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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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lliant Tales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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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세계로 건너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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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육욕과 교만과 이기심이 없었다면
완전한 질서가 지배하였을 것이다. - 베이컨

놈은 도로 위 어디에나 있다.

갓길에 주차된 차를 출발시킬 때 스칠 듯이 옆으로 홱 지나가기도 하고, 교차로에서 전후 좌우 상관없이 무작정 튀어나오기도 하며, 반대 차선에서 느닷없이 불법유턴을 하여 급정거하게 만들기도 한다. 도로 위에서 놈은 예고 없이 출몰하며, 재수가 없으면 당신과 황천길로 가는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놈을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찔한 순간, 당신이 불과 몇 십 센티미터의 간격을 두고 급정거했을 때 상대편 차의 반응을 보라. 미안하다는 수신호나 비상등 깜빡임 한번조차 없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거나 도리어 당신을 노려보고 있다면, 십중팔구 당신은 놈을 만난 것이다. 놈의 특징이 바로 뻔뻔스럽다는 것이다. 그 뻔뻔스러운 정도가 발작적인 살의를 불러일으킬 수준이다. 제가 끼어들 때에는 대가리부터 들이밀면서도 남이 끼어들라 치면 가속 페달부터 밟으면서 경적을 울려대기 일쑤이고, 고속도로에서 규정 속도로 달리는 차 꽁무니에 단 몇 센티미터 간격으로 붙어 상향등을 번뜩이기 일쑤이며,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대형 사고를 낼 뻔하고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유유히 사라지는 건 놈의 뻔뻔스런 작태 중 일부에 불과하다. 놈에게 방향 표시등 따위는 장식이고, 신호등 따위는 무용지물이다. 도로의 모든 차선을 제 것으로 여기며, 커다란 차체를 제 몸뚱이로 여기는 게 바로 놈이다.

지금 일방통행로에 서 있는 내 차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트럭의 운전석에도 놈이 앉아 고개를 쳐들고 있다. 나는 운전석에 앉은 채로 놈을 노려본다. 놈의 얼굴은 차창에 흘러내리는 폭우 때문에 지워졌다가도 오가는 와이퍼 사이로 이내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차 천장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맹렬하다. 내 차 보닛에서는 엔진의 열기 때문에 부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 연기와 함께 가슴 속에서 놈에 대한 살의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도저히 놈을 용서할 수 없다.

 

아침부터 나는 놈과 마주쳤다.

돌이켜 보면, 애초에 재수가 없는 날이었던 셈이다. 출근하기 전부터 감이 좋지 않았다. 면도하다가는 턱을 베었고, 욕실에서는 비누를 밟고 미끄러지는 바람에 허리 병신이 될 뻔했다. 마누라란 인간은 밥상머리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안 그래도 서릿발 같은 신경을 북북 긁어댔다. 불임 때문이었다. 첫아이를 유산한 후 아내의 자궁에는 착상이 되지 않고 있었다. 아침에 아내는 다 죽어가는 얼굴로 인공수정 문제를 꺼냈다.

“옆집 희선 엄마 친구도 한 번에 성공했대.”

“그것도 되는 사람들 얘기지, 하는 것마다 안 되는 우리 집구석에서 그거라고 없던 애가 단번에 떡 하니 생길 거 같아? 그리고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다 감당하려고?”

서슬 퍼런 내 반응에 아내는 차가워진 얼굴로 야기죽거렸다.

“그래, 그럼 평생 애 없이 우리 단 둘이 백년해로해. 혹시 모르니까 당신 오늘부터 콘돔 써. 재수 없게 애라도 덜컥 생길지 모르니까…….”

“뭐? 어떻게 그딴 식으로 말할 수가 있어? 나라고 내 새끼 안 갖고 싶어서 이러겠어?”

아내도 낯빛을 바꾸고 나를 힐난했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나도 할 만큼 했단 말이야. 자그마치 3년을 용을 썼어. 그런데도 안 생기잖아. 당신 이참에 비뇨기과 가서 검사 다시 해봐야 하는 거 아냐? 아랫도리에 정자나 제대로 붙어 있는지…….”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아내의 뺨을 후려갈기고 말았다. 나는 울음을 터뜨린 아내를 뒤로 하고 일어나 현관문을 소리 나게 닫고 밖을 나왔다. 하지만 기분은 더럽기 그지없었다. 불임의 책임은 사실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없었다. 우리 부부의 불행에는 다 놈이 관련되어 있었다. 놈은 내 모든 불행의 원흉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놈은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찜찜한 기분으로 출근하면서도 어쩐지 놈과 마주칠 것만 같더니, 내 예감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나는 출근길에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놈을 발견했다. 운전자라면 누구나 그런 상황을 공감할 것이다. 내가 양보를 하는 게 마땅한지, 아니면 상대가 양보를 하는 게 마땅한지는 운전을 해본 지 1년 이상 된 운전자라면 쉽게 알아챌 수 있지 않은가. 그 순간은 분명 상대가 나를 보고 양보해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놈은 그대로 가속 페달을 밟고 나왔다. 거의 동시에 놈과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놈이 브레이크를 밟았던 건 더 이상 나아갈 경우 충돌할 수밖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지, 결코 나를 배려한 행동은 아니었다.

