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자' 김우창 교수가 '전집'을 묶고 7년만에 펴내는 사회비평서다. 우리 사회가 외환위기와 구제금융 사태를 겪을 무렵 쓰여진 것들이다. 사회적으로 위기의 시기에 쓰여진 것이기에 그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위기. 도덕. 삶', '상황과 전망', '정치와 이성', '환경과 깊이의 사유'의 4장으로 나눠 담긴 화두는 정치와 정치지도자, 도덕과 정치와 경제와 사회, 투명성과 공공성, 이성과 합리성, 근대적 성찰, 세계화, 탈근대론, 정체성과 사회화, 자유와 교육 등 아주 다양하다.

저자가 진단하는 사회위기의 원인은 바로 도덕의 부재다. ''여기에서의 도덕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일상적 삶과 그것을 지탱하는 구조적인 틀의 빼어 놓을 수 없는 원리로서의 도덕''이다. 도덕에 대한 강조는 저자가 늘 주장해오던 '심미적 이성'과 결부된 것이기에 '생각하는 힘'으로서의 이성을 곳곳에서 강조한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환경 문제를 다뤘는데, 환경문제의 해결책도 철학적 지혜와 삶의 태도 변화에서 구하고 있다.

김우창 - 1937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 1958년 서울대 영문과 졸업. 1965년 「청맥」지에 「엘이어트의 예」로 등단. 1975년 미국 하버드 대에서 미국 문명사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 받음. 1963년 부터 1974년 서울대 영문과 교수. 1974년 이후 현재까지 고려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91977) 「지상의 척도」(19981) 「문학의 비평」(1984) 「시인의 보석」 「법 없는 길」 「심미적 이성의 탐구」 「이성적 사회를 향하여」 「김우창 전집」(1993) 등이 있다.

이번에 엮은 글들을 돌아보면서 나는 이 글들이 대체로 IMF 위기로 하여 돌연 깨닫게 된 큰 상황과 관련하여 우리 삶의 구체적 존립그거로서 소사회의 문제들을 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중에도 이 글들의 주관심사는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규범의 문제들에 있다. 전반적인 위기에서 지역 공동체는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 도덕은 사회 질서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가. 사람과 사람의 일상적 관계를 조절하는 장치로서의 에절은 어떤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가. 이러한 작은 문제들에 대한 섬세한 주의를 잃지 않으면서 그것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관점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점에 있어서 환경을 생각하는 어떠한 사람들의 김이의 생태학이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깊이는 제일차적으로 지각의 현상이다. 그것이 깊이 있는 생각에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또한 좋은 사회를 위한 정신적 토양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머리말 중에서

동아일보 | 우리 시대를 진단한다 ... 2000-05-21
'생각'이 없는 사회가 잘 살 수 있을까? 개인이나 사회가 어떻게 살 때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우창 교수의 근저 '정치와 삶의 세계'(삼인출판사)는 생각하는 사회와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어떤 차이를 내는지, 그 차이를 생각하는 것이 왜 중요한 일인지를 거듭거듭 생각하게 한다. 생각하게 하고, 생각한다는 행위의 경건성을 또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저술은 우리 시대의 유행과는 반대 방향에 있고 시대의 명령을 역행한다.

동아일보 | 우리 시대를 진단한다
'생각'이 없는 사회가 잘 살 수 있을까? 개인이나 사회가 어떻게 살 때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아무 생각 없이 살 때에도 사회는 잘 사는 것일까? 오랑우탄, 침팬지, 개코원숭이의 세계에서는 사는 것과 생각하기 사이에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해질녘 바위에 앉아 이를 잡고 있는 인도 라구르 원숭이를 보면 그 무심한 낯짝이 너무도 정갈하고 심오해서 도 터진 수도승의 얼굴 같기도 하고 환생한 간디 같기도 하다.

'무심'이 생각 멸하기 혹은 생각하지 않기라면, 지금 우리 사회는 단연 무심의 사회이다. 아무도 좀체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소리만 들어도 우리는 백리 밖으로 달아날 준비부터 한다. 그런데 어째서 현대 한국인의 얼굴은, 아이들만 빼고는, 그토록 추악한가? (어떤 관찰자에 따르면 우리의 얼굴을 추악성의 면에서 대표하는 것은 단연 '정치인의 얼굴'이다) 라구르 원숭이의 무심이 정갈하고 심오한 얼굴을 낼 수 있다면 우리의 무심은 어째서 정확히 그 정반대 효과를 내는가? 내가 지금 수년째 안고 다니는 미스터리 보따리 속에는 이런 질문들이 들어 있다.

