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서점 서가에서 『나의 코스모스』를 뽑아 두 손에 들고 계실 이 책의 예비 독자 분께 한 말씀 드립니다. 이런 책은 아마 처음 보실 겁니다. 한마디로 묘한 역사와 특이한 구조에다 깊은 내면성을 지니고 태어난 책입니다.

저자라고 필자의 이름 석 자 ‘홍승수’가 올라가 있지만, 실질적 집필진은 10년 전 필자의 번역으로 (주)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된 『코스모스』에 과분한 애정을 끊임없이 보여 주시는 독자 한 분 한 분이십니다. 시작이 반이라고들 하지 않던가요. 집필의 2분의 1을 『코스모스』의 애독자 여러분이 담당하셨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필자를 불러 주신 ‘과학과사람들’이 『나의 코스모스』 집필의 4분의 1을 책임져 줬습니다. ‘과학하고 앉아 있네’의 무대에 필자를 올려 세울 음모를 해 오신 소생의 옛 제자 몇 분, 민음사와의 인연을 맺게 해 준 공존의 권기호 사장, 오늘 사이언스북스의 편집진을 이끄는 노의성 주간이 나머지 4분의 1을 채워 넣었습니다.

그래도 『코스모스』가 우리 독자들에게 오기까지의 역사를 정리할 사람은 필요했습니다. 그 일이 필자의 몫으로 남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 세이건 원작 COSMOS의 번역본 『코스모스』의 옮긴이 후기가 『나의 코스모스』로 태어났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나의 코스모스』의 핵심 내용을 크게 네 덩어리로 나누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필자가 칼 에드워드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년) 원작 COSMOS의 번역을 결심하게 된 저간의 사정이 이 책 첫 덩어리에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이 자리에 『코스모스』 탄생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굳이 말씀 드리는 건, 세대를 거듭하며 보여 주신 독자 여러분의 『코스모스』 사랑에 대한 역자로서의 감사의 정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숨어 있던 뒷이야기를 들으면 공표된 이야기에 대한 흥미의 정도, 이해의 폭과 깊이가 훨씬 더해집니다. 부모에서 자녀로의 대물림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덩어리에는 『코스모스』 총 13개 장(章) 각각의 내용이 요약, 정리돼 있습니다. 독자들이 각 장의 내용을 미리 알아보시라는 뜻에서 마련한 건 아닙니다. 저자 세이건이 자신의 주장을 독자에게 효율적으로 전하기 위해 글쓰기의 어떤 장치를 동원하고 있는지 짚어내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칼 세이건이 구사하는 ‘사실에서 진실 찾기’의 묘미를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필자는 이 덩어리에서 원저 COSMOS가 천문학을 주제로 한 단순 교양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 전반에서 회자되는 융합적 사유의 한 전형을 세이건의 COSMOS에서 알아보시라는 뜻에서 둘째 덩어리를 준비했습니다. 각 장 소개마다 지구 문명의 미래를 염려하는 칼 세이건의 깊은 고뇌와 함께 그의 인류애를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필자는 셋째 덩어리에 『코스모스』와 COSMOS가 국내와 국외에서 각각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를 분석해 놓았습니다. 세이건은 자신의 저술에서 지구 생명의 출현과 진화 그리고 지구 문명의 현재와 미래를, 빅뱅(big bang, 대폭발)에서 비롯한 우주 진화의 거대한 시공간의 틀에서 조망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구 문명의 암울한 미래상을 밝은 내일로 바꿔야 할 책임이 우리 지구인 각자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하나의 생명 종(種)으로서 행성 지구에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느냐, 아니면 곧 스러지고 말 것이냐 역시 전적으로 우리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세이건이 COSMOS에서 인류의 근본 문제를 건드렸던 것입니다. 여기에 『코스모스』의 성공 비결이 숨어 있습니다.

아울러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전통 문화의 족보 중시 사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자기 조상의 시원을 빅뱅의 순간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가슴이 설레지 않을 한국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의 많은 직장인들은 『코스모스』와 마주 앉아 대화하는 동안만은 신자유주의 차꼬에서 풀려나곤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달리 볼 새로운 눈을 갖게 되므로 아빠는 자신뿐 아니라 어린 자녀를 위해서도 『코스모스』에 투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앞에서 필자는 융합적 사유의 한 전범(典範)을 칼 세이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이건이 구사하는 ‘사실에서 진실 찾기’의 현란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칼 세이건을 통해서 본 우리 교육의 문제를 넷째 덩어리에 뭉뚱그려 제시했습니다. 즉 비판적 책 읽기에서 얻어 낸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문이 넷째 덩어리를 구성합니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문과, 이과 분리 교육의 해묵은 병폐를 세이건을 통해서 직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필자가 옮긴이로서 COSMOS를 비판적으로 읽어 낸 결과가 『나의 코스모스』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방금 손에 집어 든 『나의 코스모스』가 앞으로 당신이 『코스모스』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데 한 편의 유능한 길라잡이 되기를 바라면서 머리말을 대신합니다.