끼이이익!

브레이크에 구동을 멈춘 타이어가 도로에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비명을 질러댔다. 재수가 더러우면 놈의 차가 내 차의 옆구리를 덮치고, 나는 그 반동으로 차창에 머리를 부딪쳐 두개골이 파열되고 뇌가 쏟아져 나올 수도 있었다. 언제인가 도로 교통안전 캠페인의 일환으로 교통사고 현장사진을 전시한 걸 본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로 형편없이 구겨진 차들과 그 안에 한때 인간이었을 고깃덩어리가 피 칠갑을 한 채 찌부러져 있는 사진들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 사진들은 도로 교통안전에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도로 교통 공포감조성에 도움이 될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들을 본 후로 한동안 나는 핸들 잡는 걸 꺼려했다. 오늘도 놈과 맞부딪칠 위기의 순간에 그 사진 속의 주인공이 된 내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와 놈은 불과 1미터도 되지 않는 간격을 두고 가까스로 멈추어 섰다. 등줄기를 타고 한 줄기 전율이 주룩 흘러내렸다.

“저런, 개새끼가…….”

전율이 흘러내린 자리에서 울화가 울컥 치솟았다. 놈은 스포츠형 머리를 한 삼십 대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조수석 쪽 차창을 내리고 노려보는 내 시선에도 놈은 그 어떤 사과의 표시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턱을 치켜들고 ‘뭐? 뭐? 어쩌라고?’ 하는 입놀림을 해댔다. 순간적으로 머리끝까지 살의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사고가 나지 않은 이상, 내려서 잘잘못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출근 시간이 불과 오 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놈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기어를 넣었다.

“야이 새꺄, 뭘 째려봐?”

출발과 동시에 놈이 그런 말을 외친 것 같았다. 브레이크를 밟을까, 가속 페달을 밟을까, 주저하다가 나는 끝내 가속 페달을 택했다. 내가 브레이크를 밟고 내려서 제 멱살을 잡아 흔들고 주먹을 휘두르는 게 바로 놈이 원하는 바일 것이었다. 그리고 죽는 시늉을 해대며 길바닥에 드러눕겠지. 개새끼. 놈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만큼 내가 호락호락한 인간은 아니었다. 오늘 아침으로 세 번째였다, 운전을 하다 놈 때문에 살의를 일으킨 것은.

 

놈에 대한 두 번째 살의는 반 년 전 어느 저녁, 러시아워로 가로막힌 퇴근길 도로 위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러시아워라고는 하지만, 도로 위는 초대형 주차장을 방불케 할 만큼 심한 정체가 빚어지고 있었다. 그날 나는 아내와 산부인과에 함께 가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불임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정밀진단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

“어우, 또 어떤 개념 없는 새끼가 사고 냈구만.”

나는 기어를 중립에 두며 중얼거렸다. 추적추적 가랑비까지 내리고 있어 차 안의 공기는 눅눅하고 불쾌했다. 그런 순간, 정체 원인은 대부분 교통사고이거나, 도로공사였다. 그때 나는 우회전 직진 동시차선에 서 있었다.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로 내 앞에서 끊어지는 바람에 나는 차선 맨 앞에서 차선을 막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바로 내 차 뒤에 멈추어선 그랜저 한 대가 빵빵대기 시작했다. 우회전 방향 표시등을 켜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회전을 하려는데, 내 차가 방해가 되는 모양이었다.

“쫌만 기다려라, 새꺄. 참을성 좆나 없네.”

나는 신경질적으로 내뱉으며 꼼짝하지 않았다. 정지선 단속이 한창인 때였기 때문에 차선 앞으로 대가리를 내밀어 비켜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랜저의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거의 경적을 계속 누르며 내 신경을 긁었다. 경적을 눌러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꾹 누르기 시작했다. “빠아아아아아……” 신호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룸미러로 놈을 돌아보며 욕설을 퍼부으려 할 때, 그랜저의 조수석에서 놈이 내렸다. 그때 놈은 깡마른 오십 대 여자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탁! 탁! 탁! 거침없이 다가온 놈이 내 조수석 차창을 두드렸다.

