월 초순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집의 경제는 어머니의 남동생이자 지금은 어머니의 유일한 혈육인 와다 삼촌이 전부 돌봐 주셨는데, 와다 삼촌이 전쟁이 끝나고 세상도 변해 더 이상 버티기 힘드니 집을 파는 수밖에 없겠다, 하녀들도 죄다 내보내고 모녀 둘이서 시골 어딘가에 아담한 집을 사서 편하게 지내는 게 낫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린 낌새다. 어머니는 돈에 관해선 아이보다도 더 아는 게 없는 분이라, 와다 삼촌의 말을 듣고는 그럼 잘 부탁한다며 내맡긴 것 같았다.

11월 말, 삼촌한테서 속달이 왔다. 슨즈(駿豆) 철도 인근에 가와다(河田) 자작의 별장이 매물로 나왔는데 집은 고지대여서 전망이 좋고 밭도 100평 남짓 된다, 그 일대는 매실의 명소로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해서 살아 보면 틀림없이 마음에 드실 거다, 상대방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으니 아무쪼록 내일 긴자(銀座)의 내 사무실로 나와 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어머니, 가시겠어요?” 내가 물으니,

“그야, 부탁을 했으니까.”

더없이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다음 날, 어머니는 예전에 운전기사로 일했던 마쓰야마(松山) 씨에게 부탁해서 정오 조금 지나 외출했다가 밤 8시경, 마쓰야마 씨와 함께 귀가했다.

“결정했어.”

어머니는 내 방으로 들어와 책상에 손을 짚고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그렇게 한마디 하셨다.

“결정하다니, 뭘요?”

“전부.”

“맙소사.” 나는 깜짝 놀라,

“어떤 집인지 보지도 않고…….”

어머니는 책상 위에 한쪽 팔꿈치를 세워 이마에 살짝 손을 갖다 댄 채 작은 한숨을 내쉬고,

“와다 삼촌이 좋은 곳이라고 하더구나. 난 이대로 눈을 딱 감고 그 집으로 가도 괜찮을 것 같아.”

그러고는 얼굴을 들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다소 핼쑥한 얼굴이 아름다웠다.

“그래요.”

나도 와다 삼촌에 대한 어머니의 아름다운 신뢰에 지고 말아 맞장구를 쳤다.

“그렇담, 가즈코도 눈 딱 감을래요.”

둘이서 소리 내어 웃었지만, 웃고 나니 한없이 쓸쓸해졌다.

그 후 매일 집으로 인부가 와서 이삿짐 꾸리기가 시작되었다. 와다 삼촌도 찾아와 팔 만한 물건은 팔아 치우도록 이것저것 챙겨 주셨다. 나는 하녀 오키미(お君)와 둘이서 옷 정리를 하거나 정원에서 잡동사니를 태우느라 분주한데, 어머니는 정리하는 걸 전혀 거들지도 시키지도 않고 날마다 방에서 공연히 꾸물거리기만 하신다.

“왜 그러세요? 이즈에 가기 싫으세요?”

큰맘 먹고 쌀쌀맞게 물어봐도,

“아니야.”

멍한 표정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열흘쯤 지나 정리가 끝났다. 저녁 무렵 내가 오키미와 둘이서 휴지며 지푸라기들을 정원에서 태우고 있을 때, 어머니도 방에서 나와 툇마루에 서서 말없이 모닥불을 지켜보셨다. 을씨년스럽고 차가운 서풍이 불어와 연기가 낮게 땅바닥을 기는데, 나는 문득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고 어머니의 안색이 여태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나빠 깜짝 놀랐다.

“어머니! 안색이 안 좋아요!”

소리치자 어머니는 옅은 미소를 띠고,

“아무렇지 않아.”

다시 가만히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날 밤, 이불은 벌써 짐 꾸리기를 마친 뒤라 오키미는 2층 방 소파에서, 어머니와 나는 이웃집에서 빌린 이불을 하나 깔고 어머니 방에서 함께 잤다.

어머니는 화들짝 놀랄 만큼 늙고 쇠약해진 목소리로,

“가즈코가 있으니까, 가즈코가 곁에 있어 주니까, 내가 이즈에 가는 거야. 가즈코가 있어 주니까.” 하고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나는 덜컥 놀라,

“가즈코가 없으면?” 하고 얼결에 물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죽는 게 나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 집에서 엄마도 죽어버리고 싶어.”

띄엄띄엄 말씀하시다, 끝내 서럽게 우셨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내게 한 번도 이런 약한 소리를 하신 적이 없었고, 또한 이토록 서럽게 우시는 모습을 내게 보인 적도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내가 시집갈 때도, 그리고 임신해 어머니에게 돌아왔을 때도, 또 병원에서 아기를 사산했을 때도, 내가 병으로 몸져누웠을 때도, 또 나오지가 못된 짓을 저질렀을 때도, 어머니는 결코 이처럼 약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래 10년 동안, 어머니는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느긋하고 상냥한 어머니였다. 그래서 우리도 마음껏 응석을 부리며 자랐다. 하지만 어머니에겐 이제 돈이 없다. 우리를 위해, 나와 나오지를 위해 한 푼도 아낌없이 죄다 써 버렸다. 그리고 이제 오래도록 정든 이 집을 떠나, 이즈의 자그마한 산장에서 나와 단둘이 적적한 생활을 시작해야만 한다. 만약 어머니가 심술궂고 쩨쩨하고 우리를 야단치고 또 몰래 자기 돈만 불릴 궁리를 하는 분이라면,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이렇듯 죽고 싶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을 텐데. 아아, 돈이 없다는 건 얼마나 두렵고 비참하고 희망 없는 지옥인가, 하고 난생처음 깨달은 양 가슴이 미어지고 너무나 괴로워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다. 인생의 엄숙함이란 이런 느낌을 말하는 걸까.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심정으로 똑바로 누운 채 나는 돌덩이처럼 가만히 있었다.

다음 날, 어머니는 여전히 안색이 좋지 않고 한결 꾸물대며 잠시라도 오래 이 집에 머물고 싶은 눈치였는데, 와다 삼촌이 오셔서 이제 짐은 거의 부쳤으니 오늘 이즈로 출발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