 

2017년 정월에

함허재에서

홍승수






원종우: 떨려요. 제가 3년을 이걸 했는데, 오늘(5월 14일. 음력 4월 8일) 너무 많이 오셨어요. 불편하시지요? (객석 “아니요.”) 할 수 없지 뭐. 어떻게 해. 하하. 제가 3년을 하면서 무대에 굉장히 많은 분들을 모셨는데 오늘 가장 존경받는 학자를 모셨습니다. 여러분, 『코스모스』 다 읽으셨어요? (객석 “예.”) 안 읽었지 뭐. 그렇지요? 집에 꽂혀 있지요? 그림만 몇 장 보다가 그냥 뒀지 뭐.

어쨌든 오늘의 주인공을 모시기 전에, 저희 ‘과학과사람들’ 입장에서 좀 뜻깊은 상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여기(무대 배경 현수막) 보시면, 오늘이 저희의 3주년입니다. (객석 환호와 박수) 그다음은 칼 세이건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올해가 20주년입니다. 물론 기일(忌日)이 12월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런 의미도 있고요.

내일인 ‘스승의 날’도 중요합니다. 오늘 여기 계신 교수님의 제자들도 오셨습니다. 본 강의 끝나고 그분들도 모셔다가 교수님의 옛날 이야기, 본인들의 흑역사, 공부 안 하고 도망 다닌 학생들과 무서운 선생님 이야기, 이런 걸 또 같이 나누게 될 거고요.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이기도 합니다. (객석 웃음) 바로 오늘이잖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천문학과 물리학을 비롯한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것들이 결국은 모든 것이 다 얽혀 있고, 섞여 있고, 붙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해서, 어떤 의미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과도 조금 연결되지 않나 싶습니다.

저희 ‘과학과사람들’은 2013년 5월 7일에 K 박사님과 소박하게 ‘빅뱅’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때는 한 편 하고 그만두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진짜 아무 계획도 없었고요. 준비도 매우 부족했고, 첫 방송 들은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저희가 막 만두를 먹으면서 방송했어요. 쩝쩝 소리가 다 들어갔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방송 내고 나서 맨 먼저 올라온 반응이 “첫 방송부터 먹방이냐?”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했고요. 첫 편 하고 반응 안 좋으면 그만두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여든두 편이나 했습니다. 그래서 3년이 지난 오늘 대략 누적 1000만 다운로드가 됐습니다. (객석 박수) 그리고 지금까지 출연하신 과학자 및 과학 관련자가 서른두 명입니다.

그러면 저희 이야기는 그만하고 오늘의 주인공인 홍승수 교수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객석 박수와 환호) 앉아서 하겠습니다.

 

홍승수: 글쎄, 앉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요, 저기 서 계신 분들이 하도 많아 가지고.

 

원종우: 그렇게 생각하시면 저는 또 뭐가 되나요? (객석 웃음) 알겠습니다. 예, 편하신 대로 하시면 되고요. 그리고 교수님을 모셨으니 말씀을 드리자면, 저희 ‘과학과사람들’은 그동안 이상하게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와 관련이 많았습니다. 제자 되시는 분들하고 저희들이 많은 것을 같이해 왔고요, 교수님은 다들 아시다시피 『코스모스』의 역자이십니다. 그리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 30년 넘게 교편을 잡으셨고, 지금은 은퇴해서 명예 교수로 계십니다.

교수님의 강의가 유명한 것은, 물론 『코스모스』 이야기가 있어서 당연히 그렇겠지만, 교수님이 가지고 계시는 통찰이라든가 인문학적 접근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청중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고 또 여러 가지 감성적인 인문학적 접근을 하게 해 주기 때문이고, 그런 것으로 굉장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 교수님이 강의를 해 주실 건데요, 저는 제가 지금까지 3년 동안 한 번도 안 해 본 걸 하겠습니다. 저는 짱 박히겠습니다. (객석 웃음) 누가 오셔도 저는 이 자리에서 항상 끼어들었습니다만, 오늘만큼은 제가 내려가려고 …… 했는데 (무대 아래를 내려다보며) 내려갈 자리가 없네요. 그냥 구석에 짱 박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교수님이 강의를 끝내고 나면 다시 끼어들겠습니다.