“왜요, 아줌마?”

내 목소리는 신경질적이었다. 그러나 차창을 내린 순간, 나에게 놈이 쏟아낸 소리는 더 신경질적이었다.

“야이 병신 새꺄, 비키라면 비킬 일이지, 도로에 좆 박아놨다구 버티고 있어, 썅!”

악의로 치켜 올라간 놈의 입에서 침 몇 방울이 튀어 내 차 안을 더럽혔다. 술이라도 걸쳤는지 놈의 얼굴을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무리 나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놈이 대뜸 내뱉는 욕설이 나로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발작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뭐? 비킬 수 있어야 비키지, 이 여편네야!”

그러자 놈의 문신한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는가 싶더니, 놈이 내 조수석 차창의 열린 틈으로 손을 들이밀어 잠금 장치를 풀고 차문을 벌컥 열었다.

“뭐? 여편네?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어른한테…… 야! 너 내려! 내려 봐!”

놈의 난데없는 시비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울화가 치밀었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렸다.

“내렸다, 어쩔래?”

나는 나대로 흥분해서 놈에게 다가갔다.

“뭐? 내렸다, 어쩔래? 너 이 썅놈 새끼, 몇 살이나 처먹었어? 앙? 몇 살이나 처먹었기에 그렇게 싸가지 밥 말아 먹었어? 어른이 비켜달라면 비킬 것이지, 끝까지 버팅기면서 뭐? 여편네?”

놈은 내 말을 되씹으며 입에 거품을 물고 내게 삿대질을 해댔다. 그랜저에서 놈의 남편인 듯한 오십 대 후반의 사내가 내리더니, 나와 놈에게 다가왔다.

“아니, 어린놈의 새끼가 비키라면 비킬 일이지…… 너, 내가 누군지 알고 까부냐?”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때 놈은 한 놈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졸부 부부의 외형을 한 놈들의 협공에 울화가 치밀 대로 치밀어 눈자위까지 바르르 떨려왔다. 신호가 떨어지면서 옆 차선들의 차들이 출발하기 시작했지만, 맨 앞에 정차해 있는 내 차와 그랜저 때문에 뒤에 멈추어선 차들은 발이 묶인 채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모른다, 이 새끼야! 어쩔래?”

나는 나대로 치미는 울화를 놈들에게 쏟아내고는 분을 삭이며, 차를 출발하기 위해 내 차로 돌아가려 했다. 한데 느닷없이 사내의 외형을 한 놈이 나뭇가지 같은 손을 갈퀴처럼 오그려 내 멱살을 붙들었다.

“뭐, 이 새꺄! 너, 다시 말해 봐! 뭐가 어쩌고 어째?”

놈은 나의 멱살을 붙들고 흔들어댔고, 놈의 입에서는 참을 수 없이 지독한 구취가 났다. 순간 놈에 대한 살의가 가슴 속에서 확 치밀었다.

“에이 씨발, 진짜…….”

“씨발? 씨발? 이런 개새끼가…… 쓴 맛 좀 볼래?”

놈은 내 욕설에 마치 자신의 전 재산을 떼먹고 달아난 사기꾼을 붙잡은 피해자라도 되는 양 내 멱살을 붙들고 흔들어댔다.

“이거 안 놔!”

아무리 졸부에 뻔뻔스럽다 해도 놈이 나보다 완력이 드세진 못했다. 나는 내 멱살을 붙든 놈의 손목을 비틀며 놈을 뒤로 밀쳐 버렸다. 놈은 몸의 중심을 잃고 도로 위에 볼썽사납게 벌러덩 넘어졌다. 그러자 옆에서 팔짱을 끼고 상황을 주시하던, 여편네의 외형을 한 놈이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다 뽑혀나갈 정도로 흔들어댔다.

“이런 썅놈 새끼가 누굴 쳐? 여보! 빨리 경찰에 신고해! 이런 씨발놈은 콩밥 좀 먹어봐야 해.”