김우창 교수의 근저 '정치와 삶의 세계'(삼인출판사)는 생각하는 사회와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어떤 차이를 내는지, 그 차이를 생각하는 것이 왜 중요한 일인지를 거듭거듭 생각하게 한다. 생각하게 하고, 생각한다는 행위의 경건성을 또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저술은 우리 시대의 유행과는 반대 방향에 있고 시대의 명령을 역행한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책에 '인기 없는 에세이'라는 제목의 것이 있다. 김 교수의 책이 '인기'가 있을지 없을지는 속단할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인기를 생각했다면 이런 책은 쓰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 이 저술의 가치와 무게와 깊이는 거기 있다. 가치, 무게, 깊이라는 것들부터가 페품처럼 버려지고 있는 시대에 그것들을 다시 우리 앞에 챙겨내어 보인다는 것은 최상급의 인문학자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그러나 이 역행의 용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역행이 바로 시대에 대한 최선의 인문학적 봉사라는 사실이다. 시대를 거슬러 말한다는 것이 어떻게 '시대를 위한' 일인지를 이처럼 잘 깨치게 하는 책을 나는 근간에 본 적이 없다. 인문학자의 성찰과 사유가 시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최선의 전범을 우리는 이 책에서 만난다.

김 교수의 사유 항목들은 이 시대를 생각하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외면하지 못할 광역 화두들을 거의 모두 포함한다. 정치와 정치지도자, 도덕과 정치와 경제와 사회, 투명성과 공공성, 이성과 합리성, 외면성과 내면성, 심미성, 근대적 성찰, 세계화, 탈근대론, 정체성과 사회화, 자유와 교육, 능률, 과학, 동양적 사유와 도덕, 성리학, 사회주의, 자본주의, 보편성과 삶의 구체성, 행복, 맑시즘, 자유주의, 너비와 깊이, 삶의 형이상학적 구조, 문명, 사회공간과 건축, 문학과 철학 등등의 문제들이 사유되고, 심지어 바다, 수평선과 수직선, 너비와 깊이와 어둠, 광대무변한 것에 대한 숭엄성과 신성성의 경험에 대한 사유까지도 들어 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같은 사유의 너비와 깊이만이 아니라 '사유의 불꽃'이다. 그 불꽃은 깔끔한 문제 정의와 선명한 개념화가 빚어내는 섬광일 뿐 아니라 어떤 논의도 단순화하지 않고 복잡성의 회로 속에 집어넣어 생각하는 독특한 사유방식에서 발산되는 광채이다. 그것은 짧은 합선의 불꽃이 아니라 치열한 대화의 불꽃이다. 생각한다는 것이 이처럼 불꽃 만들기이고 불꽃들의 축제일 수 있다면, 그것이 축제인 줄 안다면, 그 축제에 초대된다는 것은 큰 행복이 아닐 것인가!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진단이면서 공시대적 분석이고 그 문제들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 결과에 대한 보고서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 보고행위는 극히 소중하다. 정치는 어떤 꼴의 것일 때 언필칭 '정치'인가, 삶은 어느 때 '진정한 삶'이 되고 너비는 왜 깊이를 요구하는가, 도덕주의와 사회화의 위험은 무엇이며 그 위험은 어떻게 방지되는가, 우리는 어떻게 단견과 맹목의 포로임을 면할 수 있는가-예를 들면, 우리는 이 저술에 제기된 이런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한두 가지 사족-도덕의 차원과 윤리의 차원에 대한 적절한 구분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회적 사유의 한국적 빈곤은 어떤 역사적 사정에 연유하는가? 이 책을 다시 낼 경우 김우창의 사유항목들에 대한 '색인' 서비스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겨레신문 | 도덕없는 경제는 망한다 ... 2000-05-15  

한겨레신문 | 도덕없는 경제는 망한다
영문학자 김우창 교수(64·고려대)의 사회·정치 비평집 <정치와 삶의 세계>(삼인)가 나왔 다. 지난 93년 민음사에서 김우창 전집을 낸 뒤 7년 만의 신간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대체로 외환위기와 구제금융 사태가 우리 사회를 강타한 지난 두어 해 동안 쓰여진 것들이다. 따라서 사회적 위기의 원인을 찾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김 교수의 관심이 쏠려 있다.

위기의 원인과 대책에 관해서는 그 동안 적지 않은 글들이 쓰여졌다. 그러나, 위기의 실체를 도덕의 부재 내지는 부족에서 찾는 것은 김 교수다운 입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의 위기가 말해 주는 것은 도덕이 얼마나 경제 운영의 핵심에 있는 것인가, 또 정치와 사회생활의 핵심에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또 ''여기에서의 도덕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일상적 삶과 그것을 지탱하는 구조적인 틀의 빼어 놓을 수 없는 원리로서의 도덕''이라고 부연한다.