강의가 끝나면, 이제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질문지를 나눠 드릴 겁니다. 그러면 기탄없이 질문을 쓰셔서 저한테 넘겨주시면 되고요, 이어서 깜짝 게스트들을 모셔다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그분들의 흑역사, 교수님의 흑역사가 아닌 학생들의 흑역사죠, 그런 이야기들도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교수님께 다시 한번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객석 박수)



칼 세이건에게서 듣는 ‘하늘, 땅, 그리고 사람’ 이야기

홍승수: 감사합니다. 제게는 오늘 이 자리가 대단한 충격입니다. 어쩌면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대단한 충격입니다. 오늘같이 좋은 날 여러 가지 이유로, 그리고 토요일 오후 이 시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이 좁은 공간에 모이셔서 제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는 건, 이건 기적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둘러보니까 연령대가 대개 30대, 40대인 것 같습니다. 혹시, 죄송합니다만, 여기 70대 계십니까? 저는 손을 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놀라운 건 어린 아이들이 여기 있다는 겁니다. 가슴 뿌듯합니다. 굉장히. 한국의 미래, 대한민국 과학의 미래가 무지 밝구나,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 경제가 어떻다고 그러더라도 여러분이 계시면, 여러분 같은 분들이 이 나라에 있으면, 우리의 미래는 대단히 밝다고,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여기에 앉아 한 시간 넘게 기다리면서 온갖 상념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야~ 죽은 칼 세이건의 위력이, 그것도 20년이나 됐는데 참으로 대단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학계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리학 분야의 책 중 레프 다비도비치 란다우(Lev Davidovich Landau, 196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와 에프게니 미하일로비치 리프시츠(Evgeniĭ Mikhaĭlovich Lifshits)의 물리학 시리즈가 있는데, 그게 러시아의 두 물리학자인 란다우 교수하고 리프시츠가 같이 쓴 겁니다. 항시 란다우가 앞에 나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실제로는 누가 썼는가 하면, 리프시츠가 썼습니다. 란다우는 글을 잘 못 쓴대요. 머리 회전이 너무 빨라서 글쓰기가 못 따라갔던 거죠. 글쓰기가 말할 수 없이 답답한 거예요. 그런데 이 양반이 불행하게도 교통 사고로 머리를 다치셨어요. 그래서 뭘 하기 힘들어졌어요. 그랬는데도 러시아 과학계에서는 금이 간 란다우의 머리가 온전한 리프시츠보다 낫다고 그랬답니다. 돌아가신 칼 세이건 교수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 홍승수보다 훨씬 나으십니다. 세이건은 저보다 꼭 열 살이 더 많은 분인데, 안타깝게도 70 이전에 60세 정도(62세) 됐을 때 돌아가신 걸로,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많이들 계시니, 여러분과 함께하는 시간이 (한두 시간이 아니라) 몇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과 나눠야 할 것은 칼 세이건에게서 듣게 되는 천・지・인(天・地・人)의 이야기입니다. 하늘, 땅, 사람,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홍승수, 『코스모스』를 번역하게 되다

세이건이 잘생겼어요. 뭐든지, 어떤 것이든지 거기에 관여된 사람들의 스토리를 알게 되면 특별한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끙끙 고생을 하면서 논문을 읽었는데, 학술 대회에 가서 그 논문의 저자를 만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고, 그의 제자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그다음에는 그 사람이 쓴 논문을 훨씬 쉽게 읽을 수 있더라고요. 이것이 참 묘해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번역하게 됐는가 하는 그 배경, 역사를 말씀드리는 것도 아마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장소: 서울대학교 호암 교수 회관

일시: 2000년 초여름 어느 날 점심 시간

참석자: 권기호(사이언스북스)+홍승수(서울대 천문학과)

안건: 1980년에 칼 세이건 프로덕션스(Carl Sagan Productions, Inc.)가 세상에 내놓은 과학 교양 명저 COSMOS(Carl Sagan, 1980)의 우리말 번역 제안

 