이를 악물고 내 머리채를 흔드는 놈의 눈은 악으로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주먹을 휘둘러 저 앙다문 이빨들을 몽땅 분질러버리고, 저 충혈된 눈알들을 후벼 파버리고 싶었다. 오가던 행인들의 만류로 가까스로 사태가 진정되고, 놈들이 그 만류에 못 이겨 그랜저 안으로 돌아간 후에도 놈들을 향한 살의는 가라앉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되지가 않았다. 이건 시비의 수준이 아니라, 거의 테러에 가까운 횡포가 아닌가. 뒤에 멈추어선 차들의 성화에 못 이겨 차로 돌아와 핸드브레이크를 풀고 출발했지만, 우회전하여 유유히 사라지는 그랜저를 향한 살의는 오랫동안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그마처럼 가슴 한 편을 달구었다. 뒤늦게 산부인과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면서 세면대 거울에 비쳐보니, 놈들이 내게 남긴 잘디 잔 피멍과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 이미 감이 좋지 않았다. 주차장으로 막 들어서는데, 놈이 또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번에 놈은 화장을 짙게 한 커리어우먼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출입구가 비좁은 주차장이라서 차 두 대가 동시에 출입할 수 없는 구조였다. 결국 한 대가 양보해야 했다. 그런데도 놈은 뻔히 내 차가 먼저 주차장 입구에 들어서는 걸 보면서도 냅다 대가리를 내밀었다. 제가 먼저 나갈 테니, 너는 얼른 차나 빼라는 기세였다. 놈이 입구에 차를 바짝 대는 바람에 나도 주차장으로 들어설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출근 시간은 9시였다. 시계는 8시 58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인사 발령이 있는 중요한 날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나도 놈에게 양보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놈 때문에 대형 사고가 날 뻔했고, 한시라도 빨리 사무실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지라 나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놈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한가하게 통화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 차가 움직일 조짐을 보이지 않자,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댔다. 빵빵!

“차 빼! 빼라고! 빼야 내가 나갈 거 아냐?”

놈은 주차장 입구에 차 대가리를 내밀고 앉아 그렇게 씨부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제가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 했다. 8시 59분. 점점 오금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나도 발작적으로 경적을 울렸다. 그러나 놈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러다 이 중요한 날에 지각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가뜩이나 요새 김 부장이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꼬투리를 못 잡아 안달이 나 있었다. 오늘 같은 날 지각을 하게 되면 그 자식에게 좋은 빌미를 제공해 주게 될 게 뻔했다.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분통을 삭히며, 차를 뒤로 뺐다. 충분히 빠져 나갈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었는데도 놈은 슬금슬금 기어 나오며 내 약을 바짝바짝 올렸다.

“아, 더 빼! 더 빼야 나가지.”

놈은 손짓까지 훠이훠이 해대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9시 정각.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차를 있는 대로 뒤로 뺐다. 슬그머니 주차장을 빠져나온 놈이 차창을 내리고 내게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이거나 처먹어라, 새끼야.”

기껏 양보해 준 대가로 내게 돌아온 것은 놈의 가운뎃손가락과 지각이었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전력질주로 뛰어왔지만, 엘리베이터는 15층에 올라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8층에 있는 사무실까지 뛰어올라갔을 때에는 이미 9시 5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여, 이 대리, 일찍 왔네? 더 천천히 오지 그랬어. 앞으로 볼 날도 며칠 안 남았는데…….”

김 부장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야죽거렸다. 인사발령 명단에는 내 이름 석 자가 찍혀 있었다. 그것도 지방 촌구석에 처박혀 있는 지사 발령이었다. 말이 발령이지, 때려치우라는 해고 통고나 다름없었다. 사무실 안의 모든 인간들이 나를 흘끔대며 수군대고 있었다. 이게 다 좆같은 놈 때문이었다. 놈이 쉴 새 없이 내 주변을 맴돌며 나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었다.

 

놈에 대한 첫 번째 살의는 운전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어났다.

그날 나는 아내와 함께 운전연습도 할 겸 교외로 바람을 쐬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2차선 국도였고, 밤 여덟 시가 넘은 시간이라 그런지, 국도를 오가는 차들은 드물었다. 그러나 전조등 불빛이 없다면 거의 도로의 존재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운 데다 잊을만하면 제 시야밖에 모르는 차들이 맞은편에서 상향등을 켜고 달려드는 바람에 나는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져 있었다. 게다가 국도를 달리기 시작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장대비로 바뀌기까지 했다. 초보운전 때 시야를 가로막는 빗줄기가 얼마나 운전자를 긴장하게 만드는지 겪어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나도 모르게 핸들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러나 조수석의 아내는 내 긴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곤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고, 그럴수록 나는 나뿐만이 아니라, 내 아내의 목숨까지 내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핸들을 꽉 붙들고 잘 보이지 않는 차선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며 속도를 늦추어 달렸다. 그런대로 잘 가고 있다 싶었다. 한데 갑자기 뒤에서 요란한 경적이 달라붙었다. “빵빠아아앙 빠아아앙!” 룸미러로 돌아보니, 정유트럭이었다. 우람한 차체를 제 몸뚱이라 여기는 족속들……. 여기는 규정 속도가 60킬로미터인 2차선 국도였고, 나는 분명 규정 속도를 준수하며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놈은 그게 대단히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놈은 경적을 미친 듯이 울려대며 내 차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경적으로도 모자라 놈은 전조등까지 번뜩이며 나를 위협했다. 금방이라도 내 뒤를 들이받을 기세였다.