도덕에 대한 이런 강조가 김 교수 특유의 '심미적 이성'에 대한 생각과 결부된 것임은 물론이다. 이번 책에서도 그는 여러 곳에서 '(심미적) 이성'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는 특히 위르겐 하버마스의 '상호 작용의 능력' 개념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기 동일성을 향한 주체의 열망은 서로 다른 독단적 신념들 사이의 폭력적인 부딪침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욕구를 인지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것을 실현하고 수정하고 또 그러는 가운데 사회의 일반적 구조를 반성적으로 내면화함으로써''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회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성과 도덕은 만만치 않은 회의와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김 교수 역시 이성과 도덕이 초래한 부작용에 눈 감지는 않는다. 그 점은 영문학자로서 그가 '서양 근대 문학의 근거'인 '구체적인 생활 공간'을 중시한다든가, ''우리 삶의 구체적 존립 근거로서 소사회의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에서도 확인된다.

이것들은 헤겔 식의 전체성의 이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비이성적인 것들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것들 없이는 ''개체적 삶의 고유한 의미와 느낌이 존립하기 어렵다''는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현직 대학 교수로서 그는 '대학 개혁'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것은 학문의 행정 예속, 경제 예속, 좁게 생각한 공리적 예속”이라고 지적한 후, ''지금 대학을 뒤흔들고 있는 것은 경영학적 사고'', 그것도 ''어셈블리 라인의 생산성에만 주의하는'', ''유치한'' 것이라고 질타한다.

전체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은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에 할애되어 있다. ''확대된 심미 의식이 곧 환경 의식''이라는 통찰은 김 교수답다는 느낌을 준다. 그는 노르웨이 철학자 아르네 네이쓰에서 비롯된 '깊이의 생태학'(Deep Ecology)이라는 개념에 의지한다. 환경 문제 해결책을 경제적 합리성이나 정치운동의 차원이 아니라 철학적 지혜와 삶의 태도 변화에서 찾으려는 이런 생각은 도저한 인문주의자로서 김 교수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세계일보 | '소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극복방안 모색 ... 2000-05-18  

세계일보 | '소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극복방안 모색
''경제위기는 부정부패와 관련돼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도덕성에 기인한다.'' 우리 사회 인문학의 '외로운 거장' 김우창(64.고려대 영문학) 교수가 정치-사회비평집 <정치와 삶의 세계>를 출간했다. 이번 비평집은 1993년 민음사에서 <김우창 전집>을 낸 뒤 7년만에 선보이는 신간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IMF라고 부르는 외환위기가 우리 사회를 강타한 지난 두어 해 동안 쓰여진 것들이다. 그러나 이 글들은 이 외환위기와 금융사태에 대하여 또는 그것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해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인문학자로서 우리 삶의 구체적 존립 근거로 '소사회의 문제'들을 주로 다루며 그 극복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교수는 △전반적인 위기에서 지역공동체는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 △도덕은 사회질서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가 △합리적 사회는 무엇이며 양심은 무엇인가 등에 의문을 던지면서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규범의 문제'들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이번의 위기가 말해주는 것은 도덕이 얼마나 경제운영의 핵심에 있는 것인가, 또 정치와 사회생활의 핵심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도덕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일상적 삶과 그것을 지탱하는 구조적인 틀의 원리로서의 도덕''이라고 말한다.

김교수는 예절이 인간의 상호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행동의 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혁명이라는 격동의 시점에서 레닌이 죽음에 직면하여 정치지도자로서의 스탈린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그의 '무례함'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바로 이 무례함에 관계되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김교수는 짐작한다. 왜냐하면 예절이야말로 소사회의 기제에서 대부분 큰 사회의 기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것.

다음으로 그가 던지는 중요한 질문은 세계체제의 문제. 임마누엘 월러스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의 세계 상호 의존성은 작은 지역사회의 삶을 생각하는 경우에도 그 사회가 위치해 있는 세계적인 환경을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김교수는 ''오늘날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자본주의 문명의 생산성에는 과연 경이로운 바가 없지 않다. 문제는 그것이 인간적 규모 안에서 제어될 수 있는 것인지, 받아들일 수 없는 부정적 결과들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국제 자본주의, 국민-국가간의 분규, 빈곤, 환경, 제국주의, 인간성의 전반적인 황폐화 등 현실적 문제들은 현실적 해결을 요구한다''고 말한다.