2000년 초여름이니까, 아마 이때쯤 됐을 겁니다. 어느 날 점심 시간에 서울대학교 호암 교수 회관에서 당시 사이언스북스의 권기호 편집장하고 홍승수가 마주 앉았습니다. 저는 전혀 모르는 분이고, 갑자기 전화로 “내가 너를 만나러 갈 테니까, 호암 교수 회관으로 나와라.” 그래서 마주 앉게 됐습니다. 여기 권 사장님이 계신지 잘은 모르겠는데요, 그렇게 마주 앉아 가지고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1980년에 칼 세이건 프로덕션스에서 이 세상에 내놓은 과학 교양 명저인 『코스모스』의 우리말 번역을 당신이 좀 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는 아마 제가 60이 아직 안 됐을 겁니다. 50대 중반인가 그랬을 땐데, 거절했어요. 그 자리에서 거절했어요. 왜 그랬는가 하면, 출판된 지 20년이나 된 과학 책, 그것도 천문학과 관련된 책이었고, 천문학 지식이라는 게 3년이 멀다 하고 끊임없이 바뀌거든요. 교과서요? 끊임없이 고쳐야 했죠. 그런데 그걸 번역하라고? 그러면 틀림없이 저는 번역하면서 주석을 끊임없이 달아야 했을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건 못할 짓이거든요. 그리고 저는 특히 인문학 서적에 달린 주석은 읽지를 않습니다. 왜 거기다 쓰는지 모르겠어요. 본문에다가 쓰지.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객석 웃음) 그래서 제가 그 짓을, 제 자신이 할 생각을 하니까 솔직히 끔찍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 나는 그런 거…….” 이랬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었는가 하면, 그때는 넥타이를 꼬박꼬박 맬 때였습니다. 목에 힘 주고 폼 잡고 다닐 때였죠. 그래서 현직 교수로서 내가 전문서가 아닌 교양서를 번역한다는 건, 이건 격에 안 맞는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요즘 제가 반성 많이 합니다. (객석 웃음) 특히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는 대학 교수들에게 뭔가 생산하라고 정말 윽박지르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그때 저는 연구에 미련을 크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이건 심각한 문젠데, 저는 개인적으로 칼 세이건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텔레비전에 나와 가지고 “빌리언스 오브 빌리언스(billions of billions, 수십조의 수십조)” 이 소리를 끊임없이 하는 게 싫었던 거죠. 물론 칼 세이건은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science communicator)로서 대단히 성공한 인물입니다. 아니, 아마 전 세계 제1인자일 거예요. 그래서 그때만 해도 제 생각에는 과학자라면 점잖게 연구실에 앉아서 논문으로 과학을 이야기할 것이지, 저렇게 텔레비전에 나와 가지고 “빌리언스 오브 빌리언스”를 반복해야 되겠는가, 그랬죠. 저는 그래서 이 양반을 싫어했죠. 저는 그런 학풍 속에서 크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코스모스』 번역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칼 세이건은 텔레비전 시리즈 「코스모스」의 시청자들이 millions와 billions를 명확히 구분해 듣도록 하기 위해 billions의 ‘b’를 강하게 발음했다. 하지만 그가 공식적으로 “billions of billions”를 말한 적은 없다. 이것은 칼 세이건이 출연했던 뉴스쇼의 진행자가 만들어 낸 말인데 나중에 ‘많은 수량을 모호하게 일컫는 유머러스한 유행어’가 됐고 칼 세이건이 한 말처럼 인식됐으며, 1997년에 출간된 칼 세이건의 유작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이 유작의 한국어판 제목은 『에필로그』다. — 편집자)

바이킹 호 모형과 함께 있는 칼 세이건. ⓒ Carl Sagan Foundation.

그다음에 제가 물은 것은, “이 책의 번역자가 꼭 홍승수여야 할 이유가 뭔가?”였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잘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 믿었고, 또 저는 제가 문장력이 부족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번역자로 적격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은 도서 출판 공존 사장인 권기호, 이 양반이 집요하게 설득하시더라고요. 조목조목 들이댑니다. 아, 저 그날 사실은 꽤 당했어요. (객석 웃음)

“그렇다. 이 책은 출간된 지 오래된 저작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전이라 하지 않는가? 출판된 지 20년이 됐는데도 번역이 필요하니까 이거야말로 고전이 아닌가?” 이러는 겁니다.

“절대로 수명이 다한 책이 아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지가 않다. 앞으로도 긴 수명을 누릴 것이다.” 이 양반, 굉장히 깊이 생각하고 오셨더라고요.

“붙여야 할 역주가 당신이 예상하는 것만큼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중심 주제를 이끌어 가는 데 최신의 과학 정보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주석할 양이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소위 『코스모스』 세대라는 연령층이 있다.” 여러분 아니십니까? 오늘날 30대 직장인들은 1980년대 초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코스모스」 시리즈에 열광했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안 그러십니까?

“그들은 제대로 된 이 책의 번역본을 지금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굉장히 경제적인 사고인데 “열다섯, 스물일 때는 그 책을 사 볼 경제적 여력이 없었지만 이들은 이제 마음대로 책을 사 볼 금전적 여유가 있으니까 이 책이 나오면 살 거다. 이거 얼마나 좋은 일이냐?”

그러면서 권기호 씨 자신도 『코스모스』 세대라고 그러더라고요. “칼 세이건이 과학 대중화에 성공했다면 그의 명저 『코스모스』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의 대중화에 성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런 뜻입니다.

“과학책을 읽게 해 줘야 된다. 그리고 이 책은 젊은 학자가 번역하기에 적당치가 않다. 왜냐하면 천문학의 과학적인 지식만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이언스북스가 홍승수를 역자로 선정한 배경에는 여러 해 전 당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