“저 개새끼가…….”

놈의 기세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여서 나는 가속 페달을 힘주어 밟았다. 속도계 바늘이 금세 70킬로미터까지 치솟았다. 휘어짐이 많은 도로였다. 가드레일조차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아차 하는 순간에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갈 수도 있었다. 또한 약간이라도 속도를 줄이면 유조트럭의 대가리에 부딪혀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갈 상황이었다.

“달릴 때 뒤에 바짝 붙어서 빵빵대는 놈 있으면 브레이크를 한 번씩 밟아줘. 그럼 지레 겁먹고 뒤로 빠진다니까…….”

운전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되어 술자리에서 만났던 친구의 조언이 떠올랐다. 그러나 떠오른 조언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야, 그것도 통할 때가 있는 거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하나는 뒤차가 꽁무니에 붙을 때마다 브레이크 밟아주는 게 습관이었는데, 한번은 따라붙는 놈 놀래키려고 브레이크 밟았다가 뒤에서 그대로 들이받는 사람에 그 자리에서 골로 갔다니까. 옆에 앉아 있던 여자친구는 반신불수 되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씨발놈아! 그렇게 답답하면 추월해서 가!”

나는 발작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그 바람에 곤히 잠들어 있던 아내가 놀라며 깨어났다.

“왜 그래, 당신……?”

그러나 놈은 미친 듯이 따라붙어 빵빵댈 뿐, 추월은 하지 않았다. 점점 화가 치밀었다.

“그냥 비켜줘. 바빠서 저러나 본데…….”

아내의 말에 나는 화를 버럭 냈다.

“안 보여? 저 새끼, 일부러 저 지랄하는 거……?”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위태롭게 가다 사고라도 나면 어쩔래?”

아내의 충고조차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아우, 저 씨발새끼.”

나는 이를 갈며 갓길에 차를 댔다. “빠아아아앙!” 놈은 내 차를 스칠 듯이 추월해 가면서도 경적을 눌러댔다.

“참아,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해?”

아내의 말에 위안을 삼으며 나는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이미 놈은 도로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놈과의 신경전이 끝나는구나 싶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다시 출발한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나는 느긋하게 도로를 점거하고 느릿느릿 달리는 놈을 발견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놈은 뒤에서 내가 서서히 다가오자, 속도를 눈에 띄게 줄였다. 시속 60킬로미터를 상회하던 속도가 이내 시속 30킬로미터로 줄어들었다. 놈은 느릿느릿 국도를 기어가며 내 약을 바싹 올렸다. 너도 한번 당해 봐. 놈은 그렇게 말하며 낄낄대고 있을 것 같았다.

“아, 진짜 저 개새끼가…….”

나는 추월할 기회를 엿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내가 초보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추월을 시도할 때마다 놈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고의적인 훼방이 분명했다. 정유트럭의 꽁무니에 붙어 십 분이 넘게 거북이걸음을 하자, 약이 바싹 오르기 시작했다.

“여보, 추월하지 마. 그냥 가. 쫌만 더 가면 되잖아.”

아내가 만류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안 보여, 저 새끼 하는 짓거리……?”

“이러다 사고 나는 거야. 그냥 자기가 참아!”

“참긴 뭘 참아. 참아주니까 저런 개새끼들이 기고만장해서 더 지랄 떠는 거야!”

“그래도 한번만 참아. 응?”

하지만 이번에는 참고 싶지 않았다. 경차라고 무시하는 놈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씨발새끼, 누가 이기나 해보자.”

오기가 오를 대로 올랐다. 구불구불하던 도로가 곧게 뻗는 지점이 나타나자, 나는 이를 악물고 중앙선을 넘었다. 나는 놈을 추월하기 위해 기를 쓰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속도계 바늘이 금세 치솟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놈도 순식간에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놈을 추월할 수 없을 정도였다. 2차선 국도에서 놈의 트럭은 내 차와 나란히 달리며 추월을 방해했다.

“저런 씨발새끼……!”

나는 그런 놈에게 끝내 살의를 품었다. 죽이고 싶다. 개새끼, 죽여 버리겠어! 하지만 살의를 발산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도로 밖으로 나가떨어지지 않는 한도 안에서 가속 페달을 밟으며 이를 갈았다. 놈도 끈덕지게 속도를 내며 도무지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순간, 정면에 차의 전조등이 내 차를 향해 확 다가들었다.

“여보, 어떡해!”

아내의 비명이 귀청을 찢을 듯이 울렸다. 유조트럭과 나란히 달리다 정면으로 달려드는 차의 전조등을 만난 기분은 가히 전율 그 자체였다. 맞은편에서 달려온 차와 정면충돌하여 산산이 조각나는 내 승용차와, 앞 차창에 머리를 들이받는 나와 아내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우그러드는 차 안에서 뇌가 터져 나오고, 나와 아내의 육신이 고깃덩어리처럼 뭉개지는 광경이 이어졌다. 그 순간, 선택은 둘이었다. 그래도 정면충돌을 하든가, 아니면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가든가……. 나는 후자를 택했다. 내가 핸들을 틀자마자, 내 차는 도로를 넘어 논두렁으로 미끄러졌다. 다행히 내 차가 처박힌, 막 모내기를 시작한 논이 완충작용을 해주어서 나와 아내의 목숨은 건질 수 없었다. 그러나 전파되다시피 한 내 차는 끝내 폐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부디 놈이 도로 위에서 지랄을 계속하다 빗길에서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벼랑 끝으로 굴러 떨어져 트럭과 함께 불지옥에 떨어지기를 나는 빌고 빌었다. 그러나 놈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놈은 언제였냐는 듯 회생하여 다른 육신을 빌어 다른 차를 몰고 내 앞을 가로막았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저녁이 되면서 빗발이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야근을 마치고 초주검이 된 내가 퇴근한 심야에는 폭우로 변해 있었다. 비 오는 날의 운전은 평소보다 배 이상으로 힘들었다. 시야를 가리는 빗발에 도로를 덮은 수막현상뿐만 아니라, 한껏 좁아진 시야 때문에 신경이 여간 날카로워지는 게 아니었다. 빌어먹을 지사 발령 건까지 떠오르자, 신경은 아예 서릿발처럼 곤두섰다.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이어마이크로 전화를 받는 내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던 것도 사실 무리는 아니었다.

“아, 왜?”

“어디야?”

아내의 목소리는 잠결인 듯 갈라지고 있었다.

“다 와 가.”

아닌 게 아니라, 한 5분만 들어가면 집에 도착할 터였다.

“비도 많이 오는데, 하도 안 오기에…….”

아내는 진심으로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오늘은 달갑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아, 오늘 야근이라고 했잖아.”

짜증 섞인 말을 내뱉고 나서 나는 곧바로 후회했다. 아침에도 아내를 울리고 나왔던 내가 아닌가. 게다가 얼마 전부터 아내는 우울증 치료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금방 도착할 거야. 가서 봐.”

누그러진 말투로 아내에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지사 발령이 났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빗줄기가 장막처럼 차창을 덮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와이퍼를 빠른 동작으로 조절했다. 이런 날은 아예 운전대를 안 잡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나 그놈의 알량한 월급을 타먹기 위해서는 싫어도 해야 하는 게 일이었다. 집에 거의 와갈 즈음, 나는 속도를 줄이고 우회전하여 일방통행로로 진입했다. 이 도로로 이삼 분만 더 들어가면 집에 닿을 수 있었다. 한데 중간 즈음 이르렀을 때, 나는 폭우 속에서 일방통행로를 거슬러 내 앞으로 다가오는 트럭을 발견했다. 전조등이 하나 나간 낡은 1톤 트럭이었다. 트럭도 멈추어 섰고, 나도 차를 멈추었다.

“에이, 눈깔을 어따 두고 다녀. 일방통행이다, 새꺄. 여긴…….”

나는 신경질적으로 중얼대며 경적을 울렸다. 그리고 수신호로 여기는 일방통행이며, 내 방향으로만 통행하는 길이라는 걸 알렸다. 그러나 트럭은 전혀 비킬 태세가 아니었다. 참다못한 내가 차창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어 소리 질렀다.

“아저씨! 일방이잖아요, 여기……. 차 빼요!”

그런데 차창 밖으로 내민 낯짝이 내뱉은 말이 걸작이었다.

“아, 일방이고 뭐고, 바쁜 사람이 먼저 가는 거지! 난 못 빼니까 당신이 빼!”

반말에 뻔뻔스런 작태를 보았을 때 나는 다시금 놈을 만나게 된 게 분명했다. 비상등까지 켜고는 여유만만하게 좌석 등받이에 몸을 묻는 품이, 말과는 달리 놈은 전혀 바빠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나도 순순히 물러설 수 없었다. 이 도로는 분명 일방통행로였고, 나는 정당한 일방통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개새끼가 뻔뻔하게도 내 앞을 가로막고, 도리어 나에게 비키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핸드브레이크를 걸고 비상등을 켰다. 나 역시 서두를 건 없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둘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이 기 싸움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내 뒤로 차 한 대라도 더해진다면, 내 편이 느는 셈이었고, 놈은 꼼짝없이 뒤로 꽁무니를 내빼야 할 것이었다. 이 도로의 일방 진행 방향이 내 편이다 보니, 놈의 편이 늘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저런 철면피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놈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전조등을 하향과 상향을 번갈아 가며 번뜩여보았다. 그러나 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예 전조등을 상향에 고정시켜 버렸다. 놈의 뻔뻔스런 얼굴은 차창에 흘러내리는 폭우 때문에 지워졌다가도 오가는 와이퍼 사이로 이내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경적을 꾹 눌렀다. 빠아앙! 경적은 이내 빗소리에 묻혀 버렸지만, 놈에 대한 나의 항의 의사는 충분히 전달되었을 텐데도 놈은 ‘너는 짖어라, 나는 버틴다.’는 식이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이거지?”

놈이 원하는 건 내가 뒤로 차를 빼주고, 제가 갈 길을 가는 것일 터였다. 그러나 내가 왜 놈의 의사를 들어줘야 한단 말인가. 여긴 일방통행로이고, 나는 정당하게 일방통행하고 있지 않은가. 왜 내가 놈에게 내 길을 양보해야 한단 말인가. 만일 양보를 해준다 해도 결과는 뻔했다. 놈은 욕지거리를 퍼붓거나 가운뎃손가락이나 쳐올릴 게 뻔했다. 왜 세상은 이토록 개같이 돌아간단 말인가. 질서와 도덕을 무시하는 완력과 우격다짐이 어쩌면 이다지도 판을 친단 말인가. 엔진의 열기 때문에 내 차 보닛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가슴 속에서 놈에 대한 살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내 모든 불행과 갈등의 원흉은 놈이었다. 우리 부부의 불임도, 내 지사발령도 따지고 보면 모두 놈이 원흉이었다. 그렇게 내 삶을 망치고도 놈은 저렇게 빤히 눈을 뜨고 뻔뻔한 낯바닥으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적반하장의 작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씨발새끼……. 살의는 이내 거대하게 부풀어 올라 나를 잠식해 버렸다.

 

놈은 여유만만한 낯짝으로 등받이에 몸을 묻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개새끼…….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지금까지 무수한 불합리와 부덕의 작태로 우리 부부에게 불임을 선사하고 결혼생활에 갈등을 제공하고 지사발령으로 내 숨통을 조여 댔으면 이제 좀 놓아줄 때도 되지 않았는가 이 말이다. 지금껏 내가 일방적으로 놈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었지 않은가. 나는 그저 내 갈 길을 가려 했을 뿐이다. 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나에게 헤살을 부리는 거냐! 이 개새끼야! 이 찢어 죽일 개새끼야! 핸들을 쥐고 있던 내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차 천장 위를 때리는 빗발의 기세가 더욱 맹렬해진다. 차창을 내리자, 순식간에 빗발이 쏟아져 들어온다. 나는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고함을 지른다.

“차 빼라고, 이 개새끼야!”

그러나 놈은 보아란듯이 배시시 웃으며,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인다. 놈의 가운뎃손가락을 본 순간, 눈이 뒤집힌다.

“씨발새끼, 뒈졌어!”

나는 욕설을 부르짖으며, 조수석에 앞에 달린 서랍을 당겨 열고는 발작적으로 뒤적인다.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기 위해서이다. 낯짝을 찢어버리고, 부셔버리고, 발라 버릴 테다, 개새끼……. 각종 카세트테이프와 쓰레기, 튜브 형의 흠집제거제, 차량등록증 따위가 쏟아져 나왔지만, 무기가 될 만한 것은 없다. 나는 운전석 옆의 레버를 당겨 트렁크를 연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폭우가 내 온몸을 적신다. 상관없다. 오히려 맹렬한 빗발이 내 살의를 북돋는다. 트렁크를 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거칠게 헤집는다. 야외용 돗자리와 버너, 코펠, 젠장, 쓸만한 건 약에 쓰려 해도 없다. 겨울용 시트커버, 래커, 레저왁스, 에어컨 필터청소 스프레이, 씨부랄! 아무 것도 없다. 그래, 까짓 거 상관없다. 내 맨주먹만으로도 충분히 놈의 두꺼운 낯짝을 뭉개버리고 골통을 부셔버릴 수 있다. 나는 내 차 앞에 떡 버티고 있는 트럭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한다. 주먹을 불끈 쥐고서. 개새끼,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너의 뻔뻔함을 내가 오늘 완전히 끝내주마. 트럭의 운전석 옆에 이르러 나는 왼손을 들어 놈의 차창을 두드린다. 놈이 차창을 내리고 나를 바라본다.

“뭐? 어쩌라고?”

송곳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놈의 파렴치는 여전하다. 희번덕거리는 놈의 눈자위를 뽑아 손아귀에서 터뜨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래, 나도 바라던 바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나도 더 이상 물러서고 싶지는 않다.

“씨발놈아! 내려!”

내 발작적인 고함이 놈이 흠칫 하는 것 같다. 이제 와서 꼬리를 내려도 이미 늦은 걸 놈은 알고 있을까. 그 순간, 갑작스럽게 놈의 차문이 벌컥 열린다. 아니, 열린다기보다는 나를 향해 튕겨 나온다. 방심하고 있던 나는 차문에 부딪혀 뒤로 벌러덩 나동그라진다.

“내렸다, 어쩔래?”

놈이 나지막이 내뱉는다. 아스팔트 바닥에 고인 빗물이 차갑게 내 등과 엉덩이로 스며든다. 갑자기 옆구리가 터져 나가는 듯한 통증이 온다.

“헉!”

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를 나뒹군다. 숨조차 쉬기 어렵다. 놈이 프리킥을 하는 축구선수처럼 내 옆구리에 발을 휘두른 것이다. 또 한 번 옆구리가 걷어 채이자, 모든 전의가 상실된다.

“그러게…… 안 그래도 기분 좆같은데, 왜 남의 앞길을 막고 지랄이야.”

놈이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몸을 일으켜 세운다. 놈이 손에 끼고 있는, 목장갑에 발라진 고무의 색이 유난히 붉다. 나는 무력하게 놈에게 질질 끌려간다. 팔을 휘저으며 놈의 팔뚝을 내 머리채에서 떨어지게 해보려 하지만, 놈의 완력을 이길 수 없다. 씨발새끼. 죽일 놈. 그러나 이제 살의보다 더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내 온몸을 마비시킨다.

놈이 내 머리를 트럭의 차문과 운전석이 맞물리는 부근에 갖다 댄다. 놈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술 냄새와 니코틴 절은 냄새가 지독하다. 이내 내가 뭔가 반항을 할 사이도 없이, 눈앞이 번쩍하면서 귀가 멍해진다. 위잉 하는 소리가 내 귀와 귀를 관통하며 두개골을 울린다. 놈이 내 머리를 차문 사이에 대고 있는 힘껏 문을 닫은 모양이다. 번쩍! 번쩍! 둔중한 충격이 내 두개골 양쪽에 연이어 쏟아진다. ……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이제 아픈 지도 모르겠다. 감각이 없다.

“사람을 봐가며 건드려야지.”

아스팔트 바닥에 쏟아져 빗물과 뒤섞이는 피가 시야에 들어온다. 뒤통수에서부터 얼굴을 타고 흘러나오는 뇌수의 감촉이 진득하다. 몸이 무너져 내려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게 아마도 놈이 득의연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놓은 모양이다. 사그라지는 의식의 불꽃은 단말마의 반짝임으로 타올랐다가 스러진다.

앞으로도 놈은 도로 위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고, 아내는 이제 유산에, 불임에, 남편마저 잃은 과부가 될 것이고, 여전히 세상은 개같이 돌아갈 것이다.

정말이지 좆같이 재수 더러운 날이다.



 

두꺼운 커튼이 창문을 가려 밤인지 낮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멎어 버린 시계 밑으로 몇 가닥의 먼지 묻은 거미줄이 노인의 머리카락처럼 늘어져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에 흔들흔들 나부낀다. 멈춰 버린 시계와 길고 어두운 터널에 갇혀 버린 내 삶이 삼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작은 방에 도사리고 앉아 죄책감에 쪼그라들어 간다.

끼이익.

밖에서 마루를 걸어가는 누나의 힘없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낡고 들뜬 마루판은 누나의 얼마 되지 않는 체중에도 쉽게 비명을 토해 낸다. 정신을 놓은 엄마가 발자국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화장실 변기통에 머리를 찧으며 죽은 형을 부른다.

“민재야……. 민재야……. 내 새끼 민재야……. 어디 있니? 제발 이 에미한테 돌아오렴.”

아마도 그 옆방에선 뇌졸중으로 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